ⓒ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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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라 빈정거리지 마라. 부모 세대야말로 전부 울고 싶은 심정이다.”

“천국이 있다는 거짓말 믿지 마라. 응석 부리고 빈정거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

지난해 여름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이 올라오자, 온·오프라인에서 뜨거운 논쟁이 촉발됐다. 이 글을 쓴 주인공은 이병태(58)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이 교수는 이에 앞서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최저임금 인상정책을 두고 페이스북에 비판글을 올렸다가 일부 젊은이들로부터 욕설에 가까운 댓글 세례를 받았다. 댓글의 주요 내용은 “사람값 똥값 취급하는 나라에 관한 한탄”이었다.

이 교수는 댓글을 올린 젊은이들을 상대로 ‘젊은이들에게 가슴으로 호소한다’는 일종의 반박글을 게재했고 이 내용은 다수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반박문을 올리며 논쟁에 가세했다.

박 교수는 자신을 이 교수와 같은 ‘베이비부머’라고 소개한 뒤 “젊은이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유학을 갔다 와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도, 부모세대가 누린 기회와는 비교가 안 될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면서 “젊은이들을 위해 해줄 게 없다면 가만히 있는 게 예의다. 징징댄다고 타박하는 것은 오만”이라면서 이 교수를 비판했다.

지난 10월 2일 서울시 중구 퇴계로에 있는 ‘한국의집’에서 이병태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먼저 지난 여름의 논쟁에 대해 물었다. “사실 당시 글은 긴 시간을 들여 작성한 게 아니었다. 최저임금에 대한 문제제기를 반박하는 젊은이들에게 앞선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흐르는 부정적 경향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1985년 카이스트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사무용기기 업체인 신도리코에 취업해 일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텍사스대학 오스틴캠퍼스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일리노이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 가족 모두를 데리고 귀국한 시점이 지난 2001년이었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 접고 가족과 함께 국내에 들어왔더니 주변에서 대뜸 묻는 게 ‘왜 들어왔냐’는 거였다. 내 나라 사람이 고국에 돌아왔는데 왜 들어왔냐는 질문을 받는 이상한 분위기였다. IMF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라고만 생각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자신감을 잃고 일종의 우울증 비슷한 현상이 관통하는 흐름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나서 2010년을 전후한 시기 ‘힐링’과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이 교수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힐링이라는 건 아프니까 필요한 것이다. 청춘콘서트가 생겨나면서 ‘미안하다’는 위로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힐링은 치료를 의미하고 스스로를 치유의 대상이 되는 환자라고 여기는 거다. 이런 분위기가 헬조선으로 이어졌다. ‘치유받고 스스로 노력하는데 안 된다. 그게 다 사회 책임이다’는 걸로 귀결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치권도 반응하기 시작했고 우리 사회와 시장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구호로 이어졌다. 시장의 결과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시장은 개혁의 대상이고 그 결과가 정의로운지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부정적 인식이 저변을 관통하자 “정의롭지 못한 것을 철저하게 제어해야 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태동으로 이어지는 격변 속에서 이것이 정치의 경향으로 이어졌다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표현은 일견 근사해보일지 몰라도 매우 위험한 미사여구”라고 주장했다.

“현 정부 들어 시장과 기업을 일종의 적폐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겼다. ‘기회는 평등하다’는데, 사실 어느 사회나 기회는 평등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기회는 다양하게 주어지는 게 맞다. 누구나 박찬호가 될 수 없고 누구나 이효리가 될 수 없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그 재능을 발휘해 보다 나은 기회를 추구하는 사회가 옳은 거다. 평등을 얘기하는 순간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되고 만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거래라는 것은 서로에서 도움이 되니까 성립한다. 누구나 거래를 철회할 자유를 갖는다. 정말 나쁜 가맹점주가 있다면 그 회사는 유지되기 어렵다. 과정의 공정함을 얘기하는 건 결과적으로 제 3자의 개입, 즉 국가주의 수단이 된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은 더 해괴하다. 정의를 누가 결정한다는 말인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가게를 접은 자영업자에게 정의를 말할 수 있나.”

‘시장주의 보수’를 자임하는 이 교수는 현 정권의 이와 같은 생각을 ‘위험한 발상’이라면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기회는 자율적이고 다양하게 제공되어야 하고 과정에 불법이 없다면 우리는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판단의 영역이 생겨나면 전체주의 사고로 흐르게 된다. 왜 정부가 이런 발상을 내놓았을까. 우리 사회 질서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부정적 인식, 헬조선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정부 개입이 더 큰 문제 낳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느 세대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걸 과거 세대의 잘못으로 보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다음 세대를 위한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과 다른 결과를 낳았다면 그게 최선이었을까. 완전한 세상은 없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부가 모든 것에 개입하는 게 정당화된다면 더 큰 불안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과거 역사가 그랬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생겨나게 된 또 다른 원인으로 ‘높은 기대치’를 지목했다. “우리 경제 능력은 OECD 국가 가운데 하단에 위치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경제 수준을 비교할 때 상위 국가를 걸고 넘어진다. 어느 선진 경제도 한 세대 젊은이의 80%를 대학에 보내고 그에 맞는 일자리를 줄 수는 없다. 대학을 나온 젊은이와 그 부모는 모두 좋은 일자리를 추구하지만 모두가 그걸 얻는다는 건 아주 비현실적이다.”

그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정치권의 잘못된 선택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특히 “현 정부도 그랬고 일부 교수들도 ‘경제 10위권 국가 중 우리처럼 일 많이 하고 저임금 받는 사회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무책임하고 잘못된 사고”라고 비판했다. “우리가 10위권 경제규모인 건 맞지만 1인당 소득이 10위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중국이 경제 2위 국가니까 중국 사람 임금이 우리보다 더 높고 근로시간도 짧아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지난 대선 당시 모든 후보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얘기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상승을 뒷받침할 여력이 되는지 아무도 따져보지 않았다. 시장이 아니라 정치가 더 악마적이다.”

이 교수는 국내 전체 근로자의 1인당 평균 급여는 약 21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이 적용되면 산입범위에 따라 최저임금 근로자 월급이 200만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대로 가면 최저임금 근로자가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근로소득자의 평균 급여를 넘어설 수도 있다. 어떻게 최저임금 받는 사람이 국민 평균 급여를 넘을 수 있나. 정치권이 우리 경제 현실을 따져보지도 않고 기대치만 높여놓은 결과다. 현 청와대가 이런 걸 면밀하게 살펴볼 지적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그는 현재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는 장하성 실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쓴 장 실장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근로자가 가져가는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면서 소득배분의 실패를 말한다. 그런데 이건 국가가 발전하고 선진 경제로 나아가면 당연히 낮아지는 수치다. 오히려 이게 커지면 노동집약 산업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비율이 작다는 게 소득이 작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닌데도 경제학의 기본마저 틀리게 얘기하는 거다.”

그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해서는 “법에 있지도 않은 것을 기업들에 요구한다. 직권남용으로 볼 발언과 행정조치가 상당해 정권이 바뀌고 나면 문제가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가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마이너스 고용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 20만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마이너스 고용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농어민 고용이 6만5000명가량 늘었는데, 이것도 기현상이다. 고용동향에는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하면 고용통계에 포함한다. 고용통계는 그래서 보조적 숫자로 봐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양질의 일자리다. 그런데 최근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IMF 당시 수준으로 줄였다.”

장하성 실장이 소득주도성장의 근거로 언급한 가계평균소득 통계의 허구성도 꼬집었다.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우리나라 GDP는 90% 올랐는데, 가계 평균소득은 32%밖에 안 올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계에 낙수효과가 적고 기업이 문제라는 식인데, 17년 사이 우리나라 가구수가 37% 증가한 걸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해석한 결과다. 또 인구가 감소하는데도 일자리가 안 늘어난다고 했는데, 실제 경제인구가 줄어들려면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았다. 우리 경제나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이거나, 통계를 읽을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멋대로 조작하고 선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일자리 창출을 정치인에게 맡긴 정부

이 교수는 일자리를 늘리려면 독일의 하르츠개혁 같은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일자리위원장을 대통령이 하고 부위원장을 정치인이 맡는다. 그들은 일자리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남들이 만든 일자리에 대해 평가하고 아니면 때론 돕던 사람들이다. 독일의 하르츠는 폭스바겐이라는 자동차 회사의 인사담당 최고 임원이었다. 여러 민간인들이 일자리 대안을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여 통과시켰다. 정부는 지지율에 신경 쓸 게 아니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명운을 걸어야 한다.”

이 교수는 국내에 일자리가 줄고 국가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은 전 세계적 흐름으로 바라보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 젊은이들도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주택 구입이 힘들어 부모에 기대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젊은이들의 고민, 일자리 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과점 경제구조 끝자락에 있다가 지금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신흥 제조국의 추격을 받는 상황이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규제를 혁파하고 노동유연성과 시장자유를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

그는 국내 경기침체의 원인이 재벌(또는 대기업)의 문제이거나 강성노조 때문이라는 정치권의 지적은 “모두 틀렸다”고 지적했다. “한쪽은 재벌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강성노조 탓을 한다. 그런데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를 받아 모든 근로자에게 급여를 공평하게 나눠준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전체 근로자 평균 4%의 임금이 인상된다. 평균 8만원 정도 더 받게 되는 건데, 이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반대로 강성노조가 없는 일본은 왜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잃어버린 25년을 맞았나. 미국은 강성노조가 없는데 소득격차는 더 빨리 확대됐다. 양측 모두 해결책이 아닌 것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감세·노동개혁·시장자유가 해법”

이 교수는 우리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감세 정책과 노동시장 개혁, 그리고 경제자유도 상승 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경제구조의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현 정부의 이념적 규제를 지목했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그것 위에 이념적 목표가 있고 우리 경제가 양극화되었다는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다. 우버도, 구글지도도, 원격진료와 핀테크도 제대로 되지 않아 IT가 가져온 혁신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영 논리에 충실하고 바깥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할 경우 탈(脫)진실 사회가 온다.”

그는 현 정부가 남북통일이 국가 경제에 활기를 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경제 규모는 서울 영등포구 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에 저임금 노동력과 자원이 있다고 해서 우리에게 기회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프리카나 남미 등도 다 좋은 시장인데, 왜 안 되는지를 봐야 한다. 바로 지불능력이 없어서다. 북한의 국민소득이 오르기 전에는 임가공 거점 이외에는 의미가 없다. 그마저도 우리가 전기를 대고 용수하고 공단 설립에 철로까지 깔아야 가능하다. 서독이 동독에 30년간 3000조원을 투입해도 소득수준 격차는 40%에 달하고 옛 동독 지역 실업률은 서독의 두 배나 된다. 우리가 40조원을 50년간 투자해도 북한이 경제성을 갖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북한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고 가야 한다면 정부는 국민에게 ‘북한을 위해 우리가 얼마를 지불하고 어느 정도를 인내해야 하는지’ 정확히 말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보다 더 위험한 게 통일주도성장이다.”

이 교수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혹평했다. “투기꾼이 집값을 올리는 게 아니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니까 투기꾼이 생기는 거다. 투기꾼을 부동산시장의 악마로 상정하는 순간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정부는 부동산에 있어서 규제는 할 수 있어도 공급에 대한 권한이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동의해야 공급대책이 나오는데, 억제는 바로 시행되지만 공급은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시장에서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그는 보수 야당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자유한국당 2기 혁신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반공 보수로는 설 자리가 없다. 시장주의 보수로 가야 한다. 문제는 법과 시장자유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확고하지 않다는 데 있다. 게다가 보수진영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프레임에 갇혀 뭉치지도 흩어지지도 못하고 있다. 정권이 북한카드라는 변수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은 꽤나 길게 갈 것 같다. 그럼에도 정부가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교수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금융당국의 암묵적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도 했다. “암호화폐가 시민과 금융권에 큰 피해를 입힐 거라는 우려 때문에 정부가 시장을 거의 다 죽여놨다. 별다른 노력 없이 전 세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허브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정부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일례로 중국의 비트메인이라는 회사는 블록체인 벤처로 시작해 지금은 상장 전 가치가 10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발 시장에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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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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