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공개한 청진 25호 관리소의 위성사진. ⓒphoto HRNK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공개한 청진 25호 관리소의 위성사진. ⓒphoto HRNK

북한에선 정치범수용소를 ‘관리소’라고 부른다. 정치범수용소는 북한 형법에도 규정되지 않는 별도의 구금시설이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운영의 형태와 방법, 관리 주체에 따라 마을 형태, 교화소 형태,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 당사자만 수용하는 관리소와 가족 단위 수용 관리소, 국가안전보위성이 관리하는 곳과 인민보안부가 관리하는 곳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혁명화구역’은 복귀 기회가 주어진 구역으로 당·정·군 간부들이 과오를 범하거나 직무태만 및 상부에 대한 교만 등의 이유로 끌려오는 사상개조 구역이다. ‘완전통제구역’은 ‘공화국 공민권’이 완전히 박탈된 사람들이 강제노동과 고문 등 인권 탄압을 당하면서 죽을 때까지 수감되는 곳이다. 지금까지 파악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개천(14호 관리소), 북창(18호), 화성(16호), 청진(25호) 등 4곳이다.

미국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지난 9월 30일 북한 함경북도 청진 ‘25호 관리소’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수감자들을 촬영한 민간 위성사진을 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단체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민간 위성의 촬영기술 발달로 탈북자들의 증언뿐 아니라 위성으로도 정치범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 적이 없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민간 위성 해상도가 픽셀당 50㎝까지 가능해져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 얼굴까지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위성사진에 따르면 25호 관리소의 면적은 최근 몇 년 새 580㎡에서 1000㎡로 72%나 확장됐다.

북한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 전면에 다시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미운 오리 새끼’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제사회가 인류 보편의 가치 실현을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세계인권선언 70주년(12월 10일)을 맞아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HRNK 등 미국의 인권단체들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성통만사) 등 한국 인권단체들은 10월 24일 뉴욕 유엔본부 내에서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기념해 가진 북한 인권 토론회에서 한목소리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비판했다. 조너선 코언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올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지만 지난 70년은 북한 정권의 주민들에 대한 인권 억압의 기간이었다”고 비판했다. 수잔 솔티 북한자유연합(NKFC) 대표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가 아닌 북한 핵 위협만 강조해왔다”면서 “이것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북핵 위기의 본질은 북한의 인권 부재에 있고, 세계인권선언의 지적대로 ‘인권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올해 세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는 철저히 외면당했고, 반인도 범죄자로 지목된 김정은이 부풀려진 평화 분위기 속에서 정상 국가의 유능한 지도자로 칭송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인권결의안 14년 연속 채택되나

유럽연합(EU)과 일본 정부는 올해도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EU와 일본이 공동 작성한 새 북한 인권 결의안은 10월 31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 제출됐으며, 11월 15~20일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유엔 주재 EU 대표부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 제3위원회에서 통과된 이후 오는 12월 유엔 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채택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3위원회는 유엔 총회의 인권담당 위원회로, 2005년부터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왔다. EU 대표부는 올해 북한인권결의안은 비핵화나 남북 화해 등의 문제들은 다루지 않고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앤 아담슨 EU 대표부 부대표는 “남북 정상회담 등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가시적인 진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북한인권결의안은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기초해 작성됐다. 올해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면 14년 연속이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지난 10월 23일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안보와 평화, 번영에 대한 중요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특히 북한의 수감시설에서 학대가 자행되고 있고 정치범수용소도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중국이 탈북자들을 체포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일도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남북 정상의 판문점 공동선언이나 미·북 정상의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유엔은 북한 인권유린의 책임을 규명하고 처벌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인권 유린 가해자에 대한 책임 추궁은 유엔이 추구하는 진실과 정의와 맞닿는 개념”이라며 북한 인권유린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강조했다. 책임자 처벌은 김정은을 직접 겨냥하는 것이다. 지난해 채택된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에는 인권유린의 최고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고문과 비인도적 대우·강간·공개처형, 비사법적·자의적 구금·처형, 적법절차 및 법치 결여·연좌제 적용·강제노동 등 각종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었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인권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라며 “만일 북한과의 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배제한다면, 전혀 사실이 아닌 북한의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남북한, 미·북 간의 협상 테이블에 인권 문제를 올리는 것이 협상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회담이 지속가능하고 포괄적인 회담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현재 남북 대화 등으로 인해 추진되는 남북 교류 사업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의 크레이그 모카이버 뉴욕사무소장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라면서 “북한의 오래된 인권유린을 해결하는 데 중대한 진전이 없으면 평화와 안정의 전망이 약화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24일 조너선 코언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 인권 탄압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photo VOA
지난 10월 24일 조너선 코언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 인권 탄압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photo VOA

미 국무부가 사이트에 올린 동영상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애써 외면해왔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의 말대로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는 의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 정부가 북한이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문재인 정부도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로선 북한 정권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도 경고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0월 25일 “미국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지독한 인권유린을 집중 조명하면서 인권유린의 책임 규명과 처벌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해외홍보 사이트 셰어아메리카(share.america.gov)에 성경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돼 고문과 강제낙태를 당했다는 탈북자의 증언을 생생하게 담은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미국의 인권 전문가들도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대북 압박이 필요하다면서 남북의 진정한 관계개선과 화해를 위해서도 북한의 인권 문제가 거론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교류와 협력만으로는 북한의 인권을 개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2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압박보다는 교류와 협력을 강조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의 협력과 국제사회와 북한 간의 협력,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와서 정상적인 국가가 되어가는 것, 이런 것들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빠르게 개선하는 실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로베르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북한과의 화해를 통해 북한의 인권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화해라는 말은 평화와 개혁에 대한 기대 등이 들어있는 좋은 말이지만, 북한 정권과의 화해는 다른 차원”이라면서 “북한 정권은 보위부와 정치범수용소, 강제노동, 고모부와 이복형에 대한 처형 등으로 지탱되고 있는 무자비한 정권”이라고 강조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남북이 공감한 평화적 번영과 경제성장도 결코 인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남북한의 교류 확대도 결국 국제사회의 기준에 맞는 인권이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도 “남북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다루면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6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군축 문제를 놓고 정상회담을 했을 때 가장 먼저 정치범 목록을 제시하면서 인권의 중요성을 강하게 압박했었다. 당시 회담은 결렬됐지만 이후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를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을 석방하면서 소련 정부의 인권 문제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냈었다.

특히 미국 인권단체들은 올해 세 차례의 남북 회담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가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의 도를 넘은 유화적 행보를 규탄했다. 이들은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이 인권 탄압에 대한 동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는데 현재 남북의 철도 현대화 등의 경제협력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진정한 평화의 궁극적 지표는 인권이어야 한다”면서 “인권 문제는 핵 문제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 있으며, 최소한 핵 문제와 함께 협상에서 의제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티 NKFC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조직적인 탈북자 단체 등에 대한 북한 인권 활동 방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보다 더 노골적이고 광범위하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평화라는 미명하에 북한 인권은 외면하고 김정은과의 대화에만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혹평했다. 알렉스 글래드스타인 미국 인권재단(HRF) 전략기획실장은 “문 대통령은 부모는 북한 태생이고 정치 입문 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는데, 북한 인권 문제에 소홀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탈북자들의 북한 인권 활동까지 억압하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북한 인권 문제를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분류하며 “북한인권재단의 조기 출범, 국제사회와의 공조, 남북 대화 때 인권 문제 의제화를 통해 북한 당국에 인권 친화적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촉구한다”고 명시했었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북한에는 인권 문제가 없다면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photo 유엔 포토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북한에는 인권 문제가 없다면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photo 유엔 포토

미국 인권단체들의 문재인 정부 비판

북한 정권은 문재인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남북 대화와 교류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 대한 인권 탄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데일리NK가 북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당의 노선에 반대 또는 불만을 표출하는 주민들을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다. 특히 주민단속은 북한 근로행정단위의 최하위 조직책임자인 인민반장 선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북한 체제를 구성하는 가장 아랫단위에서부터 주민들에 대한 단속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소식통들은 “어떤 인민반장은 관리소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입 닫고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 정권은 까딱하면 온 가족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탈북자들을 심층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발간한 ‘2018 북한인권백서’에서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인권 수준은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 이후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43명 중 88.4%(38명)가 ‘김정은 정권에 들어선 이후 인권이 더욱 나빠졌다’고 답했다. 이들은 “한국이나 외국 드라마, 영화를 보다가 단속에 걸리면 관리소에 끌려간다”고 밝혔다.

북한 정권은 미국과 EU 등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월 23일 “북한인권결의안은 협잡문서”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지향에 맞게 제정신을 차리고 온당하게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월 22일 논평에서 “인권 문제를 구실로 우리에 대한 제재 압박의 도수를 더욱 높이고 좋게 발전하는 대화와 평화 흐름에 장애를 조성하려는 고의적인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정권이 이렇게 반발하는 것은 인권 문제가 최대 약점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월 24일 유엔의 날 성명에서 “인권과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기초적인 조건”이라고 강조했듯이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려면 북한 인권 개선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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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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