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주사우디아라비아 미국대사에 전직 장성 출신을 지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원유와 무기 등으로 얽힌 끈끈하고도 예외적인 관계다. 하지만 미국서 활동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의 사우디아라비아영사관에서 살해된 후 양국 사이엔 전례 없는 긴장이 감돌고 있다. 트럼프는 이 사건 발생 후 6주 만에 대사를 지명했는데, 그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국대사가 없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일어난 터키에도 아직 새 미국대사가 지명되지 않았다. 대사를 비롯해 미국 국무부에 아직도 빈자리가 많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내가 놀랐던 것은 ‘또 군인 출신인가’ 하는 점이었다.

트럼프가 장군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 정부 요직엔 억만장자와 군인 출신들이 많다. 특히 장성들은 숫자 그 자체보다 눈에 띄는 자리, 특히 한국에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리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존 켈리 백악관 대통령 비서실장, 전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던 맥매스터,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에 지명된 데이비드 스틸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까지 별들이 줄지어 있다.

2016년 대선 때 미국의 재향군인회 행사에 간 일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와 트럼프가 이 행사에서 연설을 했는데 트럼프 쪽이 확실히 더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대선 유세 때 늘 군인들을 치켜세우고 군인들에게 특별한 감사인사를 챙기는 트럼프를 군인들은 좋아했다. 트럼프의 이런 태도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미국에 살다 보면 사회 전체가 군인들을 존중하고 우대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공항에서 탑승 직전 ‘아이가 있는 가족’ ‘탑승할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먼저 비행기에 타게 한다. 그때 현역 군인들도 미리 탑승하라는 안내가 나온다. 쇼핑을 가보면 점원이 종종 “군인이면 얘기하세요, 할인해드려요”라고 한다.

트럼프의 군인 사랑은 어릴 때 다녔던 일종의 ‘군사학교’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트럼프는 ‘뉴욕밀리터리아카데미’란 학교를 다녔는데 엄격한 교육을 하는, 등록금이 비싼 사립학교였다. 트럼프는 당시 적잖은 군사훈련을 받았고 늘 군대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 때 학업과 건강을 이유로 징집을 면제받았다.

트럼프가 만들고 싶어하는 ‘강한 미국’엔 당연히 강한 군사력도 포함돼 있다. 그는 국무부 예산은 사정없이 후려쳐도 국방부는 보호했다. 지난 10월 재정적자가 우려돼 각 부처가 5%의 예산삭감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국방예산만큼은 예외로 두겠다고 했다.

트럼프가 지난 2년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쳤지만, 최근 의회 보고서는 분위기가 다르다. 미 의회의 국방전략위원회는 트럼프의 국방전략을 분석한 후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과 국가안보를 뒷받침할 군사우위가 위험 수준으로 약화됐다고 경고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전쟁을 하면 패배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런 경고성 보고서는 어느 정도의 엄살을 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군인 사랑과 국방부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강한 미국’의 지지자들은 역설적으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서서히 잃어가는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현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동력이기도 하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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