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ㆍ중 2차 외교안보대화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이 자리에서 중국 측은 대북 제재를 엄격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photo 미 국무부
지난 11월 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ㆍ중 2차 외교안보대화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이 자리에서 중국 측은 대북 제재를 엄격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photo 미 국무부

미국 정부에서 가장 은밀하면서 강력한 기관들 중 하나는 해외자산통제실(OFAC·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이다. 재무부 테러·금융정보국(TFI) 산하에 있는 OFAC는 북한과 이란을 비롯해 각 나라는 물론 개인과 단체, 테러리스트, 마약조직,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들려는 조직 등을 대상으로 미국 정부가 단행하는 모든 제재조치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OFAC는 미국의 국가안보와 대외정책에 위협이 되는 대상에 대해 경제와 무역 등의 분야에 각종 제재조치를 내리고 이행 여부를 관리한다.

OFAC는 1950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을 침략한 북한과, 북한을 지원한 중국의 모든 해외 자산을 차단하는 명령을 내리면서 창설됐다. 특히 OFAC는 요주의 인물이나 각국 정부 및 기관들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에 올리고 철저하게 감시한다. 이 때문에 SDN 리스트는 사실상 ‘데스노트(death note·살생부)’라는 말을 들어왔다. SDN 리스트에는 지난해 4000여개가 이름이 올랐지만 올해 7000여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재무부의 결정에 따라 SDN 리스트에 올라간 기관과 개인의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국적자와 영주권자,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해외 기업은 이들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OFAC의 제재가 무서운 것은 은행 등 금융 거래에서부터 석유 거래까지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로 이뤄지는 모든 행위와 자산을 동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률회사 깁슨 던(Gibson Dunn)의 주디스 앨리슨 리 국제거래부문 공동 의장은 “OFAC의 제재는 사형과 같은 조치”라면서 “OFAC의 제재는 사전 통보도 없고, 즉각적으로 효력이 발생하며, 사법적인 검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승사자 OFAC

미국 정부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OFAC를 동원해 북한과 이란에 대해 ‘쌍끌이 제재’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정부의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제재조치는 역대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미국 정부의 고위인사들은 북한과 이란에 대해 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절대 제재조치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그동안 ‘핵 쌍둥이’라는 말을 들어온 북한과 이란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조치에 맞서고 있지만, 끝까지 버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의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제재조치는 서로 밀접하게 연동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란에 대해 새로운 핵 협정을 맺도록 압박하려면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완화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또 북한을 비핵화하려면 이란에 대한 제재조치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이란보다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10월 15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북한과의 핵 합의에서 미국이 타협하지 않을 핵심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어 ‘최종적(Final)’이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재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이는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또 ‘완전하게 검증된(Fully verified)’의 의미는 JCPOA에서 요구된 것보다 강력한 검증 기준이 적용될 것이란 점이라며, JCPOA는 이란의 중요 군사시설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가 JCPOA보다 우월한 것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런 언급은 미국 정부가 북한 정권이 검증(사찰) 요구를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제재조치를 이란보다 강력하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핵합의 탈퇴 조치에 따라 지난 8월 7일 제1 단계, 11월 5일 제2 단계 제재를 복원한 것은 북한 정권과 김정은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간선거 다음 날인 11월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 “제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서두를 것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제재 완화에 목을 매는 북한 정권이 급하지 미국은 전혀 급할 것이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제재 조치를 내렸을까. OFAC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부과한 북한의 개인과 기관에 대한 제재조치는 모두 236건이다. 지금까지 취해진 모든 대북 제재조치가 466건인 점을 감안할 때 절반이 넘는 제재가 트럼프 정부 때 부과된 셈이다. 특히 지난해 8차례 총 124건의 개인과 기관을 제재 명단에 올렸던 트럼프 정부는 올 들어 지금까지 8차례 112건의 대북 제재조치를 내렸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제재조치에서 특징은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대만, 터키 등 외국 기업과 개인들이 대거 제재에 올랐다는 점이다. 또 북한의 해상 활동 등 특정 분야에 맞춰 제재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수십 척의 선박과 수십여 개의 운송회사 및 해외 항구에서 항만서비스를 대행하는 회사 등을 제재 명단에 포함시켰다.

미 재무부의 해외자산통제실(OFAC)이 있는 건물 모습. ⓒphoto 위키피디아
미 재무부의 해외자산통제실(OFAC)이 있는 건물 모습. ⓒphoto 위키피디아

대북 제재 대상 466개

가장 큰 특징은 트럼프 정부가 북한 정권이나 노동당 핵심 간부를 제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OFAC의 SDN 리스트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정부는 또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제3자 제재)’을 거침없이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9월 북한이 제6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행정명령 13810호에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을 포함시켰다. 당시 내용을 보면 북한과 재화, 용역을 거래하는 외국 기업과 개인의 자산을 미국 정부가 압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또 10월 4일엔 466개 대북 제재 대상에 ‘세컨더리 제재 위험(secondary sanction risk)’이라는 문구를 추가시켰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다. 제재 대상에 오른 개인이나 단체, 기관은 물론 이들과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제3자까지 제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닌 제3국의 은행이 제재 대상인 북한 기업에 돈을 빌려줬다면 그 이유만으로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고는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제3국 은행의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제재조치를 당할 경우 자칫하면 파산할 수도 있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했던 대표적인 대상은 이란이었다.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단행한 이 조치로 당시 ABN암로와 ING, 바클레이, 스탠더드차타드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각각 1억달러가 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이 조치로 이란은 2013년 미국 등과 협상을 통해 핵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카오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제재도 마찬가지였다. BDA 계좌에 김정일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2500만달러의 북한 자금이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북한과 거래했다며 BDA를 제재했다. BDA는 파산하고 말았다.

김정은이 미 해외자산통제실의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명단에 올려져 있다.
김정은이 미 해외자산통제실의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명단에 올려져 있다.

노동당 39호실도 466개에 포함

트럼프 정부가 김정은, 김여정, 김영철 등과 북한 통치자금 담당 기구인 노동당 39호실 등 466개 대상을 ‘세컨더리 제재 위험’으로 새롭게 규정한 것은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 정권과의 관계 개선에 신중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66개 대상에는 북한의 각 부처와 경제기관들 및 조선광선은행 등 주요 8개 은행 등이 대거 포함돼 있다. 미국의 의도는 한국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에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이 제재 범위를 벗어날 경우, 이란에 대한 제재처럼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재 전문 법률회사 ‘베이커 도넬슨’의 공동 대표인 도린 에델만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제재 대상인 북한 기관 등과 거래하는 중국이나 러시아 은행 등에 미국 금융권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시키고 달러화 사용금지 등의 조치를 내린다면, 해당 은행들은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제재와 관련된 세컨더리 보이콧을 이란에 대한 제재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 전문 법률회사 ‘GKG Law’의 대표인 모엔 자커시 변호사는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감시와 제재 권한이 크게 확대됐다”면서 “대북 제제는 이란에 대한 제재보다 더욱 강력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이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은 자동차, 철강, 석유, 가스, 운송 등 이란의 주요 산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산업과 경제가 독재 정권에 의해 운영되는 북한에 대해선 몇몇 경제 분야보다는 거래 행위의 불법성을 주목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고 있다. 이 회사의 올리버 크리스칙 변호사는 “OFAC가 설명하는 명확한 대북 불법 거래 내용은 거래 규모와 횟수, 거래 성격, 사전에 불법성을 인지했는지 여부, 북한 정권과의 친밀도, 거래금지 물품의 환적을 비롯한 명확한 불법행위 등을 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이와 함께 대북 독자제재의 세부 규정을 대폭 개정했다. 재무부는 지난 2월 22일 한 대북 제재 개정 내용을 발표하고 3월 5일 관보에 게재한 후 5월 5일 정식 발효시켰다. 이 개정 내용을 보면 미국 정부의 대북 제재 관련 행정명령과 조치들은 미국의 행정력이 미치는 곳에 북한 정부와 노동당의 재산과 이권을 모두 차단하며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미국인들의 대북거래를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률에 의해 처벌받는다는 규정이 들어있다. 거래 통제는 북한과 관련한 행정 실무 및 절차, 항공기, 금융, 자산 차단, 외교 공관, 외국 금융기관, 대외 무역, 수입, 의료서비스, 비정부기구, 특허, 서비스, 통신, 유엔, 선박 등 16개 분야이다. 이와 관련 OFAC는 11월 7일 발표한 ‘2017 테러리스트 자산 보고서’에서 미국 내 총 6340만달러의 북한 정부 관련 자산을 동결시켰다고 밝혔다. OFAC는 동결된 자산 중에는 북한 정부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를 대신해 활동하는 개인, 기관 등의 자산도 포함됐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2008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켰던 북한을 지난해 11월 다시 포함시켰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들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및 심지어 한국의 문재인 정부까지 제재 완화를 요구하자 오히려 대북 제재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은 10월 31일 북한이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 조달의 위험성이 있다면서 대북 금융거래 주의보를 발령했다. 금융범죄단속반은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의 주요 내용과 함께 대통령 행정명령에 근거한 OFAC의 독자 제재조치 등을 분명하게 밝혔다. 금융범죄단속반은 9월 21일 같은 내용의 주의보를 발표했었다. 트럼프 정부는 이와 함께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도 대북 제재 완화는 절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11월 8일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환심을 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대북 제재 완화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므누신 미 재무장관(오른쪽)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11월 5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이란 제재 복원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미 국무부
므누신 미 재무장관(오른쪽)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11월 5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이란 제재 복원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미 국무부

중국에 당근, 제재 동참 유지

특히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에 분명하게 다짐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11월 9일 워싱턴 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분명히 밝히건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례 없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계속 가해나갈 것”이라면서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모든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제재를 포함한 (대북) 압박 캠페인을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은 11월 17~18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 대신 참석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11월 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제2차 외교안보대화에서 중국 정부에 안보리 대북 결의를 엄격히 이행할 것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중국 정부는 안보리 대북 결의들을 계속 엄격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가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해 대북 제재 이행을 요구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트럼프 정부의 의도는 중국 정부에 무역 전쟁의 지렛대로 대북 제재를 악용하지 말 것을 경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정부에 대북 제제를 완화할 경우 중국 은행들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는 이와 함께 이란산 원유 전면 금수 조치를 취하면서 중국 정부에 하루 평균 36만배럴의 이란산 원유를 수입할 수 있도록 예외 조치를 인정했다. 미국의 이런 조치는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도록 중국에 일종의 ‘당근’을 준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북한과 이란에 대한 제재조치의 성패 여부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재는 매우 효과적인 조치이지만 이란 핵 협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갈수록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선 시간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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