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6일 중국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베이징 중관촌 내 창업의 길을 관계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 ⓒphoto 서울시
지난 11월 26일 중국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베이징 중관촌 내 창업의 길을 관계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 ⓒphoto 서울시

올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는 처음 3선(選)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이 국내·외에서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다. 박 시장은 최근 2박 3일 지방 방문에 이어 중국을 찾아 국가 지도자와 만나고 명문 베이징대에서 강연했다. 이에 야당에서는 “박 시장이 대선 가도에 나서 자기 정치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대선이 2022년인데 너무 이른 ‘과속’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최근 여야 합의로 ‘공공기관 채용 비리 국정조사’ 실시가 확정되고 박 시장이 관할하는 서울교통공사가 타깃이 됐지만, 박 시장은 거리낄 것 없다는 태도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정치 공세나 주변의 시각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갈 길 가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이처럼 박 시장이 자신감을 보이며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는 것은 최근 여권(與圈) 내 차기 권력 구도의 지각 변동 조짐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3選 시장서 ‘전국 후보’로

박 시장은 지난 11월 22일 대전 대덕구청 공무원 특강을 시작으로 부산·경남(PK) 일대까지 2박3일간 지방에서 10여개 일정을 소화했다. 박 시장은 오거돈 부산시장과 친문(親文)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를 포함해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과 지역위원장, 종교계 인사 등을 두루 만났다. 전통시장을 방문하고 ‘걷기 행사’에도 참석했다.

박 시장은 특히 ‘전국 후보’로서의 면모를 부각시켰다. 해운대구청 강연에서 “부산 중구 같은 곳은 낙후된 점포들을 살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했고, 고향인 창녕에서 가진 ‘토크 콘서트’에서는 “국회를 비롯해 1000개가 넘는 중앙정부 기관들이 지방에 더 가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고 했다. 서울시장으로서 ‘균형 발전’ ‘지방 발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주변을 의식한 듯 “제가 움직이면 뉴스가 된다.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조심스럽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자기 정치 행보가 점입가경”이라며 “서울시장이면 서울 시정이나 제대로 하라”고 했다. 이에 박 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 원내대표가 제 일정까지 꿰고 계신 걸 보니 저에게 관심이 참 많은 것 같다”며 “3선 시장으로서 안정감 있게 잘 운영해나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PK 방문을 마친 박 시장은 이번엔 중국으로 날아갔다. 현지에서 서열 2위인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만나는 등 3박4일 일정을 소화했다. 박 시장은 베이징대 특별 강연에서 ‘서울교통공사의 채용 비리 의혹 국정조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국정조사를) 확실히 돌파할 자신이 있다. 돌파하고 나면 제가 좀 더 강력한 사람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곧 있을 ‘공공기관 채용 비리 국정조사’에 대한 구상을 내비친 것이다. 박 시장은 이 와중에 ‘서울 충정로 KT아현지사 통신 화재’에도 바삐 대응했다. PK 방문과 중국 순방을 사이에 둔 지난 11월 25일 새벽 0시를 넘겨 KT 사고 현장을 40여분간 점검했고, 소셜미디어에 관련 사진도 올렸다.

국정조사, 정면돌파 승부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했고 2022년 대선은 3년 이상 남았다. 박 시장 측에선 “박 시장의 대외활동은 수개월 전부터 예정돼 있던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시장이 활동 과정에서 상당한 자신감을 보인 것과 관련해 최근 ‘혜경궁 김씨’ 사태로 이슈의 중심에 놓인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역학 관계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 지사는 최근 경찰이 ‘혜경궁 김씨’ 혐의를 공개하자, 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취업 특혜’ 의혹을 거론하며 친문 진영과 각을 세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지사의 경우 친문 진영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실상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지사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근소한 표차로 3위를 기록했었다.

박원순 시장의 경우 지난 11월 20일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이 주장해온 ‘공공기관 채용 비리 국정조사’를 전격 수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국정조사 수용 방침’을 확정하자 박 시장과 가까운 민주당 박홍근·기동민 의원과 남인순 최고위원 등이 “야당 정치공세에 양보하느냐”며 공개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박 시장은 지난 11월 17일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을 규탄하는 한국노총 집회 현장을 찾아 “나는 노동존중 특별시장”이라고 했고, 이에 친문 진영에선 “자기 정치가 좀 심하다”고 했었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친문 세력이 이 지사 ‘다음 차례’로 박 시장을 지목한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그러나 국정조사 합의 직후 박 시장은 “정치공세”라며 야당을 비난하면서도 국정조사에 합의해준 민주당 내부를 향해서는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투 트랙’ 대응을 보였다. 아울러 국정조사는 ‘정면 돌파’ 방침을 공식화했다. 진성준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국회가 박 시장을 국정조사 증인으로 확정하면 마땅히 출석해야 한다”며 “일부에서는 ‘(박 시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非文 대표 노리는 朴

박 시장 움직임과 정치권 반응 등을 종합해 보면, 박 시장은 이번 국정조사를 ‘기회’로 삼아 비문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친문 진영과도 ‘협력’ 관계 설정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이 국정조사 증인으로 나서 야당에 맞서는 ‘투사’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한쪽에선 당내 의원들을 상대로 ‘구심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일단 국정조사가 시작되면 내부 갈등은 최소화되고 전선이 ‘여당 대 야당’ 구도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내 의원들도 박 시장 방어를 위해 뭉칠 것이다. 박 시장은 이걸 기회로 차기 대표주자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시장은 이참에 ‘비문 후보’로서 위치를 확실히 잡고, 친문과도 전략적인 교류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시각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한국당 관계자는 “고용세습 의혹을 받는 서울교통공사 문제가 국정조사에서 낱낱이 드러나면 박 시장도 타격받을 것”이라며 “박 시장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여당 지지율을 확 깎아먹는 ‘주범’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비문 진영과 친문 진영 사이의 ‘줄타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 시장이 ‘친문’까지 아우르기엔 당내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다”며 “(대선까지) 3년 안에 무수한 변수들이 있다”고 했다. 현재 ‘차기 선호도 1위’인 이낙연 총리를 비롯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여권 내 본격적인 이합집산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민주당 관계자)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박 시장은 시장 직무 특성상 청와대나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있는 위치에서 여권 주류와 경쟁해야 할 수 있다”며 “대선을 향한 박 시장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당 안팎에서 견제가 집중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선정민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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