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던 지난 4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사전 브리핑을 하는 모습이다. ⓒphoto 뉴시스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던 지난 4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사전 브리핑을 하는 모습이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회에서 신성철 KAIST 총장의 직무정지 안건이 ‘유보’로 결정되면서 KAIST를 둘러싼 혼란은 일시적으로 가라앉는 모양새다. 하지만 신 총장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막후 주도자’로 꼽혀온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으로 전면에 나서면서 과학기술계를 둘러싼 소용돌이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앞서 과기부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을 감사한 결과 신 총장이 DGIST 총장으로 재직하던 2013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공동연구 계약을 통해 주지 않아도 될 연구비 약 22억원을 지불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과기부는 이와 함께 신 총장이 국내 겸직교수 채용을 통해 LBNL에 재직하는 제자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검찰 고발에 앞서 이틀간 신 총장을 상대로 면담조사를 진행한 과기부는 KAIST에 총장 직무정지도 요구했다.

KAIST 이사회의 반란

하지만 이날 이사회 자리에서는 이사 9명 중 절반 이상이 직무정지에 대해 ‘유보’를 결정했다. 이사 10명 중 제적 사유에 해당하는 신 총장을 제외한 9명이 참석했다. KAIST 이사에는 정부 측 당연직 이사 3명을 제외하고도 정부 측의 의사에 따라 임명된 민간인 이사가 3명 있는데, 이들이 이번 안건에 대해 정부와 다른 의사를 표출하면서 직무정지가 유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뜻에 반해 이른바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신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기에 KAIST 총장으로 임명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 이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임명 당시에도 ‘코드 인사’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과기부가 수년 전 DGIST 재직 시절 일을 이유로 현 KAIST 총장의 직무를 급히 정지시키려 하자 절차적으로 정당한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과기부에 고발된 직후 신 총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반박했고, LBNL도 과기부 장관 앞으로 된 서면을 통해 신 총장의 연구비 집행과 제자의 연구직 채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굳이 버클리에서 확인해주지 않더라도 물리학 분야에서는 하버드·MIT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버클리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한국의 대학교와 돈 문제가 얽힌 비리를 저질렀다는 혐의는 이 분야를 아는 사람이라면 소가 웃을 일”이라며 “현 정부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몰이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막후 실력자 문미옥 전면에

같은 날 청와대는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과기부 1차관으로 전진 배치했다. 이날 인사에서는 문 차관 외에도 이호승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이 기재부 1차관으로, 차영환 경제정책비서관이 국무조정실 2차장으로 발탁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분들이 직접 현장에 들어가셔서 대통령의 뜻을 잘 구현해나가 달라는 뜻”이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문 차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 과학기술계 정책과 인사를 막후에서 주도한 인물로 꼽혀왔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부 출범 초 과학기술계를 둘러싼 인사 파동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된 박기영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는 2006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황우석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임명 나흘 만에 자진 사퇴했다. 당시 박 교수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된 데에는 문 차관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문재인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됐던 박성진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역시 문 차관의 추천이 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신설된 중기부 장관으로 지목됐지만 유사과학인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조직의 이사로 재직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사퇴했다. 문 차관은 박 교수와 포항공대 1기 동기다.

문 차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6년 초 민주당에 합류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고, 추미애 전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부산 성모여고를 졸업하고 포항공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 물리학과와 이화여대 WISE거점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일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문 차관의 손길이 미친 영역은 과기부의 업무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탈원전(에너지 전환) 정책이다. 문 차관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원자력장관회의에 파견됐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우리나라가 UAE에 원자로 4기를 수출했고 그중 1기가 내년 완공된다”면서 “이에 따른 안전분야 계약 등이 추가로 필요해 그에 대한 논의를 겸해 IAEA 회의에 문 보좌관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초 문 보좌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 원전의 안전성과 기술력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세계원자력장관회의에 참석한 이들에 따르면 문 차관은 이 자리에서 ‘탈원전 홍보’를 했다. 당시 문 차관과 UAE에 동행한 한 인사는 “원전과 관련된 70여개국 장·차관이 참석해 서로 원전의 안전성과 기술력을 설명하는 세일즈 자리에서 느닷없이 문 (당시) 보좌관이 ‘우리나라는 탈원전을 한다’고 얘기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문 차관이 청와대에 있던 시기 “(문 보좌관이) 항상 보였다”며 “그만큼 실세라는 뜻”이라고 했다.

실제로 청와대에서 탈원전 정책은 산업부 출신의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이 담당했지만 실제 영향력은 문 차관이 더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채 비서관은 내성적인 성향인 반면 문 (당시) 보좌관은 활발하고 외향적이었다”며 “전문성 없이 신문에서 본 상식 수준의 내용으로도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채 비서관은 지난 10월 청와대를 떠나 산업부로 원대복귀했고, 강성천 산업부 차관보가 신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문 차관은 다금속간 초전도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는 초전도체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이성익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다. 포항공대 물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이 교수는 문 차관이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서강대로 돌아갔고 이후 자신의 집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이 교수는 유서에 “큰 논문을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힘이 든다. 가족과 대학생들, 구성원에게 미안하다”고 남겼다. 당시 문 차관은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익명을 요구한 과학기술계 한 교수는 “문 차관에게 대한민국 과학계는 스승의 죽음과 연관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차관은 이외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간사로 활동했다. 장병규 블루홀 의장이 위원장을 맡은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해 출범해 1년간 대통령 직속 기구로 활동했지만 별다른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과학계 인사인 문 차관은 위원회에서 사실상 ICT부문을 컨트롤해왔다.

문 차관을 바라보는 과학기술계의 시선은 따갑다. 전문성 없이 지나치게 넓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데다 과학기술계 현안을 챙기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 차관은 최근 민주노총 공공연구노동조합(연구노조)으로부터도 공격을 받고 있다. 정부출연연구원 과학기술연구자들로 구성된 연구노조는 지난 12월 19일 성명을 통해 “문미옥 과기정통부 1차관 임명은 과학기술정책 불통의 산물”이라며 “과학기술계에서 문미옥이라는 이름은 자주 회자되었지만 언젠가부터 존재감이 사라지고 불통과 무능의 대명사로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연구노조는 이어 “현재 국가과학기술정책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과 과기정통부에 큰 책임이 있다. 특히 과학기술 현장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주요 현안에 대해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문미옥 차관 임명자의 책임은 누구보다 크다”며 “집권 여당 안에서도 이미 문미옥 비판과 경질론이 무성하던 차에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하게 실패가 검증된 사람을 차관으로 임명함으로써 그나마 과학기술계에서 남아있던 기대와 희망을 여지없이 저버렸다”고 했다.

주간조선은 이와 관련해 문 차관에게 민주노총 연구노조 성명에 관한 입장이 어떤지를 물었다. 문 차관 측은 12월 20일 과기부 대변인실을 통해 “차관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기된 사안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여러 분야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답변했다.

지난 12월 4일 신성철 KAIST 총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반박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4일 신성철 KAIST 총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반박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혼란 겪는 원전업계

과학기술계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는 분야는 원자력 업계다. 현 정부 들어서만 10여명의 원자력 관련 기관장들이 사퇴했다. 이들이 비운 자리는 환경운동하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대표적 사례가 하재주 전 원자력연구원장이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지난해 3월 취임한 하 원장은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사무처장 출신인 서토덕씨가 상임감사로 임명되면서 36개월로 정해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8개월 만에 사퇴했다.

최근에는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이 ‘도둑 임명’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12월 7일 새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으로 김혜정 전 원안위 비상임위원이 임명됐다. 모 대학 중어중문과를 나오고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한 김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때 원안위 비상임위원을 지낸 바 있다. 원자력안전재단은 이사장이 바뀌었는데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다가 한 전문지에 의해 기사화된 후에야 이사장 선임 사실을 발표하면서 눈총을 받았다.

원자력 관련 최고 규제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강정민 전 위원장은 국정감사 도중 사퇴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강 위원장은 KAIST 초빙교수 시절 원자력연구원 사업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정감사 도중 사퇴했다. 새로 임명된 엄재식 원안위원장은 관료 출신으로 내부승진했지만 지난 5월 발생한 ‘라돈침대’ 사태의 책임자 중 한 명이라는 지적에 휩싸여 있다.

지난 8월 원전수출산업협회 회장이 바뀐 사실도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원전수출산업협회는 원전의 해외수출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조직이다. 주로 원전 관련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회장을 맡아왔다. 그런데 지난 8월 임명된 김상갑 신임 회장은 올해 나이가 70세로 상당한 고령인 데다 원전업계에서의 경력이 없는 인물이다. 김 회장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을 맡으면서 평창 알펜시아를 개발했지만 부지 부실매각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에는 별다른 경력이 없다. 강원도개발공사 사장을 맡기 전까지는 두산중공업 부회장과 한국남부발전 사장을 역임했었다. 협회 관계자는 “(김 회장은) 두산중공업에서 부회장까지 했었지만 원전 쪽은 아니었다”며 “비전문가가 원전 수출한다고 왔는데 이 역시 비전문가가 모든 요직을 차지하는 일환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나

원자력 업계 이외의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현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기관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조무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박태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신중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황진택 에너지기술평가원장, 홍기훈 해양과학기술원장, 서상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장, 장규태 생명공학연구원장, 성게용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손상혁 DGIST 총장이 줄줄이 사퇴했다.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계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업계에서는 연구비 관련 문제를 꼽는다. 심사기준에 따라 연구비를 나눠주려면 모두가 공감하는 공정한 심사기준이 필요한데, 이 기준에 공감하지 못하는 쪽이 심사에 떨어질 경우 투서를 하고 여기에 정부의 과학기술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겹쳤다는 점이 업계의 해석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연구비와 관련해 투서가 많은 것은 과학기술계의 고질적 현상이다. 연구비를 나눠주려면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공정하게 하면 그게 곧 권위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내부에서는 모두가 합의하는 공정성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그간 과학기술계에서는 투서를 통해 불만을 해소했는데 평소엔 그래도 대부분 무마됐다. 근데 이번 정권은 과학기술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합쳐지면서 심각해졌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들어 과학기술계가 극심한 혼란에 처해 있지만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를 향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과총은 국내 과학기술 분야 최대 단체로 과학기술계 현안에 대한 대응이 설립 목적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총 610개 단체(학회는 400여개)로 구성된다. 하지만 과총은 최근 과학기술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아직까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과총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놓기엔 이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과총 회장은 김대중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김명자 명지대 화학과 석좌교수가 맡고 있다.

과학계 원로교수들 중 상당수는 과학기술계를 둘러싼 혼란과 관련해 우선 사실관계가 어떤지를 지켜본 뒤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과학계에서 가장 큰 학회인 대한화학회의 하현준 회장은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문제는 그야말로 사실을 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 섣부른 예단보다는 도대체 사실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게 우선이다. 사실관계가 복잡하지 않다면 수사기관의 판단이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가능한 빨리 결론이 나오는 게 좋다고 본다.”

신 총장이 몸을 담고 있는 KAIST 역시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KAIST 교수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13일 마감된 성명서에는 교수 310명, 교직원들을 포함하면 총 700명 이상이 “신 총장의 직무정지는 부당하다”는 내용에 서명했다. 이승섭 KAIST 교수협의회장은 전화통화에서 “사실 규명도 되지 않았는데 과기부가 다짜고짜 신 총장의 직무정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성급하다”며 “지금은 KAIST이사회가 직무정지를 유보한 상황이니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게 KAIST 교수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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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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