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세 번째 백악관 비서실장을 찾다가 일단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에게 대행을 맡겼다. 존 켈리 현 비서실장이 연말에 그만두기로 하면서 후임자가 여럿 거론됐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해 당분간 대행 체제로 가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들은 비서실장 후보를 찾을 때 ‘적임자를 못 찾으면 망한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한다.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들의 이야기를 다룬 ‘게이트키퍼스(Gatekeepers)’의 저자 크리스 위플은 “백악관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어젠다를 현실로 구현한다”고 했다.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한다는 것은 권력과 정치와 정책이 한데 어우러져 성과를 낸다는 뜻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바로 그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백악관, 의회, 언론을 다 능숙하고 유연하게 상대할 줄 알아야 한다.

해병 4성 장군 출신의 켈리는 취임 초부터 삐걱거리던 트럼프 백악관에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 들어와 군기반장 역할을 했다. 한동안은 분위기를 다잡는가 했는데 어느새 트럼프와의 불화설과 사임설에 시달리다가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

모든 권력투쟁엔 ‘궁중암투’의 성격이 있다더니 트럼프의 백악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와, 대통령 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와 참모들 간의 갈등설이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상에서 가장 골치아픈 직업이라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매순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서 일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대통령 가족들까지 고문으로 백악관에 들어와 있으니, 트럼프가 세 번째 비서실장 구인난에 맞닥뜨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연말에 미국에서 개봉하는 영화 중에 딕 체니 전 부통령의 삶을 다룬 ‘바이스(Vice)’가 있다. 늘 조연처럼 여겨지는 부통령이 주인공인 영화다. 체니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꼽힌다. 그리고 34세에 백악관 비서실장이 됐던 전설적인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백악관 비서실장을 하던 당시 체니는 일에 너무 시달리다가 첫 심장마비를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심장 때문에 고생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빌 데일리도 스트레스 때문에 대상포진을 앓았다고 한다.

어떤 자리든 백악관에서 처음 일을 해보면 대부분 ‘소방호스로 물을 마시는 것’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들은 새벽부터 울리는 전화에 잠이 깨서 다시 잠들 때까지 전화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들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이 터지고, 의회에선 여야가 극한 대치를 하고 있고, 여론은 악화되고, 대통령 측근은 어디선가 사고를 치고…. 비서실장은 이 모든 것을 헤쳐나가면서 대통령에게 어디로 발걸음을 뗄 것인지 조언해야 한다.

젊은 시절부터 의회와 행정부를 넘나들며 잔뼈가 굵은 체니는 워싱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워싱턴을 움직일 수 있는지 아는 사람으로 꼽힌다. 어떤 의미에서 체니는 모든 대통령들이 원하는 비서실장 타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한가. 설사 있다고 해도 트럼프의 백악관에서 기꺼이 비서실장을 하겠다고 나설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비서실장의 능력이 아니라 대통령이 그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이다. 워싱턴의 이름난 수완가들이 트럼프 비서실장 자리에 손을 내저었던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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