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제 동이 터오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대층이 지지층보다 많아지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를 접한 직후였다. 탄핵 정국 이후 2년 이상 암흑의 터널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자유한국당 지지율도 나 원내대표의 표현처럼 동이 터오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선 25%가량으로 30%대 후반인 더불어민주당과 차이가 좁혀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20% 안팎을 기록하며 민주당을 추격 중이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불과 2~3개월 전에는 10%대 초반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변화가 큰 편이다.

보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은 탄핵 정국 이후 무력감에 빠졌던 보수층의 결집을 의미한다. 보수층이 중도 혹은 진보 정당 쪽이나 무당파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보수 정당을 향해 유턴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여론조사에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보수층의 의사 표현이 점차 활발해지는 이른바 ‘샤이 보수의 귀환’도 영향이 있다.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의 월별 평균치는 2018년 1월 보수층의 경우 긍정과 부정 평가가 43% 대 46%로 비슷했지만 12월엔 20% 대 72%로 평가가 크게 악화됐다. 정부의 국정(國政) 운영에 대해 보수층의 대다수가 반대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앵그리 보수’에 중도층 가세 기미

침묵하던 ‘샤이 보수’가 얼마 전부터 정부에 대해 실망감이 커진 ‘앵그리 보수’로 바뀌면서 뭉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與圈)의 지지율 침체는 지난 9월 중순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때 최고조에 달했던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든 것의 영향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 무산도 북한에 비교적 호의적이던 민심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 10월 초 갤럽 조사에선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로 ‘대북관계 개선’(44%)과 ‘대북 정책’(9%) 등 북한 이슈가 절반 이상인 53%였지만 연말 조사에선 ‘대북관계 개선’(27%)과 ‘대북 정책’(7%)이 34%로 크게 하락했다.

여권 지지율 방어의 최후 보루였던 북한 이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반면 경제 이슈에는 집중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민생·경제 해결 부족’이 39%에서 47%로 올랐다. 그 사이에 문 대통령 지지율도 심리적 지지선인 50% 아래로 떨어졌다. 연말엔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인 45%를 기록하면서 부정 평가(46%)보다도 낮아졌다. 주식 시장에서 주가의 단기 이동평균선이 장기 이동평균선을 뚫고 내려가는 약세장 전환 신호인 ‘데드 크로스’처럼 대통령 지지율도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한국갤럽 장덕현 부장은 “최근 보수와 진보의 중간지대에 머물러 있던 계층까지 국정에 대한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며 “영남과 60대 이상 등 보수층뿐 아니라 충청과 50대, 중도층 등에서도 지지율이 많이 하락했다”고 했다. ‘앵그리 보수’에 중도층이 가세할 기미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충청권의 경우 갤럽 조사에서 2018년 1월엔 문 대통령에 대한 긍·부정 평가가 65% 대 25%로 긍정 쪽이 다수였지만 12월엔 39% 대 46%로 완전히 역전됐다. 50대도 1월에는 61% 대 31%로 긍정이 두 배가량 높았지만 12월엔 40% 대 53%로 뒤집혔다. 중도층도 1월엔 73% 대 19%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12월엔 49% 대 42%로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는 여야(與野) 정당 지지율 판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2월에 갤럽이 ‘만약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라면 어느 정당에 투표하겠는가’라며 총선 투표 의향 정당을 묻는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39%, 자유한국당 21%, 정의당 12%, 바른미래당 7% 등의 순이었다. 민주당은 한 달 전 조사의 43%에 비해 4%포인트 하락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16%에서 5%포인트 상승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한때 30%포인트를 넘었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차이가 20%포인트 내로 줄어든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했다.

그 이유는 2016년 4월 총선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갤럽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총선 직전인 3월에 새누리당(39%)이 민주당(21%)보다 18%포인트 높았지만 한 달 후 총선 결과는 민주당(123석)이 새누리당(122석)에 1석 차이로 승리했다. 당시 여당(새누리당)과 야당(민주당) 지지율은 현재 여당(민주당)과 야당(자유한국당) 지지율 수치와 똑같다. 지지율 15~20%포인트 차는 언제든지 접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약 20%가량인 ‘지지 정당이 없다’는 부동층의 상당수가 잠재적 야당 지지층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 반대층 중에서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아직 40%에 그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야당으로선 정부와 여당에 등을 돌린 중도·보수층 끌어 모으기가 이제 시작 단계란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아직 샤이 보수가 본격적으로 귀환한 것은 아니다”라며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감도 남아 있다”고 했다. 배 본부장은 “야당에서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가 떠오르지 않고 있는 것도 영향이 있다”며 “여권과 강력하게 맞서는 대항마를 중심으로 야권이 뭉칠 경우엔 보수층 결집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 및 대북 정책과 관련한 야당의 전략이 ‘비판’ 위주에서 ‘대안’ 제시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안 없는 공세로는 지지율 상승이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에 수권(受權) 정당으로서의 실력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변화는 스스로의 성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권의 침체에 따른 반사이익이란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세연 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근본적 혁신이 없는 상태에서 반사이익이나 어부지리로 지지율 회복을 하면 내부 개혁의 동력이 다시 약해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반사이익도 못 얻는 정당”이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주목하는 견해도 많다. 현 정부 들어 민주당 지지율이 최저치로 내려앉고 있는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최고치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정치 지형 변화의 신호란 것이다. 조일상 메트릭스 대표는 “정부·여당이 잘못해도 곧바로 야당 지지율이 오르진 않는다”며 “당장 큰 선거가 없기 때문에 정당 지지율이 크게 요동치진 않겠지만 정치·경제적 빅 이슈가 터지고 여권이 흔들린다면 보수층 결집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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