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에서 작전 중인 미군. ⓒphoto 뉴시스
시리아에서 작전 중인 미군. ⓒphoto 뉴시스

새해 미국은 ‘불가능한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국의 꿈’을 포기하고 있는 것인가?

지난 12월 말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를 발표했다. 철수 결정에 반대했던 매티스 국방장관은 전격 사퇴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간에 전례를 찾기 힘든 충돌이 벌어지자 철수 결정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철수 결정이 새해 미국의 대(大)전략이 바뀔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기조의 대전략으로 이행할 것인가? 미국의 새로운 대전략과 관련해 우리에게 최대 의제는 동아시아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나갈 것이냐이다. 그 까닭은 미·중 관계와 북한의 비핵화,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등 주요 현안의 미래가 미국이 선택할 새로운 대전략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철수 결정은 워싱턴 조야(朝野)의 안보 정책 공동체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공화와 민주 양당과 싱크탱크들, 군(軍), 언론으로서는 자신들이 합작해 탈냉전 시기에 추진해온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전략이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로 종언을 고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 이후 클린턴, 부시, 그리고 오바마 세 행정부에 의해 추진돼온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이번 철군 결정을 계기로 그 자리를 ‘현실주의(realism)와 이에 기초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에 넘기고 종언을 고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면서 안보정책 공동체가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존 J. 미어셰이머는 2018년 가을 출간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책 ‘거대한 환상(The Great Delusion)’에서 미국 외교가 탈냉전 시기에 실패한 것은 동유럽을 비롯한 구(舊) 공산권 국가와 테러지원국, 빈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키려는 ‘불가능한 꿈(impossible dream)’을 꾸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불가능한 꿈을 꾸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트럼프는 이번 결정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세계경찰관’ 역할을 더 이상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리아 철수 결정은 비로소 미국이 동아시아와 유럽 등 주요 전략 지역들만 관여하는 현실주의 전략으로 복귀하겠다는 것을 알리는 나팔 소리일 수 있다. 돌발적인 결정이라며 비판이 거세지만 트럼프가 미국을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라는 불가능한 꿈에서 깨어나게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여기서 트럼프와 안보정책 공동체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공과를 따지기에 앞서 안보정책 공동체의 문제는 미국 경제가 세계경찰관 역할을 하는 것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상하원 지역구 의원들과 싱크탱크, 언론으로서는 그 같은 역할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을 일자리와 복지로 돌리라고 하는 국민 전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매티스로 대표되는 군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대외 군사 개입을 통제해야 하는 문민 리더십과 달리 군은 모든 대외 문제를 군사적으로 개입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처지는 다르다. 그로서는 2020년에 재선되기 위해서는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시켜서라도 재정을 절약해 이를 국민의 삶을 증진시키는 데로 써야 한다.

사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 폐기 움직임은 트럼프가 2017년 취임 이후 추진해온 안보와 경제 분야 대외정책에서 점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왔다. 미어셰이머에 의하면 트럼프는 이미 2016년 대선 기간에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비참하게 실패했으며, 당선되면 그 전략의 몇몇 요소들은 폐기하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적국들을 상대로 자유민주주의 가치 확산을 통한 체제 전환 전략과 거리를 두어온 것은 이 같은 인식에 기초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대외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미국 이익 우선에 둘 수 있었던 것이다.

신보수주의와 이상주의의 합작품

그동안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공화당의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와 민주당의 이상주의(idealism)의 합작으로 추진되어왔다. 이 점에서 이 전략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는 사실은 대전략의 방향을 둘러싸고 지난 27년간 벌어진 치열한 전략가들의 사상전도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체니와 월포위츠에서 펜스와 볼턴에 이르는 공화당 네오콘들과 브레진스키와 올브라이트에서 라이스에 이르는 민주당 이상주의 전략가들의 세기의 대결에서 키신저와 스코우크로프트 등 현실주의 전략가들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실패하고 현실주의 전략이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미국이 전 세계의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추진한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애초에 목표로 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미국 경제의 급속한 쇠퇴를 초래한 2008년 금융위기였다. 오바마는 임기 8년간 금융위기로 악화된 경제 회복에만 매달렸다. 이로 인해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체제의 강대국들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 오로지 군사적 수렁에 빠지는 것만 피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실주의 전략을 병행한 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미국은 이상주의 가치의 확산을 통한 완전한 승리의 추구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뒷받침할 군사력을 행사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외교의 블랙홀에 빠지고 말았다.

사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패권국가로서 추진한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이 같은 참혹한 실패를 겪으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클린턴과 부시, 오바마 등 세 행정부가 임기 24년 동안 추진한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의 안보와 직접 관계가 없는 국가들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전략이었다. 두 번째는 금융자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키는 전략이었다. 미국은 그 같은 체제 전환에 성공하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 세계가 평화와 번영을 이룰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동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이식 시도는 거꾸로 이들 지역의 질서를 오히려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시킨 결과 이들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를 자극함으로써 이들 국가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이 증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중동 지역의 경우 이라크전쟁으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친미 정권을 세웠으나 최근 총선에서 반미 세력이 승리했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리비아에서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테러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와 리비아 영토를 기반으로 중동 정세를 악화시키고 유럽에서 자살테러를 일삼게 된 것도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과 맞닿는다. 비록 후세인과 카다피, 무바라크가 독재자들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정세가 오히려 오늘날보다 안정됐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금융세계화 압박에 따라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아시아와 유럽에서 금융위기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가 빈발하고 부의 양극화가 심화돼왔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로 인해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중산층이 붕괴돼 우파가 약화하고 극우파와 좌파가 득세하는 사태가 초래됐다.

2018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이스턴이코노믹포럼에 참석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photo 뉴시스
2018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이스턴이코노믹포럼에 참석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photo 뉴시스

미국의 두 가지 외교 실패

탈냉전 질서가 2014년 붕괴한 데는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초래한 두 개의 외교 실패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의한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이다. 이들 사건이 탈냉전 질서를 붕괴시켰다고 보는 것은 탈냉전 체제를 떠받들어온 베스트팔렌조약의 핵심 규범인 영토와 주권 보장이 러시아와 중국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2014년 1월 크림반도를 전격 병합한 이유는 러시아가 대(對)서구 완충지대로 여겨온 우크라이나를 미국이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려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나토가 우크라이나로 확대될 경우 자신들의 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데 이어 동부 지방을 침공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로써 러시아에 의한 ‘권력 정치’가 부활하면서 유럽에서의 탈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말았다.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자 만델바움은 2016년에 나온 그의 책 ‘임무 실패(Mission Failure)’에서 이렇게 비판한다. “탈냉전 질서의 붕괴는 전적으로 미국이 자신들과 동맹국들의 안보는 돌아보지 않고 동유럽 등 구 공산국가와 테러지원국, 빈국의 체제 전환이라는 ‘사회사업(social work)’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유럽은 “나토의 동유럽으로의 확장은 반드시 재앙을 초래한다”는 냉전시대 봉쇄 전략의 기획자였던 조지 F. 케넌의 경고를 잊어버렸다. 오바마는 아예 “나는 케넌이 필요하지 않다”고도 했다.

중국이 2014년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든 뒤 그 위에 군사시설을 짓기 시작한 것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자 아론 L. 프리드버그가 그의 책 ‘패권을 향한 결전(A Contest for Supremacy)’에서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이 군사력 증강을 통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대한 도전 전략을 가다듬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 2003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일으켰을 때부터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미국이 이들 두 개의 전쟁에 동원한 가공할 위력의 첨단 무기와 장비를 중국이 목도하면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에 의한 체제 전환 가능성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내 패권 도전은 이 같은 두려움이 공산당 1당 지배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과 맞물리면서 더욱 본격화했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정치적 자유를 더 많이 요구하는 중국 중산층의 이해와 맞물릴 경우 위기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중국이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앞세워 미 항모와 전폭기의 남중국해 접근을 막기 위한 ‘반접근과 지역거부(A2AD)’ 군사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후 중국의 패권 전략은 동아시아 금융 패권과 유라시아 전역의 중국화 전략으로까지 확대됐다. 중국은 2013년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해 IMF(국제통화기금)와 아시아개발은행(ADB)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2014년부터 유라시아 국가들과 육상과 해상을 통해 연결함으로써 이들 지역 전체의 친중화(親中化)를 위한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and One Road)’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이 같이 대미 군사 우위를 넘어 역내 전 분야의 패권을 도모하게 된 데는 2011년 9월 힐러리 국무장관이 발표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에 대한 두려움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동유럽의 체제 전환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거둔 미국이 중국의 체제 전환을 목표로 안보 축을 동아시아로 이동하려는 것으로 중국은 이해했던 것이다.

크림반도 병합과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사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이처럼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에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상대로 봉쇄와 체제 전환 위협을 가함으로써 완전한 승리라는 불가능한 꿈을 꾼 결과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졌다는 것이 현실주의 전략가들의 지적이다. 이로 인해 유럽과 동아시아, 서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미 UCLA 정치학자 마크 트라크턴버그에 의하면 ‘현실주의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 이상주의는 끝없는 갈등을 낳는다’. 현실주의자들은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신중하다. 반면 이상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그 까닭은 그들이 전쟁이 낳을지 모르는 재앙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전쟁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재앙의 영역으로 이끈다.

최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최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미국 동아시아서 ‘확전 우위’ 유지할까?

미국이 현실주의 외교 전략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89년 미 일본계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제기한 ‘역사의 종말론’이다.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자유민주주의가 최종 승리를 거둔 결과 상이한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종말을 고했다는 담론으로 인해 미국 전체가 환상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국가 이익 등에 따른 갈등으로 인해 언제든지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 현실주의 전략가 로버트 케이건은 그의 책 ‘역사의 귀환과 꿈들의 종언(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에서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복귀로 인해 마침내 역사의 종말론이 종말을 고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관심은 미국이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폐기한 이후 동아시아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 길은 현실주의 전략가들이 기대하는 대로 트럼프가 현실주의 전략을 본격 추진할 경우다. 이 길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체제 전환 등의 완전한 승리를 도모하는 대신 중국의 역내 리더십을 인정하고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중국이 단독 리더십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 패권 지위를 강력하게 추구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의 외교 주권과 영토 주권을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현실주의 전략의 선택은 하나다. 중국에 그 같은 도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확전을 불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군사적 우위를 점하는 ‘확전우위(escalation dominance)’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전략가인 로버트 하딕은 ‘해상의 포화(Fire on the Water)’에서 미·중 경쟁의 핵심은 확전우위 경쟁이라고 진단한다. 중국이 인공섬과 그 위에 지은 군사시설 등으로 주변국의 영토와 주권을 침해하고 항행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도발을 지속할 경우 확전우위 전략으로만 제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A2AD에 맞서 ‘공중-해상 전투(Air-Sea Battle)’ 전략을 펴왔으나 갈수록 중국에 군사적 우위를 빼앗겨왔다. 심지어 미 항모가 중국 해군의 소형 선박들로 의심되는 어선들의 충돌 시도를 피해 중국 항구로 피항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실주의 세력균형 전략에 따라 중국에 관여 전략과 확전우위 전략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문제 역시 더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 미국에 의한 체제 전환 가능성을 중국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될 전망이다. 시진핑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발표 직전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대미 완충지대인 북한의 친미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미국과 협력해 김정은이 비핵화에 적극 나서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길은 트럼프가 현실주의 전략으로 이행하면서도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한 국익 우선 전략을 더 중시할 경우다. 미국이 단호한 군사력 행사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확전우위 전략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역내 질서가 더 위험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변수는 중·러 간 군사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논설위원 기드온 래치먼이 ‘동아시아화(Easternisation)’에서 말한 바와 같이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으로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한 뒤 극동지역의 경제 개발과 군사력 강화에 본격 착수하는 ‘러시아판 아시아 회귀’를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정세에서는 북한 비핵화 협상도 진전되기 쉽지 않다. 여기에다 미국이 주한미군마저 감축하거나 철수할 경우 중국이 역내 패권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한국의 대전략은 뭔가?

따라서 한국의 대전략은 한 가지로 모아진다. 중국·러시아·북한 간의 전체주의 또는 권위주의 동맹에 의한 역내 비(非)자유주의화 위기를 막기 위해 21세기 한·미 동맹의 비전을 조속히 마련해 워싱턴 조야를 설득해야 한다.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기 위한 분담금 증액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어쩌면 전부 부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설마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느냐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전시작전권을 넘겨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군을 미군과 협력하면서 중·러·북 3각 동맹을 막을 수 있는 ‘전략군’으로 육성시킬 수 있다.

미 예일대 국제정치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2018년 봄에 펴낸 ‘대전략론(On Grand Strategy)’에서 대전략을 ‘무한한 열망들과 제한적인 수단들 간의 균형’이라고 정의한다. 새해 미국이 탈냉전 시기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라는 불균형 전략에서 현실주의 전략이라는 균형 전략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 점에서 타당하다. 한국도 전략 목표와 보유 수단 간에 균형을 이루는 대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북한의 핵개발과 중국에 의한 속국화 가능성, 일본의 군사대국화 등 3대 위협을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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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 전략국가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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