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국민주권연대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7일 국민주권연대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정은의 연내 서울 답방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서는 김정은 답방을 단순 환영하는 차원을 벗어나 김정은을 ‘백두신령(神靈)’ ‘위인(偉人)’ 등으로 공개적으로 미화, 찬양하는 ‘김정은 신드롬(syndrome)’이 확산되고 있다.

이의 시발은 지난 11월 7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정은을 연호, 찬양하며 결성을 선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란 단체이다. 이후 ‘대학생 실천단 꽃물결’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방문·남북정상회담 환영 청년학생위원회’ ‘서울시민환영단’ ‘위인맞이 환영단’ ‘서울남북정상회담 방해세력 제압 실천단, 백두수호대’ 등 김정은 서울 방문을 환영하며 찬양하는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들 중 ‘대학생 실천단 꽃물결’은 서울·부산·대구·수원·광주 등을 순회공연하며 김정은 답방 환영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 ‘백두수호대’는 서울 남북 정상회담을 방해하는 세력은 그 누구라도 제압하겠다며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에 대한 협박 메일 보내기와 공개경고, 방해세력 수배전단 배포 및 부착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민주권연대’의 기관지인 ‘용광로 제5호’(2018월 12월 21일자)에 수록된 백두수호대 관련 글을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서울 방문을 뜨겁게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반통일 행위를 일삼는 방해세력(보수안보세력을 칭함)에 최후의 경고와 제압실천으로 그들을 눌러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백두수호대의 드팀없는 의지입니다”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2018년 4·27 판문점회담 직후 실시된 MBC 여론조사(4월 30일)에서는 응답자의 77.5%가 ‘김정은을 신뢰한다’고 했으며, KBS의 여론조사에서는 우리 국민 80%가 김정은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누구인가. 수령 유일 독재체제 구축에 방해가 된다며 고모부인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하고 이복형 김정남을 해외에서 독극물로 암살한 인물이다. 또 당·정·군 고위간부 200여명을 잔인하게 처형한 전대미문의 폭압통치자이다. 핵실험을 3차례나 벌이고, 200여차례의 중·단거리 미사일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등을 자행하면서 “서울에서 제주까지를 벌초해버리겠다”고 공갈, 협박했던 통치자이기도 하다. 이런 자가 하루아침에 ‘평화의 사도’로 둔갑하여 종북세력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신뢰와 찬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북한 통치자나 북한 체제를 찬양, 추종하는 세력들의 발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 내 북한 추종세력(이른바 종북세력)의 문제는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지난 70년간 지속된 한국 현대사의 만성적인 악(惡)이었다. 다만 그동안 국민들의 무관심과 관용 속에 방치된 사안이었을 뿐이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시 분향소 설치 등 이른바 ‘주사파 파동’, 1996년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연세대 난동사태’, 2013년 이석기 내란선동사건 및 2014년 통진당 해산사건 시 종북세력 문제가 잠시 사회적 관심을 끌었으나 결국 단발성으로 끝나버렸다. 이들 세력의 본질을 철저히 해부하여 뿌리뽑지 못한 채 김정은 신드롬 확산이라는 오늘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주권연대와 민권연대가 중심

이번에 등장한 ‘백두칭송위원회’ 등 김정은 찬양단체들은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세력이 아니라 이미 활동해온 북한 추종단체 내에서 발족된 것이다. 이의 중심에는 ‘주권연대’와 ‘민권연대’ 등 13개 단체가 있다. 이들 단체들의 핵심 지도부는 상당수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자들이다. 위 두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기진의 경우 국보법상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과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의장을 역임했다. 그의 부인인 황선은 범청학련 부의장과 대변인, 민주노동당 자주평화통일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신은미의 이른바 종북콘서트를 주관했다. 2005년 평양 원정출산을 한 자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들 부부가 이른바 ‘종북 부부 1위’에 올라와 있을 정도이다.

‘민권연대’는 ‘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가 2009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자 해산하고 2010년 6월 12일 지금의 이름(‘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가 정식 명칭)으로 간판을 바꿨다. 이 단체는 현재 유명무실하다. ‘주권연대’(국민주권연대)가 결성되면서 이를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들 단체들은 북한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 간첩사건, 북한인권 등에 대해 북한 김씨 정권의 입장을 철저히 옹호, 대변해왔다. 그러면서 일관되게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 주체사상과 선군노선 찬양, 3대 세습 옹호’ 활동을 전개해왔다.

김정은 찬양단체의 이념과 실체적 본질은 양파껍질과 같아 벗기면 벗길수록 결국 북한으로 귀결된다. 이는 이미 사법처리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1992), 구국전위(1994), 민족민주혁명당(1999), 일심회(2006), 왕재산(2011) 사건 등의 사례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들 사건에서 국내 종북 지하세력과 북한과의 연결고리가 명명백백히 확인된 바 있다. 또한 북한이 이들 단체의 활동을 관영매체와 해외 북한선전 웹사이트에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현재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사항은 북한 추종세력의 본질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른바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김정은 신드롬 등 국내 북한 추종세력의 정확한 실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핵심적 사안들을 지적한다.

첫째, 북한의 대남전략 속에서 북한과 국내 북한 추종세력의 연계를 파악해야 한다. 북한은 ‘전 조선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와 공산주의 실현(적화통일)’이라는 정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1964년 2월 27일 당중앙위원회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3대혁명 역량강화 노선’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남한 사회주의혁명역량의 강화를 대남공작 지침으로 하달하고 있다. 이는 ①남한 내 민주주의운동(북한 추종운동) 지원 ②남한 인민의 정치사상적 각성(주체사상 의식화) ③혁명당과 혁명의 주력군 강화 및 통일전선 형성(지하당과 보조역량 강화) ④반혁명역량 약화(주한미군, 군, 안보수사기관, 국가보안법의 무력화) 등으로 집약된다.

북한은 이를 위해 그간 간첩을 남파시켜 국내 북한 추종세력들을 포섭하여 지하당을 구축해왔다. 이를 통해 추종세력을 양산시키며 우리 체제를 위협해왔다. 그 결과 주사파라는 북한 추종세력이 이미 우리 사회 각계 각 분야에 뿌리내렸다.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등 각종 지하당이 구축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현재 국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등 해체’ 등의 구호가 만연한 것을 보면, 북한의 대남공작이 사회 각 분야에서 작동되고 먹혀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북한 추종세력이 북한의 제2전선(후방전선)을 담당해오며 남파간첩들이 해야 할 일을 국내에서 충실히 대행하고 있다. 북한이 1990년대 이후 소련 등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 극심한 경제난, 김일성 사망 등 내외 정세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에서 일관되게 자신감을 갖고 공세적으로 대남공작을 전개한 배경에는 바로 우리 내부에 확고히 구축해놓은 종북세력 중심의 ‘제2전선’(후방전선)이 있다. 이들은 매 시기 활동공간을 확대하며 학원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종교계, 언론계, 재야권, 제도 정치권 및 정부 사이드에까지 동조 및 비호세력을 침투시켜 이른바 ‘종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영향력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오고 있다. 이의 연장선에서 김정은식 대남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핵심 투쟁 방향은 반(反)대한민국, 반(反)미국, 반(反)자본, 친(親)북한 등으로 집약된다.

셋째, 김정은식 대남공작이란 비합법 공간과 합법 공간을 배합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합법 공간에서는 간첩공작을, 합법공간에서는 최상층 통일전선을 배합 구사하고 있다. 통일전선이란 공산혁명의 주적을 타도하는 데 공산세력의 힘만 가지고 불가능할 때 비공산세력을 포함하여 필요한 동조세력을 획득하고 그들과 일시적인 동맹체를 형성하여 투쟁하는 전술이다. 특히 주적 타도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제휴했던 비공산세력을 모두 고립화시켜 제거하는 것이 통일전선의 악랄함이다.

김정은 찬양 외면하는 안보 당국

올 들어 김정은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합법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최상층 통일전선에 주력해 북한 의도대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및 부속 군사분야합의서를 이끌어냈다. 하층 통일전선을 기반으로 상층 통일전선을 전개하라는 김일성의 통일전선 방침(교시)에 비추어보면 김정은의 최상층 통일전선은 이미 우리 사회 내부에 형성된 하층, 중간층 통일전선의 성과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종북세력이라 불리는 북한 추종세력이 우리 내부에 성공적으로 구축됐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결국 최상층 통일전선의 성공은 안보 수사 당국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북한에 우호적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정책을 수립하고 따르게 만든다. ‘백두칭송위원회’나 ‘백두수호대’ 등과 같이 김정은을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행위를 외면하는 경찰, 검찰, 국정원 등의 행태가 한 사례이다. 북한 통일전선의 영향력이 북한 추종세력을 고무하는 반면 대한민국 안보 수사 당국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찬양 등 북한 추종세력들의 발호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및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위협, 부정하는 행태이다. 그러나 이를 외면, 묵인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는 또 다른 적폐(積弊)의 양산이다.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 정권 출범 시 최우선 청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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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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