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유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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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내 방산(방위산업) 전체 매출액이 3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나 방산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방진회)가 최근 공개한 ‘2017 방산업체 경영분석’ 자료에 따르면 93개 방산지정 업체의 2017년 방산 부문 매출액은 12조7611억원으로 전년 대비 13.9%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2016년 2184억원에서 2017년 마이너스 1091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한국 방산의 위기 등과 관련해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육사 33기·예비역 육군중장)을 만나 그 실상과 원인, 해법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정 전 소장은 합참 전략기획본부에서 실무자부터 과장, 차장, 부장, 본부장 등을 모두 거쳐 군 전략 및 전략기획, 방산, 무기도입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국방과학연구소장 시절 방산비리 의혹으로 구속 기소됐었지만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최근 군 인사, 무기도입, 방산, 군사전략, 국방개혁 등 우리 국방 문제 전반을 다룬 ‘우리의 국방,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플래닛미디어 발행)라는 책을 냈다.

- 최근 방산 매출이 3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방산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생각하나. “방산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상의 혼선으로 이어지면서 오늘의 위기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방산은 국가 방위력의 기반이며, 유사시 국가의 생존을 지원하고 외세의 간섭과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국가 전략산업이다. 특히 방산이 방위사업(무기, 장비, 물자획득·조달사업)에 종속됨에 따라 방산 기반이 약화된 측면도 있다.”

- 방산의 위기가 복합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우리 방산의 위기는 직접요인과 간접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직접요인으로는 매출 감소와 연이은 연구개발의 실패, 이익률 하락뿐만 아니라 기술개발 능력의 저하, 가동률 저하로 인한 생산라인 유지의 어려움, 수출 저하, 종사자의 근무 기피 및 사기 저하 등을 들 수 있다. 간접요인으로는 소요기획 기반의 취약, 방산정책의 혼선, 방산업체의 역량 부족, 기술 발전과 무기 개발에 대한 이해 결여, 과도한 방산비리 수사 및 감사 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지나친 경쟁 유도, 잘못된 가격 정책, 경쟁력 있는 기술 및 체계의 개발 지연 등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본다.”

-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 방산의 살길은 수출뿐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수출이 크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방산 수출을 확대하려면 국내 기술 개발과 방위산업체 육성이 선행돼야 하고 국가가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많은 국가가 국가 차원의 방산 수출 지원기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시바트(SIBAT)’가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방위사업청에서 방산 수출을 위한 원스톱 지원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바람직한 것이긴 하지만 국내 절차를 지원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해외수출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철매-2’ 대공미사일체계처럼 국제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다음 세대의 새로운 품목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정홍용 소장의 최근 저서.
정홍용 소장의 최근 저서.

- 방산을 살리고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의 위기는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련 기관들이 모여 열린 자세로 허심탄회한 소통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에 대해 정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의 무기 개발은 국가가 주도하고 업체는 양산에 주력하는 방식이었으나 이제는 업체 스스로 개발 역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앞으로는 업체도 양산과 관련된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요소기술의 개발과 기술 실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가(정부)도 업체의 기술 및 개발 역량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 획득(무기도입) 분야에서도 오랫동안 근무한 전문가인데 우리는 연구 개발과 무기 도입에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지적이 많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국방과학) 기술 개발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세계 어느 나라도 자신이 힘들여 개발한 기술을 쉽게 넘겨주는 나라는 없다. 설사 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공짜가 아니며, 반드시 대가의 지불과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예컨대 1980년대에 미국이 우리 예산으로 K-1 전차를 개발해 우리에게 인도했지만 아직도 26가지의 E/L(수출승인)에 구속받고 있으며, T-50 초음속 훈련기(미 록히드마틴의 기술지원으로 개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신속한 무기획득을 위해 신속획득 펀드, 해외비교 시험, 방위혁신 시험 등과 같은 제도와 6가지의 다양한 획득모델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여건이긴 하지만 변화하는 요구와 무기 특성에 따라 무기 특성에 맞는 다양한 획득모델을 발전시켜야 한다.”

- 무기 도입에 있어 논란이 됐거나 되고 있는 사업들도 적지 않다. K-11 복합형 소총의 경우 계속 문제가 발생해 이쯤되면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유사사업에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실패했다. 반면 우리 K-11 개발 사업은 180여억원의 매우 적은 예산과 10여명에 불과한 인력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K-11과 같은 개념의 무기 개발은 결코 녹녹하지 않은 과제이며 지속적인 검토와 보완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외국의 경우처럼 실패를 다음 세대로 가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는 ‘호버링 전략(Hovering Strategy)’을 적용하는 것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 방산비리 재판 무죄율이 50%에 달하면서 무리한 수사에 대한 비판도 일고 있다. 정 장군도 기소됐다가 대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깊이 언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런 결과는 부정부패로 인해 빚어지는 비리와, 전문성 부족과 잘못된 정책 추진 등으로 인해 업무 추진 과정에서 비롯되는 부실, 성과에 매몰된 무리한 감사와 수사 등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 책을 보니 전력증강에서 인력정책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방 전반에 대해 폭넓게 다뤘는데 어떤 취지에서 책을 쓰게 됐는가. “국방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서 후배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에 대한 기록들이 많을수록 우리 군의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정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 현역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군대는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가 강한 군대가 되어야 한다. 하드파워는 주로 무기체계와 물자, 시설 등과 관련된 분야이며 소프트파워는 운용능력, 즉 교리, 간부능력, 교육훈련 등과 관련된 분야다. 아무리 성능이 우수하고 현대적인 하드파워로 구성된 군대라 하더라도 소프트파워 수준이 낮으면 강한 군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군인들, 특히 간부 계층은 공부를 많이 해서 수준 높은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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