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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1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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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선진국들이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

김회권  객원기자 

▲ 지난 1월 2일 서울 역삼동의 한 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연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photo 조선일보
“청와대가 KT&G 인사에 개입했으며 국가채무 부담을 박근혜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기 위해 ‘적자 국채 발행’을 강요하려고 요구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폭로한 이 발언의 진실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신 전 사무관은 스스로를 내부고발자라고 정의했다. 지난 1월 2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공익신고 절차를 밟겠다”며 법적보호를 받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제보 내용의 진실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고, 공익에 부합하는 행동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고갔다. 그 사이 국회에서는 차분한 해명 대신 신 전 사무관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인격을 깎아내리는 시도가 있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꼴뚜기(김태우 청와대 전 특별감찰반원)가 뛰니 망둥이(신 전 사무관)도 뛴다”고 했다.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1월 2일 밤 페이스북에 “신재민은 진짜로 돈을 벌러 나온 것입니다”라고 적었다가 1월 3일 신 전 사무관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삭제했다.
   
   폭로 내용과 방식에 대한 의문은 설명과 설득의 과정을 통해 풀면 된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를 다루는 방식은 거칠었다. 국회의원들조차 제보 내용의 타당성을 따지기보다 고발자의 인격을 거론하고 공격하는 양상을 띠는 건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불편하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잠재적 내부고발자들이 이 사태를 보면서 ‘내가 고발하면 인격적으로 당할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내부고발자를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덜 다듬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내부고발자 보호는 공익신고자보호법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데 2011년 법 개정 전까지 공공기관에 한정해 적용하던 적용 범위를 법 개정 후 민간까지 넓혔다.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내부고발을 감행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고발은 짧지만 고통은 길다’고 탄식한다. 생존권을 걸고 고발했지만 경제적 보상이 미흡해 가계가 파탄나는 사례도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힘들게 고발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지문 이사장은 “현행법은 공익신고가 가능한 180개 법률을 정해놨다. 누가 봐도 공익제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도 180개 법률에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공익신고로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해외 선진국의 법적 장치는 우리보다 좀 더 적극적이고 포괄적이다. 개인의 신변을 보호하는 소극적 보호부터, 포상금까지 지급하며 제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도 한다. 국내법이 가진 한계와 인식을 넘는데, 시사점을 던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EU-내부고발자에 대한 소송 원천 차단
   
   2014년 유럽은 탈세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펩시와 이케아, 페덱스, 코치, 도이체방크 등 다국적기업 340곳이 룩셈부르크 조세당국과 비밀거래를 통해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룩셈부르크 조세당국과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간 과세 규정 문서 등 2만8000여쪽에 달하는 내부문서를 분석해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다국적기업 340곳은 기업활동이 활발한 국가에서 발생한 수익 수천억달러를 세율이 낮은 룩셈부르크로 옮겨 수십억달러의 세금을 절감했다.
   
   다국적기업들의 꼼수를 폭로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는 PwC 과세 규정 문서였다. 당시 회계법인은 이들 다국적기업에 자문을 제공했는데, PwC 직원이자 내부고발자였던 앙투안 델투르는 2002~2010년까지 8년간 작성된 548건의 문서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 전달했다. 유럽에서는 앙투안 델투르의 내부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을 ‘룩스리크스’라고 부른다.
   
   2018년 4월 유럽연합(EU)은 내부고발자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부랴부랴 나섰다. 이는 ‘룩스리크스’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내부고발자인 앙투안 델투르는 고발의 대가로 소속 기업 PwC와 기나긴 소송을 치러야 했고, 2018년 1월에서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고난은 유럽 내 내부고발자 보호에 경고등이 됐다. EU 집행위원회는 직장 내 박해, 지속적인 소송 등 비슷한 보복을 미리 방지해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새 법은 내부 정보가 공개된 기업이나 정부 기관이 계약위반을 이유로 내부고발자와 소송을 벌이는 행위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이나 조직 측에서 다른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 내부고발자에 대한 해고나 강등, 부당한 업무지시 등은 모두 회사의 보복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조항은 불법과 편법이 자주 벌어지는 금융계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데 민간 기업은 물론 정부 기구에도 적용된다.
   
   브렉시트 논란에 휘말린 영국이 만약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면 이 법을 적용받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휘슬블로어’란 단어를 처음 탄생시킨 곳답게 영국도 이미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갖추고 있다. 1998년 만들어진 영국의 ‘공익신고법’은 신고자를 다루는 태도가 매우 관대하다는 게 특징이다. 신고자가 공익적 제보라고 믿고 양심에 따라 알렸다면 진실 여부를 직접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오해였다고 해도 그렇게 믿을 만한 사유가 있었다면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자로 간주한다. 만약 고발자가 현직에 몸을 담고 있다면 신고 내용에 관해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소속기관은 어떤 불이익도 줄 수 없도록 강제했다.
   
▲ 2017년 4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책임성 개선 및 내부고발자 보호’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또 하나의 신고자 보호책을 발동시켰다. photo 뉴시스

   美-고발 있는 곳에 보상 있다
   
   미국의 월가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최대 증권사 겸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고객들의 유가증권을 기관이 파산할 때 채권자들의 상환 청구에 노출되는 계좌에 보유해왔다. 일평균 약 580억달러 규모에 달했다. 고객 자산을 위험에 빠뜨린 대가로 메릴린치는 많은 이득을 봤다. 메릴린치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매주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결국 불법행위가 걸리면서 4억1500만달러(4655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
   
   메릴린치의 탈선은 내부고발자 3명의 고발로 드러났다. 2018년 3월 19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들 내부고발자들에게 사상 최대 규모인 8300만달러(약 890억원)의 포상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2명에게는 5000만달러를, 나머지 1명에게는 3300만달러가 수여됐다. 포상금은 메릴린치가 SEC와 합의한 벌금의 20%에 해당한다.
   
   확실한 보상은 미국식 내부고발자 보호 방안의 핵심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약 30여개의 전문 영역에서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한 법률을 갖추고 있다. 그중 가장 활발한 분야가 메릴린치의 사례와 같은 금융 쪽이다. 2010년 미 의회를 통과한 ‘도드-프랭크법’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 법은 정부 조사에 협력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내부고발자를 차별 혹은 보복행위로부터 보호한다. 게다가 내부고발자가 제공한 정보 덕분에 증권거래법 위반 사실을 발견하고 100만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할 경우 벌금의 10~30%를 포상금으로 지급한다. 고발자의 익명성은 철저하게 보장된다. 메릴린치 고발자들의 변호인은 “SEC가 익명성을 보장한 덕분에 고객들은 계속 평범한 삶을 누리면서 월스트리트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메릴린치조차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리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믿음이 있었다면 공익신고로 폭넓게 인정할 정도로 미국의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태도는 유연하다. 혹여나 신원이 드러난 고발자가 신분상 불이익을 당했을 때는 국가의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특징이다. 미국 행정당국은 고발자에 대한 기업의 인사처분을 45일간 강제로 정지시킬 수 있다. 공익신고에 따른 보복인지 정당한 사유에 근거한 것인지 법원에서 판단할 때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약간의 연관이 의심된다면 미국 법원은 부당한 처우로 인정한다.
   
   민간의 영역에서 내부고발이 이뤄지는 데 토대가 된 건 공공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내부고발자 보호법이다. 1989년 미 연방정부가 만든 ‘공익신고자 보호법(Whistleblower Protection Act)’은 가장 기본적인 법안으로 평가받는다. 이 법은 공무원 내부고발자가 법률 위반, 관리상의 심각한 오류, 재정 낭비, 권력 남용, 공공 보건 혹은 안전에 관한 구체적 위협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때 보복행위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日-“내부고발 저해” 비판에 보완 중
   
   1950년에 탄생한 유키지루시(雪印)유업은 일본 유제품 시장의 80%를 차지하며 1위를 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업은 우리나라의 제일제당과 상표권 분쟁을 벌인 일도 있다. 매출 10조원의 이 기업은 2002년 문을 닫았다. 시작은 한 거래업체의 고발에서 시작했다. 2000년 여름 일본 최악의 식중독 사고를 일으킨 유키지루시유업의 자회사인 유키지루시식품이 수입 쇠고기 재고품을 국산 쇠고기라고 속였다가 들킨 것이다. 호주산 수입 쇠고기 13.8t을 일본 국내산으로 위장했는데 이유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서였다.
   
   내부고발로 드러난 사태에 소비자들은 유키지루시 제품에 등을 돌렸다. 한 달 새 매출은 90% 이상 감소했고 매장 자체에서 제품을 찾기 힘들 지경이 됐다. 한 달 만에 1000억원의 손해를 본 회사는 결국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거래업체의 내부고발로 폭로된 유키지루시유업의 행태는 일본 내에서 내부고발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건이 됐고 결국 2004년 ‘공익통보자보호법’이 만들어졌다. 조직 내부자가 기업의 부정행위를 고발하려면 사내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창구나 회사가 지정한 변호사사무소에 통보해야 하는 게 특이점이다. 그런데 이 법의 실효성을 둘러싸고는 아직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신고자가 실명으로 고발해야 하고, 과거 직장의 잘못은 신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을 금지하고 있지만, 만약 기업이나 조직이 신분상 불이익을 준다면 지루한 재판을 거쳐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기에 내부고발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문제점을 받아들여 일본 정부는 올해 1월 중 내부고발자 보호를 강화한 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해 통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기업이 고발자에 인사 불이익을 준다면 여기에 관여한 인사는 벌금이나 징역 등의 형사처분을 내리는 미국식 해법을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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