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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2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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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북·중 밀월관계의 끝은 ‘21세기판 조공·책봉 체제’?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북한 평안남도 회창군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이 있다. 평양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이곳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을 비롯해 인민해방군 병사 134명이 묻혀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아 이곳을 방문했다. 김정은은 마오안잉의 묘을 찾아 화환을 바치고 참배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조·중(북·중) 관계는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서로 피와 생명을 바쳐가며 맺어진 전투적 우의와 진실한 신뢰로 굳게 결합되어 있다”면서 “조·중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하고 공고한 친선관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조선 인민은 예나 지금이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같은 믿음직한 형제의 나라, 위대한 벗을 가지고 있는 것을 긍지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김정은이 정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마오안잉의 묘를 참배한 것은 중국과의 ‘혈맹’ 관계를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는 점을 김정은이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의 마오안잉 묘소 참배
   
   마오안잉은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결성된 중국인민지원군에 자원입대한 후 당시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참전했다. 마오안잉은 참전 한 달 만인 1950년 11월 25일 평안북도 동창군(지금의 삭주군) 대유동에서 미군 전투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전사했다. 28세였던 마오안잉은 중국공산당과 마오 전 주석이 북한에 지원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자 맨 먼저 지원군에 등록했다. 장남의 전사 소식을 들은 마오 전 주석은 며느리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북한 땅에 묻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마오 전 주석이 장남을 북한 땅에 매장한 이유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이 중국의 전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오 전 주석은 군부와 당 고위 간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이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하면서 참전을 결정했다. 그 이유는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과 국경을 맞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마오 전 주석은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베트남까지 진출한다면 유사시 동북 3성과 윈난성 양쪽에서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마오 전 주석은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고 가족을 보호하고 국가를 지킨다)’의 기치를 내걸고 참전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자서전에서 “미군이 평양~원산선에서 진군을 멈췄다면 중국은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국이 압록강~두만강 라인까지 진군하자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에 부담을 느낀 마오가 참전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1950년 12월 3일 북한과 작전을 일원화하는 연합사령부를 구성했다. 사령관은 펑더화이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이, 부사령관은 김웅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이 맡았다. 당시 마오 전 주석은 김일성을 베이징으로 은밀히 불러 양측의 작전지휘가 나뉘는 바람에 심지어 서로 충돌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연합사령부를 만들고 작전지휘권을 중국이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일성은 작전지휘권을 중국에 넘기는 것은 북한의 주권 포기를 의미했지만,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연합사령부 창설에 동의했다. 이때 김일성은 마오 전 주석에게 “중국 인민의 우수한 자녀를 파병해준 데 감사한다”면서 “조선 인민은 대대손손 중국 인민들의 깊은 호의를 마음속에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오 전 주석도 “우리들 한집안은 두 집안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면서 “우리들 양당, 두 국가 인민들은 서로 지지하고 서로 원조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중국은 6·25전쟁을 이끌었고 세계 최강인 미군에 맞서 혈투를 벌였다. 결국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김일성은 정권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가 구사일생하게 됐다.
   
   
   중국이 상호방위조약 체결한 유일한 나라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의 전후 복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철도는 물론 교량 1300여개를 새로 만들거나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했다. 평양, 함흥, 원산 등에 대규모 공병대를 투입해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새롭게 건설했다. 중국은 1958년 군 병력을 모두 철수시킬 때까지 북한 재건에 상당한 물자와 인력을 투입했다. 김일성은 1959년 9월 말 중국 건국 10주년을 맞아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조·중 양국 인민은 친근한 형제”라며 “양국 인민의 운명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보냈다. 김일성은 기고문에서 6·25전쟁과 전후 복구 시기의 중국 지원을 상세히 나열하고 사의를 표했다. 이런 밀월관계는 1961년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의 체결로 이어졌다. 중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나라는 지금까지 북한밖에 없다. 이 조약 제2조는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처할 경우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기술함으로써 자동 군사개입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제7조에는 “쌍방이 해당 조약을 수정 또는 폐기할 것에 합의하지 않는 한 계속 유효하다”고 명기돼 있다. 이후 양측 관계는 북한의 소련과의 등거리 전략, 소련의 붕괴, 한국과 중국의 수교 등으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사망할 때까지 공고했다. 생전에 40여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던 김일성은 말 그대로 중국의 노선을 충실하게 추종했다.
   
   북한 정권과 김정은은 6·25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중국의 지원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그동안 부친 김정일처럼 중국을 상당히 불신해왔다. 김정일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 사람들의(중국인들의) 경제 전략이 영토나 제도나 경제 분야에서는 동북 3성이 아니라 조선을 염두에 두고 동북 4성으로 생각한다”고 경계심을 보인 적이 있다.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거부하고 핵 개발에 나섰다. 김정일은 2006년 중국의 반대에도 첫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북·중 관계는 소원해졌다. 특히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찬성하는 등 북한의 핵실험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2009년 핵실험을 또다시 실시하면서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김정일은 2000년 5월 이래 모두 8차례 방중했다. 김정일과 중국 최고지도자들과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대(代)를 이은 친선을 강조했지만 형제적 관계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김정은도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중국과 거리를 두었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북·중 관계는 최악이었다. 북한 정권은 이 기간 중 4차례 핵실험을 실시했고, 각종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게다가 김정은은 친중파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고, 중국이 비호해온 이복형인 김정남도 화학무기로 독살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지난해부터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면서 입장을 바꾸었다. 물론 김정은의 전략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이 중국에 밀착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과 북한 정권의 생존을 중국으로부터 보장받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3대 세습에 비판적이었던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공산당 지도부도 북한의 핵보유보다는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는 것이 국익에 더욱 이롭지 않다고 생각해 김정은 체제를 보장하기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경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야 한다는 점을 가장 우려해왔다. 마오 전 주석이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할 경우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완충지대를 잃을 것을 막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올해 1월 7~10일 김정은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비롯해 지난해 1차(3월 25~28일), 2차(5월 7~8일), 3차(6월 19~20일) 등 모두 4차례 만남을 통해 북·중 혈맹 관계를 완전히 복원시켰다. 시 주석은 1월 8일 인민대회당에서 35번째 생일을 맞은 김 위원장을 위해 성대한 생일잔치 겸 만찬을 4시간이나 가졌다. 시 주석은 1월 9일에도 중국 최초의 현대식 호텔이자 마오 전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김일성과 자주 방문했던 베이징반점에서 김정은과 오찬을 함께했다. 올해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시 주석은 새해 들어 중국을 방문한 첫 외국 정상인 김정은을 극진하게 예우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견 조율이라는 목적 이외에도 앞으로 북·중 간의 관계가 더욱 밀착될 것이라는 점을 증명한 행보이다. 시 주석은 “올해는 북·중 수교 70주년으로 북·중 관계의 앞날을 개척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김 위원장과 북·중 관계의 향후 발전을 함께 잘 이끌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1월 7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이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시 주석의 말을 받아적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photo CCTV

   “비핵화 과정 공동 연구ㆍ조종해나가겠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처럼 “양측이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국제 및 지역 문제 특히 조선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중국이 앞으로 북한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중국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조선 동지들의 믿음직한 후방이며 견결한 동지, 벗으로서 쌍방의 근본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정세안정을 위해 적극적이며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이런 발언은 중국이 6·25전쟁 정전협정 서명의 당사자이자 북한의 후견인으로서 한반도 문제에 확실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의도는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2차 미·북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시 주석과 중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2017년 2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의도에 대해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중국과 동아시아의 역사에 조예가 깊은 매티스 전 장관은 “현재의 중국이 명나라 왕조 당시 조공·책봉 체제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역대 왕조는 주변국들과 조공·책봉(朝貢·冊封) 관계를 맺어왔다.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역대 왕조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던 조선, 류큐,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을 지방정권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식민지처럼 기술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인은 항상 ‘중화(中華)민족주의’를 자랑스럽게 내세워왔다. 중화민족주의는 화이(華夷)사상에서 비롯했다. 중원 대륙의 왕조만 문명국이고 주변국들은 미개한 ‘이적(夷狄)의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제1차 아편전쟁(1840~1842)에서 서구열강에 패배하기 전까지 동아시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자 제국이었다.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이 된 중국은 매티스 전 장관의 지적처럼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21세기판 조공·책봉 체제’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미 홍콩·마카오 등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던 자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독립을 선언했던 동투르키스탄(신장위구르 지역이 있는 곳)과 티베트를 자국의 영토에 강제병합시켰다. 중국은 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파키스탄·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몽골 등을 자국에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파키스탄의 경우 중국은 매년 상당한 군사 및 경제 지원을 해주는 등 전천후 동맹관계를 맺었다. 미얀마도 군사정권 통치 시절부터 중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주변 60여개국과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이런 전략을 ‘중국몽(中國夢)’이라고 포장해왔다. 중국몽은 21세기 중화제국의 부활을 의미한다.
   
▲ 북한 경제대표단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있다. photo CCTV

   북한 경제는 이미 중국에 종속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과의 교역에서 90%를 점유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에 따라 중국과 북한과의 교역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북한 경제는 중국과의 교역이 없으면 파탄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북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내친김에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을 자국의 경제권으로 흡수하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CNBC가 김정은의 방중에서 시 주석이 북한의 일대일로 참여를 허용할 것을 약속했다고 보도(1월 11일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리둔추 취푸대학 교수는 “향후 북한의 경제 개발 기회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신(新)동북진흥계획과 이어진다면 중·북 관계는 생기를 띠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컨트롤리스크(Control Risk)의 데인 차모로 아·태지역 파트너는 “북한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면서 “북한은 인프라 건설을 위해 대규모 외국 투자가 필요하지만 북한에 투자할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의 의도는 김정은에 일대일로라는 ‘선물’을 주고 북한 경제를 자국에 완전히 종속시키고 낙후된 동북 3성 발전에 성장동력을 제공하는 등 ‘1석2조’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시 주석으로선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눈엣가시인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등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아무튼 중국에 북한은 6·25전쟁 때처럼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전략적 자산임이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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