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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3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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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원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손 의원 활동은 내셔널트러스트 아닌 패밀리트러스트”

조현주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목포가 뜨겁다. 지난 1월 15일 SBS가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전남 목포 문화재거리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하면서부터다. SBS는 손 의원이 자신과 관련한 재단과 친척, 지인 명의로 2017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전남 목포의 근대역사문화공간에 있는 건물 9채를 집중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보도를 통해 목포에 있는 손 의원과 관련된 건물 수는 10채, 14채, 22채, 29채로 불어났다.
   
   손혜원 의원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며 억울함을 토해내고 있다. 손 의원은 1월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목포지역 건물 매입의 배경에 대해 “국회의원 전부터 천착한 부분이 지방 문화와 정체성에 기반한 도시재생이었다. 국가가 나설 수 없다면 스스로 돕는 자가 돕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손 의원의 남편이 이사장으로 있는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이 매입한 목포의 건물과 토지에는 나전칠기박물관을 건립해 이를 기증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을 두고 진위를 가리기 위한 공방은 여전히 치열하다. 손 의원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목포 원도심의 낡은 건물들을 매입해 이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한 것은 지역의 역사유산을 지키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국민신탁운동)’ 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손 의원 역시 지난 1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을 통해 “(목포의 나전칠기박물관 공사비는) 최소한 20억원을 잡고 있다”며 “(국회의원) 임기 마치고 내려가 남은 재산 다 털어 공사하다가 돈이 모자라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통해 국민 소속 박물관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손 의원 스스로도 자신의 활동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고 밝힌 것이다.
   
   손 의원의 투기 의혹 사태를 실제 내셔널트러스트 활동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주간조선은 1월 22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원(76)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1990년대부터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동강 살리기 프로젝트 등에 적극 참가했고, 이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김원 대표는 “손 의원의 활동을 투기로 보지 않는다”면서도 “그렇다고 그의 활동을 내셔널트러스트로 볼 순 없다. 엄밀히 말해 손 의원의 활동은 ‘내셔널트러스트’가 아닌 ‘패밀리트러스트’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유산 보전이라는 의도가 결실을 맺으려면 절대 사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내셔널트러스트는 어떤 활동인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 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전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해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운동을 뜻한다. 영국은 역사가 오래돼 회원수가 400만명이 넘어섰는데 한국은 회원수가 1500여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활동은 똑같다. 한국에서도 이 운동은 말 그대로 내셔널트러스트, 즉 국민신탁을 통해 이뤄진다.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서 국민신탁을 통해 힘을 모아 개발업자에게 맞서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1990년대 초 전국 각 지역을 중심으로 특정 자연환경과 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시민 성금모금 형태로 이뤄졌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그린벨트 해제 반대운동’을 계기로 200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출범했다. 출범 이후 시민유산 확보를 위한 활동과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내셔널트러스트법’ 제정 활동이 펼쳐졌다.
   
   -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언제부터 시작했나. “20년 가까이 됐다. 초창기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동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벌인 것이다. 당시 정부의 국책사업을 민간단체에서 반대하는 것이 익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히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동강 캠페인을 보고 ‘(이 활동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을 했다. 이후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사업타당성 조사에 나섰다. 조사단 활동을 하면서도 엄청나게 싸웠다. 결국 대한민국의 국책사업을 민간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환경부, 산림청 등에서 다시 나서 동강 주변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모금운동을 통해 동강에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시작했고 그 결과 동강 지역 약 5만평(16만5000㎡)과 집 한 채를 확보했다. 일종의 ‘알박기’를 해놓은 것이다.”
   
   - 손혜원 의원이 목포 지역에 건물과 땅을 사들인 것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의할 수 없다. 광범위하게 해석해서 새로운 형태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라고 한다면 견강부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손 의원의 경우는) 공익과 개인의 이익의 경계가 모호하다. 물론 손 의원 방식은 (내셔널트러스트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업자의 무분별한 문화유산 파괴를 막기 위한 활동이라면 취지는 같다. 땅이나 건물을 사는 등 방법론 역시 유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손 의원의 활동은 내셔널트러스트가 아니고 ‘패밀리트러스트’라는 것이다. 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에서 내셔널이란 게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그 점에서 손 의원의 모습은 내셔널트러스트와는 정말 다르다.”
   
   - ‘내셔널이 중요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내셔널이라는 표현 안에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란 뜻이 내포돼 있다고 보면 된다. 문화유산, 자연유산이란 게 누군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면 보전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신탁을 받아서 이해관계를 계산하지 않고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 지키기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손 의원의 활동을 투기라고 보지 않는다. 그의 노력과 취지는 대단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활동을 내셔널트러스트라고 볼 수 없다. 가족과 측근 등을 동원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부정해도 이해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만약 그가 정말 목포를 지키고자 하는 의도와 그 의도에 맞는 결과를 얻고자 했더라면 차라리 이미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공익단체에 자기 재산을 기부해서 그 재산으로 목포 지역 살리기에 나서달라고 요청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 손 의원이 왜 혼자 목포 지역 살리기에 나섰다고 보나. “(문화재거리로 지정된) 목포의 원도심 거리는 역사문화유산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지켜내려는 그의 의도는 순수하다. 목포 지역에 대한 애착이나 나전칠기박물관을 세우겠다는 취지 모두 대단하다고 본다. 그런데 손 의원이 너무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 문제가 된 것 같다. 자신의 힘만으로도 어느 정도 추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남편, 친척, 보좌관, 지인 등 자신과 엮여 있는 사람들과 이 일을 도모하다 보면 과연 취지에 맞는 효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나. “특정단체나 개인이 주도해서 보존활동에 나서다 보면 순수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효과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목포는 산업문화유산 보존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까지 얽혀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누구 하나의 주장이나 견해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특정인이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알박기’를 해서 자리를 잡고 있으면 재생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겠나.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특정인, 특정집단이 주도권을 쥐어선 안 된다. 그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다.”
   
   - 손 의원과 같이 특정 개인이 건물이나 땅을 대거 사들여서 보존에 나서는 경우를 본 적 있나.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다. 그만큼 시급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 등이) 개인의 소유가 될 경우에는 어찌됐든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 이상 시인의 집이 있다. 원래는 이상 시인의 큰아버지 집인데 이곳에 양자로 들어가 살았다. 27살에 요절한 그가 24살까지 살았던 곳인데 어느 날 사람들이 그곳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지으려고 했다. 건축가 선배이기도 한 이상의 자취가 남은 곳이 사라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곳을 지키려면 3억원가량의 돈이 필요했다. 문인협회, 시인협회에 도움을 청해봤지만 그런 큰돈을 지원받기가 어려웠다. 당시 고건 서울시장에게 찾아가 부탁을 했는데 취지는 인정해줬지만 지원금을 받는 것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 전남 목포시 대의동 목포문화재거리에 위치한 옛 동아약국 건물. 손혜원 의원 보좌관의 남편이 산 건물로, 5·18 성지로 불리고 있다. photo 김영근 조선일보 기자

   - 결국 어떻게 되었나. “내가 김수근문화재단(건축가 고 김수근 기념사업 및 한국문화예술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1988년 12월 23일 설립된 재단법인)의 이사장으로 일하던 때여서 이사들을 소집해 재단 기금을 쓰자고 제안했다. 이상 시인 역시 건축가이기도 하고 재단 활동의 취지에도 맞다고 설득했다. 가까스로 이상의 집을 보존할 수 있었다. 다행히 곧바로 문화재청이 국민문화유산으로 이상의 집을 사들였고 재단 기금을 사용한 문제도 해결됐다. 사실 누군가 내 활동을 재단 기금 전용이라고 고발했다면 얼마든지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의 집은 헐리고 말았을 것이다. 가치있는 역사유산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지만 그만큼 공익·사익의 경계도 모호하고 절차도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손 의원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문화재거리 투기 의혹으로 이제야 목포가 부각되고 있지만 수많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사라져가는 목포의 옛 풍경을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 대표는 목포의 서산·온금지구 재개발 사업지구 내에 위치한 ‘옛 조선내화 공장부지’ 역시 논란이 된 목포 문화재거리와 함께 꼭 지켜야 하는 한국의 역사공간 중 하나라고 밝혔다.
   
▲ 무소속 손혜원 의원 친척·지인들이 구입한 건물이 밀집해 있는 목포시 대의동 일대 문화재거리 전경. photo 김영근 조선일보 기자

   - 손 의원의 활동을 계기로 목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목포는 어떤 지역인가. “목포는 지난해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역시 주목한 지역 중 하나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만은 꼭 지키자’라는 운동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하고 문화재청과 환경부가 후원을 하는데 시민들의 제안을 받아 꼭 지켜내야 하는 지역이나 유산 등을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목포의 조선내화 공장(내화란 불에 견디는 벽돌이나 용광로 등을 뜻한다)이 선정됐다. 또 목포의 문화재거리는 말할 것도 없다. 근대산업유산이 거리 전체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곳은 정말 찾기 어렵다.”
   
   - 목포와 같이 역사성을 지닌 도시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듯하다. 목포뿐만 아니라 또 주목하고 있는 곳이 있나. “군산, 그리고 강경이다. 목포, 군산, 강경은 모두 일제강점기 때 수탈자본이 빠져나가는 길목으로 비슷한 성격을 지닌 곳이다. 세 도시 모두 옛 금융조합 건물이라든지 창고, 공장 등 근대문화유산들이 아주 많다. 특히 충남 강경에 대한 보호, 보존 활동이 시급해 보인다. 일본과 가까운 길목에 있는 곳은 목포는 유산이 거리 전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강경은 유산들이 점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존 가치가 높은 건물들이 많은데 흩어져 있기 때문에 더 빨리 사라질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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