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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3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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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북한은 敵’ 삭제한 새 국방백서의 위험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 지난해 11월 15일 ‘9·19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라 강원도 철원지역 중부전선 GP(감시초소)가 철거되고 있다. 폭파되는 GP 왼쪽 뒤편으로 철거 중인 북측 GP와 북한군이 보인다. photo 뉴시스
강원도 화천에는 비목(碑木)공원이라는 곳이 있다. 비목이란 돌 대신 나무로 세운 비석을 말한다. 이 공원은 ‘비목’이라는 가곡 때문에 조성됐다. 1964년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DMZ)에서 한명희라는 육군 소위가 GP(감시초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순찰 도중 무명용사의 돌무덤과 돌무덤 십자 모양의 비목에 올려진 녹슨 철모를 발견했다. 한명희는 돌무덤의 주인이 6·25전쟁 당시 자기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비목’이라는 노랫말을 지었다. 이후 작곡가 장일남이 곡을 붙여 1970년대 중반부터 가곡으로 널리 불리게 됐다. 1995년 위령탑과 몇 개의 비목이 세워진 비목공원은 규모가 작은 데다, 요즘에는 방문객도 별로 없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화천은 6·25전쟁의 대표적 격전지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군으로 참전해 북한 인민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에 맞서싸우다 산화한 곳이다.
   
   현재 화천 일대는 육군 제7사단(사단장 박원호 소장)이 관할하고 있다. 제7사단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지난해 11월 DMZ 내 059 GP를 시범 철거했다. 059 GP는 북한 인민군 GP로부터 900m 떨어진 곳이다. 제7사단은 지난해 12월 GP를 철거할 당시 나온 철조망 잔해 일부를 기념품으로 만들어 부대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7명 등 9명에게 선물했다. 기념품은 한반도 지도 중앙에 7㎝ 크기의 폐철조망을 담은 액자였다. 마치 동·서독 통일 때 베를린장벽에서 떼어낸 콘크리트 벽돌 조각이 이른바 ‘평화상품’으로 판매되는 것을 모방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7사단이 국방부가 GP 파괴 직후 잔해물을 보존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기념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육군은 뒤늦게 공식 사과했다. 더욱 큰 문제는 북한의 도발을 막아야 할 최전방 지휘관이 설익은 평화무드에 도취돼 본분을 망각했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 위협은 변한 것이 전혀 없는데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군 지휘부가 벌써부터 ‘가짜 평화’에 넋이 빠진 것이다. 고작 GP 몇 개를 시범적으로 철거한 것을 평화가 도래했다고 생각했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이런 행태는 6·25전쟁 당시 군 지휘부가 밤새 파티를 벌이고 술에 취해 있던 틈을 타 북한 인민군의 기습 남침으로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뼈아픈 교훈조차 잊어버린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가는 남북관계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지만 남북관계만 앞서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군사 분야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자칫하면 안보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는 1월 15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간한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적(敵)’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유지돼온 ‘북한은 적’ 개념이 8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새 백서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기술했다.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모든 위협과 침해 세력을 적이라고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새 백서는 북한의 상시적 군사 위협과 도발, 특히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사이버공격, 테러 위협이 지속되는 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했던 2016년 국방백서와는 완전히 다르다.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은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로 달라진 남북관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방부의 언급처럼 북한 정권이 말 그대로 ‘개과천선(改過遷善)’해서 한국에 대한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했을까. 북한 정권이 헌법보다 중시하는 노동당 규약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해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 이런 내용은 한국을 적화통일하겠다는 의미이다. 북한 정권은 적화통일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도 국방부가 ‘북한은 적’이라는 조항을 삭제한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안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상호주의’다. 북한 정권의 변화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한국만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은 상대의 오판만 초래할 뿐이다. 북한 정권이 핵과 미사일은 물론 생화학무기 등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호한 적 개념으로 안보의식이 없어진다면 국방부의 새 국방백서 제정은 북한 정권을 돕는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특히 새 국방백서는 군사전략의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모든 국가는 국력과 군사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특정 국가는 국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위협의 순위를 정해 군사전략을 짜야 한다. 그런데 ‘모든 세력이 적’이라는 것은 국력과 군사력의 한계를 무시한 비현실적인 논리다. 모든 세력을 적이라고 상정한다면 어떻게 이를 대비한 군사전략을 수립해 군사작전계획을 마련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할 수 있을까. 북한의 대규모 군사력과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는 엄연한 최대의 위협이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한국을 직접 위협하는 유일한 세력이다. 이런데도 북한 정권이 아닌 모든 세력을 적이라고 규정한다는 것은 적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려는 꼼수라고 볼 수밖에 없다.
   
▲ 북한군이 각종 대포와 장사정포 등을 동원해 화력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photo 조선중앙TV

▲ 강원 화천군 비목공원에 있는 녹슨 철모를 얹은 비목 무덤. photo 화천군

   북한은 올해도 대대적 동계훈련
   
   미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지나친 대북 유화정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새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의 선택 사항”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로건 국방부 대변인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한국 정부에 대한 논평은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국방부의 이런 반응은 새 국방백서의 내용이 마뜩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2만8000여명의 군 병력을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제1의 목표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도발을 막기 위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선 한국 정부가 북한 정권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이 무엇 때문에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서 “북한의 위협은 능력이 아닌 의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베넷 연구원은 “한국군이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적으로 지칭한 표현을 삭제하면 북한도 한국과 미국을 적으로 표현한 걸 삭제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한국에 대한 위협을 줄이고 있다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나 한국에 대한 재래식 무기 위협이 감소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비무장지대 GP 철수 등 군사력 완화 조치를 먼저 취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은 최근 들어 인민군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화하는 등 전시준비태세를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군 총사령부는 예하 부대에 보낸 지시문에서 “북남수뇌회담과 조미수뇌회담으로 군인들이 평화적 분위기에 현혹되지 않도록 정치 사상교육을 더욱 강화하라”면서 “평화회담을 하건 말건 여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인민 군대는 싸움 준비를 완성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군은 올해도 예외 없이 대규모 동계훈련을 벌이고 있다. 북한군은 매년 12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 넉 달간 동계훈련을 실시해왔다. 동계훈련에는 정규군인 인민군 외에 내무군(한국의 전투경찰에 해당), 교도대(예비군), 노농적위군(민방위), 붉은청년근위대(소년단) 등이 참가했다. 북한 주민들은 등화관제와 대피훈련까지 실시했다.
   
   북한 정권은 또 핵과 미사일도 대량 생산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서 등을 인용해 보도(1월 14일자)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수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추가로 제조하고, 6개의 핵무기를 만들 핵물질을 확보해 핵폭탄의 총규모가 20개 이상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멀리사 해넘 전 미들버리국제핵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둔화하거나 멈췄다는 징후는 없고, 오히려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보기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영변의 핵 단지와 또 다른 시설 등 2곳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보고서는 지난해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ICBM을 처음으로 생산했던 미사일 기지를 계속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새로운 미사일 엔진 공장을 확장했고, 지하에 있는 장거리 미사일 기지를 증설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랜드연구소도 보고서(1월 15일자)에서 북한이 현재 핵탄두 15~60개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산하면서 2020년에는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까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랜드연구소는 또 북한이 현재 한국과 일본, 중국 동부권을 사정권으로 두는 단·중거리 탄도미사일 650여개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면 괌, 하와이, 알래스카, 미국 서북부 지역이 위협에 노출된다고 분석했다.
   
   
   북한 비위 맞추기
   
   그런데도 국방부의 새 국방백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도입한 ‘킬체인(Kill Chain)’과 ‘대량응징보복(KMPR)’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대신 ‘전략적 타격체계’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표현과 용어를 없앤 것은 국방부의 ‘북한 비위 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새 국방백서는 플루토늄을 50여㎏, 고농축우라늄을 상당량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는 등 북한의 핵능력을 최소치(?)로 평가했다. 미국 정부와 연구기관의 평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미 핵무기의 연구개발에서 대량생산체제로 바꾼 만큼 김정은의 이런 주장은 허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국방백서는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북한이 보유한 장사정포의 위협이다. 랜드연구소는 장사정포가 북한에 더 큰 지렛대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남쪽을 향해 대대적으로 배치한 장사정포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선제타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방부는 북한이 현재 1만4000문의 각종 포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시간당 50만발을 수시간 동안 발사할 역량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랜드연구소는 공중과 지상 화력으로는 이런 위협을 무력화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서울을 향한 발포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선 한·미 양국이 공군력과 지상군을 동원해 역공 작전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9·19 남북군사합의에는 북한의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철수하는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버나드 샴포 전 미8군 사령관은 “북한의 장사정포는 인구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배치하는 등의 내용이 남북군사합의서에 담기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월 14일 충남 계룡대 대강당에서 육·해·공군 중령 이상 간부 700여명을 대상으로 ‘2019년 국방정책설명회’를 갖고 9·19 남북군사합의의 적극적 이행을 통한 남북 군사적 신뢰 구축을 강조했다. 정 장관은 지난 1월 1일 KBS 신년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정은의 서울 답방 때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한 사과 문제와 관련해 “과거의 그런 부분에 대해 분명히 생각하고 있지만, 앞으로 잘될 수 있게 한다는 차원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 일부 이해를 하면서,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의 발언에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국방부는 “장관이 언급한 내용의 핵심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이해’하고 있으며, 국민들께 이해를 당부 드린다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강조하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의 해명대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정 장관이 ‘이해’했다면, 정 장관은 북한에 단호히 사과를 요구해야지 이해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정 장관은 공사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된 후 각종 전투기를 조종한 ‘빨간 마후라’이자 공군 대장 출신이다.
   
   6·25전쟁 당시 정 장관처럼 소위 계급장을 단 초급 장교들 가운데 3분의 1이 희생됐다. 정 장관을 비롯해 국군 장성과 장교들은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읽고 초심으로 돌아가 엄혹한 안보 상황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조국이여! 동포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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