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지만 또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얘기다. 매일 최장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미 한 달이 넘었다. 많은 연방 공무원들이 직장에 가지 않는 탓인지 워싱턴 시내가 한가하게 느껴진다.

평소 출퇴근 시간에 우버를 부르면 평균 3~5분이 걸렸다. 요즘은 1~2분이면 재깍 나타난다. 사람들의 이동이 줄어든 것인지, 강제 휴무 중인 공무원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우버 운전에 대거 뛰어든 것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워싱턴이 어쩐지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예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산 요구에 민주당은 강력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 셧다운이 언제 끝날지는 예측불가다. 요즘 워싱턴에선 연방 공무원들이 트럼프의 ‘인질’이 됐다고 한다. 보수를 받지 못한 공무원들이 전당포를 찾고 있고, 거리에 연방 공무원들을 위한 급식소도 등장했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지렛대라도 동원할 태세지만,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무원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2년 동안 수없이 봤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를 겁주고 몰아세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예측불허 카드에, ‘못할 일이 없다’는 막무가내 카드까지 휘두르면 압박감은 증폭된다. 그 누구도 아닌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상대로 이런 카드를 쓴다면 어떤 나라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된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토(NATO)의 방위비 증액,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이 전형적인 사례였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비슷한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거친 수사로 위협하며 밀어붙이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의 전직 참모가 엉망진창인 백악관 실상을 폭로하는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이런 책이 한 달에 두세 권은 나오니까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데, 그래도 깨알 같은 에피소드를 늘려나가는 재미는 있다.

백악관 메시지 전략 담당관이었던 클리프 심스는 그의 책 ‘독사들의 팀’에서 트럼프의 인생은 모든 것이 협상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소개한 내용을 보면, 트럼프에게 협상은 ‘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윈-윈’이 아니라 누군가 이기면 다른 쪽에선 패할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란 것이다.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불시에 일격을 날리고 당황한 상대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면 그때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방식이 늘 효과적으로 통하지는 않는다. 국가 간의 문제나 정치 이슈들은 트럼프가 자신있어 하는 사업과는 다르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협상 과정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연방 공무원의 생활,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연방정부의 기능일 텐데, 트럼프는 그 일부를 볼모로 잡고 협상의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모든 관심은 오로지 승리하는 데 맞춰져 있다. 트럼프에겐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이 아니라 ‘승부의 기술’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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