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 대표를 뽑는 2·27 전당대회가 2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들 간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책임당원의 50%가 포진한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당심 잡기 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2월 27~28일로 결정되면서 전당대회 일정 자체가 연기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예기치 못한 거대 변수가 나타나 전당대회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서 3강(强)으로 분류되는 원외(院外) 후보 3명은 설 연휴 기간 바쁘게 움직였다. 황교안 전 총리는 서울을 중심으로 노인과 아동 복지시설을 방문하는 민생 행보를 이어간 뒤, 2월 6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황 전 총리는 “그간 쌓아온 경험,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새로운 정치, 좋은 정치, 멋진 정치를 해보려고 한다”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혐의 판결에 대한 여권의 비판에 대해선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면서 “제대로 된 사법처리들이 이루어져야 하고 결국은 대통령께서 입장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병역면제 관련한 일각의 문제 제기에 대해선 “새로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며 “의혹받을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황교안 전 총리를 견제하는 발언을 이어가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했다. 홍 전 대표는 2월 5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증 없는 인재영입은 당의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며 “우리끼리는 양해가 될지 모르나 국민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병역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면 모처럼 맞은 대여 투쟁의 시점에 수렁에 빠져 수비에만 급급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황 전 총리의 병역면제를 문제 삼은 발언이었다. 앞선 2월 3일에는 페이스북에서 “다시 여의도로 돌아가면 불법 대선 사과와 이명박·박근혜 두 분 전직 대통령의 석방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대국민 저항운동을 전개하겠다”며 “태극기 세력의 장외투쟁을 이제 우리 당이 앞장서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월 7일 공식 출마선언을 하면서 황 전 총리와 홍 전 대표를 모두 강하게 비판했다. 황 전 총리에 대해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는 분”이라며 “우리 당이 자칫 잘못하면 문재인 정부 실정을 공격하면서 내년 총선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기업으로 치자면 ‘CEO 리스크’ 때문에 방향을 잃고 혼돈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홍 전 대표에 대해선 “당 대표 직후 비대위를 등장시킨 전 대표”라며 “똑같은 현상이 내년 총선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그분의 행태가 바뀐 것도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사면론에 대해선 “전당대회 국면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며칠 전 홍 전 대표 입장과 선을 그은 것이다. 나아가 오 전 시장은 “이제 우리는 ‘정치인 박근혜’를 넘어서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고도 했다.

단일화 가능성은 낮아

황 전 총리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지지세가 공고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후보들의 공격에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홍 전 대표는 황 전 총리만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자신이 황 전 총리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서 ‘2강’ 구도를 만들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 전 시장은 황 전 총리와 홍 전 대표 모두 선거 승리를 결정짓는 중도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며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 후보 모두 지역적으로는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다만 황 전 총리나 오 전 시장이 민생 현장을 찾아가는 행보에 집중하는 반면, 홍 전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홍카콜라TV’ 등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한 ‘공중전’에 더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일화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홍 전 대표는 2월 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홍준표와 오세훈, 이 두 사람 모두 전당대회에 나가서는 ‘탄핵 총리’를 막기 어렵다”고 했다. 누군가 양보해서 단일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은 “홍 전 대표의 단일화 발언은 침소봉대”라며 “단일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황 전 총리의 우세가 계속된다면 홍 전 대표와 오 전 시장 간 단일화 논의가 극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지만 두 사람 간 관계를 보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게다가 승패를 떠나 이번 전당대회를 완주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보수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로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2월 27~28일로 확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차츰 지지율이 오르며 국민들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북 정상회담 일정이 뒤늦게 한국당 전당대회 시점과 겹치는 날짜로 확정되면서 컨벤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당 선거관리위원장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2월 6일 “국민적 관심사이자 한국당의 전환점이 될 전당대회가 미·북 정상회담에 묻혀버리면 안 된다”며 “당 사무처에 날짜 변경을 실무적으로 논의해보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작년 6·13 지방선거 하루 전에 싱가포르에서 미·북 회담이 개최된 것과 똑같은 모습인데 이번에도 한국당 전대의 효과를 없애려는 저들의 술책”이라며 “한 달 이상 전대를 연기하자”고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당의 중요 행사가 외부적 요인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전당대회 날짜를 보름 이상 미뤄야 한다”고 했다. 황 전 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당에서 방향을 정하면 그 방향과 같이 가면 되는 것”이라며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경원 원내대표는 “전당대회는 미·북 정상회담과 관계없이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후보들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황 전 총리를 제외하면 전당대회 연기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정을 연기할 경우, 2월 27일을 종료 시점으로 잡아놓은 전당대회 사전 일정들이 모두 엉클어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전당대회 장소를 변경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모처럼 당이 눈길을 끌고 있는데 하필이면 전당대회 날짜가 2차 미·북 정상회담 일정과 겹쳐서 고민이 크다”며 “상식적으로는 날짜를 바꿔서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맞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TV토론 확대되나

전당대회 룰 관련해선, 당 선관위가 정한 TV토론 횟수가 너무 적다는 불만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심재철·정우택·주호영·안상수 의원은 2월 6일 전당대회 경선룰이 불공정하다며 ‘룰미팅’을 요구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서를 내고 “토론회 한 번 없이 컷오프하겠다는 것인데 후보자의 일방적인 연설만 듣고 결정하라는 것인가”라고 했다. 당 선관위는 전국을 4개 권역별로 구분해 대전(14일), 대구(18일), 부산(21일), 경기(22일)에서 4차례의 합동연설회를 진행한다. 컷오프 날짜는 2월 19일이다. 홍 전 대표와 오 전 시장도 TV토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TV토론을 확대하지 않으면 전당대회를 보이콧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대세론’을 전략으로 선거에 임하고 있는 황 전 총리에 대한 견제로 해석된다. 그러나 황 전 총리 측은 “TV토론이 늘어나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다른 후보들보다 더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선관위가 후보들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TV토론이 어느 정도는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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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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