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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7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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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육군 최정예 20기계화보병사단 역사 속으로

해체 이유 둘러싸고 해석 분분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 경기 여주시 소재 양촌리 훈련장에서 육군 20기계화보병사단 전투장비 기동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육군의 최정예 부대인 제20기계화보병사단(20기보사)이 올해 연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3년 2월 창설된 지 66년, 1981년 8월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된 지 38년 만에 해체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국민들에게는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라는 명칭보다 ‘양기사’로 더 낯익다. 부대 위치가 경기도 양평에 위치했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2010년대 들어 출산율 저하로 인구절벽 시대가 도래하자 우리 군은 육군 병력을 대거 감축해야만 했고 이에 따라 기계화 전력도 대규모 개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구조 개편에 따라 20기보사는 동부전선의 11기계화보병사단(11기보사)과 통폐합이 결정돼 오는 11월 말 부대가 해체된다. 20기보사는 소속 3개 여단 가운데 예하 60여단이 새로 편성된 제8기계화보병사단(8기보사)에 이미 배속된 상태로, 나머지 2개 여단만 11기보사로 통합된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에 따라 우리 군을 병력 중심 구조에서 첨단·정예화한 구조로 개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군단과 사단의 대폭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 1일 기존의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통합한 육군 지상작전사령부를 창설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기계화군단으로 손꼽히는 제7기동군단의 핵심 전력인 20기보사를 해체하는 것은 ‘국방개혁 2.0’의 취지와도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11·20기보사 중 어느 쪽 해체하나 논란
   
   20기보사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기보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2월 한국군 2차 증강계획에 따라 강원도 양양에서 1교육여단을 모태로 창설됐다. 1964년 이래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최전방 경계 임무를 수행해오던 중 1977년 10월 20일 예하 60연대 소속 유모 1대대장이 무전병을 대동해 월북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1978년 사단 전체가 5사단과 임무 교대해 후방인 양평의 5사단 주둔지로 자리를 옮겼다.
   
   20기보사는 1980년 5월 17일 5·17비상계엄확대조치에 따라 하나회 주력멤버였던 박준병 사단장의 지휘 아래 예하 60·61·62연대와 사단 전차대대, 91포병대대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한 ‘충정작전’에 동원됐다. 이후 1981년 8월 차량화 보병사단이 됐고, 1983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기사)에 이은 육군의 두 번째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면서 제7기동군단에 배속됐다.
   
   20기보사는 육군의 최신 장비가 가장 먼저 배치되는 부대로 알려졌다. 사단은 2001년 12월 K1A1 전차를 육군 최초로 수령했고, 2009년 11월에는 육군 최초로 K21 보병전투장갑차를, 2014년 7월에는 육군 최초로 K2 흑표 전차를 받아 ‘신장비 최초 배치 부대’의 전통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사단은 같은 7군단 예하의 수기사와 함께 각종 대형 훈련 및 시범에 우선적으로 참가하는 등 우리 군을 대표하는 기계화부대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위상을 이유로 전문가들은 20기보사를 11기보사에 흡수·통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을 한다. 아무리 11기보사가 20기보사보다 단대호(단위부대 번호)가 빨라도 20기보사가 국내 두 번째 기계화보병사단이라는 역사성, 그리고 가장 먼저 최신 장비를 받아온 최정예 사단이란 점에서 오히려 20기보사가 11기보사를 흡수·통합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다. 이번 개편으로 주둔지도 경기도 양평에서 11기보사가 있는 강원도 홍천으로 옮겨가는 형식이었지만, 홍천에 가서도 ‘20사단’이라는 명칭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에 대해 홍천을 포함한 강원도 지역 주민들은 반발했다. 11사단이 1953년에 창설한 20기보사보다 3년 앞선 부대이고 6·25전쟁 기간 동안 동부전선 전투에서 적 3개 사단을 궤멸시키는 전과를 올리며 대한민국 정통성을 수호한 부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11사단 명칭이 존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20기보사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양평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20기보사가 떠나고 난 후 부대가 있던 부지에는 아파트가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양평 주민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때문인지 20기보사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1사단 명칭 존속’이 우세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20기보사 사단장을 지낸 박정이 전 1군사령관(예비역 육군대장)은 “20기보사는 지금껏 최첨단 전력이 가장 먼저 들어간 사단으로, 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정예화한 최첨단 기계화사단”이라면서 “강원도 홍천의 11기보사를 해체하는 대신, 7기동군단의 핵심인 20기보사를 해체하려는 것이 작전적 고려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 장군은 “작년 11월 초까지만 해도 사령부 막사가 현대화가 되지 않은 20기보사 사령부를 현대화된 11사단 사령부로 이전하고 11기보사단은 해체하는 것으로 거의 확정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작년 11월 말 20기보사 해체가 결정됐다”며 “전략적인 판단으로 사단 해체를 결정해야 함에도 11사단을 유지하자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으로 사단 해체를 결정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광주 진압부대’ 괘씸죄?
   
   문재인 정부의 20기보사 해체 결정이 경솔하다는 것은 제7기동군단의 역할을 보면 더욱 극명해진다. 7기동군단은 1962년 창설 당시부터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군단으로 평가받았다. 육군의 수도군단, 1군단, 2군단, 3군단, 5군단, 6군단, 8군단 등 보병사단 위주로 짜인 군단들과 달리 7기동군단은 기계화보병사단이 주축이다.
   
   1972년 창설된 수기사를 필두로 1981년 20사단이 20기보사로 개편되면서 7기동군단이 창설됐다. 작년 부대 구조개편을 위해 기존 2개의 기계화 사단에 한시적으로 8기보사, 11기보사, 26기보사 등 3개의 기계화보병사단을 받아들여 몸집이 최대로 커진 시기도 있었다. 육군의 6개 기계화보병사단 가운데 5개 기계화보병사단을 7군단 예하로 묶었던 것이다.
   
   7군단 예하의 5개 기보사가 보유한 전차만도 800여대에 이른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영국(227대)과 프랑스(200대), 독일(244대) 등 서유럽 3대 군사강국이 운용하는 전차 수를 앞지른 규모다. 거의 야전군급 수준이다. K1, KIAI, K2 등 신형 K계열과 그 개량형이 주종을 이루며, 특히 K2 흑표 전차 등 신형 전차의 절반에 육박하는 40%가 7군단에 모여 있다. K-MLRS와 K-9자주포로 무장한 7군단의 7포병여단 화력도 주변국의 군단급 화력을 압도한다.
   
   7기동군단은 유사시 북한군이 남침하면 주둔지에서 방어하는 일반 군단과 달리 고착된 전선을 돌파해 북쪽으로 휴전선 철책을 뚫고 평양까지 직진하는 ‘적진돌파, 초월공격’의 임무를 수행하는 군단이다. 따라서 7기동군단의 훈련은 대부분 기동전에 관한 것이며 방어작전은 거의 없다. 오로지 공격뿐인 부대로, 부대 경례구호도 평양 입성을 상징하는 ‘북진’이다.
   
   최신예 장비가 나올 때마다 20기보사를 중심으로 한 7기동군단에 우선 편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7기동군단은 위상에 걸맞게 거쳐간 인물들 상당수가 군 요직에 진출했다. 한때 ‘7군단장=4성장군 확정코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배출하는 ‘요직’이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군단장을 역임한 총 8명 중 대장까지 진급한 인물은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육사 27기), 김병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사 28기), 김근태 전 1군사령관(육사 30기), 박성규 전 1군사령관(3사 10기), 박찬주 전 2작전사령관(육사 37기) 등 5명이다.
   
   문재인 정부에는 유사시 핵심전력인 7기동군단의 이런 위상과 가치가 잘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육군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국방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8기보사단과 11기보사단을 왜 키우려 하는지, 그리고 작년 연말까지 20기보사가 11기보사를 흡수하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으나 막판 홍천 주민들의 민원을 핑계로 20기보사를 슬그머니 해체하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며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7기동군단의 핵심인 20기보사를 해체하는 것은 굴러들어온 돌(8기보사·11기보사)이 박힌 돌(수기사·20기보사)을 빼는 격”이라고 했다.
   
   그는 “7기동군단의 핵심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창설한 수기사를 해체 대상으로 삼지 않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창설한 20기보사를 해체하려는 것도 의문”이라며 “최근 5·18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5·18이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20기보사가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고 했다. 그는 이어 “기무사령부가 2017년 3월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시민단체가 공개하며 기무사가 ‘탄핵심판 기각’을 가정해 촛불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했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았느냐”며 “이 문건에 박근혜 정권이 집회예상지역(광화문·여의도)에 30사단 3개 여단, 20사단 3개 중대 등 무장병력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돼 있는데 여기서 20기보사가 또 언급된 것도 ‘괘씸죄’에 걸려드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 파워팩 개발 지연으로 생산공정에 차질이 생긴 경남 창원의 방산업체 현대로템의 생산라인. 원래 계획대로라면 K2 조립이 시작되어야 하지만 파워팩 개발이 지연돼 생산라인이 멈춰 서 있다. photo 조선일보

   노무현 정부에서 시동 건 부대 구조개편
   
   사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 2.0에 담긴 ‘부대 구조개편’의 윤곽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처음 나왔다.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 국방력을 강화하려던 노무현 정부의 계획은 기보사단을 증설해 기동군단을 2개로 늘린다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1개 기동군단 유지로 축소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2016년 12월 이후 제7군단 휘하에 5개 기보사(수기사·8기보사·11기보사·20기보사·26기보사)를 몰아넣어 부대 개편을 용이하게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이전 정부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4개 정권을 거치며 수정되고 보완된 국방개혁이 지금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듯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개혁 시행 과정에서 안보를 도외시한 무개념의 개편을 노정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정이 장군은 “노무현 정부 때 ‘국방개혁 2020’을 만들면서도 사단을 없애고 여단급 부대로 만든다는 계획하에 수기사와 20사단을 해체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당시 군 관계자들이 ‘수기사와 20사단은 기계화부대의 원조인데, 그것을 없애면 어떡하냐’고 크게 반발했었다”며 “다시 검토를 거친 끝에 수기사와 20사단은 존속시키면서 전방 군단의 11기보사 등과 같은 기계화 사단들을 없애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지금은 일이 거꾸로 되고 말았다”고 했다.
   
   한편 6개 기계화보병사단 가운데 유일하게 7군단 소속으로 묶이지 않았던 30기계화보병사단(30기보사)도 해체에 가까운 개편 작업에 들어갔다. 1955년 향토예비사단으로 창설돼 1980년대 보병사단으로 전환됐다가 1991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이 세 번째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창설한 부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기사를 만들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를 견제할 20기보사를 만들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이 사단장을 지낸 9사단을 견제할 30기보사를 만든 셈이다. 30기보사는 2020년 말 30기갑여단으로 개편된다.
   
   군사전문가 A씨는 “7기동사단은 어디까지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수기사, 20기보사, 30기보사가 중심이 돼야 북한군의 서울 침공을 막을 수 있다”면서 “6개 기보사단(수기사·8기보사·11기보사·20기보사·26기보사·30기보사), 5개 기갑여단 체제가 3개 기보사단(수기사·8기보사·11기보사), 8개 기갑여단 체제로 바뀌어도 ‘전력의 총량’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군에선 주장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 K2 흑표 전차는 갈수록 양산 계획이 축소되면서 육군의 새로운 주력 기보사인 8기보사나 11기보사 둘 중 하나만 완편하기도 어려운 처지”라며 “지상전의 처음과 끝을 담당하는 전차의 생산이 차질을 빚는다는 것은 결국 중대한 대북 억지력과 미래 인접국 대응 악화로 이어진다”고 했다.
   
   당초 노무현 정부는 2009년부터 오는 2020년까지 780대의 K2 흑표 전차를 4개 기계화보병사단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명박 정부는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여 2008년 390대, 2011년에 200여대만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2차 양산 물량 106대에 국산 파워팩을 장착해 2016년 말부터 생산할 계획을 세웠지만, 국산 변속기 결함이 불거지면서 이제야 독일제 변속기로 바꿔 2차 양산분 106대 제작에 들어간 형편이다. 방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합참이 불투명하던 3차 양산을 되살렸으나 물량은 애초 계획한 118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4대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이미 주력 기계화보병사단에 배치된 독일산 파워팩 장착 1차 양산물량 100대와 합쳐도 전체 물량은 260대 수준으로, 애초 노무현 정부가 세웠던 계획에 비해 턱없이 적은 물량”이라고 했다.
   
   
   전차도 말썽인데
   
   전차의 생산 일정을 맞추는 것도 문제다. 경남 창원의 현대로템 공장에는 파워팩만 넣으면 완성되는 ‘미완성’ K2 전차가 60여대나 야적된 상태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하반기부터 2차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독일 렌크(RENK)사의 변속기는 일러야 올해 말부터 들어온다. 각종 검사 등을 거치면 실제 2차 양산은 내년 초에 시작돼 2021년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혜시비도 일고 있다. 파워팩 국산화를 놓고 방위사업청은 국산 가속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품질 개선을 하라고 촉구하는 반면, 생산업체는 시험 방법이 너무 엄격하다며 기준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K2 전차 개발 및 배치가 12년 지연되며 발생한 피해에 대한 지체상금을 둘러싸고도 전차 생산업체인 현대로템과 국산 파워팩 생산업체인 S&T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출을 위해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언제까지 업체에 끌려다녀야 하느냐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면서 “10년 넘게 차기 전차 생산의 발목을 잡아온 국산 파워팩 업체에 또다시 기준 변경 등을 허용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선배로 알려진 최평규 S&T그룹 회장(한국방위산업진흥회장)에 대한 특혜시비가 재연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30일 26기보사와 8사단이 제8기계화보병사령부로 통합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인 부대 구조개편이 시동을 걸었다. 물론 현재 국방부의 부대 재배치 작업은 부대 해체와 새로운 작계에 따라 군단과 사단이 맡을 작전 영역이 평균 4배 늘어나는 데 따른 조치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그 방법론에 있어서 정예 기계화사단을 해체하고, 일반 보병사단을 존속시키는 것이 과연 국방개혁이고 부대 구조개편인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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