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마이니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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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API·www.apinitiative.org)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싣는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반목하는 한·일 관계가 주제다. 한 달여 뒤 있을 새 일왕 등극, 중국의 미래에 관한 견해도 들어봤다. 인터뷰는 도쿄 API 사무실에서 1시간30분에 걸쳐 일본어로 이뤄졌다.

- 한·일 관계가 왜 이토록 엉망이 됐다고 보나.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가. “한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1910년 한·일병합과 1919년 3·1운동, 1965년 한·일기본조약 등에서 이유를 찾을 듯하다. 식민지 지배를 통해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일본인은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에는 ‘클로징(끝)’이란 자막은 없다.

개인적 얘기지만,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와 막역한 사이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주도한 인물로, 역사에 남을 위대한 정치가다. 당시 ‘미래’를 키워드로 한 공동선언을 통해 한국과의 역사 문제가 마침내 일단락됐다고 일본인과 일본 정치가 모두가 믿었고 확신했다. 그러나 공동선언 21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과거사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수차례 공식 합의된 사항이 반복해서 거론되면서 또다시 대응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정치가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계속 합의사항이 뒤집히는 과정에서, 다시 뭔가를 만들어낸다 해도 지켜질 수 있다고 믿는 국민들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로부터 표를 받아 당선된 정치가가 과연 리스크를 감수하고 (일본 국민의) 세금을 쓰면서까지, 또 뒤집힐지도 모를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을지 나조차 의문이다. 한국을 외교무대에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기는지조차도 의문시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까지의 일·한 관계는 동북아 안전보장체제에 입각한, 일·미·한(日美韓) 3국 공동운명체(Indivisibility)로 움직여왔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안보라는 공통분모가 엄연히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권의 움직임을 보면 그 같은 공통분모가 희박해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레이더 갈등까지 벌어지는 판에) 역사 문제에 관한 서로 간의 약속이 무용지물로 변할 수도 있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 지금 한·일 간에 도사린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징용공(徴用工) 문제는 당장 닥친 문제다. 위안부 문제와 차원이 전혀 다른 어려운 이슈다. 일본과 아시아 외교전문가 모두가 존경하는 공로명 전 외무장관의 말이기도 하지만, 1965년 이래 최악의 상황이 징용공 문제를 통해 한층 더 확장되고 있다. 공로명 선생의 지적을 접했을 때 나의 느낌은 프랑스어로 ‘크리도 쿼(Cri de coeur)’, 즉 ‘가슴 깊이 우러나는 절규’로 와닿았다. 엄숙하고도 비장한 역사관에 기초한 생각이다.(편집자주: 공로명 전 장관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당사자들의 이해를 구한 뒤 일본 기업 대신 배상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안한 바 있다.) 사실, 공로명 선생의 그 같은 절규는 다른 의미의 해석도 가능하게 해준다. 외교의 역할이나 기능이 한국에서 통할지에 관한 의문이다. 징용공에 관한 한국 대법원의 결정을 보면, 국가 간 협상이 있었다 해도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서 개인 청구가 가능하다고 한다. 좋다. 한국 대법원의 결정이니까 일본이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65년 협약에 따르면 국가 간 약속에 의거해 국내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인지된 상태다. 그러나 최근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그 같은 국가 간 협약, 나아가 한국 대통령이나 정치가, 외교부의 약속조차 파기, 무시할 수 있는 절대권한을 갖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정치가나 외교가가 타국과 협정을 맺는다 해도 최후의 결정권은 대법원 판결로 결정되는 식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과의 약속이나 협정을 맺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뭘해도 언젠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인 한국 외교부와 외교관들의 위기의식이 남다를 듯하다.”

후나바시 말투의 특징이지만 쉽고 명료하다. 기자로서 다져진, 쉬운 단어를 통한 명확한 분석과 전망이 남다르다. 날짜나 수치에 대한 기억이나 정보도 정확하다. 그는 논리나 대안에 앞서 객관적 정보수집에 주력하는 걸로 유명하다.

- 문재인 정권에 대한 일본 정치가들의 생각은 어떤가. “번복된 위안부, 징용공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예 포기하자는 분위기가 있기는 하다. 좌편향 정권과의 대화를 완전 포기하고, 다음 정권과의 대화에서 신뢰를 회복하자는 생각도 많다. 지금과 다른, 우성향 정권에 대한 기대라고나 할까.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우성향 정권이라고 해도 일·한 관계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좋은 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은 다케시마(독도)를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방문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임기 말 지지율 만회를 목적에 둔 방문으로 풀이됐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당시 방문 뒤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이다. 다케시마 문제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은 더 이상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흘려듣기 쉬운 말인데, (좌우를 넘어선) 한국인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 판단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을 대하는 근본적인 시각이 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발언이다. 일본의 국제적 역량이 약해지고 거꾸로 중국의 입지가 커져가는 국제정세하에서 한국의 세계관을 압축한 것이 당시 이명박의 발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더 이상 약한 일본과의 약속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생각인 셈이다. 따라서 나는 현재 벌어지는 일·한 갈등의 해결점은 좌우 정권 출현 여부와 무관하다고 판단한다. 문재인 정권이나, 그 이후 올지도 모를 우성향 정권에서도 공통적으로 어두운 상황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한다.”

- 일본 정치무대에서 그 같은 생각이 일상화된 상태인가. “아직은 아니다.”

- 앞으로 양국 관계는 계속 나빠진다는 의미인가. “잘못 관리할 경우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 정치 외교무대에서의 어두운 현실과 달리 한·일 양국 간 교류 인구가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일본 방문이 750만, 일본인의 한국 방문객이 290만에 달했다. “양국 간 인적 교류의 증가 속도는 엄청나다. 관광객 수만이 아니라 지난해 한국 청년의 일본 취업도 엄청나다. 2018년 4월 기준 한 해 동안 (일본 내 한국인이 아닌) 한국에서 건너온 4000명이 일본 기업에 취직했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이 많다.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외국인은 한국인이 단연 톱이다. 열심히 일하고 언어 적응력도 남다르다. (인구감소에 허덕이는 일본의) 대기업들은 한국 젊은이들을 환영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일본 젊은이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다. 진짜로 강조하지만, 일본인 가운데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성취하려는 사람도 많다. 여러 문제가 상존하지만, 젊은이들의 교류는 일·한의 미래를 밝히는 좋은 징조다.”

- 기업만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의 한·일 청년 교류 논의도 있나. “전략적 차원의 논의는 없다. 정치권에서 곧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문재인 정권과는 어려울 듯하다. 그렇지만 종극적으로는 한국의 좌우 정권을 넘어선 이슈로, 함께 풀어나가야 할 미래다.”

‘전략’이란 단어는 후나바시가 즐기는 말이다. 부분이 아닌 전체나 배경을 통한 새의 눈, 즉 조감도(鳥瞰圖)에 기초한 접근이다. 한·일만이 아니라 미국·중국·동북아 전체를 기반으로 한 판단이다. 워싱턴에서 확인한 것이지만 후나바시를 만나고 싶어하는 미국인이 넘친다. 그는 안보 분야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친구를 갖고 있다.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취득한 현장감에 기초한 조감도가 후나바시 머릿속에 채워져 있다. 언어는 물론 상대방 문화를 이해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접근법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장분석 능력이다.

지난해 5월 9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한·일 확대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서로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5월 9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한·일 확대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서로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 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강제집행에 들어갈 경우 일본도 보복에 나설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리라 보는가. “경제제재와 같은 얘기가 오르내리고 있지만, 아직은 구체화된 것이 없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일본의 경제제재는 유엔결의안에 따른 것에 국한된다. 북한에 대해서도 ‘유엔제재 플러스 알파’가 기본이다. 전후 일본이 단독으로 경제제재에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단독 경제제재가 이뤄질 것이란 얘기인가.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가능한 것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정도일 것이다. 한국이 응하지 않을 경우 법적 제약이 없는 방안이다.”

- 일본 기업들로부터 불만이 나올 건데 일본 정치권이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나. “정부의 불(不)관여에 대한 기업 측 불만은 당연하다. 결론적인 얘기지만,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철수가 이뤄질 것이다. 일본 기업의 특징이지만, 큰소리를 치거나 모두에게 알리면서 떠나지 않는다. (반일 데모 이후) 중국에서처럼 소리 소문 없이 철수하는 것이 일본 기업들이다. 결국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 미·중 관계에 대해 묻고 싶다. 미·중 무역 마찰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무역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간 세계 주도권 경쟁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더불어 기술 헤게모니를 둘러싼 경쟁도 격화될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앞으로 한 세대에 걸쳐 이어질 갈등이다. 2049년 공산 중국 건국 100주년까지 이어질 ‘30년 전쟁’이라고나 할까. 그 시작이 미·중 무역 마찰일 뿐이다.”

-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의 1인 독재화가 가속화되면서 미·중 마찰이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던데 어떤 생각인가. “시진핑이 가속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미·중 마찰의 전조는 이미 후진타오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중국 스스로를 ‘대국’이라 선언한 2010년 아시아지역포럼에서의 발언은 대표적인 전조다. 대국이니까 거기에 맞게 미국에 맞서겠다는 의미다. 2008년 10월에 시작된 센카쿠열도 문제는 일본을 상대로 한 대국주의의 발로라 볼 수 있다. 대국주의에 근거한 미·중 마찰, 주변국과의 갈등은 시진핑 등장 여부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계속될 중국 외교의 근간이 될 듯하다.”

- 미·중 무역 마찰이 1년도 채 안 됐는데 중국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중국의 경제 신화는 끝났는가. “중국은 아직 성장 단계에 올라서 있다. 특히 비민주주의 구조, 규모의 경제가 갖는 장점이 아직 먹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약실험이 가능한 나라가 중국이다. 개인정보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바이오, 인공지능(AI)에 관한 약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내부에 숨겨진 각종 문제들이 터져나올 것이다. 성장은 앞으로 10년 정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

- 새로운 일왕이 4월 말 즉위식을 갖는다. 어떤 역할이 주어질 것으로 보나. “전후 천황은 국가 상징으로서의 역할에만 주목했다. 전전(戰前) 역사와 관련해 전몰자 추도비 순례는 상징적인 천황이 행한 주된 업무이자 사명이었다. 새로운 천황은 다를 것이다. 필리핀 등을 오가며 행한 전전(戰前) 역사와의 연결은 사라질 것이다. 과거 역사와 연결된 동아시아 차원에서의 활동이 아니라 일본 내 문제에 주목하는 국내 차원의 역할이 새로운 천황의 주된 업무가 될 것이다. 전전(戰前)을 포함한 역사 속 천황은 올 4월 말 새로운 천황 등극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 한·일 관계에 대해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다면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은지. “전후 한국의 성공 신화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길 바란다. 그 짧은 기간 내 이룬 한강의 기적, 그 배경이나 원인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줬으면 한다. 미·한 동맹과 아시아 전체 안보체제는 한국의 기적을 낳게 한 근본적인 배경 중 하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앞선 정치가들의 잘못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변수를 최대한 활용해서 오늘날의 한국이 세워졌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서 한국의 기적이 이뤄질 수 있었는지 그런 (긍정적인) 역사에 주목했으면 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역사상 한국과 같은 성공 신화는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드를 가지길 바란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 후나바시는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한국을 아끼는, 영원히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이웃으로서 ‘깊은 회한’이 몰려오는 듯했다. 앞서 한국인 취업생 4000명을 얘기할 때의 밝은 톤과 대비되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미래를 키워드로 삼은 후나바시의 세계관이 과연 한국 지도층에 어떻게 전해질지는 후나바시는 물론 필자도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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