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마치고 한선교 사무총장(왼쪽)과 대화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오른쪽은 이헌승 대표비서실장. ⓒphoto 연합
지난 3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마치고 한선교 사무총장(왼쪽)과 대화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오른쪽은 이헌승 대표비서실장. ⓒphoto 연합

자유한국당에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친박계가 다시 당의 주류를 장악했다는 분석이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당을 떠났다가 돌아온 비박계가 ‘복당파’로 불리며 2년여간 당 지도부를 장악하던 상황이 이제 달라졌다는 것이다. 작년 말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나경원 의원이 비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 비서실장 출신 김학용 의원을 2배 가까운 표차로 제치면서 승리했다.

구심점 없이 흩어져 있던 친박계가 본격적으로 결집하면서 새로운 지도부 곁에서 당을 이끄는 세력으로 다시 발돋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가 중용하는 인사들이 박 전 대통령 시절 주목받던, 이념 성향 강한 구 친박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어 당내 권력구도가 전반적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황 대표는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한국당에는 계파가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기본적으로 당내 통합이 중요하다”며 “우리 안에 여러 계파 이야기도 있지만 이제 없어졌으니 되살아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외연 확장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우선 우리 당이 튼튼하게 바닥을 다지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외연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 모든 것을 위해 혁신이 필요한데, 그것을 토대로 통합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우리 당 안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이분들과 함께 우리 당의 영역 확산, 중도 통합까지 같이 이뤄갈 수 있다고 본다”며 “원팀으로 함께하면 우리 당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외연을 넓혀가는 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협력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황 대표가 단행한 첫 당직 인선을 두고는 당내에서 ‘역시 친박이 전진배치됐다’는 말이 나왔다. 총선 공천 과정을 지휘할 사무총장에 ‘원조 친박’으로 통하는 4선의 한선교 의원(경기 용인병)이 포진했다. 지난 정권 시절 친박 핵심들과 거리를 뒀지만 박 전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와 친구 사이다. 전략기획부총장으로 임명된 초선 추경호 의원(대구 달성)은 기획재정부 1차관 출신으로 황 대표가 국무총리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민경욱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고, 이헌승 당대표 비서실장은 김무성 의원 보좌관 출신이지만 범친박계로 분류된다. 한 비박계 중진 의원은 “골수 친박들은 아니지만 통상 친박으로 분류되거나 지난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분들이 대거 당직을 맡게 됐다”며 “황 대표 역시 지난 정부에서 총리와 법무부 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한 비례대표 의원은 “예전의 계파 구분 방식으로 보면 친박에 무게가 쏠린 당직 인선이라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황 대표가 개인적으로 믿고 쓸 수 있는 사람과 그간 역량을 보여줬던 사람 위주로 인사를 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고 했다.

초재선 모임 ‘통합과 전진’이 구심점

황 대표가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적극 도왔던 세력도 친박계 의원이 많았다. 당규상 국회의원이 직접 당내 경선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보좌진을 보내 사실상 지원에 나선 의원들은 대부분 친박계였다. 비박계 의원들은 다른 후보를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황 대표에 대해서도 관망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 비박계 의원은 “황 대표 대세론이 워낙 강해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며 “비박계 의원들은 향후 황 대표 체제에서 건전한 견제 세력이 되려고 노력할 것 같다”고 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황 대표의 첫 당직 인선에 대해 “아쉽다”면서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3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열린토론, 미래: 대안찾기’ 토론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황 대표 당직 인선 과정에서 친박 색채가 강한 인사들이 많이 진입했다’는 질문을 받자 “아쉬운 감이 있다”고 했다. ‘황 대표와 소통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없다”고 했다. 황 대표 초반 행보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는 “당선을 축하한다”면서 “황 대표가 잘하리라고 생각하고 잘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새 지도부가 들어선 만큼 이제는 당이 단결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전 대표는 “자꾸 친박, 비박을 이야기하는데, 친박은 실체가 있는 것이고 비박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며 “자꾸 비박을 카테고리로 묶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황 대표 체제 이후 새로운 주류 세력이 등장했다는 말도 나온다. 기존 친박계의 중진 의원들 대신 계파색이 옅은 범친박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 중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 총선 패배와 이후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 직접적 책임론이 제기되는 기존 친박 중진들을 대신해서 중도보수 성향을 지닌 범친박 초재선 의원들이 본격적으로 당의 실무를 이끌어가는 상황”이라며 “초재선 중에 황 대표와 과거 인연으로 인해 가까운 사람도 상당하고 정치적으로는 과거로부터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초재선 의원 모임 ‘통합과 전진’ 소속 인사들이다. ‘통합과 전진’은 비박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작년 8월 합리적 보수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며 초재선 의원 13명이 결성했다. 김기선·김도읍·박대출·박맹우·윤영석·이완영·정용기 의원(재선)과 강석진·민경욱·박완수·송희경·엄용수·이은권 의원(초선) 등이다. 김정재·백승주·송언석·이만희·추경호 의원 등도 추후 합류해 현재는 2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과 전진’ 출신의 당직 의원으로는 추경호(전략기획부총장)·민경욱(당 대변인)·송희경(중앙여성위원장) 의원 등이 있다. 이들은 작년 12월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나경원·유기준·김영우·김학용 의원 등 후보자들을 잇따라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할 정도로 영향력을 과시했다. 지난 1월에는 황교안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자격 논란이 불거지자 “불필요한 논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입장문을 내고 당내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들에 대해 ‘신친박’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보다는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황 대표의 당내 입성과 함께 당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친황’으로 분류하는 게 더 정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물론 황 대표가 향후 당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정치력을 보여줘야 ‘친황’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친박이나 비박이라는 구분 자체가 과거에 묶여 있는 개념이라서 당 지도부로서는 굉장히 불편한 표현”이라며 “그리고 당내 권력 구도가 황 대표 체제 출범과 함께 완전히 바뀌고 있는 중이라 앞으로는 친황과 비황으로 구분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초선 의원은 “탄핵 과정에서 당을 나갔다가 온 사람과 남아 있던 사람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메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이런 갈등 구도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황 대표 체제가 들어섰다고 해서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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