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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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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비밀 우라늄 농축시설 최소 4곳

북핵, 기만의 흑역사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회담. photo 뉴시스
‘제네바합의(Geneva Agreed Framework)’는 미국과 북한이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서명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문서를 말한다. 양측이 사상 처음 체결한 이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개발 동결 대가로 1000㎿급 경수로 2기와 대체에너지로 연간 중유 50만t을 제공하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완전 복귀와 모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허용, 핵 활동의 전면 동결 및 기존 핵시설의 궁극적인 해체를 약속했다. 당시 로버트 갈루치 미국 북핵 특사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서명한 이 문서에 따라 미·북은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 설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과 남북 대화의 재개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제네바합의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런 사실이 미국에 발각되면서 제네바합의는 2003년 깨졌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북한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 서명하자마자 두 가지 중대한 위반을 했다”면서 “우라늄 농축을 시작했고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반출해 별도 시설에서 가공한 뒤 현재와 같은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핀란드 출신인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1983년부터 27년간 IAEA에서 안전조치와 사찰을 담당했던 핵 전문가다. 하이노넨 사무차장은 “북한은 1994년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협력해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면서 “미국 정보기관이 2002년에야 이런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제임스 켈리 미국 동아태 차관보는 2002년 10월 조지 W 부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강석주 제1부상과 회담 과정에서 HEU 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강 제1부상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해준다면 HEU를 통한 핵 개발 계획은 물론 미국의 안보상 우려 사항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IAEA가 2003년 1월 6일 북한에 HEU를 해명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북한은 NPT에서 탈퇴했다. 당시 북한은 HEU를 개발하지 않았는데도 미국 정부가 고의적으로 누명을 씌웠다고 강변했다.
   
   
   비밀 냉각시설 확보해놓고 냉각탑 폭파 쇼
   
   북한은 이처럼 핵 개발을 위해 기만전술을 구사해왔다. 2005년의 9·19 공동성명도 마찬가지다. 당시 북한은 6자회담에서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NPT로 복귀하겠다고 합의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불사용 등을 북한에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9·19 공동성명을 파기했다. 북한은 핵개발을 진행할 시간을 벌기 위해 기만전술을 벌이면서 철저하게 6자회담을 이용했다. 북한은 2007년 6자회담 합의(10·3합의)에서 영변의 5㎿ 원자로, 재처리시설 및 핵 연료봉 제조시설의 불능화를 약속하고, 이 조치의 일환으로 2008년 6월 27일 냉각탑을 폭파했다.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이었던 성 김 현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현장에서 이를 지켜봤다. CNN 등 각국 방송들이 냉각탑 폭파 장면을 중계했다. 부시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12일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다. 그런데 북한은 냉각탑이 없어도 5㎿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북한은 강물을 연결해 냉각하는 시설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 없는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를 한 것이었다. 북한이 시리아에 건설을 지원한 원자로에도 냉각탑은 없었다.
   
   북한과 미국은 2012년에도 2·29 합의를 도출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포함한 영변에서의 핵 활동 중지와 IAEA 사찰단 복귀 등을 약속했다. 미국은 6자회담 재개와 제재 해제 검토 및 24만t의 영양(營養) 지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은 같은 해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지구 관측위성 광명성-3호를 발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가 우주개발 목적의 로켓 발사와는 관련이 없다면서 합의서를 교묘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미국이 북한의 기만전술에 속아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 2월 2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다 들통이 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전면적인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나는 그걸 들어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영변 핵시설 해체만을 가지고는 미국이 원하는 모든 비핵화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영변 핵시설 이외에 우리가 발견한 게 있었다”라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로 발견한 시설이 우라늄 농축과 같은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면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동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면서 “미사일도 빠져 있고, 핵탄두 무기 체계가 빠져 있어서 우리가 합의를 못 했다. (핵)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들을 합의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으로 볼 때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거래하려다 합의에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그걸 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면서 “때문에 1단계 수준인 영변 핵시설 해체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은 과거 비핵화를 약속하고 경제적 혜택만 챙긴 뒤 합의를 파기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비핵화를 설득했지만, 그들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얼렁뚱땅 속이려다 실패하자 책임을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가했다. 김정은의 지시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이번 회담 결렬 이후 3월 1일 새벽 2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이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핵시설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한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은 영변 이외의 핵시설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제재 해제 요구는 전면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만 강조했다. 북한이 요구한 5건의 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 2321호, 2371호, 2375호, 2397호 등을 말한다. 이들 제재는 석유 수입 제한, 석탄과 철광석 금수 조치 등 대북 제재의 핵심이기 때문에 북한이 사실상 경제 제재 전부를 풀어달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북한이 완전 폐기하겠다는 영변 핵시설은 낡고 오래돼서 쓸모없게 됐을 뿐만 아니라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높아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 물론 북한은 미국에 ‘미끼 상품’도 내놓았다. 영변 핵시설에 있는 HEU 생산 공장이다. 북한은 2010년 11월 미국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영변 핵시설에 있는 HEU 공장을 보여주면서 2000대의 원심분리기가 가동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소형 수력발전소가 있는 곳 의심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깜짝 놀라게 만든 영변 이외의 HEU 시설은 어디에 있을까.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의 주 재료는 플루토늄과 HEU다. 플루토늄의 경우 추정치와 실제 보유량과의 오차가 크지 않다.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은 대형이라 외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플루토늄 추출 과정에서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방사성 동위원소가 발생한다. 크립톤 85 등의 원소들은 대기 중 극미량만 존재해도 포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이 아무리 비밀리에 플루토늄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알아낼 수 있다. 이 시설의 가동 현황을 파악하면 생산량의 근사치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보유량을 속이기는 어렵다.
   
   반면 HEU는 다르다. HEU는 원심분리기라는 알루미늄이나 마레이징강(니켈을 함유한 강철 합금) 통만 있으면 가능하다. HEU는 그 통 안에서 우라늄을 고속으로 돌려 농축시키는 원심분리기를 연결해서 얻는다. 우라늄 농축시설은 1000개의 원심분리기를 설치할 수 있는 600㎡(180여평) 크기 정도면 충분하다. 우라늄은 플루토늄과 달리 연기, 냄새, 특수물질의 배출이 없어 감지하기 힘들고 공정도 간단하다. 특히 우라늄 농축시설은 전기만 충분히 공급하면 가동될 수 있다. 북한에 HEU 기술을 제공한 칸 박사의 증언과 마레이징강 등 부품 밀수 내역 등을 볼 때 북한은 연간 8000SWU(Separative Work Unit)를 처리할 수 있는 P2형 원심분리기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P2형 원심분리기 2000개를 1년간 가동하면 핵폭탄 2.5개를 만들 수 있는 HEU 40㎏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2010년 공개한 영변의 HEU 공장을 풀가동했을 경우 2017년까지 HEU를 최대 320㎏까지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2017년 말 기준 미국 정보기관이 추정한 북한의 HEU 보유량이 758㎏에 달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북한은 영변 이외 지역에서 비밀리에 HEU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비밀 HEU 시설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평양 남부 산업단지인 천리마 구역의 강선이다. 미국의 민간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지난해 5월 25일 북한이 영변 외에도 ‘강성’이라는 지역에 HEU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규모도 영변 핵시설의 두 배 이상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강성이 영변보다 먼저 지어졌으며 2000~4000개의 P2형 원심분리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의 외교 전문지 더디플로맷은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비확산센터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7월 북한의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강성은 평안남도 천리마 구역에 위치한 강선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평양에서 남서쪽으로 30㎞ 떨어져 있으며 대동강에 붙어 있는 천리마 구역의 과거 이름이 강선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평양과 남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에서 불과 1㎞ 떨어져 있다.
   
   그런데 당시 미국 언론들이 강선의 비밀 HEU 시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도 강선이 노출된 것을 알았을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볼 때 이제까지 보도되지 않은 또 다른 비밀 HEU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그동안 위성 등 정보 자산을 총동원해 HEU 공장을 비롯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들을 찾아왔다.
   
   특히 미국 정보기관들은 HEU 생산에 상당한 전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해 전력 사용이 많은 곳에 북한이 HEU 시설을 은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2011년부터 평안북도와 자강도 등에서 소형 하천과 지류마다 발전용량 1만㎾ 미만의 소형 수력발전소를 대량으로 건설해왔다. 그런데도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대의 전력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대의 모처에 비밀 시설을 만들어놓고 대량의 전력을 투입해 HEU를 생산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미국 언론들은 평안북도 방현 비행장 인근과 박천 및 자강도의 하갑과 연하 등 최소 4곳에 비밀 HEU 시설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영변 핵시설에 인접한 ‘분강’이 비밀 HEU 시설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이곳에는 핵 연구소(304연구소)와 물리대학(북한 주민들은 원자력물리대학으로 부름)이 있다. 한 탈북자는 이곳에서 북한 과학자 100여명이 피폭돼 9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을 것”
   
   김정은은 그동안 “비핵화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주장해왔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면 하노이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김정은은 또 문재인 대통령과의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에서도 비핵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하노이회담에서 보듯이 모든 핵시설과 핵무기를 폐기할 의도가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카드는 과거부터 보여왔던 북한 정권의 전형적인 태도와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석좌는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외에 다른 지역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토머스 컨트리맨 미국 군축협회 이사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은 것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론 존슨 상원의원(공화당)은 “애초부터 미국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했다”면서 “김정은이 핵 프로그램을 없앨 의향이 없는 이상 미국은 어떤 제재도 완화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출신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김정은은 생명줄인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사기 쇼’를 계속할 것이 분명하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우리는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을 것(We won’t buy the same horse twice)”이라고 강조한 교훈을 트럼프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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