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하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photo 뉴시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초강경 대여 투쟁이 주목받고 있다. 취임 초반 불거진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 손혜원 의원 목포 투기의혹 등 여권의 각종 악재에 대해 “좌충우돌식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당내 비판도 받았지만 최근에는 강경 일변도 대여(對與) 공세를 통해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서 보수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수위가 높은 발언이 거듭되면 훗날 당 전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3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빗대 발언하면서 여야가 본회의장에서 거칠게 충돌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을 교체하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면서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가 시급하다”고 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위험한 도박”이라며 “이제 그 위험한 도박을 멈춰달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북한은 핵 폐기 의지가 없다는 것을 지난 2월 28일(하노이 미·북 회담) 확인했다”며 “그동안 북한의 협상은 핵 폐기가 아닌 핵 보유를 위한 것이며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 은근슬쩍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려 한다”고 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불질러

나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을 향해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는 순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거칠게 항의를 시작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당장 멈추고 내려와라” 등의 고성을 질렀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작년 9월 26일 미 블룸버그통신 기사 제목인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를 인용한 것이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단상으로 올라가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문 의장은 “계속하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는 멈추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본회의장을 나갔다. 한국당 의원들은 책상을 내리치며 “경청, 경청”을 외쳤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사과해, 사과해”를 연호하면서 연설이 30여분간 중단됐다. 홍 원내대표가 문 의장에게 계속 항의를 하는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여야 의원들 사이에 몸싸움도 벌어졌다. 나 원내대표는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굳은 표정으로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귀 닫는 자세, 이런 오만과 독선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 의장이 “나는 ‘청와대 스피커’란 얘기를 듣고도 참았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얘기라도 듣는 게 민주주의”라고 하자, 나 원내대표는 문 의장을 향해 “말씀 일부는 감사드리지만, 일부는 역시나 민주당 출신 의장이란 생각을 했다”고 한 뒤, 연설을 다시 시작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고개 숙여 사과하라”고 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연설 직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국회 윤리위에 회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원수모독죄’는 유신 시절인 1975년 만들어졌다가 1988년 폐지됐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국민이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완성해 탄생한 대통령을 북한 수석대변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참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한국당은 민주당에 사과를 요구했다. 이해찬 대표가 언급한 ‘국가원수모독죄’를 주로 비판했다. 황교안 대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있지도 않은 죄를 가지고 무엇을 얘기한다는 거냐”라고 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미 30여년 전 삭제된 조항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황 대표는 3월 13일에는 더욱 강하게 민주당을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야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데 단상에 뛰어갔다”며 “발언을 방해하고 구호를 외치고 의장석으로 올라가고 마치 국회가 과거 독재 시절로 회귀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어 “그런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 폭력적 독재로 짓누르겠다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며 “좌파 독재 정권 의회 장악 폭거인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당 내부에선 이날 나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현 정부의 무리한 대북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으며, 민주당 의원들의 거친 항의에도 차분하게 대처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논란에 대해선 “외신에 나온 표현을 인용했을 뿐인데 문제될 게 없다”는 분위기다. “이전에 언론은 물론 한국당 내 다른 지도부 의원들도 인용했던 적이 있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유독 이번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냐”란 반문도 나왔다. 한 중진 의원은 “작년 말부터 여권에서 쏟아지는 각종 악재 속에서 나 원내대표가 가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상당했는데 이번 연설로 인해 어느 정도 위상을 되찾게 됐다”며 “의원들 사이에선 민주당 의원들 항의 속에 소란스러워진 본회의장에서 나 원내대표가 또박또박 할 말을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당 지지율 4주 연속 상승

나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상정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해왔다. 패스트트랙은 국회 쟁점 법안의 장기표류를 막기 위해 만든 제도로, 상임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 시 최장 330일(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내에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 국회 당적별 의원수에 따르면,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이 합세해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상정하면 본회의 통과가 가능하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을 야합으로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것”이라며 “한국당은 결코 좌시하지 않고 의원직 총사퇴도 불사해 맞서겠다”고 했다. “여당이 선거제 개편안과 함께 공수처 신설 법안 등까지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모든 법안을 자기들 입맛대로 하겠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당내에서는 나 원내대표의 강경 대처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나 원내대표의 강경 발언이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3월 11~13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1.9%포인트 오른 32.3%로 4주 연속 상승했다. 특히 한국당 지지율은 11일에는 30.8%를 기록했다가 나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에 빗댄 연설을 한 다음날(13일)에는 32.4%로 상승했다. 보수층 지지율은 11일 58.7%에서 13일 69.5%로 급등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일각에선 우려도 나온다. 한국당 한 수도권 의원은 “우리 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결국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중도층의 표심을 얼마나 붙잡을 수 있냐에 달려 있다”며 “나 원내대표의 주장이 너무 극단적으로 가게 된다면 당의 외연 확장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여권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선 강경한 비판을 이어가되 ‘5·18 망언’ 논란 등 당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지도부가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보편적인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