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당정청 협의에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당정청 협의에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연말까지 이대로만 쭉 관리하면, 나름대로 ‘절반의 성공’ 아니겠느냐.”

지난해 10월 취임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둘러싸고 교육계 안팎에서 나오는 말이다. 지난 3월 5일 3000여개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정부의 유아교육 정책에 반발해 ‘개학 연기’ 투쟁을 선언하고, 이를 하루 만에 철회하면서 ‘백기 투항’하자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굳어지고 있다. 유 장관 취임 이후 교육부가 가장 공들였던 이슈가 사립유치원 문제였는데, 결국 유치원이 정부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유은혜 장관이 취임 초반부터 대중에게 인기 좋은 정책만 선택적으로 집중 추진했는데,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사립유치원과의 ‘전쟁’”이라며 “현 정권의 주요 지지층인 젊은 엄마들의 표심도 잡고, 누구도 이견을 달기 어려운 ‘비리와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했다. 교육계에선 “한유총에 대한 승리를 바탕으로 유 장관이 임기 후반엔 고교 무상교육 안착에 집중할 것”이라며 “올 연말까지 남아 고교 무상교육까지 완성시키고 총선에 나가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교육 철학 뭐냐” “너무 즉흥적”

유은혜 장관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문재인 정부 첫 교육부 장관이던 김상곤 전 장관이 2022년도 대학 입시 개편 문제로 혼란을 빚자, 지난해 8월 청와대는 민주당 대변인 출신의 유 장관을 ‘뛰어난 소통 능력과 정무 감각을 겸비했다’는 이유로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사회부총리로 발탁했다. 오랜 당 대변인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의 의견을 정확하게 청와대와 여당에 전달하고, 당·정·청 간 이견을 효율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거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장관 내정 직후 여기저기서 ‘1년짜리 장관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유 장관이 2020년 총선에 나가려면 기껏해야 1년 정도 교육부 장관을 하다 말 텐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민감한 교육 문제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적임자냐는 지적이었다. 여기에 딸 전학을 위한 위장전입 의혹,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 등 여러 논란이 한꺼번에 불거졌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이례적으로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청원까지 벌어졌다. 결국 유 장관의 청문 보고서는 국회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때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는 만큼 업무에서 아주 유능하다는 걸 보여달라”고 유 장관에게 힘을 실었다. 그런 청와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유 장관은 취임 직후 중량감 있는 정책들을 속도감 있게 쏟아냈다. 취임식에서 느닷없이 “고교 무상교육을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2019년부터 실시하겠다”고 선언했고, 그로부터 이틀 뒤엔 “(당초 금지하기로 했던) 유치원 방과후 영어 수업을 허용하겠다”고 말을 뒤집었다. 또 며칠 뒤엔 “(현재 금지된)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교육부 실무진조차 ‘전혀 몰랐다’고 이야기했을 만큼 전격적인 선언이었다. 그러나 영어 방과후 수업 허용은 현 여당이 야당 시절 적극 반대했던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도대체 유 장관의 교육 철학은 뭐냐” “너무 즉흥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왔다.

고교 무상교육 아직도 재정 계획 없어

임기 6개월을 맞은 현재 유 장관에 대한 교육계 평가는 엇갈린다. 사립유치원 문제나 고교 무상교육 조기 도입, 영어 방과후 수업 허용 같은 젊은 학부모에게 인기를 끌 만한 정책은 콕콕 집어 과감하게 발표했지만, 말만 무성할 뿐 막상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된 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유 장관의 ‘작품’인 사립유치원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한유총 내부 결속력이 무너지면서 ‘개학 연기’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전방위로 유치원들을 압박해 일단락 났지만, 사립유치원들의 불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나중에 언제든 분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큰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사립유치원들은 여전히 ‘엄연히 개인 사재로 설립한 사립유치원의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 장관이 취임식에서 전격 발표한 고교 무상교육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재정을 어떻게 댈지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지 않다. 현재 연간 2조원에 이르는 재정 부담을 누가 지느냐를 둘러싸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기획재정부 간 이견이 있는 상태다. 교육부는 “이르면 3월 안에 고교 무상교육 재원 부담 방법에 대해 발표할 것”이라고 했지만, 벌써부터 일부 시도교육청 중심으로 “고교 무상교육 재원을 시도교육청 예산으로 부담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초등 1~2학년 영어 방과후 수업 허용’도 유 장관이 직접 언급한 지 6개월이 지난 3월 13일에야 관련 내용을 담은 선행학습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늑장 시행될 전망이다. 교육부가 당초 “3월 신학기 때부터 영어 방과후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학부모들은 “정부만 믿고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본회의를 통과한다 한들 1학기 때는 수업을 못 받는 거 아니냐”며 불만이다.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학교마다 이르면 6월, 늦으면 2학기가 돼야 영어 방과후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전망이다.

교육계에서는 유 장관이 오는 연말까지 남아 고교 무상교육 도입과 안착까지 마무리하고 총선에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유총과의 전쟁이 30대 젊은 엄마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었다면, 고교 무상교육 도입은 40~50대 중장년 학부모가 타깃이다. 사립유치원 문제에 이어 고교 무상교육을 제대로 안착시키면 다른 정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국민의 부담을 덜어줬다’ ‘비리와 타협 없이 싸웠다’는 명분이 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학 입시 개편이나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둘러싼 학부모 부담, 갈수록 커지는 사교육비 문제, 기초학력 저하 문제 등 민감한 교육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유 장관이 이런 근본적인 부분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상대적으로 인기 얻기 좋고 추진하기 쉬운 정책만 건드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청 간 매끄러운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전폭적인 협조를 얻어내며 유치원과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지만, 입시나 수능 같은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 ‘표 떨어뜨리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정작 학부모들이 간절히 원하는 근본 문제 해결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세미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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