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북한 선박 불법 환적 모습. 중국 선박과 정제유를 불법 환적하는 장면. ⓒphoto 미국 국무부
미국 국무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북한 선박 불법 환적 모습. 중국 선박과 정제유를 불법 환적하는 장면. ⓒphoto 미국 국무부

일본 수도 도쿄에서 남쪽으로 69㎞ 떨어진 가나가와현 요코스카는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산하 제7함대의 모항이다. 이곳에는 한반도 유사시 최우선 투입되는 핵심전력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해 이지스 순양함과 구축함 등이 배치돼 있다. 제7함대의 기함(旗艦)이자 지휘함인 블루리지호도 이곳에 정박해 있다. ‘바다의 사령탑’으로 불리는 배수량 1만9600t급인 블루리지호(길이 194m, 폭 33m)는 7함대의 모든 함정과 전투기를 지휘 통제한다. 이 함정에는 합동작전을 수행하는 중앙통제소도 갖추고 있다. 특히 이 함정에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북한 선박의 불법 해상 환적(換積) 감시센터가 있다. 현재 함정과 초계기 등을 한반도 주변 해역과 동중국해 등에 파견해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을 감시하는 국가는 미국·일본·호주·뉴질랜드·영국·캐나다 등 6개국이다. 블루리지호는 이들 6개국의 함정·초계기들과 통신 등 긴밀한 연락 및 감시체제를 조율해왔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북한 선박 불법 환적 모습. 정체불명의 제3국 선박과 불법 환적하는 모습이다. ⓒphoto 미국 국무부
미국 국무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북한 선박 불법 환적 모습. 정체불명의 제3국 선박과 불법 환적하는 모습이다. ⓒphoto 미국 국무부

특수정찰기 RC-12X 가드레일 2배로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해 유엔 안보리 제재 품목인 정제유와 석탄 등을 해상을 통해 불법 환적한 것은 2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도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석유 제품과 석탄에 대한 선박 간 불법 환적을 크게 늘리면서 안보리 결의를 계속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 선적의 불법 환적을 감시하기 위해 특수정찰기인 RC-12X 가드레일의 한국 배치를 2배로 늘렸다.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에 있는 주한 미 육군 501정보여단에 배치된 RC-12X는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5대에 불과했지만, 같은해 8~11월에 5대가 증강 배치돼 모두 10대로 늘어났다. RC-12X는 올 들어 요코타 주일 미 공군기지와 오키나와 가데나 주일 미 공군기지에도 배치됐다.

미국 정부가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카드를 꺼낼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 정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최대의 압박카드로는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것이다. 북한 선박들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철저한 감시 체제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교묘하게 위반하면서 석유 제품과 석탄 등을 중국과 러시아 선박 등과 불법적으로 거래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제재조치의 이 같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각국에 북한 선박의 불법 행위를 감시할 함정과 초계기 등을 더욱 많이 파견해줄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제2차 미·북 정상회담 합의 결렬 이후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불법 선박 환적을 못하게 하기 위해 더욱 옥죄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다른 국가들과도 북한의 불법 선박 환적을 막기 위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프랑스가 3월 중순 초계기 ‘팰콘 200’ 1대를 파견해 가데나 주일 미군 공군기지를 거점으로 경계·감시 활동을 실시하며, 봄 이후에는 프리깃함 방데미에르호도 추가 파견해 동중국해 주변에서 북한 선박 불법 환적 감시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방데미에르호는 배수량 3850t, 길이 93.5m, 폭 14m, 높이 37.1m인 함정으로 최고속력은 시속 20노트이며 최장 50일간 작전할 수 있다. 일본 정부도 미국 정부와 함께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에 대한 감시 체제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지난해 북한 선박의 불법 환적을 모두 11건이나 적발했다. 일본 정부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환적을 통한 석유 제품의 대북 공급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과 협력해 대응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3월 10일 폭스뉴스와의 회견에서 대북제재 강화를 언급하고 있다. ⓒphoto 볼턴 트위터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3월 10일 폭스뉴스와의 회견에서 대북제재 강화를 언급하고 있다. ⓒphoto 볼턴 트위터

3월 재상정된 ‘브링크 액트’

또 다른 최대의 압박 조치는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개인과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을 하는 것이다. 이미 의회 차원에서 법안이 마련되고 있다. 팻 투미 상원의원(공화)과 크리스 밴 홀렌 상원의원(민주)이 공동 발의한 ‘오토 웜비어 대북 은행업무 제한 법안’이 대표적인 세컨더리 보이콧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법안의 이름은 북한에 억류됐다 송환된 뒤 2017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추모하는 차원에서 지어졌다. ‘브링크 액트(BRINK Act)’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은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던 2017년 상원에서 처음 발의돼 같은해 11월 은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상원 본회의에 회부되지 못하고 회기가 종료되면서 지난해 말 자동 폐기됐었다. 이 법안은 3월 5일 은행위원회에 다시 상정됐다. 이 법안에는 북한과 금융거래 등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과 기업들의 미국 내 외국은행 계좌를 동결시키고, 외국 금융기관의 미국 내 계좌 개설을 제한하는 조치가 들어 있다. 이 법안은 또 북한과 합작회사를 만들거나 추가 투자를 통한 협력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행위도 유엔 안보리의 승인 없이는 금지하도록 했다. 외국 금융기관은 북한과 계속 거래하거나, 미국 금융시스템 접근을 유지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홀렌 의원은 “북한의 석탄, 철, 섬유 거래와 해상 운송, 인신매매를 조력하는 모든 개인과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기존 국제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투미 의원도 “북한의 변화를 위한 미국의 선택지는 얼마 없다”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의 핵 의지를 차단하는 방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공화)도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민주)과 함께 북한에 대한 포괄적인 무역 금수조치를 담은 ‘효과적인 외교 촉진을 위한 영향력 법안(LEED Act)’을 재상정할 계획이다. 가드너 의원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의 조력자들도 제재해야 하고, 선박 간 불법 환적도 막아야 한다”면서 “최대의 압박 정책이 천천히 뒷걸음쳐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마키 의원도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이 아픔을 느껴야만 미국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면서 “검증 가능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있기 전에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압박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법안도 외교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상원 본회의에 회부되지 못하고 회기가 종료되면서 지난해 말 자동 폐기됐었다. 이 법안은 북한과 자산 거래를 하고 북한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이전하는 사람과 기업에 대한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대북 거래 상위 10개 기업은 미국의 금융체제 접근을 완전 봉쇄해 중국 기업에 대한 엄격한 금융 제재를 하도록 규정했다. 이와 함께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들이 미국에서 결제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미국에서의 금융활동을 금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특히 상원 외교위는 3월 5일 비공개 회의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부터 2차 미·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비밀 브리핑을 받고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가드너 의원은 “북한이 여전히 비핵화할 준비가 안 됐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밥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만약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면 미국에 남은 옵션은 훨씬 더 도전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은 “미국은 김정은과 그의 억압적 정권에 대해 최대의 압박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며 “완전하고 총체적인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계속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원의원들의 이런 분위기로 볼 때 의회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을 가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를 담은 법안들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드러났듯이 북한 정권과 김정은이 제재 해제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가 상당한 효과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인 만큼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조야에서 나오고 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우선순위는 제재 해제로 드러났다”면서 “강력한 제재조치가 북한 정권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2차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현행 제재가 북한의 아픈 곳을 찌른다는 것이 드러난 지금, 굳이 제재 완화라는 당근을 북한에 줄 필요가 없다”면서 “최소한 현재 제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는 “미국은 이번 하노이 회담을 통해 북한이 연락사무소와 평화협정이 아니라 제재 완화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냈다”면서 “미국은 이를 대북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김정은이 대북 제재로 인해 심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다급한 처지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김정은은 3월 6~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우리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날강도적인 전쟁 위협이 무용지물로 된 것처럼 극악무도한 제재 압살책동도 파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또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임무가 없다”면서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강조했다. 당 초급선전일꾼이란 각 기관, 단체, 공장, 기업, 협동농장 등에서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양·선전선동 사업을 하는 간부들을 통칭한다. 이번 2차 당 초급선전일꾼 대회는 18년 만에 개최된 것으로, 김정은 체제 들어 처음 열리는 것이다. 김정은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뒤 첫 일성이 제재를 ‘극악무도한 압살책동’으로 간주하고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조치가 먹혀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photo 38노스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photo 38노스

올해 말까지 해외 노동자도 전원 귀국해야

김정은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사업은 오는 4월까지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10월로 미뤄졌고 올해 신년사에선 아예 완공 시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북 제재로 건설자재 조달이 막힌 데다 해외 자본 유치마저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삼지연과 신의주에도 특구를 조성하고 있지만 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해외 자본이 투자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게다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올해 말까지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은 모두 귀국해야 한다. 북한의 경제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고난의행군’(1995~1997)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제재 때문에 북한은 수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대중 무역적자가 19억7000만달러(2조2000억원)로 1998년 이후 최대치이다. 북한의 지난해 대중 수출은 전년 대비 87%나 감소했다. 또 올 1월 북한의 대중 수출량도 전년 대비 50%가 줄어들었다. 앞으로 미국의 제재 조치가 더욱 강화될 경우 북한은 ‘제2의 고난의행군’에 직면할 수 있다. 볼턴 보좌관이 “제재를 강화하면 김정은에게 진짜 충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볼턴 보좌관은 “지금 지렛대(주도권)는 북한이 아니라 우리(미국) 쪽에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고난의행군’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버티기’를 한다면, 트럼프 정부는 최대의 압박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또 하나 꺼내들 수 있는 최대의 압박카드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것이다. 이 카드는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에서 우주 개발을 명분으로 로켓을 발사하거나 미사일을 실험 발사할 경우의 대응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조야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결정한 것이 실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끔찍한 실수”라면서 “훈련 재개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트 킹 하원의원(공화)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은 속일 것이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며 “미국은 한국에서 군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북한이 두려워하는 전략 자산을 전개해 실제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억제해왔다”고 지적했다. 만약 북한 정권이 동창리에서 ‘불장난’을 벌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대화를 접고 ‘화염과 분노’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수령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는 무오류(無誤謬)의 권위가 훼손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해상봉쇄 등 단호한 대응에 밀려 미사일을 쿠바에서 철수시켰다. 굴욕을 당한 흐루쇼프는 2년 후 실각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최고지도자는 한번 흠집이 잡히면 권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수령 절대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김정은이 자칫하면 흐루쇼프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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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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