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수퍼항모’로 불리는 제럴드 포드급 핵추진 항모. ⓒphoto 뉴시스
‘차세대 수퍼항모’로 불리는 제럴드 포드급 핵추진 항모. ⓒphoto 뉴시스

2016년 10월 ‘우주 전함’같이 생겼다는 미 해군 최신예 스텔스함 ‘줌왈트급’이 취역하자 우리나라 군사 매니아들 사이에선 ‘천조국(千兆國)의 위엄’이란 말이 떠돌았다. 천조국은 미 국방비가 우리 돈으로 1000조원에 육박한다 해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올해까지만 해도 미국의 국방비는 700조원대에 머물러 있어 실제 1000조원이 되려면 갈 길이 먼 듯했다.

하지만 최근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국방예산이 7500억달러(825조원)를 기록함에 따라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으면서 ‘1000조원 고지’에 성큼 다가서게 됐다.

그동안 미국의 국방비는 세계 국방비 순위 2위부터 10위까지 다 합친 것과 비슷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1위 자리를 고수해왔다. 2~10위 국가엔 중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등 쟁쟁한 군사 강국들이 망라돼 있는데도 그랬다.

지난 3월 11일 미 국방부는 올해보다 4.9% 증액된 7500억달러 규모의 2020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했다. 7500억달러 중 순수 국방예산은 7180억달러이고, 나머지 320억달러는 미 에너지부(핵무기 예산) 등 다른 기관에 편성된 예산이다.

내년도 미 정부 예산은 국방 관련 부서(보훈부·국토안보부·국방부) 예산이 증가한 반면, 비국방 관련 부서 예산은 평균 5%가 감소한 것이 특징이다. 보훈부는 7.5%, 국토안보부는 7.4%가 각각 증액됐다.

미 백악관은 이번 국방예산의 최우선 사용처를 설명하면서 북한을 ‘불량 정권(rogue regime)’이라고 언급했다. 공식 발표문을 통해 “북한과 이란 같은 불량 정권과 맞서고, 테러 위협을 물리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안정을 강화하기 위한 경쟁을 위해 국방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전력 예산 배정에도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북한 등 다른 나라들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미사일 기지를 짓는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패트릭 새나한(Patrick M. Shanahan) 미 국방장관 대행은 이번 국방예산이 ‘2018년 미 국방전략서’를 구현하기 위해 4가지 부문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 4가지 부문은 ①우주 및 사이버 영역 장악 ②지상·해상·공중 영역 지배 강화 ③첨단 군사과학기술 개발 ④전투력 강화 등이다.

순수 국방예산(7180억달러)을 기준으로 각군별로 보면 육군은 1914억달러(27%), 해군은 2056억달러(29%), 공군은 2048억달러(29%), 국방부 전체는 1166억달러(16%)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작전하는 미군 특성상 해·공군 예산의 비중이 육군보다 높은 게 특징이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운용유지비가 2927억달러(41%)로 가장 많고, 인건비1558억달러(22%), 획득비(무기도입 등) 1431억달러(20%), 연구개발·시험·평가비 1043억달러(15%), 군사건설·군숙소·기타 225억달러(3%)로 구성돼 있다.

분야별로 보면 우선 미 국방부가 최우선 순위로 발표한 우주·사이버 영역엔 237억달러의 예산이 배정됐다. 지난해에 비해 우주 분야는 10%, 사이버 분야는 15%의 예산이 각각 늘어났다.

우주 분야(총 141억달러)는 신설될 우주군 창설 및 사령부 본부 건설에 7억2200만달러, 군사위성통신 보안에 11억달러, GPS 보안 강화에 18억달러, 우주에 배치된 미사일 경보체계에 16억달러, 탄도미사일 발사대 신설에 17억달러 등이 배정됐다.

사이버 분야에도 10조원이 넘는 96억달러의 돈이 들어간다. 방어적 또는 공세적 사이버 안보 역량 강화에 37억달러, 사이버 보안 강화에 54억달러 등이다.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핵심적인 존재인 해군력 전력증강에는 347억달러의 돈이 투입된다. ‘차세대 수퍼 항모’로 불리는 제럴드 포드급 핵추진 항모 2척 건조에 162억달러, 최신형 버지니아급 공격용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102억달러, 2척의 중형 무인함정 구매에 4억4700만달러, 90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구매에 7억700만달러가 배정됐다.

577억달러가 배정된 항공 전력의 경우 F-35 스텔스전투기 78대를 비롯한 항공기 100대 구매에 139억달러, KC-46 신형 공중급유기 12대 구매에 23억달러의 돈이 각각 들어간다.

트럼프 행정부 역점 사업 중의 하나인 미사일 방어(MD) 전력 건설에는 136억달러의 예산이 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상에 배치되는 탄도미사일 요격체계 개발에 17억달러, 37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구매에 7억5400만달러, 극초음속(HGV) 탐지수단 개발에 1억7400만달러, 상승(부스터) 단계 요격수단 구매에 3억3100만달러, 고에너지 요격 수단 개발에 8억4400만달러 등이다.

70년 만에 가장 많은 예산 연구개발에 투자

이번 예산으로 알래스카의 포트 그릴리에 요격미사일 격납시설(사일로) 20개와 20발의 지상배치요격미사일(GBI)이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강조해온 ‘다영역 작전(Multi -domain Operation)’ 능력 향상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다영역 작전 능력은 미 합동군으로 하여금 육상, 해상, 공중, 우주, 사이버 등 5대 전장 영역에서의 통합작전 수행을 보장하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이를 위해 극초음무기 등 파괴력이 큰 첨단 무기 개발에 26억달러, 무인자율 무기체계 개발에 37억달러, 고에너지 무기 개발에 2억3500만달러의 돈을 투입할 계획이다.

내년도 미 국방예산을 분석한 신경수 전 주미 국방무관(예비역 육군소장)은 “전체 국방비의 15%에 달하는 1043억달러가 연구개발·시험·평가비에 할당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예산안이 승인될 경우 70년 만에 가장 많은 예산이 연구개발에 투자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첨단 군사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미래에도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군사적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분석이다.

신 예비역 소장은 새나한 미 국방장관 대리가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내년도 국방예산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적들이 우리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우리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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