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선 ‘우버’나 ‘리프트’ 같은 차량호출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 택시가 부족한 미국 대도시에서 스마트폰으로 호출하면 3~5분 내에 도착하는 우버를 이용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대부분 말 없이 목적지까지 가지만 대선 시즌이 다가오면 ‘민심 취재’ 차원에서 내가 먼저 말을 걸게 된다.

택시와 달리 우버 기사들 중엔 일찍 퇴근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학생도 있고, 최근 일자리를 잃어서 구직하는 동안 우버 기사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며칠 전 퇴근길에도 우버를 타고 오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의 자서전이 10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30대쯤 돼 보이는 우버 기사가 “이 책을 읽어봤느냐”고 물었다. 나는 영문과 한글 번역본을 두 권이나 샀지만 발췌독을 했을 뿐 전부 읽지는 않았다고 얘기했다. 그는 자기도 두 권 샀는데 다 선물용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셸이 다음 대선에 출마하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다음 우리 대화는 “지금까지 거론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 중 누가 제일 경쟁력 있어 보이나”로 옮아갔다.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둘 다 베토 오루어크 전 하원의원(텍사스주)과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주)이 제일 눈에 띈다는 데 공감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대선주자로 거론된 정치인 중엔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 같은 거물도 있지만 ‘새로운 에너지’라는 관점으로 보면 눈길이 가지 않았다. 대신 줄줄이 출사표를 던지는 신인 쪽이 훨씬 흥미로웠다.

몇 달 전 의회 근처에서 지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식당 밖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고 이 친구가 갑자기 “아, 저기 베토 오루어크다! 얼른 가서 인터뷰해봐”라고 소리쳤다. 주변이 웅성웅성했다. 의회 주변에서 그런 반응을 얻는다는 건 꽤 시선을 끄는 정치인이란 얘기다. 트럼프 시대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2020년 미국 대선은 서점에서 이미 시작됐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사람들은 일단 책을 한 권씩 쓴다. 그건 마치 “저는 이런 대통령이 되어 이러이러한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자기소개서 같은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지, 한꺼번에 소개하는 데 책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다. 유권자들이 먼저 정치인의 자기소개서인 책을 읽고 그 다음에 방송 출연한 모습이나 연설을 보면 신입사원 면접하듯 나름대로 후보를 심사할 수 있다.

이미 민주당 거물이 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오래전 ‘싸울 기회’란 책을 썼다. 일찍 결혼해 아이 낳아 키우며 살다가 공부를 시작해 법대 교수가 되고 상원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쓴 책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 유세장에서 본 워런은 연설로 대중의 피를 끓게 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그 사이 또 발전했겠지만, 이런 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서 관전자의 생각이 달라진다.

트럼프 시대에 입을 꾹 닫고 한숨만 쉬던 민주당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생기가 돈다. 트럼프 대항마를 찾아 미래의 후보들을 들여다보며 ‘새 시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선 골수 트럼프 지지자들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트럼프는 당연히 재선되고 말고”라고 외치고 있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