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photo 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photo 뉴시스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은 1958년부터 1962년 초까지 중국이 마오쩌둥 국가주석의 주도로 추진했던 공업과 농업 근대화 정책을 말한다. 마오는 이념 분쟁으로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소련의 지원 없이도 중국을 미국과 영국을 뛰어넘는 국가로 만들겠다며 철강산업 등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자력갱생(自力更生) 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수억 명(당시 중국 인구 6억5000만명)에 달하는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 대약진운동의 핵심정책이었다. 특히 마오는 철강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농민들의 식기, 농기구까지 모두 용광로에 녹여 철을 생산하게 했다. 이렇게 생산된 철들은 대부분은 쓸모없는 무쇠 덩어리였다. 또 농업 생산을 향상시키겠다며 인민공사를 만들어 농민들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했다. 그 결과 농촌은 오히려 피폐해지고 식량 생산은 더욱 나빠졌다. 대약진운동의 결과 수천만 명의 중국 국민들이 굶어죽었다. 결국 마오는 대약진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국가주석에서 물러나야 했다.

김일성도 1961년 1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자력갱생 노선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김일성이 이때 제시한 노선이 자력갱생이다. 김일성이 마오의 노선을 말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중·소 분쟁의 최대 피해자는 북한이라면서 중·소의 도움 없이 경제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이번 1차 7개년 계획(1961〜1970)이 완수되면 인민들에게 이밥(쌀밥)과 고깃국 그리고 비단옷과 기와집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북한 정권은 1차 7개년 계획조차 완수하지 못해 3년이나 연장했다. 그로부터 58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일성이 약속한 네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도 이뤄진 것이 없으며 앞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매우 낮다.

김정은이 25번이나 언급한 자력갱생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처럼 또다시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해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세력에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자력갱생이란 단어를 무려 25번이나 사용했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는 중앙위 위원(120여명)과 후보위원(100여명) 전원이 참석하는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통상 1년에 한 차례 열리는 이 회의에서 김정은이 자력갱생을 강조한 것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 해제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경제난 극복에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둘째 날 시정연설에서 ‘새로운 길’로 자력갱생을 제시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었다. 김정은은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의 입을 통해 ‘새로운 길’을 언급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를 위협했었다. 김정은이 새로운 길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과 달리 자력갱생을 주창하고 나선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확인하고 평양에 빈손으로 돌아온 김정은은 핵과 ICBM 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를 가할 것이란 점을 깨달았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를 극복하려면 자력갱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종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김정은의 이런 속내는 시정연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김정은은 “국가 근본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 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것을 자력자강의 원칙에서 해결해 나가면서 우리 식, 우리 힘으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다그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은 또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장기간의 핵 위협을 핵으로 종식한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 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이런 연설은 제재 완화에 매달리며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방식에 끌려가지도 않을 것이고, 제재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자력갱생으로 극복하자는 뜻이다.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은 1990년 김일성 이후 29년 만이다.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 ⓒphoto NK Economy Watch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 ⓒphoto NK Economy Watch

‘강계정신’의 발원지 출신을 총리로

그렇다면 김정은이 자력갱생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대북 제재에 맞서 버티기를 하겠다는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김정은은 자력갱생을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사령탑으로 김재룡 자강도 당위원장을 내각총리로 선택했다. 올 80세인 박봉주 총리가 경제 전반을 총괄하기에는 무리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김재룡 총리의 출신지가 북한 정권이 1990년대 후반 ‘고난의행군’을 극복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인 ‘강계정신’의 발원지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계는 자강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은 1998년 1월 16일부터 21일까지 자강도를 방문해 경제난을 이겨낸 강계를 치하했다. 이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98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설에서 ‘강계정신’을 통해 자력갱생에 적극 나서자고 선동했다. 김재룡은 2010년 평안북도 당위원회 비서(현 도당 부위원장)를 거쳐 2015년부터 자강도당 책임비서(현재 도당위원장)로 활동했고 2016년 5월 노동당 중앙위 위원에 오른 것 외에 알려진 것이 없는 인물이다. 김정은이 변방 중 변방인 자강도를 맡고 있던 김재룡을 총리로 발탁한 것은 현 상황에서 대북 제재를 버텨낼 수 있는 21세기판 강계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자강도는 산지가 전체 면적의 98%를 차지할 정도로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은 자강도 곳곳에 지하 갱도를 파고 군수공장들을 대거 배치해왔다. 김재룡은 지난 3년간 자강도 당위원장으로서 전력 확보에 성과를 내면서 김정은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재룡의 발탁은 군수산업에서 쌓은 경험을 민간 경제에도 적용해 자력갱생을 도모해보겠다는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앞으로 군수공장들을 어느 정도 민수공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자력갱생을 외치더라도 장기적으로 제재조치를 버틸 수 없기 때문에 군수공장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또 전문 경제관료를 대거 전진배치했다. 이번에 새롭게 구성된 정치국 후보위원 전체 보선자 6명 중 조용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제 관련 엘리트들이다. 김정은은 이와 함께 시·도 인민위원장들도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승진시켰다. 이들을 앞세워 자력갱생을 독려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이 인적 교체를 통해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는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북한 경제가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국가 소유인 북한의 경제구조에서는 당 간부들은 물론 노동자들도 혁신을 하거나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자력갱생을 독려하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오와 김일성이 자력갱생을 주장했던 것은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싸워야 하는 유격대 생활을 통해 버티기를 하면 최소한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제 문제를 자력갱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자력갱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풍부한 자원과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생산시설은 물론 전력과 각종 부품 등 생산에 필요한 지원 수단 등이 마련돼야 한다. 게다가 기술과 경험을 갖춘 노동력도 있어야 한다. 또 공장 운영과 유통 및 노동자들에 지급할 임금 등 자금도 있어야 한다. 낙후한 생산시설, 부족한 전력과 원자재 등 내부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자력갱생 방식으로 총제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이 자력갱생을 또다시 주장하자 실현성 없는 구호 놀음에 지겹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무엇 하나 갖춘 것이 없는데 무엇으로 자력갱생하자는 것이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탈북자들이 밝혔다. 북한 주민들은 지난 수십 년간 자력갱생을 되뇌어 왔지만 언제 진정한 자력갱생을 한 번이라도 이룩한 적이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상당수의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했고 그나마 가동 중인 공장들은 대부분 중국의 설비 투자와 자재, 기술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장마당에는 중국 상품이 넘쳐나고 있고 유통되는 화폐조차 중국 위안화인데 자력갱생은 어처구니없는 구호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한 낡은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photo Alexander Belenkiy
북한의 한 낡은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photo Alexander Belenkiy

4월부터 ‘절량세대’ 이미 발생

실제로 북한 경제는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의 농촌 지역 일부에서 지난해 분배받은 식량이 벌써 바닥난 이른바 ‘절량세대’가 발생했으며 심각한 기아 징후까지 나타나고 있다. 절량세대는 분배된 것을 다 소비해버리고 먹을 곡식이 없는 세대를 말한다. 일본의 북한 전문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절량세대는 해마다 6월 말이나 7월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4월 초부터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4월 12일자) 아시아프레스는 어떤 농장에서는 4월 초 현재 20일 정도의 예비용 곡물밖에 남지 않아서 농민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형편이라면서 농민들이 기아에 가장 취약한 이유는 집단농업을 고집하는 북한 정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아사한 1990년대 고난의행군이 다시 닥쳐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와 밀수 차단을 위해 북·중 접경지역에서 최첨단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도입한 ‘5G 검문소’를 설립할 계획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의 국경경비대가 지난 3월 23일 중국 최대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中國移動)과 계약해 최초로 5G 검문소를 짓기로 했다고 보도했다.(4월 9일자) SCMP는 북·중 접경지역 지안(集安)과 가까운 윈펑(雲峰) 검문소에 5G 검문소가 세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곳은 식량과 각종 상품 등의 밀수가 주로 이뤄지는 지역이다.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는 북한의 식량 사정 악화 상황에 따른 대규모 탈북자 발생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군사 전문가 저우천밍은 “북한이 현재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고 있기 때문에 올여름 대규모 난민이 중국 국경을 넘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2018년 대중 수출은 2억1300만달러로 2017년(17억3100만달러) 대비 87.7% 감소해 거의 붕괴 수준이다. 경제성장률도 2017년 -3.5%, 2018년 -5%(추정)를 기록하는 등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2018년에는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면서 북한 주민들은 제재조치가 풀릴 것이란 기대심리가 있었지만 지난 2·28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아예 희망조차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평양의 아파트 가격(입주권)은 반토막 났다. 철광석 단지인 무산광산에는 물이 차오르고, 김책제철소는 중국산 코크스 수입이 막히면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올 들어 주요 국영기업들도 부품과 자재 부족으로 속속 가동 중지됐다고 한다. 북한의 공장 가동률은 대부분 30%에도 못 미친다. 또 의류·임가공 수출이 막히면서 경공업 분야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게다가 김정은이 보유한 통치자금 50억달러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의 ‘39호실’ 산하 무역회사들도 제 기능을 못하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무역회사를 통해 돈을 벌었던 평양 내 고위층과 부유층의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북한 장마당의 밀가루·설탕·식용유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또 대북 제재가 강력하게 이행되면서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 북한이 비공식적으로 외화를 구할 통로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북한은 대중 무역적자와 관련 없이 밀거래 등 비공식적으로 유입되는 외화를 바탕으로 수입을 꾸준히 늘리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이런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대북 제재의 구멍이 좁아지면서 공식적인 교역 이외에 다양한 경로로 북한에 들어가던 외화가 실제로 줄어들고 있다. 북한이 외화를 벌어들이던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취업비자는 올해 말 만료된다. 노동신문이 3월 21일자 정론에서 “물과 공기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면서 “한 방울의 기름, 한 와트의 전기, 시멘트 한 그램, 나무 한 토막도 소중히 하자”고 주장한 것도 북한의 경제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경제 전문가 윌리엄 브라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제재로 인해 북한이 매우 큰 문제에 봉착해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면서 “자력갱생으로 이를 돌파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물과 공기만으로 버티겠다는 김정은의 허황된 자력갱생 노선으로 북한 주민들만 ‘제2의 고난의행군’이라는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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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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