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0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photo 뉴시스

북한 김정은은 통치 8년 차를 맞이하여 지난 4월 10일 열린 조선노동당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와 다음 날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차 1기 회의에서 당 노선과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특히 이번 회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베트남 하노이 회담(2월 27~28일) 결렬 이후 김정은이 단행한 권력재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북한의 이번 권력재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 권력구조의 특수성부터 이해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 체제는 이른바 수령 유일 영도체제, 즉 수령 절대주의 폭압체제이다. 수령(首領)의 직접 영도하에 당(조선노동당)이 군(조선인민군)과 정(입법·행정·사법)을 지도하는 체제이다. 북한에 의하면 수령은 ‘혁명의 최고 뇌수(腦首)’이며 ‘위대한 최고 영도자’ ‘최고 존엄’으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게만 부여된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호칭이다. 김정은은 수령의 지위를 누리며 북한의 3대 권력 기둥인 당(조선노동당 위원장)·군(무력 최고사령관)·정(국무위원장)의 최고 직책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은 이번 당 전원회의에서 당의 핵심부서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 당 부위원장(구 당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 부장과 제1부부장 및 지방 당인 도당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큰 폭의 개편을 단행하였다. 또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이른바 국가지도기관이라는 최고인민회의(입법부), 내각(행정부)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담긴 핵심 내용과 의미는 과연 뭘까.

김정은 실질 권력의 제도화

우선 당연한 결과이지만 김정은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에 재추대되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북한 헌법에 의하면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최고령도자(100조)이며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102조)하게 되어 있다. 이번 권력재편 이후 북한 언론매체에 등장한 김정은의 직책 호칭이 이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으로 바뀐 것에 일부 전문가들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이 2009년에 개정된 북한 헌법에 이미 반영된 표현임을 감안할 때 특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직 헌법 개정 사항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 헌법 제117조에 규정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는 조항에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부분을 헌법 제100조나 제103조의 국무위원장의 임무와 권한에 추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김정은이 실질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북한의 최고영도자임을 각인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명목상 북한을 대표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권한을 ‘국무위원장’(김정은)에게 돌려놓아 실제화하려는 것이다.

최룡해의 약진도 주목된다. 이번 인사에서 최룡해(1950년생)는 기존의 직책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에다 신설된 ‘국무위원회 제1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직책을 추가했다. 최룡해는 김일성 시대에 인민무력부장(현 인민무력상)을 역임한 최현의 둘째 아들로 군의 핵심 직책인 총정치국장을 이미 역임한 바 있다. 최룡해는 직책으로만 보면 북한에서 김정은 다음가는 제2인자로 보여진다. 일부에서는 최룡해 부상을 놓고 김정은이 그에 의존하여 북한을 통치하는 것으로 해석하나 이는 북한 권력구조의 속성을 모르는 분석이다.

현재 최룡해가 김정은의 최측근임은 분명하나 수령절대주의 권력구조하에서 실세나 제2인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 실세같이 보였던 최룡해도 2015년 11월 철직되어 함경도 소재 협동농장에서 ‘혁명화교육’을 거친 다음 2016년 12월 복권된 바 있다. 최룡해의 승승장구는 권력장악과 통제에 대한 김정은식 자신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군수경제일꾼과 정치일꾼의 발탁

내각총리에 전격 발탁된 김재룡도 관심거리다. 그는 공개된 경력으로는 2010년 평안북도 당 위원회 비서, 2015년 자강도당 책임비서(현 도당위원장)로 활동한 것이 전부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올해 열린 제14기에 처음 진출하였다. 일부에서는 그를 중앙에서 일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지방 당 관료 출신이라고 소개하나, 당 중앙위에서 책임지도원급으로 활동하다 지방 당 비서로 내려간 인물이다. 나이가 60대 초반으로 80세의 전임 박봉주 총리에 비하면 세대교체의 성격이 강하며 발탁인사라 할 수 있다. 원래 자강도당 위원장은 군수공장과 기지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 특성상 주로 군수공업 분야의 전문가들이 배치되는 자리다. 전 자강도당 책임비서였던 박도춘도 이후 당 군수공업부장 및 당 군수담당 비서를 역임한 바 있다. 1992년 연형묵도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있다가 총리로 발탁된 전례가 있다. 일부에서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돌파구로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발전노선’을 채택함에 따라 ‘경제일꾼’을 발탁한 것이라 해석하나, 정확히 말하면 ‘군수경제일꾼’의 발탁이다.

군수경제일꾼들로는 김재룡(내각총리) 외에도 리만건(당 정치국 위원·당 부위원장), 조춘룡(당 정치국 후보위원·제2경제위원장), 태종수(당 중앙군사위원·당 부장), 강봉훈(자강도 당 위원장) 등이 있다.

특히 대표적인 군수일꾼인 리만건이 정치국 위원에다 당 부위원장, 당 부장, 당 군사위 위원, 국무위 위원까지 꿰찬 것은 최룡해 다음가는 측근으로 부상하였음을 보여준다. 그가 행사서열에서 선전선동부장에 앞서 호명된 것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조직지도 업무가 아닌 당·군·정의 군수 업무를 총괄하도록 하고 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조직지도 업무는 공석으로 두고 김정은이 직할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군수경제일꾼을 내세워 자력갱생과 무력시위로 미국과 서방세계에 저항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번 권력재편에선 정치일꾼들도 발탁됐다. 정치일꾼이란 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나 북한군의 핵심부서인 총정치국 출신으로 이른바 당과 군에서 조직지도사업에 종사한 자들을 의미한다. 정치일꾼 중 당 조직지도부 출신으로는 당 정치국 위원에 임명된 최휘(당 부위원장), 박태덕(당 부위원장), 김수길(북한군 총정치국장), 정경택(국가보위상), 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임명된 조용원(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발탁된 박태성(전 평남도당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김능오(평양시당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자격심사위원장 김평해(당 부위원장), 자격심사위원 손철주(전 항공 및 반항공군-공군 정치위원), 강필훈(전 인민보안성 정치국장) 등이 있다.

원로그룹 김영남 등의 퇴진도 주목된다. 김영남은 올해 90세로 1998년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에 선출된 후 31년간 명목상 국가수반 역할을 해오다 이번에 최룡해로 교체되었다. 그동안 원로로 우대해온 최태복(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주(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최영림(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 김기남 등도 이번에 완전 퇴진하였다. 다만 전 내각총리 박봉주는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에 임명되었고 행사 서열에서도 ‘김정은-최룡해-박봉주-김재룡’ 순으로 호명되고 있어 아직 원로로서 우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통일전선부장의 교체와 최선희 및 김조국의 등장은 특히 눈여겨봐야 한다. 통일전선부장에 장금철(통전부 부부장)을 전격 발탁한 것은 군 출신인 김영철이 장악했던 통전부를 대남공작 전문가에게로 환원시킨 것이다. 오랫동안 통일전선부에서 해외교포공작과 대남공작 업무를 수행해온 장금철의 전문성을 감안한 조치라고 판단된다. 김영철은 통전부장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숙청당한 것은 아니다. 당의 대남담당 부위원장과 국무위 위원으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최선희(1964년생)는 김정은의 전폭적 신임을 바탕으로 외무성 국장-부상-제1부상까지 승진했다가 이번 인사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까지 발탁되었다. 이는 대미업무 등에 대해 상당한 위상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무위원회에 외교일꾼만 3명(리수용 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포진시킨 것은 향후 김정은이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이다.

이번 인사에서 처음 등장한 김조국이 일약 당의 핵심 직책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과 당 제1부부장(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으로 추정, 전임자 김경옥 역할)에 발탁된 것은 이름이 가명이 아니라면 김정은의 혈족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북한의 일반 관료들처럼 밑바닥부터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 아니라 낙하산식으로 전격 내리꽂은 인사이이기 때문이다.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번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의정보고를 통해 미·북 회담의 취지를 밝히며 ‘자력갱생과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을 당의 확고부동한 정치노선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 후 미국을 굴복시켰다고 기고만장했던 김정은이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미국 등 서방세계의 대북 제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의 타개책으로 자력갱생의 기치를 내세운 것이다. 김정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러시아 다음은 대일 보상금 카드?

이 대목에서 필자는 북한이 위기 국면 때마다 내세우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구호를 떠올린다.

북한 노동신문은 하노이 회담 이후 현재까지(2월 28일~4월 24일) 무려 32건의 기사에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인 보도가 지난 4월 20일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란 노동신문 정론이다. 이러한 논조는 2차 미·북 회담(하노이 회담)에서 대북제재를 면해보려 했던 김정은의 의도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거부당하자 향후 지속될 강력한 대북제재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다. 미국 등 서방세계의 지속적 대북제재 국면에서 단기적으로는 자력갱생 노선이 경제위기와 주민 불만을 얼마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력갱생 노선만 가지고 장기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북한식 표현으로 ‘제3차 고난의 행군’ 시기가 곧 도래할 전망이다. 지속적이며 만성적인 경제 위기는 곧 정권 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최근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상징조작 구호로 내세우고 있으나 약발이 언제까지 갈지는 의문이다.

김정은이 대북제재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고 살길은 조속한 북핵 폐기와 개혁개방이다. 그러나 이를 채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경제 위기 돌파 카드는 자력갱생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의 우호관계 강화 및 지속적인 경제 지원 확보이다. 지난 4월 25일 김정은이 급거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것도 이의 일환이다. 다음 카드로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빌미로 아베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보상금을 받는 방법도 만지작거릴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믿는 최후의 유용한 카드는 (위장)평화와 민족공조에 환호하는 문재인 정권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은 자칭 평화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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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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