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1일 한국수출입은행은 조직 감축과 함께 리스크 관리, 여신심사 시스템 강화 등 자구노력 이행 등을 담은 23개의 ‘한국수출입은행 혁신안’을 발표했다. ⓒphoto 뉴시스
2016년 10월 31일 한국수출입은행은 조직 감축과 함께 리스크 관리, 여신심사 시스템 강화 등 자구노력 이행 등을 담은 23개의 ‘한국수출입은행 혁신안’을 발표했다. ⓒphoto 뉴시스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이 2016년 이후 2년 넘게 추진해온 23개의 고강도 혁신안이 최종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수은은 지난해 말 “23개 혁신안을 모두 이행했다”며 자축했지만 최근 핵심 과제 중 하나를 철회하며 ‘아쉬운 뒷맛’을 남기게 됐다.

수은은 2016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1조500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건전성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거셌고, 수은은 2016년 10월 총 23개 과제로 구성된 ‘수은 혁신안’을 선보였다.

‘수은 혁신안’에는 역대 최대 규모 적자의 계기가 됐던 부실여신에 대한 재발방지와 함께 고통분담을 위한 자구노력, 정책금융으로서의 기능 제고 등을 위한 대책이 담겼다. 수은은 추가적인 부실여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리스크관리위원회를 강화하고 여신 심사체계를 정비하는 한편 신용공여 한도를 축소하는 안을 내놓았다.

수은이 내놓은 23개 혁신안은 무엇보다 ‘몸집 줄이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혁신안에 담긴 ‘조직 슬림화’를 위한 방안은 가히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당시 수은은 2018년까지 9개의 본부를 7개의 본부로 축소하는 안과 함께 국내 지점과 출장소를 30% 감소하는 안을 내놓았다. 또 해외사무소를 10% 축소해 총 25개에서 22개로 줄이는 안을 2020년까지 시행하기로 했다. 이 외에 고통분담을 위한 자구책에는 정원 5% 감축, 임원 연봉 삭감 및 직원 임금인상 반납, 사택 전량 매각 등의 방침과 함께 부행장 8명 축소, 팀장급 이상 관리자 수 10% 감축안도 담겼다.

이 같은 노력은 꽤 효과를 봤다. 수은은 고강도의 혁신안을 이행하면서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이듬해인 2017년엔 1700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차곡차곡 혁신안에 담긴 과제를 풀어가면서 자신감이 쌓여서일까. 수은은 지난해 12월 말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23개 혁신안 이행 완료’를 당당하게 선언했다.

수은은 해양·구조조정본부를 폐지하는 한편 창원·구미·여수·원주 등 4개의 지점 및 출장소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며 ‘조직 슬림화’에 속도를 냈다. 이는 2016년 경협총괄본부와 경협사업본부를 경제협력본부로 일원화하는 본부 통폐합에 이은 두 번째 ‘조직 슬림화’ 조치였다.

4개 지점·출장소 폐쇄 방침 결국 철회

하지만 23개 혁신안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2020년이 코앞에 다가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폐쇄가 예고된 지점과 출장소가 위치한 지역사회와 경제단체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셌던 것이다. 수은의 4개 지점 및 출장소 폐쇄 결정이 발표된 이후 해당 지역의 단체장과 상공회의소 등은 이를 철회해달라는 요지의 건의서를 정부와 수은 측에 지속적으로 보냈다.

정치권의 반대 또한 강력했다. 지점 폐쇄가 예고된 지역이 경남 창원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경남 창원과 통영은 지난 4월 3일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진 곳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를 의식한 여야 정치권 모두 수은의 지점 폐쇄 방침에 맹공을 퍼부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5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지점 폐쇄로 얻는 비용절감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더 크다”면서 한목소리로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최근 조선업이 살아나고 있는데 창원지점 폐쇄는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며 “지역과 상황 변화를 무시하고 무리한 혁신안을 강행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엄용수 의원 역시 “창원지점이 폐쇄하면 47개 거래기업, 9300여명의 종사자가 불편을 겪게 된다”며 “수은이 국책은행으로서 고유 목적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의원들의 질책으로 수은은 4개 지점·출장소 폐쇄 방침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고 결국 지난 4월 23일 폐쇄 방침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수은 측은 “지역경제가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기업 동반자’로서의 역할과 지역균형발전 등 공공성 강화 노력이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수은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 업무보고에서도 (폐쇄 방침에 대한) 재검토 요청이 있었고 각 지역구 의원들도 계속 경영진을 불러 철회를 해야 한다고 (지역민의) 의견을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수은이 혁신안 이행을 위해 지점을 폐쇄하면서 얻는 비용절감 효과보다 지역경제의 타격이 더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3년 전 정치권에선 수은의 경영정상화를 요구하며 자구책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거셌다. 1조원이 넘어서는 적자를 낸 뒤에 혁신안이 나온 것을 두고 뒤늦은 수습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경제여건이 달라졌다며 혁신안 이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역사회에선 수은의 지점 폐쇄안의 철회를 환영하고 있지만 국책은행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은이 2020년까지 마무리 짓기로 한 해외사무소 축소 방침 또한 번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수은의 조직 슬림화 방안이 한 차례 무산된 적이 있기에 나머지 혁신안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은은 지난해 모잠비크 마푸토사무소 문을 닫은 데 이어 올해와 내년 각각 터키 이스탄불사무소와 가나 아크라사무소를 폐쇄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가나 정부의 항의로 인해 해외사무소 폐쇄안에 대해서도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가나의 경우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수원국으로 수은은 기재부로부터 기금을 위탁받아 운용·관리하고 있다. 가나 정부에서는 기금 지원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외교부를 통해 사무소를 철수하지 말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경우도 국내 기업의 인프라 투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철수 반대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이에 대해 수은의 관계자는 “현재 4개 지점·출장소 폐쇄안을 철회한 것 외에는 다른 추가 방침이 정해진 게 없다”며 “안건별로 마무리 시점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지점과 해외사무소를 폐쇄하는 안을 제외한 나머지 22개 혁신안은 계획 그대로 모두 이행한 상태다. 앞으로도 국민과 약속한 혁신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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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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