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주년인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진과 청와대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왼쪽부터 김수현 정책실장, 고민정 대변인. 문 대통령 뒤로 조국 민정수석이 보인다. ⓒphoto 뉴시스
취임 2주년인 지난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진과 청와대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왼쪽부터 김수현 정책실장, 고민정 대변인. 문 대통령 뒤로 조국 민정수석이 보인다. ⓒphoto 뉴시스

원래 대통령의 말들을 해부해볼 참이었다. 현 상황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사 말이다. “거시적으로 한국 경제 크게 성장했다”(5월 9일), “한국 경제 성공으로 나아가는 중”(5월 14일), 가장 최근 발언만 봐도 이 정도다. 언급하기 새삼스럽지만, 한국 경제는 올해 1분기를 기준으로 16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해외의 시선도 차갑다. OECD부터 무디스, 골드만삭스까지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낮췄다. 노무라금융투자는 애초 2.4% 전망을 1.8%로 낮췄다.

대통령의 어록을 작성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발언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어디에서 올까. 맹시(盲視)일까, 무시(無視)일까. 맹시는 어떤 것을 보고도 인지하지 못하는 걸 뜻한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냉철히 그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36개월이나 남아 있어서다. 문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 탄핵을 청원하거나(5월 16일 현재 15만명 서명), ‘특정 질병’을 언급하는 건 별 실익이 없어 보인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문 대통령을 만난 이들을 접촉했다.

지지층만을 상대하는 거래적 리더십

최근 대통령학 연구는 대통령의 성격과 통치 스타일의 연관관계를 대상으로 삼는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대통령 취임 이후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버지가 북한에서 내려왔다. 정착 과정에서 치열하게 경쟁했을 거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비주류로 인식하며 기득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 권력의 핵심에 있는데도 주류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 소득주도성장도 사실 같은 논리다. 주류의 정책이었던 성장주도 정책과 차별화하겠단 얘기다. 정치 권력뿐 아니라 경제 권력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문재인 리더십의 첫 번째 특징, 자신을 비주류로 의식하는 비주류 정체성이다.

두 번째 특징은 방향이 좋으면 방법이 서툴러도 상관없다는 내적 논리다. 수단 가리지 않고 목적 달성을 중시하는 이른바 ‘운동권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김 교수의 말이다. “국정 운영엔 방향, 방법, 속도 이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뭔가 잘 안 돌아가면 일반인이라면 셋 중 하나라도 바꾼다. 이 정권은 아니다. 수정하는 건 기득권의 방식이라며 무시한다. 방향이 옳으면 방법이 서툴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 정부의 치명적 약점이다. 문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좋다고 거듭 말하지 않나. 목표가 좋으니 성과도 좋을 거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거다.”

대통령 리더십의 스타일을 규정하는 틀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변혁적 리더십인가 거래적 리더십인가’라는 구분이다. 변혁적 리더는 강한 도덕성과 신념으로 조직에 비전을 제시해 변화를 가져온다. 넬슨 만델라가 전형적인 예다. 오랜 탄압 끝에 정권을 잡았는데도 백인 부통령을 세웠다. 진실은 밝히되 화해를 하자며 복수의 사슬을 제 손으로 끊었다.

이는 거래적 리더십과 대비된다. 거래적 리더는 부하들에게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을 제시해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십이다.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아니라 단기적인 과제를 제시하고 보상을 주는 식이다. 대통령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면 자기 지지층만을 상대로 니 편 내 편 갈라 선거 치르듯이 통치하는 리더십이다. 김 교수의 말이다. “이번 정권이 강해 보일까.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지지층에서 미움받을 용기가 없다. 민주노총이 국회 담장을 넘고 경찰을 폭행해도 아무 말 못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며 한·미 FTA를 체결했고, 이라크에 파병했다. 해양대국 만들겠다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도 강행했다. 대연정도 제시했다. 자신감이 있었던 거다.”

내향적이고 폐쇄적… 박근혜와 비슷

함성득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이사장은 외향성·내향성으로 리더십을 판단한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이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이다. 열린 사회(Open Society)에서는 지도층에 외향적인 사람이 많이 나온다. 약점이 드러나도 자신만의 어젠다(Agenda·의제)를 던져 선거에서 이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형적인 예다. 반대로 실제보단 체면을 중시하고 부조리, 위선이 많은 사회에선 내향적인 사람이 지도층에 많이 올라간다. 내향적인 사람은 신중하고 말수가 적다.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니 성공하는 거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은 정치를 해야 한다. 야당과도 소통해야 한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오히려 내향적인 지도자가 많이 나왔다. 내향적인 사람은 정치를 싫어한다.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한다.”

함 이사장이 정리한 전·현직 대통령의 성격 비교를 보면 외향성과 개방성에서 ‘탈제왕적’ 대통령 중 유독 두 사람의 점수가 비슷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비슷한 정도로 내향적이고 폐쇄적이다.<23쪽 표 참조> 융이 제시한 외향형·내향형을 쉽게 묘사하면 이렇다. 외향형은 사교적이고 개방적이다. 자신이 사는 사회나 타인에게 관심이 있고 객관적인 여건이나 사실관계에 주목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내향형은 휴식을 위해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색하는 걸 택한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다. 자칫 페쇄적으로 보일 수 있고 속을 알 수 없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향형이라는 평가는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으로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과 함께 근무했던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의 말과도 일치한다.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한 번도 그의 의견을 들은 적이 없다. 의미 있는 대화 자체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는 함성득 이사장의 ‘인간 문재인’에 대한 평가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겸손하고 침착하게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준다. 다만 이미 자신의 생각이 정리된 사항이거나 자신이 발언한 부분에 대해서는 답답할 정도로 융통성이 부족하다. 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그가 너무나 진지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경청해서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영향력은 전혀 없었던 경우가 많다.”

태도를 보면 경청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단 얘기다. 지난 5월 2일 문 대통령은 사회 원로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여기에 갔던 원로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해 강하게 얘기했다. ‘하시는 일이 정의롭긴 한데 성과 없는 건 바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정권에 치명타가 됩니다.’ 대통령은 말이 없더라. 막판에 ‘최저임금, 주 52시간 노동으로 사회적 갈등이 있겠지만, 더 큰 틀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야 한다’고 잘라 말하더라. ‘내 갈 길 가겠다’는 거란 감이 확 왔다.”(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적폐청산 피로증이 심하다”고 말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에게는 “살아 있는 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갔다.

몇몇 원로의 의견엔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원자력 연구는 정말 중요하다. 애써 길러놓은 학자들이 다 외국에 가버렸다. 탈원전은 대단한 실패다.”(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우식 연세대 창의공학연구소 이사장) “대통령께서 다음 주 미국에 가신다는데 보수들이 걱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북한을 만나달라 말하기 위해 가시는 것 같은데, 남북 회담에 대해서도 보수 쪽에서 걱정이 많다. 남·북·미 정상회담이라도 해서 보수들의 걱정을 덜어주면 어떤가.”(정운찬 전 총리)

경제학자인 정운찬 전 총리는 간담회에서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은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론이란 말을 대통령이 직접 했는데, 그런 말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역시 별 답이 없었다고 한다. 참석했던 원로 A씨의 말이다. “업무 파악이 안 된 것 같았다. 간단한 질문일수록 답을 못 하더라. 오히려 긴 질문에는 답을 한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길게 하는 식이다.”

그는 원로초청간담회란 형식 자체에 냉소를 보냈다. “안 가면 괜한 오해 살까봐 갔다. 그렇게 여러 명이 앉아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 쉽지 않다. 서로 의식하게 된다. 대통령이 정말 진지한 토론을 원했다면 한 사람씩 불렀어야 했다. 반론도 하고 보충설명도 듣는 식으로 말이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최근의 문 대통령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 전 대표의 말이다. “2년이 지났으니 자신이 뭐가 잘못된 건지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하는데…. 한 달에서 한 달 반 지나면 상황이 분명해질 거다.” 한 달 후엔 2분기 경제 성적표가 나온다.

노무현 때는 있었던 강한 참모의 부재

대통령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번째 요소가 대통령의 리더십이라면 두 번째 요소는 참모진이다. 좋은 참모진을 만나면 대통령의 성격적 단점이 보완된다. 내향형 지도자는 이미 생각이 정리된 이슈에 대해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다. 논리로 무장한 강한 참모가 필요한 이유다. 노무현 정권을 돌아보면 비교적 강한 참모들이 여럿 있었다. 김병준 당시 정책실장은 시장경제를 바라보는 노 대통령의 시선에 조언을 던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후반기 한·미 FTA 체결, 노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한 것도 그 덕이 클 터다. 대통령과 마주 앉아 맞담배를 피며 정국 현안을 논했던 유인태 정무수석도 곁에 있었다. 외교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윤영관 장관도 떠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에겐 직언을 하는 참모가 있었을까.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정도가 떠오르지만 그 역시 박 대통령을 어려워했다. 생전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쓴소리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이 있을 땐 메모로 정리해 책상에 놓고 나왔다.” 내각의 몇몇 장관들은 대통령에게 팩스로 의견을 보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의 참모들은 어떨까. 일단 규모는 크다. 대통령 비서실의 올해 예산은 937억원. 작년보다 38억원이 늘었다. 인원으로 보면 비서실, 국가안보실, 경호처 합해 1000명 선이다. 비서관만 봐도 500여명이나 된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이래 최대 인원이다.

규모뿐 아니라 영향력도 크다. 국정 운영 전반에 청와대가 앞장서 있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박상훈 정치학 박사는 지난해 낸 책 ‘청와대 정부’에서 이런 우려를 했다. ‘청와대 수석들의 최대 관심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를 관리하는 데 모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협하는 집권세력 내부의 불만과 갈등을 차단하는 권력 통제 기능에 전념하게 되는 일도 피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민을 앞세우고 여론조사에 매달리는 정부 운영을 심화시킨다.’

왜 노영민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에 ‘좋은 지표 알리기 태스크포스’(가칭)까지 만들며 여론 환기에 매달리는지 이해가 된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경제 정책을 보자. 최근 경제학계엔 흥미로운 논쟁이 불붙었다.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서강학파’와 ‘학현학파’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이다.

‘서강학파’는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들이 주축인 학자, 관료들의 모임이다. 성장과 분배 중 성장에 무게중심을 둔다. ‘학현학파’는 학현 변형윤 교수를 따르는 서울대 출신 경제학자와 관료들의 모임이다. 분배를 중시한다. 변 교수는 분배경제학을 가르쳤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 참모진으로 바로 이 학현학파가 여럿 활동 중이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비서관이 대표적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강신욱 통계청장,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도 모두 학현학파다. 학현학파에선 ‘기업들이 이익이 늘어난 것에 맞춰 근로자의 임금이 늘어나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임금을 올리면 경제가 더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서강학파 교수들은 이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이를 통계 분석으로 증명하자는 게 이번 논쟁의 시작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가계의 임금과 소득을 올리면 소비와 투자가 늘고, 그러면 기업의 수익도 늘어난다. 다시 임금이 상승한다. 선순환이 이어지며 다 같이 행복해진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도 ‘임금주도성장’이란 명칭으로 언급된 ‘족보 있는’ 경제 이론이다.

사실과 다른 얘기는 참모들의 책임

그런데 문제는 임금주도성장이 개방 경제에선 적용이 안 된다는 거다. ILO 보고서(Wage led growth: Concept, theories and politics)에도 쓰여 있다. 이유는 이렇다. 임금은 근로자에겐 수입이지만 기업엔 비용이다. 임금을 올리면 원가가 올라가고 수출 경쟁력이 약해진다. 외국의 다른 기업들이 그 틈새를 치고 들어오면 최악의 경우 기업은 망하고 근로자는 실업자가 된다. 해당 보고서는 ‘임금주도성장 정책이 유효하려면 전 세계 기업들이 동시에 다 같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명박 정권에서 정무수석을 했던 박형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도 참모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통령 메시지에서,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계속 나오지 않나. 참모들의 책임이다. 근본적으론 권력의 이너서클(핵심세력)이 얼마나 국정을 이끄는 실력과 비전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인데 현 정권은 이게 부족해 보인다.”

박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정치에 뛰어든 계기나 비전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있다. 박 대통령은 1994년 인터뷰에서 “내 삶의 목표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죽음 이후 ‘운명’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직언을 할 참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같다. 중요한 점은 누가 어떤 점이 같냐는 게 아니라 어떻게 대통령 리더십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느냐다. 현재의 참모진을 생각이 다른 합리적인 참모진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조국 민정수석을 교체하느냐 마느냐를 정권 변화의 바로미터로 보는 이유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는 변하지 않는다. 이 정권의 성공을 위해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김형준 교수는 ‘결국은 선거’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여당이 지면 당내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대통령의 힘이 빠진다. 어쩔 수 없이 바뀌는 거다.”

역대 대통령을 봐도 총선에서 지고, 여론조사 지지도가 30%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하면 변화하려는 몸짓을 보였다. 지금 야당에서는 문 대통령이 국민을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문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면 그를 싫어해야 한단 얘기다.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