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5월 9일 평북 구성에서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명백한 탄도미사일임에도 국방부는 탄도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북한이 지난 5월 9일 평북 구성에서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명백한 탄도미사일임에도 국방부는 탄도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작년 2월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KN-02 개량형이 미사일입니까? 아니면 방사포입니까?”(기자)

“그것은 확인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합참 관계자)

“아니 국방백서에도 나와요. KN-02의 성격이 뭔지.”(미사일이라 나와 있음) (기자)

“국방백서에 나와있는 대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합참 관계자)

지난 5월 7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 5월 4일 북한이 원산에서 발사한 ‘발사체’의 정체가 미사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기자들과 국방부·합참 관계자 사이에 지리한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합참은 기자들에게 알린 첫 문자에서 ‘미사일’이라고 했다가 그 뒤엔 ‘발사체’로 수정해 논란을 초래했다. KN-02는 북한이 구소련의 SS-21 탄도미사일을 모방해 만든 최대 사거리 120~200㎞ 안팎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당초 지난해 2월 열병식에 신형 미사일이 등장했을 때 KN-02 개량형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온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지난 5월 9일 북한이 평안북도에서 발사한 것에 대해선 ‘단거리 미사일’로 인정했지만 탄도미사일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분석 중’이라며 공식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지난 5월 4일 발사체에 대해선 열흘이 넘은 5월 16일 현재까지도 ‘분석 중’이다. 5월 4일과 9일 발사체의 외형이 똑같은데도 말이다.

미사일은 비행 방식에 따라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로 나뉘는데 탄도미사일이 아니면 순항미사일이라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5월 4일과 9일 발사한 것은 순항미사일이 아니라 탄도미사일이 맞는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방부는 5월 4일 발사체에 대해 미사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방부의 이런 태도가 말장난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미사일과 로켓의 가장 큰 차이는 유도장치가 있느냐 여부다.

로켓 중에도 유도장치가 붙어 있는 것이 있지만 대체로 유도장치가 붙어 있으면 미사일로 분류된다. 때문에 군내에선 미사일을 유도무기로 종종 표현한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각종 국산무기를 소개한 ‘THE WAY-강한 책임국방을 향한 길’ 책자에서도 국산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가 탄도미사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KTSSM은 북한 장사정포 등을 1~2m의 오차로 정밀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로 최대 사정거리는 150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지난 5월 4일과 9일 발사한 미사일(발사체)의 비행거리 240~420㎞보다 짧은데도 탄도미사일로 분류돼 있는 것이다.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바꿔 말하면 신형 전술미사일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국방부가 이번 사안에서 자가당착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정황 증거의 결정판은 지난 1월 발간된 ‘2018 국방백서’다. ‘2018 국방백서’에는 ‘북한이 개발 또는 보유 중인 탄도미사일’ 14종이 모형 그림과 함께 사거리별로 분류·표기돼 있다. 백서는 스커드-B/C와 신형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등 두 종류를 300∼1000㎞의 SRBM(단거리) 탄도미사일로 분류했다.

백서에 표기된 신형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그림은 북한이 지난 5월 4일과 9일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와 꼭 빼닮았다. 국방부는 신형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탄체(彈體) 중간과 하단 부분에 미사일을 지지하는 연결고리를 각각 표시했다. 전문가들은 “국방백서에 표기된 신형 고체연료 단거리 탄도미사일 그림은 북한이 발사한 이스칸데르급 미사일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방백서에 포함된 것은 신형 미사일이 지난해 2월 북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이후 군 내부 분석을 통해 평가한 것”이라며 “이 미사일이 지난 5월 4일과 9일에 발사된 것과 같은 것인지, 연관이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선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런 설명은 군색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방백서에 포함된 북 미사일 정보는 한·미 정보 당국의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거친 것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실제로 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 등 군 내부에선 지난해 2월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미사일이 ‘최대 사거리 500㎞ 이스칸데르급(級) 탄도미사일’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500㎞급 신형 미사일’을 일부 군 내부 문서와 비공개 전시물에도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지금 우리 군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남북관계 등을 고려한 청와대 등의 압박 때문에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탄도미사일을 탄도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군(軍)’이 됐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군 길들이기’

군 안팎에선 현재 한국군이 ‘국민의 군대’에서 ‘정권의 군대’로 변질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군이 이렇게 변모하고 있는 데엔 현 정부 들어 강도 높은 ‘군 힘빼기’ ‘군 길들이기’가 진행돼온 것이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뒤늦은 전역사가 화제를 모은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예비역 육군대장)의 이른바 ‘갑질 사건’이 대표적이다. 현 정부는 ‘대장은 면직(免職)되면 (자동) 전역한다’는 군인사법 규정과 ‘민간인을 군사법원에 세우면 안 된다’는 헌법 조항을 위반하면서까지 박 전 사령관을 별 네 개 계급장을 유지한 채 포승줄로 묶어 공개 망신을 줬다. 박 전 사령관이 전역사에서 “정권이 능력을 상실하면 다른 정당에서 정권을 인수하면 되지만 우리 군을 대신해 나라를 지켜줄 존재는 없다”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오히려 전쟁의 그림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도전 요소는 군의 정치 개입과 정치 지도자들이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현 상황과 맞물려 군 안팎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용우 전 육군 참모총장과 청와대 행정관과의 이상한 만남도 군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세간에는 김 전 총장이 청와대 행정관의 면담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여 만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군내 소식통들은 실상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당시 김 총장은 원래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인참부장)을 보내 군인사 문제를 협의하려 했다”며 “그런데 청와대 쪽에서 ‘인참부장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이어서 믿을 수 없으니 총장과만 협의할 수 있다’고 해 마지못해 나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 전 총장 등 3명만 은밀히 만난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진 데 대해서도 현 정부 주요 정책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김 전 총장 ‘흠집 내기’ 아니었느냐는 의혹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최근 군 장성 정기인사에서 안보지원사령관(구 기무사령관) 후임을 공석으로 두면서까지 핵심 요직인 지상작전사령관에 내보낸 것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 군 출신 원로는 “지금 우리 군의 모습을 보면 정권의 압박이 얼마나 심하면 이런 지경이 됐을까 딱하기까지 하다”면서도 “그럼에도 군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부분에 대해선 ‘아니되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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