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이었던 지난 4월 1일 ‘문재인 왕(王)’이란 이름의 대자보 시리즈가 전국 400여개 대학과 국회, 대법원 등에 일제히 걸렸다. 대자보 내용은 문 대통령에 대한 풍자가 주를 이뤘다. ‘마차가 말을 끄는 기적의 소득주도성장! 경제왕 문재인’ ‘나라까지 기부하는 통 큰 지도자! 기부왕 문재인’ ‘기적의 A4용지 외교술, 외교왕 문재인’.

대자보를 작성한 곳은 전대협이란 단체로 1980년대 활동했던 전국대학생대표협의회와는 다른 곳이다. 이름마저도 학생운동권의 본산이었던 전대협을 풍자한다는 의미에서 그대로 살린 것이다. 전대협은 만우절 대자보로 화제가 되기 이전부터 패러디, 풍자, 반어법을 사용해 문 대통령과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온라인상에서 유명세를 탔다. 전대협 활동이 화제가 되자 후원하겠다는 문의도 들어왔다. 그러나 전대협은 페이스북에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지원해주시는 김일성 장학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자금 충당에 큰 어려움이 없다’며 후원도 거절했다.

그런 전대협의 페이스북 페이지 계정이 3주 전 갑작스럽게 삭제됐다. 전대협 측에 따르면 페이스북 측으로부터 3일간 계정 이용정지를 당했고 이후 7일 정지를 연달아 받았다고 한다. 7일 정지가 끝난 이후에는 계정이 아예 삭제되어버렸다. 전대협 김정식 대변인은 “약 3주 전 어느 날부터 로그인 자체가 안 되더니 결국 계정이 삭제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하는 활동 때문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신고를 당해 그런 것인가 추측했다”면서 “계정 삭제 사유나 우리 계정에 접수된 신고 건수 등의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전대협 페이스북 페이지의 팔로어는 3000명 수준으로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 정부를 비판하는 풍자물의 곳간 같은 곳이어서 팔로어 숫자 이상의 파급 효과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페이스북 계정이 하루아침에 폐쇄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페이스북 측의 설명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페이스북 콘텐츠 관리 정책을 보면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페이스북에 게시되는 콘텐츠의 내용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직원들만 전 세계적으로 3만명 이상이 있다고 한다. 한국 콘텐츠 관리를 도맡아 하는 직원들의 경우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어와 한국의 정치적·문화적 상황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직원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이 한국인 직원이라고 한다. 이들이 계정 폐쇄 여부 등 각 사안을 그때마다 논의해가면서 결정한다.

페이스북 측의 설명에 따르면 특정 게시물이나 계정에 대해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고 무조건 삭제되는 것은 아니다. 신고가 1번 접수되는 것이나 100번 접수되는 것이나 내부에서 처리되는 절차는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설명이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지난 5월 21일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기계적으로 자동 삭제되는 방식은 아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각 콘텐츠가 페이스북 규정을 위반한 소지가 있는지 담당 팀이 직접 살펴본다”며 “마약, 테러, 무기거래 등 위반 행위가 파급력이 큰 경우 정지 후 통보 없이 삭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은 콘텐츠 관리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인 교육 훈련도 진행한다고 했다. 샘플로 만들어진 하나의 게시물을 두고 A팀과 B팀이 나뉘어 해당 게시물에 대한 평가를 동일하게 내리는지 ‘크로스체크’하는 방식의 훈련이라고 한다.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각기 다른 관리 팀이 하나의 게시물을 두고도 일관된 평가를 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삭제”

페이스북은 콘텐츠들을 관리하는 기준과 정책 등의 내용을 페이스북 내에 공개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여기서 “페이스북 정책은 다음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안전·다양성·가치 등을 내세웠다. 이 중 ‘다양성’ 항목은 이렇게 돼 있다. ‘페이스북은 콘텐츠 허용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일부가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에도 해당 콘텐츠를 삭제하여 특정 위협이 예방되지 않는다면 삭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뉴스로서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거나 공익 차원에서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경우에서라면 당사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라도 게시가 허용됩니다.’

페이스북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서 ‘1. 폭력 위협 2. 위험인물 및 단체 3. 범죄 조장 또는 공포 4. 계획된 위해 5. 규제 품목’ 등을 커뮤니티 규정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위 항목들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경우에 콘텐츠나 계정이 삭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중 두 번째 항목인 ‘위험인물 및 단체’에서는 ‘페이스북은 실제 위협을 예방하고 저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행위에 참여하는 단체 또는 개인의 페이스북 활동을 금지합니다’라며 금지 대상으로 ‘테러 행위’ ‘조직적인 혐오 발언 및 행위’ ‘대량 살인 또는 연쇄 살인’ ‘인신매매’ ‘조직적인 폭력 또는 범죄 행위’ 등의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또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의 3번째 항목 ‘범죄 조장 또는 공포’에서는 ‘페이스북은 또한 범죄 행위를 묘사하거나 자신 또는 공범자가 범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범죄 활동의 적법성을 논하거나 지지할 수 있으며 수사적이거나 풍자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것도 허용됩니다’라고 되어 있다. ‘범죄 활동’을 ‘풍자적으로’ 다루는 건 허용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전대협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왜 삭제된 걸까. 페이스북에 따르면 삭제 사유를 당사자에게 일일이 통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무장 테러 단체가 올린 게시물처럼 위해 파급력이 큰 경우 그 콘텐츠와 계정을 먼저 막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유를 일일이 개별적으로 통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계정 삭제 사유를 공개하는 것 또한 절대 비밀 수준이라고 한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정말 심각하게 논쟁적인 사안이 아닌 이상 콘텐츠 또는 계정 삭제 사유는 절대 비밀 수준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전대협 측이 자신들의 계정이 왜 삭제됐는지 통보받을 수 없었던 이유다.

페이스북 콘텐츠 관리 규정에 따르면 전대협의 게시물은 테러의 위험성이 있다고 간주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전대협이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면 ‘체제를 전복하자’ ‘피가 강처럼 흐를 것’이라는 등의 표현이 담겨 있다. 페이스북은 이런 게시물들을 ‘표현이 과격하다’고 판단했다기보다는 ‘테러 단체 수준의 직접적인 위협을 담고 있다’거나 ‘심각한 혐오 표현’이라고 본 듯하다. 그러나 전대협이 이전에 올린 게시물을 조금만 살펴봐도 이들이 반북, 보수 성향을 띤 단체로 북한과 김정은의 어투를 사용해서 현 정권을 풍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은 이들이 올린 게시물들을 활자 그대로 ‘테러 암시’나 ‘직접적인 위해 가능성이 있는 조직적 혐오 발언’으로 봤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직접적 위해 가능성이 있는 게시물이 올라가 있다 하더라도, 관련 게시물만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계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과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의 경우 게시물에 대한 신고가 있을 경우 관리자가 게시물만을 자체적으로 삭제하거나 블라인드 처리를 한다.

지난 5월 23일 오전 대전역 앞에서 ‘삐라’가 뿌려지고 있다. 이날 전대협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6개 도시에 삐라 10만여장을 살포했다. ⓒphoto 전대협
지난 5월 23일 오전 대전역 앞에서 ‘삐라’가 뿌려지고 있다. 이날 전대협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6개 도시에 삐라 10만여장을 살포했다. ⓒphoto 전대협

경찰, 영장 없이 전대협 관계자 자택 진입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박성희 교수는 “페이스북이 가짜뉴스 논란 이후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의식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건 사실”이라며 “다만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이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라고 했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교수는 “원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은 게시물들에 대해 내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왔다. 인터넷 내에서 자정 작용이 될 거라고 봤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미국에서 가짜뉴스를 둘러싸고 청문회까지 하는 등 논란이 워낙 커지다 보니 예전보다는 적극적으로 잘못된 정보 등에 개입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설사 전대협 같은 경우 그 내용이 풍자나 조롱이라고 해도,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발언의 맥락이나 전후 사정을 디테일하게 고려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이 전대협 계정 폐쇄 결정을 내린 데에는 국내 수사기관의 행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 전대협의 대자보가 전국적으로 붙여진 만우절 이후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해 논란을 키웠다. 북한의 지령을 풍자한 대자보를 두고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적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비판을 받은 경찰은 곧 이 내용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지 조사해보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전대협 관계자의 자택에 영장 없이 무단진입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청년당협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전대협은 지난 5월 23일 서울을 비롯 전국 6개 광역시에 소형 풍선과 ‘삐라’ 10만장을 살포하기도 했다. ‘남조선 개돼지 인민들에게 보내는 삐-라’라는 제목으로, 지난 4월 붙였던 ‘남조선의 체제를 전복하자’는 대자보와 내용은 같았다. 전대협 측은 “페이스북 페이지가 아무런 통보 없이 삭제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의 국가 파괴행위를 막고자 하는 젊은 지성의 양심을 외치는 것으로 받아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전대협에 따르면 현재 소속 회원은 대부분 20~30대 청년들로, 회원 수는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대협은 주로 활동하던 페이스북 페이지가 삭제되자 유튜브 채널 또는 새로운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할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전대협 관계자는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변호사 분들과 협의해 페이스북의 공식적인 입장을 들어보고자 한다”며 “문 정부의 민낯을 고발하는 활동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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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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