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박원순, 유시민, 이낙연, 이재명, 임종석, 정세균(왼쪽부터 가나다 순)
김부겸, 박원순, 유시민, 이낙연, 이재명, 임종석, 정세균(왼쪽부터 가나다 순)

최근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만나 “종로에 살겠다”고 말한 사실이 한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며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 2인자로 불렸던 임 전 실장이 정 전 의장 지역구인 종로에 살겠다고 이야기한 것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보도했던 기사를 보면 임 전 실장은 “살림집만 좀 옮겨놓겠다” “당이 (지역구를) 정해주는 대로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한다. 여기에 정 전 의장은 “(종로 지역구가) 내 사유물이 아니다” “야당에 종로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임 전 실장에게 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두 사람 간 만남은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긴장감이 넘쳤다고 한다. 임 전 실장은 사실상 종로 출마 의사를 밝혔고, 정 전 의장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것. 정 전 의장의 한 측근은 “사실상 정 전 의장이 임 전 실장을 돕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정 전 의장 본인도 국회의장이 정치 인생의 종착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정 전 의장은 19대에 처음 종로 지역구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이전(전북) 지역구보다 훨씬 지역구 관리를 잘 해왔고, 심지어 의장 재임 기간 중에도 지역구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정 전 의장이 거절 의사를 밝힌 만큼 임 전 실장이 난감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 모두 내년 총선에서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구 출마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결국 차기 대권 플랜까지 머릿속에 넣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현 여권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거론되던 대권 주자와 현재 거론되는 주자들을 비교해보면 현 여권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17년 5월 말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우선 언급됐다. 젊고 능력 있지만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5년 동안 경쟁을 하면 정권 재창출도 가능하다는 게 당시 여권 분위기였다. 여기에 잠룡으로 불리는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까지 가세하면 여권의 대권 인재풀은 야당과 비교 불가였다.

7~8명 정도 대선 후보로 거론

문재인 정부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 대통령을 위협했던 안 전 지사는 사실상 정치 인생마저 끝났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에야 긴 터널을 지나왔지만, 2년 전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박 시장 역시 잠룡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 지사는 드루킹 사건에 발목이 잡혀 법정구속까지 됐다가 보석으로 간신히 풀려나는 신세가 됐다. 오히려 이낙연 국무총리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꾸준히 차기 대권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의 성추문, 현직 도지사의 불법 여론조작 의혹 등 지난 2년간 있었던 대형 사건들은 여권 잠룡이라면 누구나 대권에 욕심을 낼 법한 환경을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잠룡들의 명운은 내년 총선을 거치면서 가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여권의 잠재적 대권 후보들은 내년 총선 출마 여부나 지역구 선정 등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이 종로로 주소지를 옮기거나 정 전 의장이 선뜻 지역구를 내주지 않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정권이 중반도 넘지 않은 시점에서 여권에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도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자천타천’으로 차기 대선 주자들의 이름이 벌써부터 회자되면서 분위기가 일찌감치 ‘예열’되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여권의 인물은 약 7명 안팎이다. 이 중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인물은 이낙연 총리다. 4선 의원과 전남지사를 거친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서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여권 주자로 떠올랐다. 5월 말로 임기 2년을 채우는 이 총리가 올해 안 적당한 시점에 당으로 복귀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일정 부분 역할을 하면서 대권 도전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 총리는 올해 초 민주당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들과 만찬을 하면서 자신이 총리직에서 내려올 경우 내년 총선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전남이 아닌 수도권 험지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는 유력후보로서 입지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최근 이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던지는 메시지들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5월 23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저소득이 저교육을 낳고 저교육이 저소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엄존한다’는 발언은 총리로서 갖는 문제의식을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5선에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전 의장이나 행정안전부 장관직을 마치고 당으로 복귀한 김부겸 의원 역시 잠재적 후보로 거론된다. 통상 국회의장은 정치인생의 종착역쯤으로 여겨지지만 정 전 의장은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실장에게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것도 내년 총선 출마 뜻을 완전히 접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낙연 총리의 후임으로 정세균 전 의장을 추천하는 인사들도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국회의장까지 했던 사람이 총리를 하는 것은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지만 정 전 의장은 여당 대표를 하다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했을 정도로 격식에는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정권 말 관리형 총리로서 역할을 잘 한다면 기회가 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부겸 의원의 경우 여당의 험지인 TK(대구·경북)에서 또 한 번 승리를 견인한다면 중량감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현재 ‘지역 챙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장관 때에도 주말이면 KTX 입석을 타고 지역구로 내려갔던 김 의원은 장관직을 벗어던진 후에는 거의 대구 지역에 상주하고 있다.

임종석 전 실장 역시 내년 총선을 통해 대선 주자로서 발돋움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기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외교나 대북 문제에 관해서는 아예 주도권을 갖고 역할을 했다. 한때 자신의 정치적 연고인 중구나 성동구을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정 전 의장을 찾아가 사실상 종로 출마 의사를 밝힌 만큼 어떤 식으로 역할 정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재명 지사 변수될까

내년 총선에 출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로 꾸준히 거론되는 인물로는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지사가 있다. 박 시장은 과거와 같은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3선 서울시장을 거치며 지도자로서의 내공을 어느 정도 쌓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다수의 서울시 직원들이 청와대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 전 실장 역시 박 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을 지낸 바 있다. 다만 당으로 복귀해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당내에서 지원세력을 얻는 데 한계가 있고, 여의도 정치에 대한 이해도 부족이 약점으로 꼽힌다.

오히려 변수는 이 지사다.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꼽히다가 정치적 갈림길에 섰던 이 지사는 지난 5월 16일 1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정치 인생의 큰 위기를 모면하고 경기도정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기소까지 됐던 의혹들이 당내 친문 세력에 의해 제기됐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 지사는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아들까지 언급하면서 친문계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을 당선시킬 수는 없어도 못 되게 할 수는 있다’는 정치권의 오랜 격언에 비추어 볼 때 친문계의 지원 없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차기가 아닌 차차기를 노리고 있다는 말도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출마 여부도 관심사다. 유 이사장은 끊임없이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친문에서 가장 강력하게 밀고 있는 인사다. 문재인 대통령을 2012년 대선판으로 끌어냈다고 알려진 김수경 우리들리조트 회장의 경우 지난 대선 직후부터 차기는 “김경수 아니면 유시민”이란 말을 주변인들에게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김 회장은 2017년 대선 전 출간된 문 대통령의 책을 직접 감수한 인물이며, 양정철 전 비서관이나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과도 가까운 인물이다. 유 이사장은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 수차례 밝혔지만, 여권 내부와 지지자들의 광범위한 기대와 요구에 따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차츰 유력 대권주자의 길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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