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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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지난 5월 21일 서울 강남 모처에서 비공개 회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양 원장과 국정원장은 4시간30분 동안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고, 이 자리에 MBC 김현경 기자가 동석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사적인 모임이었고 정치 관련 대화는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바라보는 시선들이 곱지만은 않다. 여권 내에서도 양 원장의 행보가 좀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년간 고강도 내부개혁을 해왔던 국가정보원도 수장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또 한 번 도마에 올랐다. 특히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서울 서초구갑·3선)이 한 언론에 나와 “국정원과 1호 업무파트너인 나조차 국정원장과 단 1분도 독대를 해보지 못했다”고 한 발언은 국정원장의 역할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의원은 즉각 정보위를 소집해 국정원장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정보위 소집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이 의원은 “진실 규명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30일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

- 동석했던 MBC 기자까지 ‘사적인 모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양 원장의 말에 따르면 원래 국정원장과 MBC 기자가 둘이 만나기로 한 자리에 양 원장이 합석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국정원장이 특정 언론사 기자 한 명과 독대를 계획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하게 비상식적이다. 나도 정치 15년 하면서 기자와 단둘이 자리한 적이 없다. 항상 ‘그룹’으로 여러 명과 함께 만난다.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이 마찬가지다. 정보위원장이 국정원장과 만나는 저녁식사 자리에도 항상 직원들이 대동했다. 그런데 해당 기자는 국정원장을 수시로 만났다고 한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수상쩍다는 의심을 더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 국정원장이나 양 원장의 처신이 문제가 될 순 있겠지만, 대화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총선 개입’ 등은 무리한 주장 아닌가. “그럴 우려가 충분히 든다는 것이다. 지금 대북 정세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국정원장이 여당의 총선 기획자라는 사람을 만나서 네 시간 반 동안 옛날 이야기하면서 한담이나 나눈다?”

- ‘사적인 만남’이라는 해명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랑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비약이 아닌가. “이 문제를 언론에서 처음 제기했을 때 그들은 사적인 만남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오만하고 무책임한 태도였다.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도 처음에는 가족 같은 관계로 가깝게 지낸 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의혹이 커지면서 국조특위까지 열려 둘 사이의 부적절한 행적을 밝히지 않았나. 이 회동 역시 사적인 문제라고 넘어갈 게 아니라 누구와 왜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져보지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 “북한 변수를 총선 국면에서 여당에 유리하게 활용하는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겠냐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말했던데, 과거의 ‘북풍’과는 다른 ‘신북풍’이라는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의심이다. 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 때 남북 정상이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나드는 그 장면에 많은 국민들이 감동했다. 작년 6·13지방선거 하루 전에는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있었다. 사실상 그 여세를 그대로 몰아 지방선거를 치른 것 아닌가. 결과는 여당의 압승이었다. 이런 일은 다음 총선에서도 기획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99% 했을 것 같지 않나.”

- ‘북풍’ 외에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나. 현재 국정원은 국내 정보 파트를 없애면서 국내 정치 개입은 일절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국내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해서 악용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국정원은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파트를 폐지했다는데, 확인할 방법은 없다. 폐지했다고 하니까 그럴 거라고 믿을 뿐이다. 더 중요한 건 과거부터 쌓여 있던 국정원의 ‘정보 금고’를 완전히 없앴는지 그걸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보는 수집을 안 한다 한들, 이전부터 쌓여 있던 정보는 국정원장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나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 찍어낼 때 그 정보가 다 어디서 나왔겠나. 상상을 하자면, 국정원장이 양 원장과 독대하면서 국정원 정보 금고에 있던 파일들을 공유했을지 누가 알겠나.”

- 국회 정보위원장으로서 봤을 때 현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은 잘 되고 있나. “굉장히 어렵다. 대북 정보력이 과거에 비해 수준과 역량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대북 정보 수집에는 두 가지 축이 있다. 크게 기술력과 인적자원이 있는데,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고 쳐도 그걸 최종 확인할 수 있는 단계는 사람, 즉 ‘휴민트’다. 휴민트는 하루이틀이 아니라 20~30년에 걸쳐 길러내야 하는 것인데, 많이 쇠퇴하고 있다.”

- 서훈 국정원장도 나름 국정원에서 평생 근무한 ‘대북 전문가’ 아닌가. “서 원장은 북한과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방법론을 가진 사람이다. 나를 포함해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는 이들은 북한에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야 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국정원 대공수사 기능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간첩 잡는 일을 해온 국정원이 잘하겠나, 간첩 잡는 게 주 업무도 아니고 인원은 14만 명이 넘어 보안 유지도 안 되는 경찰이 잘하겠나. 지금은 대공 업무를 경찰에 넘기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

- 이번 비공개 회동에 대한 언론 취재를 두고 국정원 내부 갈등의 표출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전 정부의 국정원보다 내부 잡음이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 아닌가. “이 사건이 국정원 내부 갈등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의 내부 갈등은 과거와 양상이 조금 다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원세훈 원장의 경우 특정 지역 출신을 우대한다는 등 인사와 관련해 내부 불만이 많았다. 전문성과 무관하게 특정 지역에 편중된 인사는 밖에 나가서 문제 제기를 하면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국정원에는 국내 정보와 대공 업무에만 평생을 종사해온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걸 없애버리고 마치 ‘적폐’ 취급을 하니 이들이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이건 국민들이 없애야 한다고 공감하는 문제이다 보니 선뜻 불만을 표출할 수 없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다.”

-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정보위가 결국 소집되지 못했다. 이 사건도 이대로 잠잠해지는 것 아닌가. “골든타임은 이미 다 놓쳤다. 이 사건은 논란이 터졌을 때 속전속결로 즉각 대응했어야 했다. 셋이 나눈 대화 내용을 알아보려면 말을 맞추기 전에 마이크를 들이댔어야 한다. 그때 툭툭 나오는 말 중에서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내용을 파고들어서 진실을 밝혀야 했다. 그런데 벌써 나흘이 지났고, 참석했던 기자는 이미 워싱턴 출장까지 갔다 왔다. 그들 사이의 입단속은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한국당이 참 답답하다.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사건을 이렇게 처리하는 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더라.”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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