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1989년 인천, ‘김철순’이란 가명을 쓰던 서른다섯 살 청년이 있었다. 인천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하며 혁명을 선동하는 글을 쓰고 지하조직을 이끌었다. 꼭 30년이 흐른 2019년. 그때 그 청년은 제2야당의 키잡이가 되어 서울 여의도에 섰다.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 내정자(이하 위원장) 얘기다.

주 위원장의 이력은 이렇다. 1954년 경남 함안 출생. 마산중·고교와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부터 1년간 서울대 학생운동조직, 일명 무림을 이끌었다. 심재철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무림의 멤버였다.

1979년엔 부마항쟁으로 투옥됐고 1987년엔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결성했다. 당시 노동운동으로선 최대 규모의 지하조직이었다. 이때 함께 지도부로 활동한 이가 바로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다. 노 전 의원이 활동가였다면 주 위원장은 이론가였다.

1992년엔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고, 2004년엔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부터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으로 죽산을 기리는 사업도 치러왔다.

지난 4월엔 ‘플랫폼 자유와 공화’를 출범시켰다. 박인제 변호사,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함께 공동의장을 맡았다. 출범식엔 유승민·정운천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 범야권 인사들이 두루 참석했다.

대한민국 긍정하는 원조 좌파

주 위원장은 최근엔 대중 정치가보다는 역사와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분석하고 설계하는 사상가, 지식인으로 활동해왔다. 현대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2017년에 출간한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 현대사’가 그 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유의 낡은 역사관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현대사를 보는 시각을 제시했다. 이후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원조 좌파’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엔 인촌 김성수 복권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인촌은 친일파로 비난받으며 이번 정부 들어 건국훈장까지 박탈당했다.

이력에서 알 수 있듯 좌파 진영의 생리와 공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우파·보수와도 접점을 모색해왔다. 걸어온 길 자체가 강점인 셈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깊지 않다. 2012년 대선 당시 주 위원장이 손학규 민주통합당 경선후보 캠프에 합류해 도왔다. 이후엔 행로가 크게 겹치지 않았다. 손 대표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의 이사를 역임하긴 했지만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적도 거의 없다.

그는 최근 들어 두 가지를 설파해왔다. 첫 번째는 ‘86세대 청산’이다. ‘결자해지’의 자세라고 했다. 과거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이끌며 86세대가 세를 키울 수 있도록 배경을 만들어준 자신의 죄과를 스스로 씻겠다는 의미다. ‘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서 198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이들을 뜻한다. 이인영, 임종석, 안희정, 우상호, 이광재 등이 대표적인 86세대다. 주 위원장은 이들을 ‘철들지 않고 꼰대가 되어버린 세대, 무식하고 건방진 세대, 자신들만 정의롭다고 외치는 독선적인 세대’라며 정조준해왔다. 이들이 탄생한 배경엔 전두환 정권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평소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정권은 군사독재라고 우리가 불렀지만, 의외로 강하게 지배를 하지 못하는 정권이었다. 대학 캠퍼스는 사실상 해방구였다. 대학교 학생회를 장악하면 이미 상당한 권력을 쥐는 것이었다. 중요 대학의 총학생회를 장악하기 위해 선거를 하고, 대중을 동원하고, 또 학생회를 통해서 권력을 행사하면서 그들은 이미 대중을 움직이는 기술을 연마하고 정치를 경험하고, 권력의 맛을 봤다. 과잉 정치화된 86세대가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86세대가 지금과 같은 식이 아닌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세대가 될 기회가 한 차례 있었다고 말한다. 1987년 6월항쟁 이후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극렬해졌다. 오죽하면 김지하 시인이 이들에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일갈하기도 했겠느냐는 것이다. 주 위원장의 말이다. “86세대 때문에 사회 순환마저 안 되고 있다. 이젠 더 늦기 전에 86 청산을 시작해야 한다.”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 내정자는 1987년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오른쪽)과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해 노동운동을 함께 했었다. ⓒphoto 노회찬 의원 블로그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 내정자는 1987년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오른쪽)과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해 노동운동을 함께 했었다. ⓒphoto 노회찬 의원 블로그

“호남과 청년 주축 보수 정당 구상”

그의 두 번째 주장은 ‘야권 재편’이다. 영남당 혹은 호남당이라는 낡은 도식이 아닌 ‘대한민국을 긍정하고 86에 대항하는 세력’이라는 기치로 야권이 헤쳐모여야 한다는 인식이다. 그는 바미당이 스스로를 제3당, 중도정당으로 어정쩡하게 규정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호남과 청년이 주축이 되는 보수 정당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규정하면 사실 이미 기존의 보수-진보라는 개념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소신이다. 혁신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합의를 이뤄나가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뜻이 다른 두 파가 함께할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주고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

그의 소신이 현실정치에선 어떻게 펼쳐질까. 바미당 최고위원회의는 만장일치로 주대환 혁신위 출범에 합의했지만, 역시 앞날이 쉽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바른미래당의 구성 자체가 간단치 않다. 한 지붕 아래 세 가족, 아니 네 가족이 눈치를 보며 동거하고 있는 당이다.

총 28명의 의원 중 유승민계가 8명(유승민·정병국·이혜훈·오신환·하태경·유의동·정운천·지상욱), 안철수계가 7명(권은희·김중로·이태규·김수민·김삼화·신용현·이동섭)이다. 여기에 호남계가 주축인 당권파(주승용·박주선·김동철·이찬열·김관열·김성식·채이배·임재훈·최도자)가 있다. 또 다른 그룹은 소속만 바미당이고, 활동은 다른 곳에서 하는 비례대표 3인(이상돈·장정숙·박주현)이다. 이들은 민주평화당에서 활동 중이다. 역시 비례대표인 박선숙 의원은 일절 당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교섭단체 요건(의원수 20명 이상), 최소 50억원이라는 당의 자산, 의원수에 비례해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이들은 합의이혼도 못 하고 있다. 정당법상 분당 사태가 일어나면 원래 간판을 갖고 있는 측에 당의 자산이 돌아간다. 국고보조금은 원내 교섭단체가 전체의 50%를 나눠 갖고, 나머지 정당이 남은 50%를 의석수와 총선 당시 득표수에 따라 나눠 갖는다. 계파끼리 뭉쳐 떨어져나오고 싶어도 돈 때문에 쉽지 않다.

손학규 대표 거취가 최대 쟁점

혁신위 구성에도 일정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유-안 연합군)가 각각 4명씩 혁신위원들을 추천하는 것으로 합의한 것 외엔 구성 방안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니라 혁신위원회라는 한계도 있다. 비대위가 재건축 수준으로 당을 흔들 수 있다면, 혁신위는 리모델링 정도다. 사실상 당 대표와 당 지도부의 권한을 이어받는 비대위와 달리 혁신위는 최고위에 혁신안을 제출하는 일종의 자문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두 달 남짓한 활동 기한을 감안하면 한두 가지 중점 과제만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수 있다.

바미당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손학규 대표 거취 문제다. 비당권파는 물론 상당수의 당권파 의원들도 손 대표 체제로 과연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언주 의원의 경우 손 대표 리더십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탈당했다. 문제는 손 대표의 입장이다. 설사 손 대표 자신이 퇴진을 원한다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떻게 해도 명예로운 퇴진이 아니라 정리해고로 비친다. 자칫 26년 정치인생에 최악의 형태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퇴진 요구에 완강히 버티는 이유다.

이번 혁신위가 무사히 출범해, 바미당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을 ‘콩가루당’에서 ‘기대해볼 만한 비전을 제시하는 야당, 자유한국당보다 나은 야당’으로 약간만 이동시켜도, 즉 지지율 5% 신세에서 탈출시키기만 해도 손 대표의 거취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두 달 시한, 혁신에 성공할까

성공한 혁신기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최근 10년간 가장 성공한 혁신기구로는 2012년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김종인 비대위를 꼽을 수 있다. 각각 새누리당(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총선 승리를 안겨줬다. 두 비대위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혁신기구의 권한이 강력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말할 것도 없고 김종인 위원장 역시 문재인 당시 대선주자의 후원을 업고 칼날을 휘둘렀다. 둘째, 기존의 정체성을 아낌없이 버렸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는 당장 당명부터 버렸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참배하며, ‘경제 심판론’을 내세우는 전략으로 민주당에 중도 이미지를 덧입혔다. 셋째, 낡은 인사들을 내보내고 새로운 인재를 영입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비대위는 이준석 등 박근혜 키즈를 낳았고 김종인 비대위는 당시 삼성전자 상무였던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을 발굴했다.

주대환 혁신위는 어떨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바미당의 자산은 대선주자였던 유승민과 안철수다. 주 위원장이 출범 후 가까운 시일 내에 이들과 접점을 찾는다면 혁신위가 의외로 힘을 받을 수 있다. 당의 창업주인 안철수는 늦어도 9월 안엔 귀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체류 비자가 9월에 만료된다. 둘째, 주 위원장은 제3당, 중도 정당이란 바미당의 모호한 자기 규정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혁신위원들의 합의 여하에 달리긴 했지만 비대위 수준의 혁신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셋째,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주 위원장의 카드는 밀레니얼 세대 영입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뜻한다. 이들에게 공천을 줘 86세대가 장악한 정치 무대로 이들을 끌어올리자는 게 주 위원장의 생각이다. “U-40 혁신위를 구상 중이다. 40세 이하 청년들 위주로 혁신위를 구성하고 싶다.” 주대환 혁신위를 주목하는 이유다.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