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 설치된 모형비행기. 앞에 보이는 섬이 거제도다. ⓒphoto 이동훈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 설치된 모형비행기. 앞에 보이는 섬이 거제도다. ⓒphoto 이동훈

거제도가 훤히 보이는 부산 가덕도 대항전망대에는 하늘로 솟구치는 모형비행기 두 대가 있다. 가덕도가 속한 행정구역인 부산 강서구의 구정(區政) 브랜드인 ‘브라이트(Bright) 강서’라는 로고가 동체에 적혀 있는 모형비행기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내 고향은 가덕도’란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전망대에서 비행기를 배경 삼아 사진 찍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전망대에 모형비행기 두 대가 설치된 것은 ‘가덕도신공항’ 조성 주장이 한창 나올 때인 2014년 전망대 인근 도로를 개통하면서다. 하지만 지난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영남권신공항(현 용어는 동남권신공항)’으로 가덕도신공항 대신 부산 강서구에 있는 현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결정하면서 모형비행기는 관광객들이 사진 찍고 가는 배경소품으로 전락했다. 아이들이 타는 모형비행기 옆면에는 ‘여기서부터 하늘로(From here to the Sky)’란 문구가 적혀 있다. 신공항을 가덕도에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이상(異常) 열기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일대 주민들은 ‘언젠가는 가덕도에 공항이 들어올 것’이란 일종의 미신(迷信) 비슷한 확신을 갖고 있다. 동네 이름과도 연관이 돼 있다고 한다. 행정동인 가덕도동의 옛 이름은 ‘천가동(天加洞)’, 그 아래 법정동은 ‘천성동(天城洞)’이다. ‘하늘을 더한다’는 뜻의 ‘천가(天加)’란 이름과 ‘하늘의 성(天城)’이란 이름이 공항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긴 마루(활주로)’란 뜻의 영종도(永宗島)와 ‘용(龍)이 노닐다’는 뜻의 용유도(龍遊島) 사이에 인천공항이 들어선 것처럼, 가덕도에도 언젠가는 공항이 들어올 것이란 믿음이다. 호사가(好事家)들의 혹세무민하는 소리로 흘려듣기에는 너무나도 그럴듯한 한자풀이다.

한자풀이가 통하는 걸까.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일단락된 듯 보였던 가덕도신공항 조성 논의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거돈 부산광역시장을 비롯해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내년 4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가덕도신공항 논란을 재점화하면서다.

부울경 지자체장들은 지난해 10월 ‘부울경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단장 김정호 민주당 의원)을 꾸려 “김해공항 확장을 결정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국제연구용역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줄곧 제기해왔다. 올 상반기로 예정돼 있던 김해신공항 기본계획 고시에 앞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내려진 결정을 원천무효로 되돌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이다.

5개 지자체 합의 ‘휴지조각’

결국 지난 6월 20일 주무부처 장관이자 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울경 3개 지자체장과 신공항 문제의 총리실 이관에 합의하면서 가덕도신공항은 결국 관(棺) 속에서 되살아났다. 합의문은 “국토교통부 장관과 부울경 3개 단체장은 동남권 관문공항으로서 김해신공항의 적정성에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그 검토 결과에 따르기로 한다”고 돼 있다.

2016년 사전타당성 평가 발표 당시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공항 건설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을 가진 ADPi가 5개 지자체가 합의한 방식에 따라 오직 전문성에 기초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내린 최적의 결론”이라고 했는데, 이를 후임 정치인 출신 장관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부울경 지자체장들이 3년 만에 되살려낸 가덕도신공항은 송영길 의원(4선·인천 계양을) 등 민주당 소속 유력 의원들까지 가세하며 다시 생명력을 얻고 있다. 인천이 지역구인 송영길 의원은 지난 6월 24일 부산상공회의소 강연에서 “남북방향으로 가덕도신공항을 만들면 총 활주로에 30% 정도만 매립하면 된다”며 “비용절감도 가능하고 간사이(關西)공항보다 훨씬 안정적인 활주로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사이공항은 ADPi가 2016년 보고서에서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며 실패 사례로 거명했던 공항이다. 1994년 간사이공항 개항 시 문을 닫기로 한 오사카 이타미(伊丹)공항이 정치 논리로 되살아나고, 인근에 고베(神戶)공항까지 추가로 난립하면서 간사이공항은 효율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송영길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학 후배인 조종사들에게 물어보니 김해공항은 주변이 돗대산, 승학산에 싸여 있어 적의 공격으로부터 활주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군사공항으로서 동남권 관문공항이 될 수 없다”고도 적었다. 부산시 신공항추진본부의 한 관계자는 “송영길 의원은 인천시장을 하면서 인천공항을 봤으니 자기 경험을 얘기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지난 6월 20일 김해신공항 문제 총리실 이관에 합의한 김경수 경남지사, 김현미 국토부 장관,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왼쪽부터).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0일 김해신공항 문제 총리실 이관에 합의한 김경수 경남지사, 김현미 국토부 장관,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왼쪽부터). ⓒphoto 뉴시스

활주로 방향도 수차례 바뀌어

김해신공항 문제의 총리실 이관으로 다시 한 번 호기를 잡은 부산시는 가덕도신공항 재추진을 위해 당초 계획했던 활주로의 위치 변경도 검토 중이다. 매립비용 문제로 경제성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가덕도 동쪽 인공섬 활주로안과 섬을 동서로 관통하는 동서방향 활주로를 일단 접고 대신 가덕도 서쪽 해안을 매립해 남북방향 활주로를 놓는 것을 대안으로 고심 중이다. 부산시 신공항추진본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 여러 가지 방향을 놓고 검토 중에 있다”며 “총리실에서 확정이 나면 그 대안으로 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미 가덕도신공항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활주로 방향이 수차례나 바뀌었다. 가장 처음 부산시에서 검토했던 방안은 가덕도 동쪽 해상에 인공섬을 조성해 남북방향의 해상활주로를 조성하는 안이었다. 인공섬 위에 공항을 만든 간사이공항이나 고베공항과 거의 흡사한 형태였다. 하지만 가덕도 동쪽 해상은 외해(外海)를 직접 접하고 있는 터라 수심이 깊고 파도가 세서 해상 매립에 따른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문제였다.

2016년 ADPi가 실시한 사전타당성조사 때는 활주로 방향을 수정해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연대봉(459m)과 남쪽의 국수봉(264m) 사이의 잘록한 허리를 동서방향(08/26)으로 관통해 활주로를 놓는 것으로 사전타당성조사가 이뤄졌다. 지금의 가덕도 대항항(서쪽)과 새바지항(동쪽)에 걸친 동서방향 활주로를 놓고 여객터미널과 비행기 계류장 등 부대시설은 연대봉 동남측 가덕도 동쪽 새바지항 일대에 배치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가덕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동서방향 활주로를 놓는 방안 역시 동쪽에 공항터미널과 계류장 건설을 위해 해상 매립이 불가피해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이 방안 역시 약 7조4700억원이 소요돼, 김해공항(약 4조1700억원)은 물론 밀양공항(약 4조5300억원)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사업비는 사전타당성조사 때 가중치가 가장 많이 부여되는 항목이다.

가덕도 동쪽 대신 서쪽 해안을 이용해 신공항을 건설할 경우 가덕도신공항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건설비용은 상당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덕도 서쪽 해안은 거제도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 동쪽 해안에 비해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매립공사가 비교적 수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가대교 건설 때 가덕도 천수말에서 대죽도까지 해저 침매터널을 부설하며 상세한 해저 지형조사를 실시한 경험도 있다. 당시 가덕도 서쪽 해안의 수심은 약 15m 정도였다. 부산시 신공항추진본부의 한 관계자는 “거제도를 보는 가덕도 서쪽의 경우 동쪽에 비해 수심도 얕고 파도도 작게 친다”고 말했다.

서쪽 해안 수심 얕지만 선박 통행 걸림돌

하지만 이동장애물이란 새로운 걸림돌이 등장한다. 이동장애물은 비행기 이착륙 시 자칫 충돌할 수 있는 조류와 선박 등을 뜻하는데, 가덕도 서쪽은 국내 최대 컨테이너항만이자 세계 6위 항만인 부산신항의 출입구다. 초대형 선박들은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에 놓인 거가대교 가덕해저터널 구간의 좁은 수로를 통과해 부산신항으로 입출항한다. 오는 2040년까지 경남 창원 쪽에 조성될 제2신항(1단계) 역시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 수로를 통과해 입출항해야 한다.

2016년 당시 ADPi의 사전타당성조사 보고서 역시 “해양 활동의 존재는 가덕 부지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며 “선박들은 가덕 입지의 서쪽으로 항행한다”고 적시한 바 있다. 당시 가덕도와 경쟁하던 밀양 측에서 줄곧 공격했던 문제도 이동장애물이었다. 가덕도 동서방향 활주로를 상정했을 때도 이런 지적이 나왔는데, 부산신항 입구인 가덕도 서쪽에 남북방향 활주로를 건설하면 이동장애물은 더 큰 문제로 떠오를 소지가 다분하다.

가덕도 동쪽 해안 대신 서쪽 해안을 택해 가덕도신공항 플랜을 재차 띄우려는 것은 부산시의 불가피한 사정 탓도 있다. 부산시는 이미 2040년 이후 조성할 장래 항만부지를 가덕도 동북쪽 눌차도에서 새바지항 사이 동쪽 해안가에 두기로 해양수산부와 합의한 상태다. 가덕도 동쪽 해안이 장래 항만 예정지로 제2신항 2단계 계획에 반영되면 가덕도 동쪽 해안을 활용한 신공항 건설은 자연히 불가능해진다. 2016년도 가덕도신공항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새바지항 인근에는 여객터미널과 비행기계류장, 정비창까지 들어서는데 장래 항만부지와 상당 부분 중첩된다.

부산시와 해수부 간의 합의로 가덕도 동쪽의 신공항 건설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지자 이제 마지막 남은 가덕도 서쪽 해안을 다시 띄우는 셈이다. 가덕도 북쪽에는 이미 항만(신항 4·5부두)과 배후부지가 조성돼 있고, 가덕도 남쪽은 거리상으로 멀 뿐 아니라 역시 동쪽과 같은 이유로 해상 매립이 불가피하다.

부산 가덕도 외양포의 일본군 포진지. ⓒphoto 이동훈
부산 가덕도 외양포의 일본군 포진지. ⓒphoto 이동훈

가덕도 남단 국수봉 절개 불가피

가덕도의 경우 섬의 동서를 막론하고 길이 3㎞가 넘는 활주로를 비롯해, 여객터미널, 비행기계류장, 정비창 등 공항 관련 시설이 들어오면 산지 절개가 불가피한 것도 치명적인 약점이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얕은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인천공항과 달리 가덕도는 섬 전체의 산세가 제법 험준하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 최고봉인 백운산의 높이가 256m에 불과한 데 비해 가덕도 연대봉은 459m나 된다. 이 역시 해수면 위 해발 0m에서 곧장 올라가는 산이라 체감 높이는 훨씬 더 높다.

가덕도의 험한 산세는 공항 관련 인프라 건설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어왔다. 2016년 ADPi의 사전타당성조사 때는 가덕도 최고봉인 연대봉과 국수봉(國守峰)을 피해 두 산봉우리 사이에 동서방향 활주로를 배치하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했었다. 공항터미널과 비행기계류장 등 주요 시설은 연대봉 동남쪽 새바지항 앞바다 일대를 매립해 배치하는 것으로 계획했었다.

이 방안 역시 항공기 안전을 위한 장애물 제거와 해상 매립을 위한 토사 마련을 위해 가덕도 남쪽의 국수봉 일부를 절취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활주로 1본(本)이 놓이면 작게 잘리고, 2본이 놓이면 거의 다 잘리는 정도의 차이였다. 장래 공항 확장을 고려하면 국수봉은 시간을 두고 다 헐린다고 봐도 무방했다.

활주로 방향을 기존의 동서방향에서 남북방향으로 돌리면 활주로 측면이 아니라 끝단에 국수봉이 위치하게 돼 이착륙 위험이 더 커진다. 이 경우 국수봉 절개는 더욱 불가피하다. 게다가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활주로(3200m)보다 긴 3500m 활주로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2016년 조사 때 길이 3200m 활주로 정도면 장거리 취항이 가능한 A350, B787, B777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정리됐는데 부산시는 굳이 이보다 더 긴 활주로를 짓겠다는 입장이다.

2016년 ADPi 사전타당성조사 때 검토한 가덕도신공항 마스터플랜(활주로 1개안).
2016년 ADPi 사전타당성조사 때 검토한 가덕도신공항 마스터플랜(활주로 1개안).

일제 한반도 침략증거 훼손 우려

가덕도 해안가 곳곳에 남아 있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증거 훼손도 불가피하다. 구한말 외세와 가장 격렬하게 부딪혔던 가덕도에는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斥和碑·부산시 지정기념물 35호)뿐만 아니라 섬의 해안 전체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증거들이 남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때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천성진성(天城鎭城·부산시 지정기념물 34호), 고려 때부터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대봉 봉수대(1996년 복원)도 있다.

당초 동서방향 활주로를 비롯해 여객터미널 및 비행기 계류장, 배후단지 건설이 계획돼 있던 새바지항 일대에도 일제가 태평양전쟁 때 본토 결전을 앞두고 미군의 한반도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조성한 거대한 인공동굴이 10곳 이상 남아 있다.

새로 검토 중인 가덕도 서쪽 해안가 외양포(外洋浦)항에는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제가 구축한 군사시설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 결전에 대비해 이 일대 민가 64호를 내쫓고 구축한 포진지로, 일본군 진해만 요새사령부의 발상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일본군이 축조한 포진지, 화약고, 교통로, 관측소, 화장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막사, 창고, 우물, 배수로 등은 지금도 민가에서 쓰고 있다.

ADPi 역시 2016년 조사 때 ‘문화유산’ 항목 평가에서 “공항 입지상이나 사업 장소 근처에는 상당수의 보호 대상 유적들이 있다”며 “입지나 그 부근에 10개 이상의 민감한 유적이 있으므로, 가덕 입지에는 5등급 가운데서 0등급이 주어진다”고 밝혔다. 당시 문화유산 항목 평가에서 가덕도는 문화유산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이유로 최종 후보에 오른 김해공항(2.5), 밀양(3.75)에 비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당시 ADPi는 최종 권고에서 “가덕은 일반적인(natural) 공항 후보지가 아닌 관계로, 공사 비용이 많이 들고 시공 리스크도 높을 것”이라며 “공항 운영상에 안전성과 소음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나, 검토 지역 범위 내에서 남쪽 끝에 위치한 관계로 특히 대구나 경북 지역으로부터의 지상 접근 시간과 거리가 적정수준을 넘어설 것이다”고 지적했다.

ADPi의 신공항 사전타당성조사 보고서는 2016년 당시 국토교통부 관료들이 격찬했던 보고서다. “워낙 꼼꼼하고 정교해 우리도 많이 배웠다”는 말이 나왔던 보고서다. 당시 보고서를 한 번이라도 정독해본 사람이면 그 조사의 치밀함과 전문성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이 보고서는 행정안전부 ‘온나라 정책연구’에서 지금도 열람할 수 있다. 공은 이제 총리실로 넘어갔다. 이낙연 총리가 당시 보고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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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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