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나경원 원내대표(맨 왼쪽)가 지난 7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9차 북핵외교안보특위-안보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나경원 원내대표(맨 왼쪽)가 지난 7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9차 북핵외교안보특위-안보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의 공천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신상진 한국당 신정치특별혁신위원장은 지난 6월 초 “이달 안으로 (공천안 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6월 안에는 공천 기준을 정하는 작업이 결론 났어야 하는 셈이다. 계획과 달리 8월 초가 됐지만 한국당의 공천 룰은 아직 최고위원회를 통과하지도 못했다. 신 위원장이 마련한 한국당의 공천 룰은 정치 신인에게 50% 가산점을 주고, 탈당 또는 공천에 불복한 전력이 있는 의원은 최대 30% 감점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신 위원장은 이러한 공천안을 최근 황교안 대표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한 황 대표의 명확한 입장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황 대표 측은 “(공천 룰 확정은)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황 대표 측의 이런 태도는 오히려 ‘황 대표가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는 친박 의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논란만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의 해묵은 계파 갈등만 드러났고 황 대표의 리더십에 생채기만 났다는 평가다.

황 대표 취임 이후 한국당 내 주요 요직에는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등용되어왔다. 지난 7월 23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장에 유기준 의원이 내정된 것을 비롯해 민경욱 대변인, 김재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박맹우 사무총장, 추경호 조직부총장 등 친박계로 통하는 의원들이 당내 ‘알짜배기’ 보직에 포진해 있다. 비박계로 통하는 한국당 김세연 의원은 7월 3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로친박당이 되어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같은 날 홍준표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기득권을 내려놓고 보수 빅텐트를 만들어도 좌파 연합을 이기기 어려운 판인데 극우만 바라보면서 나날이 도로친박당으로 쪼그라들고 있다”고 썼다. 장제원 의원 역시 이날 “개혁노선에 걸맞은 라인업과 정책으로 과감하게 쇄신해야 한다”며 당내 비판에 가세했다.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황 대표는 7월 30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고, 보수우파를 살리기 위해 이 당에 온 것”이라고 했다.

황교안, 친박(親朴)을 넘을 수 있을까

황 대표의 이런 발언은 역설적으로 당 안팎에서 친박계와 관계 설정에 대한 우려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 대표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다”고 했지만, 그가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당대표가 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때 친박 핵심으로 분류된 최경환 전 의원은 수감 중이고, 조원진·홍문종 의원은 우리공화당으로 당적을 변경했지만 자유한국당에서 친박계의 당내 장악력은 여전히 높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졌던 나경원 의원도 친박계의 지원으로 원내대표가 됐다. 친박계의 영향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과연 ‘정치 신인 황교안’이 자신을 밀었던 친박계와 선을 긋고 개혁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지리멸렬한 상황은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현재 한국당 지지율은 20%대 이하를 밑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50%대를 넘고 민주당 지지율 역시 40%대를 상회하고 있는 상황과 현격히 대비된다. 황 대표 취임 이후 한국당 지지율은 ‘잠시’ 30%를 넘기도 했었지만 다시 20%대로 주저앉았다. 일본의 수출제한을 둘러싸고 여론이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준 측면도 있지만, 이것만으로 작금의 한국당 지지율을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황 대표가 제1야당 지도자로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대선은 물론이고 총선마저도 황교안 체제로는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역 의원들의 반발 속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국당의 모습은 6월 말 공천안을 획정한 여당과 더욱 대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 신인에게 최대 20%, 청년과 여성, 장애인에게는 각각 25%의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정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한·일 간 분쟁 상황을 내년 총선까지 활용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당이 대통령 최측근의 지휘 아래 총선이란 ‘전쟁’을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한국당은 황 대표가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계파 갈등만 다시 드러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황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내세웠던 보수통합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바른미래당과 일부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또 다른 보수의 축으로 떠오른 우리공화당과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현재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이언주 의원에게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 외부로 비쳐지는 황 대표의 유일한 액션이다.

이러한 한국당의 지지부진한 당내 분위기는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정치 신인’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황 대표는 지난 6월 13일 “삼고초려,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반드시 모셔와야 한다”며 총선 승리를 위한 인재 영입 의지를 강력하게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장 당내 질서정리조차 되지 않은 한국당이 과연 제대로 된 인재영입을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박계로 알려진 수도권의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한국당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인사들이 줄을 서도 내년 총선을 이길까 말까 하는 현실인데, 공천 룰을 두고 당내 갈등만 계속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현역 의원들을 몇 퍼센트 갈아치우느냐 여부보다 당 자체가 얼마나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당의 1차 인재영입 대상에 올랐던 한 인사는 “지금 한국당 상황을 봐서는 입당 결정에 더 머뭇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면서 “함께하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당과 당대표가 줘야 하는데, 현재로는 섣불리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