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 앉아 있는 영국의 하원의원들. ⓒphoto 뉴시스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 앉아 있는 영국의 하원의원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일 영국 웨일스 브레콘 레드너셔 선거구에서 하원의원 보궐선거가 실시됐다. 이 선거구 현역 의원이었던 보수당의 크리스 데이비스가 유권자들로부터 소환당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였다. 영국에서는 유권자들로부터 소환당한 의원들도 보궐선거 재도전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데이비스 의원 역시 당의 공천을 받아 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자민당 후보에게 패배해 보수당은 결국 귀중한 한 석을 뺏겼다.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로서는 취임 딱 1주일 만에 하원 과반수 의석(321석)에서 단 한 석만 더 잃어도 여당의 지위를 위협받는 위기를 맞게 됐다. 유권자들로부터 소환당한 의원을 다시 공천한 보수당이 자살행위를 한 셈이었다.

보수당이 데이비스 의원을 재공천한 것은 어찌 보면 그의 죄가 크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실제 데이비스 의원이 소환당한 이유는 우리 정치권 경우에 비춰보면 경미하다면 경미하다. 데이비스 의원은 2015년 총선 경비를 정산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영수증을 위조하고 경비 예산항목을 잘못 적용한 경비부정(expenses fraud)을 저질러 2018년 4월 의원 경비청구 감사기구인 의회윤리독립감사청(IPSA·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에 의해 고발됐다. 그는 ‘순수한 실수(honest mistake)’에 의한 경비 부당 청구였다고 항변했지만 경찰 조사를 거쳐 유죄가 인정돼 1500파운드(225만원)의 벌금과 5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부당 청구한 경비 액수이다. 700파운드, 우리 돈으로 105만원 정도였지만 영국 유권자들은 의원 자격이 없다며 소환명령을 내려 결국 그를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쫓아내버렸다.

하원의원이 소환돼 의원직을 상실한 것은 올해로 벌써 두 번째다. 지난 6월 영국 동부 피터버러 선거구의 피오나 오나산야 노동당 의원도 소환돼 의원직을 잃었다. 첫 흑인 여성 총리가 되겠다는 야심을 가졌던 오나산야 의원이 소환된 이유도 우리 시각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데, 거짓말이 화근이었다. 그는 제한속도가 시속 48㎞인 도로에서 시속 66㎞로 과속하다가 적발돼 과속 통지서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위증죄로 처벌돼 3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된 후에도 그는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유권자들의 소환을 받아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노동당은 오나산야 의원을 보궐선거에 공천하지 않고 다른 후보를 내세우는 바람에 간신히 의석을 지킬 수 있었다.

2015년 의원소환제도 첫 도입

한국에서는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만 무성한 의원소환제가 이처럼 영국에서는 실제 작동 중이다.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영국에서도 의원소환제를 실시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2015년 의회 개혁 차원에서 ‘유권자에 의한 의원소환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의원소환제가 실제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다. 지난해 7월 북아일랜드에서 첫 소환 시도가 있었지만 요건에 못 미쳐 불발됐고 올해 들어 드디어 소환을 당한 의원들이 생겨났다. 영국 정가에서는 올해 들어 하원의원 2명이 연달아 소환돼 의원직을 잃는 일이 벌어지자 상당한 충격파가 일고 있다.

선출직에 대해서 엄청난 권한을 부여하는 영국에서는 의원소환제 역시 무척 엄격하게 운영한다. ‘영국 하원의원 소환은 의원의 활동이나 정치적인 견해와 발언 등의 여하한 이유로도 아래의 세 가지 경우 말고는 시도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첫 번째 소환 요건은 범법행위로 금고형 이상(집행유예도 포함)의 판결을 받았을 경우다. 이때도 항소·항고 절차가 다 끝나 최종 판결이 나온 뒤라야 한다. 우리의 경우는 국회의원이 형사사건으로 금고 이상(집행유예도 포함)의 형을 받으면 의원직이 자동 상실된다.

두 번째 소환 요건부터가 좀 무섭다. 하원의원이 잘못을 저질러 의회 개회일 중 10일 이상, 주(週)로 따져서 2주 이상 의회 참석정지 처분을 받으면 소환 요건이 된다. 참석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하원 윤리특별위원회로, 현재 보수당 3명, 노동당 3명, 스코틀랜드국민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윤리특별위원회로부터 의회 참석정지 처분을 받는 사유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해 무척 다양할 수 있다. 거짓말, 품위상실 등이 모두 해당된다. 물론 이런 사유로 의회 참석정지 처분을 받는 사례가 많진 않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작년 7월 첫 소환 대상이 됐던 북아일랜드 앤트림 선거구의 이안 페이슬리 2세 하원의원이 비슷한 경우였다. 그는 스리랑카 정부의 초청을 받아 방문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하원 윤리특별위원회에 의해 30일 의회 참석정지 처분을 받았다. 외국 정부 초청으로 외국을 방문한 사실을 규정에 따라 하원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는 유권자들로부터 처음 소환되는 의원이 될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아슬아슬하게 소환되지는 않았다. ‘유권자 10% 찬성’이라는 소환 요건에서 조금 부족한 9.4%만이 소환에 찬성한 덕분이었다. 이 결과를 놓고 선거구의 특색이 반영된 행운의 결과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는 앤트림 선거구의 개신교 왕당파 정당(Protestant Loyalist Party)인 민주연합당(Democratic Unionist party)의 창립자 이안 페이슬리의 아들로,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토착 집안 출신이다. 선거구 자체가 왕당파의 텃밭이고 아버지가 ‘북아일랜드 개신교의 제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라 운 좋게 정치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환 찬성 서명 장소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토착세력인 개신교에 적대적이라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이라 유권자들이 소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과 함께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 9.4%가 소환에 찬성한 것도 기적 같은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원의원 소환 서명 용지. ‘위의 의원을 소환하는 데 찬성하는 경우에만 이 용지에 서명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원의원 소환 서명 용지. ‘위의 의원을 소환하는 데 찬성하는 경우에만 이 용지에 서명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편법과 불법 사이

세 번째 소환 요건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혹할 수 있다. 의회윤리독립감사청(IPSA·위의 하원 윤리특별위원회 위원과 외부 위원으로 구성)에 의해 하원의원이 경비를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사실이 적발돼 사실로 판단되면 소환 대상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보수당 데이비스 전 의원의 사례에서 보듯 부당 청구 경비가 우리 돈으로 100만원 남짓 되더라도 큰 죄가 된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부당 청구 자체가 의원직 유지에 걸맞지 않은 죄가 된다는 취지다.

사실 데이비스 전 의원의 사례를 꼼꼼히 따져보면 가혹하다 싶은 측면이 있다. 그가 쓰지도 않은 돈을 썼다고 부당하게 경비를 청구하거나 실제 쓴 돈보다 과다하게 청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달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2015년 총선 기간 개인 돈 700파운드(105만원)를 들여 사무실 장식용 풍경 사진 9장을 사면서부터였다. 그가 나중에 해당 경비를 청구하려고 보니 사무실 개설 예산은 정해진 돈에서 476.02파운드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영수증을 450파운드와 250파운드짜리로 쪼개 450파운드는 사무실 개설 예산으로 청구하고, 나머지 250파운드는 8303.75파운드가 남아 있던 사무실 운영자금 예산으로 청구했다. 이에 대해 의원 본인은 “편법이라고만 생각했지 불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의회윤리독립감사청, 경찰청, 검찰청, 법원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특히 ‘순수한 실수’라는 항변과 달리 그가 가짜 영수증을 만든 것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그는 두 차례의 경찰 조사를 받은 끝에 2019년 2월 검찰이 소추를 결정해 정식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스스로 유죄를 인정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데이비스 의원에게 적용된 죄목은 영수증 위조와 예산항목 적용 오류. 물론 위조가 더욱 심각한 범법행위이지만 예산항목을 잘못 적용한 것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는 판단까지 내려졌다. 영수증 쪼개기와 허위 청구가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벌어지는 우리 여의도 시각으로 보면 ‘좀팽이’ 같은 판단일지 모르지만 국민의 혈세를 사용할 때 추호의 위법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시각인 셈이다. 어찌됐든 데이비스 의원은 판결 후 곧바로 소환 서명 대상이 돼 6주 만에 브레콘 레드너셔 선거구 유권자 19%(1만5명)가 소환 찬성에 서명해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유권자 10%만 서명하면 소환 결정

영국에서 의원 소환과 의원직 상실 여부는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세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결정이 나면 하원의장은 즉각 선거관리위원회에 의원 소환 서명을 시작하라고 요청한다. 요청을 받은 선거관리위원회는 10일 내에 담당 위원을 선정해야 하며, 선정된 담당 위원은 해당 의원 선거구 내 10개의 장소를 지정해 즉각 유권자의 서명을 받기 시작한다. 서명은 투표와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이 해당 장소에 와서 준비된 종이에 서명을 하면 된다. 하지만 찬성혹은 반대 표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명 용지에는 소환하려는 의원 성명 밑에 ‘위의 의원을 소환하는 데 찬성하는 경우에만 이 용지에 서명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용지 제일 아래 사각형 서명란에 서명하여 봉인된 함에 투입하면 절차가 끝난다. 소환 서명은 일반적인 서명과는 달리 용지에 본인 이름이나 주소도 쓰지 않는다. 우편 투표나 인터넷으로도 서명이 가능하고 위임 서명도 가능하다.

소환과 의원직 상실 여부가 결정되는 기준은 ‘유권자의 10%’. 선거구 유권자 중 10%가 서명을 하면 소환이 결정돼 해당 의원은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서명은 6주간 계속되는데 서명하는 유권자 숫자가 10%에 이미 도달해도 중간 발표를 하지 않고 계속 진행한다. 서명 기간 동안에는 의원직을 유지하지만 6주를 채운 후 서명한 유권자 수가 10%를 넘었다는 사실이 발표되면 바로 의원직을 상실해 의석이 공석이 되고 보궐선거 준비에 들어간다. 만일 서명 중 의원이 자진 사퇴하거나 조기 총선이 발표되면 서명은 즉시 중단된다.

소환 서명 과정에서 유권자들을 상대로 서명에 동참하라, 말아라 등 찬반운동도 가능하나 총선과 같은 수준의 엄격한 선거자금법상 경비 통제를 받는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은 개인이나 단체는 서명운동 경비로 500파운드, 등록하면 1만파운드의 경비를 사용할 수 있다. 해당 선거구 유권자나 영국 내 주민 누구나 등록해 활동할 수 있다. 단체의 경우 정당, 회사, 노동조합, 주택조합까지도 등록할 수 있다. 소환 서명을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48쪽 분량의 관련 서류집 중 40쪽이 경비 규정일 정도로 엄격하게 경비를 따진다.

지난 7월 보수당 당수 선출 과정에서 후보 간 TV토론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영국의 유권자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보수당 당수 선출 과정에서 후보 간 TV토론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영국의 유권자들. ⓒphoto 뉴시스

소환 의원 재출마도 가능

흥미로운 것은 데이비스 의원의 경우에서 보듯 유권자 소환 서명에 의해 의석을 잃은 전직 의원도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최종 판단은 서명을 한 10%의 소수 유권자가 아니라 선거구 전체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취지다. 결국 영국 하원의원의 선출과 해임은 다른 어떤 법적인 제도나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권자들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의원소환제는 역설적으로 선출직인 하원의원의 지위가 워낙 막강하다는 인식이 불러온 개혁 조치였다. 2015년 의원소환제가 법제화되기 전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하원의원이 자동으로 의석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범법행위로 아무리 중죄를 저질러도 의원직은 유지됐다. 물론 살인 등의 중죄를 저지르면 여론에 밀려서라도 자진 사퇴해야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은 절차를 밟아야 했다. 더욱이 1년 이상의 금고형만 받지 않으면 감옥에 갇힌 의원도 선거에 다시 입후보할 수 있고, 옥살이를 하다가 임기 중 형기가 다 끝나 출감하면 바로 의회에 출석해 의원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었다.

1년 이상 금고형을 받은 사람은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법 조항이 생긴 것도 사실 1981년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보비 샌즈 의원 단식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전까지는 유권자가 선출만 하면 어떤 중죄를 저지른 범법자도 입후보해 하원의원이 될 수 있었다. 북아일랜드 독립운동 무장투쟁단체인 IRA 멤버였던 보비 샌즈는 테러범으로 수감 중이던 1981년 감옥에서 하원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된 인물이다. 그는 감옥에서 항거하다가 의원 신분을 유지한 채 단식투쟁으로 사망했다.

대의제도에 따라 민의를 철저하게 존중하는 영국에서는 거꾸로 의원직을 그만두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지난한 일이었다. 국왕과 국민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하원의원은 법적으로는 자의로나 타의로나 임기 중 사임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었다. 외부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의를 가장한 사임을 막자는 취지였는데 이로 인해 법원의 유죄 판결로도 자동 의석 박탈이 되지 않았다. 하원의원이 임기 중 사망하거나 임기가 끝나 퇴임하지 않는 한 원천적으로 사임이 불가능해지자 급기야 영국 의회는 사임을 원하는 의원을 위해 편법까지 고안해냈다. ‘The Crown Steward and Biliff of the Manor Northstead’와 ‘Crown Steward and Bailiff of the three hundreds of Stock’ ‘Desborough and Burnham’이라는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괴상한 이름의 지방으로 의원을 보내는 형식적 발령을 내 어거지로 의석을 공석으로 만든 후 보궐선거를 치렀다. 자진 사임이지만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런 하원의원의 철밥통 지위도 2010년 대형 경비 추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관행으로 인정받아 많은 의원들이 부당 경비를 오랫동안 편법으로 수령해왔다는 사실이 그해 언론 폭로를 통해 알려졌다. 우리로 치면 그리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영국이 들썩이게 됐고 결국 7명의 하원의원과 2명의 상원의원이 금고형을 받았다.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의원들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부정으로 수령한 경비를 자진 반납하고 벌금형의 처분을 받은 많은 의원들은 다음 총선에 다시 입후보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책임을 졌다. 그런데 2011년과 2012년에 하원의원 부정 경비 문제가 다시 터지자 유권자들이 하원의원 소환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유권자 소환 서명운동이 법적 효력도 없었고 아주 특이한 제도로 취급받았다. 실제 2012년 하원의원 경비 부당 청구 문제가 국가적 논제로 떠오른 끝에 구성된 하원 ‘정치 헌정 개혁 특별위원회’는 조사보고서에서 ‘일부 지방에서 일시적으로 인기 없다고 의원을 소환하는 제도를 만들면 민주주의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고려를 해야 한다’고 의원소환제에 신중론을 폈다. 또 ‘유권자 소환제도를 만든다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 높이는 결과를 만들 수도 없다’는 부정적 평가까지 했다. 하지만 2012년에 또다시 현직 장관이자 하원의원이 경비 부당 청구 범행으로 8개월의 금고형을 받은 일이 벌어지자 영국도 소환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비등하는 여론 속에 급기야 2015년 유권자 의원소환제도를 법제화하게 되었다.

영국 의원소환제의 묘미는 유권자 10%라는 기준과 재도전 기회다. 유권자들이 동의만 하면 일단 의원직을 뺏을 수 있는 기준이 ‘유권자 10%’로 아주 낮지만, 의원직을 잃더라도 재출마를 통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을 여지를 다시 열어놓은 것이다. 비록 해당 의원이 소환 요건에 해당하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들을 대표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유권자들이 판단하면 투표를 통해 면죄부를 준다는 의미다. 또 범법행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유권자의 소환 서명이 10% 요건에 못 미치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결국 법뿐만이 아니라 의회의 결정마저도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의 결정보다 위에 있지 않다는 엄중한 철학이다.

국민이 보는 의원의 자격

올해 유권자들로부터 소환당해 의원직을 잃은 두 경우를 보면 우리로서는 사소하게 보이는 잘못도 영국에서는 큰 잘못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의원의 자격을 보는 시선이 다른 셈인데, 오나산야 의원 사례를 보면 거짓말이 얼마나 큰 죄인지가 엄중하게 다가온다. 오나산야 의원은 과속을 시인만 했으면 벌점 3점(12점이 되어야 면허 정지 6개월)을 받고 소액의 벌금을 물면 그만이었지만 자기가 운전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죄를 키웠다. 그에 대한 소환 서명에는 6만7673명의 유권자 중 1만9261명(27.64%)이 응해 소환 요건의 3배 가까이 충족시켰다. 사건 초기에는 흑인 여성이라 차별받는다는 얘기까지 있었으나 같은 기간 남동생도 과속 통지서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운전자로 써서 보낸 것이 발각돼 유권자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오나산야 의원이나 데이비스 의원의 경우에서 우리는 영국인 특유의 철저함, 사회 고위층에 요구되는 엄격함 등을 엿볼 수 있다. 과속 통지서에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고 허위 기재했다는 사실 하나로 현역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3개월의 금고형을 받는 일은 우리로서는 과할지 모르지만 사실 영국에서는 특이한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회지도층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데이비스 의원의 경우를 보더라도 현직 의원이 단지 105만원의 경비를, 그것도 개인 돈으로 먼저 지출한 경비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영수증 조작과 예산항목 오적용으로 의원직을 잃는 것이 어찌 보면 가혹할지 모르지만 영국에서는 당연히 의원직 사퇴에 해당하는 잘못이다. 이런 사회 일반의 상식과 기준을 따르지 않고 의원직을 유지하려고 버티는 의원들에게 ‘소환’이라는 철퇴가 내려진다는 사실이 우리로서는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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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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