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평화당 내 제3지대 구축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유성엽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함께 민주평화당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평화당 내 제3지대 구축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유성엽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함께 민주평화당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변수로 떠올랐던 이른바 ‘제3지대’가 총선을 8개월 앞두고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민주평화당 내 반(反)정동영계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 소속 의원들이 지난 8월 12일 탈당을 선언했다. 유성엽 원내대표와 박지원 의원 등 호남을 지역구로 둔 10명의 의원들이 모인 대안정치 모임이 내건 기치는 여(與)도 야(野)도 아닌 ‘제3지대 신당’이다. 이들은 탈당 선언에서 “정부·여당과 제1야당은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기득권만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며 제3지대 세력 규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역대 선거에서 ‘제3지대론’은 소수 정치세력이 신당을 만들 때마다 내걸었던 깃발이다. 과거 대선에서도 박찬종·이인제·정몽준·문국현·안철수 등 제3지대 후보가 화제를 모았다. 거대 양당이 이끄는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여야 1·2당에 마음을 주지 못하는 부동층이 적지 않다. 8월 둘째 주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無黨層)은 26%였다. 신당이 이들만 규합할 수 있다면 단번에 지지율 2위에 오를 수 있다. 유권자 이념성향 분포를 봐도 제3지대 정치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중도층(30%)은 진보층(28%)과 보수층(22%)에 비해 가장 규모가 큰 집단이다. 더구나 이념성향을 묻는 질문에 ‘무응답’ 또는 ‘모르겠다’며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무(無)이념층’도 20%였다. 중도층과 무이념층, 즉 보수와 진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층 규모가 유권자의 절반(50%)에 달했다.

이처럼 제3지대 정치는 명분도 있고 유권자 지형도 나쁘지 않아서 오아시스 같지만, 역대 선거에선 대부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에 그쳤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기성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제3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라며 “그동안 제3지대 신당은 새로운 정책과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국민의당도 제3지대론의 성공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당시 비례대표 정당 득표에서 새누리당(33.5%)에 이어 국민의당(26.7%)이 민주당(25.5%)을 앞서며 2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역구는 대부분 호남에서 얻었다. 지지 기반이 제3당을 염원하는 중도층은 아니었다. 결국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이 2년도 지나지 않은 2018년 2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쪼개지며 소멸됐다.

오아시스 같지만 신기루로 끝난 제3지대론

최근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제3당은 국민의 관심권 밖에 있다. 지난 7월 서울신문·칸타퍼블릭 조사에서 여권인 민주당(34.8%)과 정의당(5.3%), 야권인 한국당(21.4%)에 이어 제3당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3.8%)과 민주평화당(0.4%)은 지지율 합(合)이 4.2%에 그쳤다. 두 정당이 창당했던 2018년 2월 SBS·칸타퍼블릭 조사에서 바른미래당(8.1%)과 민주평화당(1.6%)의 지지율이 9.7%였던 것과 비교하면 2년6개월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제3당은 중도층의 표심(票心)을 담기에도 역부족이다. 7월 칸타퍼블릭 조사에서 중도층의 바른미래당(4.4%)과 민주평화당(0.6%) 지지율은 5%로 민주당(32.7%)과 한국당(15.9%) 등 1·2당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민주평화당을 탈당한 대안정치 모임의 기반인 호남권에서도 바른미래당(2.0%)과 민주평화당(0.5%) 지지층은 소수에 그쳤다.

지난 대선에서 제3지대 후보였던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을 선택했던 유권자들도 최근엔 뿔뿔이 흩어져 있다. 칸타퍼블릭 7월 조사에서 이들을 찍었던 유권자 10명 중 3명은 한국당(19.8%)과 민주당(12.9%) 등 양대 정당으로 유입됐고, 바른미래당(17.1%)과 민주평화당(0.5%) 지지자는 20%에도 못 미쳤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현재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47.2%)으로 빠져나갔다. 최근 무당층이 늘어난 것은 거대 양당에 대한 실망감뿐 아니라 제3지대를 표방했던 정치권에 대한 기대감 상실도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역대 선거에서 신기루였던 제3지대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정치권은 야권 재편과 관련해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보수·중도 통합 움직임도 주시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만약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이 민주당과 통합 야권의 양자 대결로 치러진다면 치열한 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6월 첫째 주 갤럽 조사에서 내년 총선과 관련해 ‘정부에 힘을 보태기 위해 여당이 많이 당선돼야 한다’(47%)와 ‘정부의 잘못을 심판하기 위해 야당이 많이 당선돼야 한다’(40%)의 차이는 7%포인트였다. ‘무응답자’(13%)의 선택이 총선 승부를 가를 것이란 얘기다. 더구나 한국일보·한국리서치의 6월 조사에선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한 번 더 밀어줘야 한다’(45.8%)와 ‘정권 교체를 하는 것이 좋다’(45.8%)가 동률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야 일대일 구도일 경우 표심이 팽팽히 맞설 것이란 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으로선 통합의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보수·중도 통합하면 해볼 만

야권 재편과 관련해선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독일에 머물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의 향후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바른미래당 내 호남계 의원들이 제3지대 신당 창당에 합류할 경우 안철수·유승민계가 보수·중도 통합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와 김영우·홍문표 의원 등도 공개적으로 안 전 대표를 포함한 보수·중도 통합을 주장했다. 보수의 혁신과 통합을 내건 ‘플랫폼 자유와 공화’ 모임을 이끄는 박형준 전 의원은 “총선에서 중도·보수 진영이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면 나라가 정말 위험해질 수 있다”며 “황교안·안철수·유승민 세 사람이 단일대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권파도 “안 전 대표가 조기 귀국해 당을 총선 승리의 길로 이끌어주길 바란다”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어게인 안풍(安風)’, 즉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판세를 흔들었던 안철수 바람이 다시 불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기 대선과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이 2~3%에 그치고 있어서 그의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민주평화당을 탈당한 박지원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안 전 대표를 향한 정치권의 기대에 대해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심판했다”며 “안 전 대표의 몸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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