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2일 오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뜻을 밝힌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7월 12일 오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뜻을 밝힌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정계를 떠난 정치인이 복귀 시점을 결정하는 것은 주식 매도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복귀 시점을 잘 잡으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불쏘시개로 전락하고 만다. 전자의 대표적 경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4대 대선에서 낙선한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가 2년 뒤 복귀해 15대 대선을 통해 대통령이 됐다. 반대의 경우는 지금 정치권에도 존재한다.

“1년 쌓은 에너지, 체제 개편에 쓸 수 없다”

정계 복귀 시점과 관련해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인사가 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의원이다. 안 전 의원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가 패배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그해 9월 1년 체류 일정으로 유럽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지리멸렬한 보수정치권의 상황이 그의 복귀를 부추기고 있다.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은 당의 깊어진 내홍을 해결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일각에서는 보수야권 재편을 위해 안 전 대표의 정계복귀 필요성을 언급하는 상황이다. 침묵하던 안 전 의원은 자의와 무관하게 정치권과 언론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측근 의원을 통해 정계복귀설을 일축했다.

안 전 의원 측근으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은 최근 독일에서 안 전 의원과 만나고 돌아온 후 몇몇 언론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제가 느낀 것은 (안 전 의원이) 정치 세계에 대해서는 좀 신중한 입장이며, 해외에서 좀 더 축적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본인이 나름대로 연구 일정을 몇 개 갖고 있다. 연구 방법에 따라 (기간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추석 전 귀국설’ 같은 것은 전혀 아닌 이야기다. (보수통합과 관련해서는) 안 전 의원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안 전 의원이 따로 소통하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안다. 여의도에서 호사가들이 떠드는 이야기다.”

안 전 의원은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에게는 지난 연말 연하장도 보내고, 독일로 오는 사람들은 간간이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안 전 의원이 한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그가 정치현안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태규 의원이 안 전 의원과 만난 것을 언론에 흘린 행위에는 사실상 안 전 의원의 의중이 담겼다고 봐야 한다. 안 전 의원의 또 다른 측근의원은 “자유한국당 쪽에서 자신의 이름이 계속 나오는 게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에 메시지를 밝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전언으로 인해 안 전 의원의 복귀설은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의원의 복귀설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그의 몸값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도 밀린 3위를 했을 때만 해도 사실상 정치인으로서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이 많았다. 안 전 의원은 지방선거 패배 후 해외로 떠났다. 그는 자신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정계를 은퇴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다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고 출국했다. 애매모호한 입장만 취하던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은 보수정치권의 상황이 역설적으로 그의 몸값을 높이는 효과를 일으켰다. 일단 깊어진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그의 이름을 소환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는 당이 존폐 갈림길에 선 만큼 공동 창업주 중 한 명이자 국민의당 대표를 지낸 안 전 의원이 독일에서 귀국해 당 상황 수습에 힘을 보탤 때가 됐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보수대통합을 이끌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당내 의원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상황은 8월 말 비자만료 시점과 맞물려 안 전 의원의 복귀설을 더 뜨겁게 달궜다.

선거법 개정 후 귀국해 독자노선 걸을 듯

안 전 의원은 결국 해외에 더 머무르는 것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런 결정은 측근 의원들과 조율 끝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의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철근 전 국민의당 대변인은 “안 전 의원이 바른미래당 지도체제 개편에 매몰돼 1년간 쌓은 에너지를 쓰라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태규 의원 역시 “일단 당의 리더십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며 “당이 자정 능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측근들의 이런 말들을 종합해보면 안 전 의원의 정계 복귀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정계에 복귀하면 그 목표는 다음 대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자신의 가치를 최대화해서 복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 후 약 2년간 영국에 머물면서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그는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김 전 대통령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서태지가 은퇴했을 때 ‘가요계 복귀에 힘써달라’며 팬클럽 회원들이 직접 편지를 보내자 여기에 대한 친필 답장을 보내거나, 손숙씨와 같은 연예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스크린쿼터에 대한 공부를 하는 등 대중과의 접촉은 끊지 않았었다”고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시기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중재 필요성을 역설해 클린턴 정부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은 오히려 은퇴 전보다 대중으로 하여금 더 호의적인 시선을 끌어모았다. 이런 이야기를 해준 인사는 “안 전 의원이 정계를 떠나 있다는 것만 DJ와 같지 대중에게는 전혀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 전 의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들 아니냐”고 꼬집었다.

안 전 의원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여당에서는 그의 복귀 시점을 11월 전후가 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선거법 개정이 이뤄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내년 총선이 치러질 경우 안 전 의원이 20대 총선 때처럼 제3 중도정당을 표방하고 다음 대선 전까지는 독자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 정개특위를 통과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11월부터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박혁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