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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그의 ‘검’은 늘 한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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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7호]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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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노무현·이명박·박근혜… 그의 ‘검’은 늘 한 방향이었다

photo 뉴시스
몇 년 전 한 검찰총장이 특수부 검사들을 ‘사파리’, 공안검사들을 ‘동물원’에 비유한 이야기가 검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된 바 있다. 공안검사들은 윗선의 말을 잘 듣는 반면 특수부 검사들은 통제가 쉽지 않다는 것을 빗댄 얘기로, 검찰 내부에서도 특수부 검사들은 ‘꼴통’이란 인상을 줬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고정관념 때문인지 특수통 검사가 검찰총장 자리에 오른 일은 드물었다. 총장 자리에는 대부분 기획통이 임명되어왔고, 보수정권에서는 한상대 전 총장 같은 공안통이 총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검사 생활의 대부분을 특수부에서 보낸 윤석열 서울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여러 면에서 파격인사로 평가받았다. 특수통 검사가 검찰 최고 수장 자리에 오른 것은 채동욱 전 총장에 이어 두 번째였다.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를 할 때 가장 귀 기울여 말을 듣는 상대는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이다. 그런데 지난 총장 인사 내정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법무부 장관은 봉욱 대검 차장을 차기 총장으로 밀었다는 것이 청와대와 법조계 안팎의 정설이다. 당시 조 수석은 검경수사권 조정, 공직자비리수사처 등 법무부가 맡아야 할 검찰개혁 사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검찰 내 대표적 기획통인 봉 전 차장이 차기 총장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윤석열을 발탁한 이유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검찰 안팎의 여러 의견을 수렴한 결과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검사로서의 경력을 높이 평가해 윤석열 지검장을 총장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은 민정수석실과 같은 공식 라인은 물론이고 윤 총장과 친했던 측근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 것으로 전해진다. 윤 총장 임명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검찰 고위 인사는 “문 대통령이 사람을 임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그가 과거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인 것 같다”며 “대통령은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던 윤 총장의 과거 경력을 높이 평가했고, 검찰개혁의 핵심인 특수부 축소와 관련해서도 윤 총장이 가장 잘 아는 인사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현 여권의 호감을 얻게 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와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을 거치면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현 여권은 정권에 굴복하지 않는 윤석열이란 검사에 환호했고, 결국 그는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승진을 하며 총장에 올랐다. 그런 그가 지금은 청와대와 여당의 공적(公敵)이 되다시피했다. 윤 총장에 대해 잘 아는 인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권력에 굴하지 않는 윤 총장의 스타일이 바뀐 것은 없다. 몇 년 전에는 야당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권력을 잡았다는 정치 상황이 바뀐 것뿐이다.”
   
   
   BBK 사건에 대한 윤석열의 토로
   
   기자는 과거 윤석열 총장으로부터 총장이 되기 전 자신의 수사 경력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윤 총장은 검사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전·현직 대통령 3명과 관련된 수사를 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력으로 자신 있게 내세웠다. 윤 총장의 첫 대통령 관련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던 2003년 이뤄진 불법 대선자금 수사다. 당시 윤 총장은 평검사로 수사팀에 참여해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과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강금원(작고) 창신섬유 회장을 모두 구속기소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BBK 특검에 파견되어 이 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받았던 의혹들에 대해 수사했다. 당시 특검은 결과적으로 이 전 대통령이 김경준씨가 운영했던 BBK와 연관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지금 윤 총장을 공격하는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윤석열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고, MB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 총장은 이런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일절 언급한 바가 없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기자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가 있다. 그가 박근혜 정부 중반 대전과 대구 등 한직을 오가고 있을 때로, 지금처럼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총장으로 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던 시절이었다. BBK 특검에 대한 그의 말은 이랬다.
   
   “사건을 일부러 덮었다고 주장하지만, 김경준이란 사기꾼에게 MB가 속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민주당도 김경준에게 집중하느라 MB가 김경준이란 사람에게 속아 넘어갈 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당시 내가 특검 백서까지 만들어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백서를 본 사람들 중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시 윤 총장은 사모펀드, 헤지펀드와 관련해 자신이 공부했던 일화들을 털어놓은 것은 물론 BBK를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 등과 여기에 등장하는 펀드 용어(영어)들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때는 윤 총장이 BBK사건을 수사한 지 최소 7년 이상이 지났던 시기였다. 윤 총장이 ‘조국 펀드’로 불리는 사모펀드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 수사를 하고 있는 것도 BBK사건의 경험이 뒷받침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세 번째로 대통령 관련 수사를 한 것은 이른바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였다. 이 수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권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때 여주지청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윤 총장은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금융 관련 기관에 파견 나가 가정에 좀 신경을 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채동욱 당시 총장이 그를 국정원 수사팀에 합류시켰다. 당시 윤 총장은 가정적으로 여러 가지 신경 쓸 일들이 있었지만, 검찰 선배의 명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그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집안에 ‘안타까운’ 일까지 생겼고, 지금도 채 전 총장은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기자 개인의 추측이지만 문재인 대통령 역시 윤 총장의 이런 과거사를 공식, 비공식적으로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채동욱 전 총장과 친하게 지내던 친여권 인사들이 지금도 대통령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 30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위원장인 김남준 변호사(법무법인 시민)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몽구 구속 건의서와 사직서 함께 들고 가
   
   결국 그가 스스로 자부심을 내보인 수사 경력은 세간에 알려져 있다시피 그가 정치적 상황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돌직구’ 스타일임을 다시 한번 입증할 뿐이다. 검사로서 오랫동안 다져진 이런 스타일이 조국이라는 큰 암초를 만나 바뀔 수 있을까. 조국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수사를 이어가는 그를 향해 청와대와 여당이 연일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과거 경력으로 미뤄보면 그가 적어도 수사와 관련해서는 정권과 타협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그는 수사와 관련해서 일정 임계점을 넘으면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지는 스타일로도 알려져 있다. 이를 보여주는 과거 사례도 몇 가지 있다.
   
   그가 평검사 시절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김대중 정부 2년 차였던 1999년이었다. 당시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치안감)은 경찰 수사를 받던 한 아파트 관리 업체로부터 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2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호남 출신인 박 치안감은 당시 정권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윤 총장은 당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소속 검사였다. 수사 초기부터 경찰과 여권 정치인들이 반발했지만 그가 속한 특수2부는 수사를 이어갔다. 당시에도 경찰 수사권 독립 논의가 활발했던 때라 경찰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치밀하게 수사한 증거를 바탕으로 결국 박 치안감의 자백을 받아내고 구속까지 시켰다.
   
   이 사건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1월 윤 총장은 검찰을 떠났고 이후 1년간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건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특채를 통해 검찰 조직으로 복귀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대검 중수부로 파견된 윤 총장은 현대기아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맡았다. 당시 수사팀장은 훗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중수부장이었고, 수사 내용을 언론에 브리핑한 수사기획관이 채동욱 검사였다. 당시 중수부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증거를 수집했다. 현대차 사옥을 수색해 회장실과 비서실 사이 벽을 망치로 내려쳐 비밀금고 속 장부를 압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당시 검찰 지휘부는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을 구속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했다. 재계 거물인 그를 구속했다가는 불어닥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도 수사 실무자인 윤 총장의 선택은 ‘정공법’이었다. 그는 윤대진 특수2부장과 함께 정상명 당시 검찰총장을 직접 찾아가 “수사한 결과 정몽구 회장을 법대로 구속해야 한다”며 보고서와 사직서를 함께 내밀었다. 정 회장을 구속하지 않는다면 직을 던지겠다는 의미였다. 정 전 총장은 고심 끝에 정 회장을 구속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윤 총장을 각별히 신임한 것으로 알려진 정 전 총장은 윤 총장이 이번 검찰총장이 될 때 검찰총장추천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2012년 윤 총장이 대검 별관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는 주례를 서기도 했다.
   
   윤 총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사태 때도 외압으로 인해 수사가 중단될 위기에 몰리자 결국 국정감사장에 나오는 강공법을 선택했다. 현직 검사가 수사와 관련해서 국정감사장에 나온다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지만, 혼외자 의혹으로 채동욱 총장이 흔들리는 마당에 그는 이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시 검찰 외부에서는 윤 총장이 ‘돌발적으로’ 국감장에 섰다고 했지만 윤 총장은 누구보다도 정치적 흐름을 잘 읽는 사람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신의 처가와 관련된 보도를 이어가던 조선일보 등에 대해 몇몇 카드를 가지고 반격에 나서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검사를 통해서 우려를 전달한 것도 윤 총장이었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11월에도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수사를 법무부와 청와대에 알리지 않고 진행했다. 정권 초기 정부 지지율이 80%를 넘나들던 시점이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도 “언론 보도를 통해 수사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특유의 강공법 다시 꺼내들까
   
   윤석열 총장은 이번 외압에도 과거와 같은 강공법으로 정면 돌파를 택할까. 물론 현재로서는 윤 총장이 과거와 같이 파격적인 카드를 쓰기보다는 검찰 조직의 안위를 위해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신이 옷을 벗게 되면 지금의 검찰이 어느 때보다 위기에 빠질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감은 검찰 안팎에 팽배해 있다. 사실 연수원 23기인 윤 총장이 전직 문무일 총장보다 5기수 아래임에도 총장에 임명되자 검찰 내에서는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무려 15명이 넘는 검사장들이 줄사퇴했다. 언론 보도만 보면 마치 검찰에 큰 위기가 닥칠 것처럼 비쳤으나 오히려 지금의 검찰은 어느 때보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설치 같은 위기에서 ‘검찰주의자’ 윤 총장이 어느 정도 외풍을 막아줄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검찰이 지난 10월 3일 조국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비공개 소환한 것도 강경일변도로 갔을 때 조직이 받을 데미지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7일 조 장관 수사와 관련해 “아무런 간섭 없이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하라”며 “법, 제도 개혁뿐 아니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 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윤 총장은 조 장관 관련 수사는 계속 진행하되, 청와대가 문제를 제기한 수사 관행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문제점을 받아들인 셈이다.
   
   하지만 정 교수의 구속 및 기소, 조 장관의 소환 등을 놓고 검찰이 청와대와 다시 충돌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청와대 입장을 받아들여 정 교수에 대한 비공개 소환이란 배려를 했음에도, 외부에서 수사 본류에 영향을 가한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윤 총장이 특유의 강공전략을 다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윤 총장이 수사한 이들은 모두 ‘윤석열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는 정권의 성향을 막론하고 윤 총장이 특수통으로 중용된 이유와도 연결된다. 정권의 보복으로 지방에 좌천돼도 윤 총장은 검찰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은 검찰 조직을 이끄는 수장인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공교롭게도 ‘검찰개혁’이 화두인 상황에서 검찰 수장이 된 그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검찰의 존재 이유를 검찰 안팎에 보여줘야 하는 짐을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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