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여야 의원을 비롯한 보좌진과 당직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6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여야 의원을 비롯한 보좌진과 당직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조만간 관련된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기소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황교안 대표가 검찰에 자진출석하고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정감사 이후 출석 의사를 밝힌 상황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당 당직자나 보좌관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주간조선이 만난 한 보좌관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불안감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그 직후(4월 말 국회 여야 충돌 시점)만 해도 당내에서는 똘똘 뭉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좀 더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누가 스스로 ‘총대’를 메줄 수 있을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먼저 나서서 ‘내가 짊어지겠다’는 뜻을 밝힌 의원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보좌관의 이야기처럼 당 수뇌부나 중진들이 외부에서 보이는 언행과는 달리 당 내부, 특히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말 못 할 마음고생이 심해지고 있다.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60명의 현역 의원(황교안 대표 포함)들을 전부 재판에 세우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검찰이 ‘세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이 과연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분위기”라고 상황을 전했다.

보좌진들은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당 대표나 중진들이 외부에서 보이는 행동들은 오히려 수세에 몰린 한국당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지난 10월 1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올해 4월 말 국회에서 발생한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와 관련 서울남부지검에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포토라인에 선 황 대표는 결연한 표정으로 “검찰은 저의 목을 치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멈추십시오”라면서 검찰에 ‘수사를 멈출 것’을 요구했다. 이날 황 대표는 5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지만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영상자료만으로도 기소 가능”

지난 10월 7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여상규 국회 법사위원장이 검찰의 패스트트랙 수사를 두고 “정치적 문제다. 검찰이 수사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국정감사 자리에서 국회 법사위원장이 관련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남부지검장에게 사실상 ‘수사 외압’을 가한 것이라는 반발이 제기됐다. 여 위원장 역시 패스트트랙 충돌로 인해 고발된 한국당 의원 59명 중에 포함되어 있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두 사람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패스트트랙 수사에 대한 당위성만 확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조사를 받은 바 있는 다른 당의 한 의원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검찰 수사에서 설명하면 될 일을 정치적으로 풀려 하니까 국민들이 보기에는 ‘뒤가 켕겨서 저런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이번 수사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도 한국당 관련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이유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경찰에서 송치된 영상자료만으로도 기소가 가능한 수준으로 증거능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서울 남부지검은 9월 말부터 최근까지 3차례에 걸쳐 수사 대상인 한국당 의원 60명 가운데 37명에게 소환을 통보했지만 검찰에 출석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7월과 9월에 걸쳐 민주당 백혜련·표창원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 등은 경찰에 자진출석한 바 있다. 이때 백 의원은 “한국당은 억울하다고 하는데 뭐가 억울한지 모르겠다”며 “설령 억울하다면 나와서 어떤 부분이 잘못이고 어떤 부분이 억울한지 밝혀야 한다”며 한국당을 압박했다. 여기에 최근 ‘조국 수사’로 인해 여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검찰이 패스트트랙 수사와 기소를 더 엄격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위기도 강하다. 4월 말 국회 충돌 직후만 해도 여야가 고발을 주고받고 국회가 파행을 이어가자 ‘국회 정상화’를 위해 곧 서로 소를 취하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5월 22일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를 명분으로 사과나 고발 취하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확실히 하면서 여야 간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졌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기재부 디브레인 사건 때 문희상 의장의 중재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패스트트랙 사건 때도 이 같은 대응전략을 썼어야 했다”며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희상 의장부터 먼저 조사받으라고 하는 식의 대응을 하고 실제로 문 의장이 서면조사를 받는 바람에 카드 하나가 날아갔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국회 패스트트랙 여야 충돌 사건과 관련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자진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1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국회 패스트트랙 여야 충돌 사건과 관련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자진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한국당 의원 대부분 회의방해죄로 고발

패스트트랙 수사를 두고 상대적으로 한국당이 민주당보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이유는 한국당 의원 대부분이 ‘회의방해죄’로 고발됐기 때문이다. 회의방해죄는 벌금형이 1000만원 이하, 징역 5년 이하이기 때문에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의원들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5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을 경우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되어 있다. 50만~100만원 사이의 벌금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큰 ‘폭력행위 등’ 위반 죄에 비해 ‘회의방해죄’의 처벌이 현역 의원들에게는 훨씬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방어를 위해 한국당 측에서는 “국회 본관 7층에는 회의실이 없으므로 ‘회의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당시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의 ‘중심’ 현장은 국회 본관 7층이었다. 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국회 본관 7층의 법안 접수처인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하고 여야 4당이 합의한 패스트트랙 법안의 발의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사무처 방호과 관계자들이 문을 열기 위해 ‘노루발장도리(빠루)’를 사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00명에 달하는 현직 국회의원을 모두 기소하는 건 검찰 입장에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핵심적으로 연루된 의원 몇몇을 위주로 재판에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13일 국회에서 “국정감사가 끝난 뒤에 검찰에 출석하겠다”고 밝혔는데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는 10월 말 마무리된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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