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40년은 보람과 감사의 연속이었다.” 4성 장군 군생활의 마지막을 헌병대 지하 영창에서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군을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군생활 40년은 보람과 감사의 연속이었다.” 4성 장군 군생활의 마지막을 헌병대 지하 영창에서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군을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박찬주(61) 전 육군대장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지난 10월 22일 충남 계룡에서 만난 박 전 대장은 “오랜 고민 끝에 최근 결심을 굳혔다. 나라가 이렇게 가는 것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결심을 세운 이상 겁먹거나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장군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설득이 주효했다고 한다. 박 전 대장이 황 대표를 만난 건 지난 5월 말. 전국을 순회하며 장외 투쟁을 이어가던 황 대표가 직접 박 전 대장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와 대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당시 황 대표는 박 전 대장에게 “힘을 보태달라”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후 박 전 대장은 한국당의 인재영입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되어왔다. 한국당 측에서도 수개월에 걸쳐 박 전 대장 설득 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장은 “4성 장군까지 해본 내가 무슨 더 큰 욕심이 있어서 정치를 하겠나. 다만 우리 군(軍)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며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기 위해 정치에서 내 역할을 찾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장은 현재 부인과 함께 충남 계룡에서 살고 있지만 그의 고향은 충남 천안이다. 천안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모두 천안에서 다녔다. 그가 거주하는 계룡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군사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어서 그동안 계룡 출마를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박 전 대장은 전했다. 현재 계룡(논산계룡금산 지역구)의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이다.

하지만 그가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지역구는 고향인 충남 천안을이다. 재선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의 지역구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박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도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당에서는 이 지역에서 박 전 대장을 비롯해 신진영 당협위원장, 김원필 충남도부위원장 등이 출마할 것으로 거론되어왔다. 한편 충남 천안갑에서는 이완구 전 총리가 한국당 후보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충청 지역에서는 박 전 대장의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이 물밑에서 꾸준히 거론되어왔다. 그때마다 박 전 대장은 “아직 고심 중에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장이 비례대표를 받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장은 기자와 만나 “꽃길을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싸워야 할 때는 싸울 것”이라며 의지를 피력했다.

박 전 대장에게는 한국당뿐만 아니라 여러 야당에서도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박 전 대장이 현 정권의 ‘적폐청산’과 ‘육사 누르기’의 대표적 피해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국정과제 1호로 꼽힌 ‘적폐청산’을 향해서는 무리한 수사와 여론 재판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그가 이의 대명사처럼 돼버렸다.

지난 5월 2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박 전 대장은 먼저 세상을 떠난 이재수 장군의 묘역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2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박 전 대장은 먼저 세상을 떠난 이재수 장군의 묘역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꽃길 걸을 생각 없다”

2017년 7월 말 박 전 대장 부부가 공관병으로 근무하는 병사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했다는 이른바 ‘갑질’ 폭로가 나왔고,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군 내 갑질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호응한 후 그는 큰 고초를 치렀다. 군 검찰은 애초 논란이 된 ‘갑질’이 아닌 뇌물수수 혐의로 군 영창에 수감돼 있던 박 전 대장을 2017년 10월 기소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갑질’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는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박 전 대장은 민간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겠다며 전역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일각에서는 ‘현역 4성 장군이 포승줄에 묶인 모습을 연출하기 위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박 전 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헌병대 지하 영창에 수감 중이던 시기에 포승줄에 묶여 군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헌병이 내 양팔을 붙잡고 범죄자 압송하듯 끌고 갔는데,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던 병사들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박 전 대장은 지난 4월 말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한 2심 재판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박 전 대장은 최근 본인의 재판과 관련해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그가 제2작전 사령관에서 물러난 2017년 8월 9일자로 민간인 신분이 되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박 전 대장은 군 검찰이 민간인을 구속하고 군사법원에 기소한 것이 헌법 27조와 충돌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고 한다.

박 전 대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37기)이면서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이른바 ‘독사파’ 직속 후배로 알려진 인물이다. 육사에서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군인들끼리 ‘독사파’라는 자기들만의 사조직을 결성했다는 소문이 군 안팎에서 돌기도 했다. 박 전 대장은 군생활 중 총 8년을 독일에서 근무했다. 김 전 실장은 ‘독사파’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박 전 대장이 그가 아끼던 후배였다는 사실만으로 이 정권의 ‘적폐’로 찍혔다는 말들이 많았다.

“나만큼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은 군인이 있을까 싶다. 흔히 군 내부에서 나는 독일통으로 분류되는데, 군생활 동안 독일에서 4차례 군사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진 덕분이다. 독일군의 어느 장성은 공식석상에서 나를 두고 ‘독일군보다 독일군을 더 잘 아는 한국군 장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현 정권 출범 이후 군 내 ‘적폐’로 찍힌 배경에는 사드(THAAD) 배치의 총책임자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군 안팎에서 나왔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제2작전사령관을 맡아 사드 배치를 진두지휘했었다.

현 정권이 ‘적폐’로 찍은 인물의 도전

앞서 그의 육사 동기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세월호 기무사 사찰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 인사(人事)의 대부’로 잘 알려진 이 전 사령관의 장례식장에 현역 군인들이 조문을 오지 않았고, 조화를 보내온 군 장성조차 없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역 군인들이 정권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박 전 대장은 “적폐청산이 조직적인 국가권력의 남용임을 알려야 한다. 나 또한 절망의 강을 이미 한 번 건너온 사람이다. 나의 동기 이재수 장군의 몫까지 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 내 대표적 ‘전략통’으로 꼽혔던 4성 장군 출신의 야권 입성은 현 정권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 정권은 ‘조국 사태’와 경제 실정, ‘짝사랑’ 평가를 듣는 대북정책의 난조 등이 이어지면서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30%대까지 하락했다. ‘레임덕’이 머지않았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국방부는 각종 사안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나서 ‘북한 대변인’이라는 비판까지 듣는 상황이다.

박 전 대장은 총선 출사표를 밝히면서 무엇보다 현 정권의 ‘무장해제’를 염려했다. “대통령으로서 외교적인 제스처와 군 통수권자로서의 태도는 분리되어야 한다. 북한과의 평화적 외교를 추진하면서도 군을 강력하게 훈련시키는 것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그는 여전히 군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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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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