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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0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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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김정은 ‘백두산 백마쇼’의 노림수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김정은이 첫눈이 내린 지난 10월 16일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모습. photo 노동신문
백두산에는 참나무도 소나무도 아닌 이른바 ‘구호(口號)나무’가 있다. 북한 선전 매체들에 따르면 일본 식민지배 시절이었던 1930~1940년대 김일성이 지휘하던 항일 빨치산 대원들이 나무껍질을 벗겨내고 항일투쟁과 김일성 찬양 구호를 새겨 놓았던 구호나무들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김일성은 1986년 백두산에 있는 구호나무들을 모두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1989년 2월 기준 무려 3050그루의 구호나무들이 발견됐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구호나무에 새겨진 구호들은 ‘김일성 장군은 민족의 태양이시다’ ‘2천만 동포여 독립하면 김일성 장군을 민족의 최고 령수로 모시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1989년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김정일을 ‘광명성’이라고 칭하면서 출생을 축하하는 내용이 새겨진 구호나무들이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회고록에서 ‘일본 식민지배 시절에 한번도 그런 나무가 발견된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구호나무는 애초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해 조작된 것일 뿐만 아니라 아들인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작업을 위해 날조된 유물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은 구호나무를 영구보존한다면서 해외에서 수입한 고가의 통유리를 씌우거나 아르곤 가스를 투입해 관리하고 있다. 또 구호나무가 발견된 주변까지 혁명전적지로 지정해 관리원들이 경비를 서고 화재 방지를 위해 스프링클러까지 설치해 놓았다.
   
   
   백두산 ‘구호나무’들의 정체
   
   북한 정권이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을 김일성과 김정일은 물론 김정은까지 3대 세습 지도자들의 우상화를 위한 사기극의 무대로 악용하고 있다. 구호나무의 사례에서 보듯이 백두산은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부각하고 체제 결속을 도모하는 주요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이 지난 10월 16일 백마를 타고 백두산 정상에 오른 것도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동시에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에 맞서 자력갱생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 관영 언론매체들은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을 ‘백두영장의 준마행군길’로 치켜세우며 ‘절대 충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월 17일자 1면 사설에서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수하시려는 신념의 선언”이며 “천하제일 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우시려는 의지의 분출”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의 이런 사설은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과 제재에 따른 경제난 속에서도 ‘백두혈통 세습체제’를 끝까지 사수하고 자체적으로 경제발전도 이뤄내겠다는 집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은 백두산은 김일성의 항일 활동 ‘성지(聖地)’이자 김정일이 태어난 밀영(密營)이 있는 곳이고, 백마는 ‘백두혈통’을 상징한다고 선전해왔다.
   
   북한 정권의 백두산 사기극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북한 정권이 김일성과 빨치산 대원들의 항일 활동 무대라면서 백두산 등 혁명전적지로 조성한 곳은 7개나 된다. 보천보(양강도 보천군 일대), 삼지연(양강도 삼지연군 일대), 무산지구(양강도 삼지연군 및 대홍단군 일대), 백두산 밀영(양강도 삼지연군 백두산 일대), 두만강 연안(함북 회령군·온성군·새별군·선봉군 일대), 동북지구(함북 선봉군·은덕군·나진시·청진시 일대), 간백산 밀영(백두산 내 간백산) 등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백두산 등에 조성한 혁명전적지들은 모두 가짜다.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양 교외 농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이 김성주(金成柱)인 김일성은 부모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14세 때 길림에서 중국공산당 청년조직에 가담해 지하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수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후 김일성은 만주에서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일본 관동군이 1939년부터 만주에서 대대적으로 빨치산 토벌에 나서자 김일성은 1940년 옛 소련 연해주로 도주했다. 소련 극동군은 1942년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 하바롭스크 인근 바츠코예라는 곳에서 중국인과 조선인들로 구성된 제88국제여단을 만들었다. 김일성은 제88국제여단의 1대대 대대장으로 복무하면서 교육과 훈련을 받았으며 1945년 귀국할 때까지 항일투쟁은 전혀 하지 않았다.
   
   
▲ 김일성(왼쪽)과 김정일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 노동신문이 2014년 건국 66주년을 맞아 게재했다. photo 노동신문

   백두산과는 거리 먼 김일성 빨치산 활동
   
   신복룡 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 따르면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했던 시절은 중국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됐을 때였다. 1934년 동북항일연군 창립 당시에 김일성은 제1군의 제1사 사장이었다. 김일성은 제3사 사장(1936), 제2사 제5단 단장(1936~1938), 제1방면군 지휘관(1938~1941) 등으로 옮겨 다녔다. 김일성의 활동 지구는 중국의 돈화·연길이었고 임무는 철로를 감시하고 운행을 방해하는 일이었다.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활동 지역인 장백현·임강현·안도현 등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모병 공작을 수행했다. 이런 활동으로 볼 때 김일성이 백두산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했다는 북한 정권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특히 북한 정권이 김일성의 대표적인 항일 활동 업적이라고 내세우는 보천보전투의 지휘관도 김일성이 아니다. 북한 정권의 주장에 따르면 보천보전투는 김일성이 1937년 6월 4일 동북항일연군 소속 부대를 이끌고 일제의 전략상 요충지인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천보(현재 양강도 보천군 보천읍)를 습격해 주요기관을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사건을 말한다. 북한의 중학교 교과서는 “김일성이 1937년 경찰주재소, 면사무소를 비롯한 일제의 통치기관들을 습격하고 보천보 일대를 해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명영 전 성균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저서 ‘김일성 열전’에서 “보천보전투의 김일성 장군은 1887년 태어난 일본 육사 출신의 김광서라는 사람”이라면서 “김일성이 보천보전투의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한 것은 소련이 광복 후 북한의 공산정권 수립에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명도가 높은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도 보천보전투를 수행한 부대는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이었던 김일성(김성주와 다른 인물. 1901년생, 모스크바 공산대학 졸업, 1931년 중국공산당 가입, 동북항일연군 제6사장, 1937년 11월 13일 무송현 양목정자에서 만주군과의 전투 중 사망)의 부대라고 주장했다. 이후 김성주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1942년 소련 연해주에서 작성한 자필수기 ‘항련 제1로군 약사(抗聯 第一路軍 略史)’에서도 보천보전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백두산 밀영도 조작된 것”
   
   북한 정권은 김일성을 신격화하다 보니 김정일 등 직계 가족들을 항일투쟁의 무대라고 조작한 백두산을 차용해 ‘백두혈통’이라고 부른다. 백두혈통은 현재 북한의 교과서와 역사서를 비롯한 모든 문헌과 보도선전물에 사실인 것처럼 기록돼 있다. 북한 정권은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 양강도 삼지연군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해왔다. 심지어 북한의 교과서들은 김정일이 스스로 “백두산은 나의 고향”이라고 말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등 직계가족들은 백두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소련 연해주 하바롭스크 부근 라즈돌노예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름도 소련식인 ‘유라 킴’이었다. 북한 정권은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혈통을 강조하기 위해 조작했고, 출생연도 역시 김일성의 출생연도(1912)와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 바꾸었다. 황장엽 전 비서는 회고록에서 “백두산 밀영은 처음부터 없었고 훗날 조작한 것”이라면서 “김일성은 1940년 말 소련 연해주로 피신해 1945년 광복될 때까지 그곳에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날 수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런 조작된 역사를 볼 때 북한 정권이 김정은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우상화 작업에 돌입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북한 관영 언론매체들이 연일 김정은의 ‘백두산 백마쇼’를 대서특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 정권의 의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실제로 노동신문은 10월 18일자 3면 전면에 ‘절세의 영웅 우리의 장군’이라는 제목의 정론을 싣고 “천하제일 명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신 그이의 거룩한 영상은 세계의 절정에 서신 현 세기의 최강의 영수, 위대한 태양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노동신문은 “일제의 백만 대군을 쥐락펴락하시던 20대의 청년 장군 빨치산 김 대장(김일성)의 그 모습 다시 뵈옵는 것만 같았다”고 김정은을 김일성의 반열에 올렸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조선’ ‘민족의 영웅, 위대한 주인’ ‘백두의 영웅’ ‘세계를 다스리는 강대한 위인’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김정은을 칭송했다. 김정은이 지난 2월 28일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직후 자신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 자제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우상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제재 장기화에 따른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억누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은둔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을 신격화할 때도 백마 탄 모습을 공개하면서 우상화 작업을 벌였다. 북한 정권은 또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해 ‘백마 탄 항일유격대장 김일성 장군’의 그림 등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왔다. 북한 정권은 백마에 대해 ‘용맹하고 슬기로운 명장들의 전투수단’이라고 강조해왔다.
   
   
▲ 북한 노동당 간부들이 백두산에서 안내원에게 구호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photo 오늘의 조선

   재일교포 혈통 감추려고 백두산 백마쇼
   
   북한 정권은 이미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단계적으로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평양의 교육도서출판사가 2014년 출간한 ‘김정은 원수님 혁명 활동 교수참고서’의 내용을 들 수 있다. 북한의 고급중학교(고등학교 과정) 학생들에게 김정은의 ‘위대성’을 가르치기 위해 제작된 이 책에는 ‘3세 때 총을 쏘았고, 9세 때는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100% 통구멍을 냈다. 사격선수들도 명중사격과 속도사격에서 원수님을 따르지 못한다. 3세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세도 되기 전엔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 또 초고속 보트를 시속 200㎞로 몰아 외국 보트회사 시험운전사를 두 번이나 이겼다’ 등의 내용들이 기술돼 있다. 김정은에 대한 이런 우상화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버금가는 것이다. 김정은은 최근 헌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미 김일성과 김정일을 능가하는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북한 정권이 본격적인 우상화 작업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이 백마 탄 김정은의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또 다른 속셈도 있다. 모친 고용희가 제주 출신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감추고 백두혈통이라는 점을 선전하려는 의도다. 195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고용희는 10세 때 만경봉호를 타고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갔다. 제주에서 태어난 아버지 고경택은 조총련 간부 출신이다. 고용희는 평양에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시절 김정일의 눈에 들어 결혼했다. 고용희는 2004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김정은이 조모인 김정숙처럼 자신의 모친을 우상화하려다 중단한 것은 모친이 북한 주민들에게 ‘째포’(재일교포를 줄여 비하하는 표현)라고 멸시받던 계층인데다 ‘남조선’에 뿌리를 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은 백두혈통이 아니라 ‘후지산 또는 한라산 줄기’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의 이번 ‘백두산 백마쇼’는 미국을 겨냥한 경고의 메시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노동신문은 사설(10월 17일자)에서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백두산에 오르실 때마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들이 제시되고 세상을 놀래우는 사변들이 일어났다”면서 김정은의 ‘중대 결심’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정론(10월 17일자)에서 “반만년 역사의 숙원을 이룬 11월 대사변이 조선의 강대한 힘을 온 세계에 과시한 그때”라며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한 뒤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른 것을 언급했다. 노동신문이 ‘사변’을 언급하고 민주조선이 ‘ICBM 발사 성공 사례’를 언급한 것으로 미뤄 볼 때 김정은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제1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약속한 핵과 ICBM 실험 모라토리움을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백두산을 오른 직후 삼지연군 인민병원 건설사업을 시찰하는 자리에서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 앞에 강요한 고통은 그것 그대로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면서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때문에 김정은은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된 이후 백두산에 올라 ‘새로운 길’을 고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김정은은 미·북 대화 시한을 연말로 제시하면서 결과가 없다면 새로운 길로 갈 수 있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김정은이 핵과 ICBM 실험을 재개한다면 비핵화 협상의 판 자체를 깨는 것으로 자칫하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제재 조치를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또 중국과의 전략적인 협력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등 김정은으로선 사면초가가 될 수 있다. 수미 테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미국과의 외교가 결실이 없는 가운데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등 도발로 돌아설 것이라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외교를 이어가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김정은이 ‘백두산 백마쇼’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양보를 얻어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위해서라면 김정은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김씨 3대의 백두산 사기극에 북한 주민들은 물론 국제사회가 더 이상 속아 넘어가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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