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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4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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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또 김정은 ‘심기경호’ 나선 文 정부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지난 2월 트럼프·김정은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인권단체 회원들과 탈북자들이 서울 미국대사관 앞에서 김정은 초상화를 들고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R2P)’은 특정 국가가 반인도 범죄, 집단살해,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 원칙은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 2006년 유엔 안보리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확립됐다. 이 원칙은 리비아 국민들을 독재자인 무아마르 알 카다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처음 적용됐다.
   
   2011년 중동 독재국가들에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운동으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졌고 리비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카다피는 반정부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했고, 이에 맞서 국민들은 무장봉기해 내전이 발생했다. 카다피 친위부대 등 정부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반군을 비롯해 리비아 국민 3만여명이 희생됐다. 그러자 유엔 안보리는 2011년 3월 17일 “카다피의 학살 행위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한다”면서 리비아에 군사 개입을 승인하는 결의 1973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 등 다국적군은 리비아 정부군을 대대적으로 공습하는 등 반군을 지원했다. 반군은 2011년 10월 20일 고향인 시르테에 은신하고 있던 카다피를 찾아내 사살했다.
   
   유엔 공식기구인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2월 채택한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돼왔다”면서 “국제사회는 R2P에 따라 인권침해 책임자 처벌 등 인권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고문과 비인도적 대우·강간·공개처형, 비사법적·자의적 구금·처형, 적법절차 및 법치 결여·연좌제 적용·강제노동 등 각종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을 취하도록 권고했다. 가장 책임 있는 자는 북한에서 ‘최고 존엄’이라고 지칭되는 김정은을 직접 겨냥하는 것이었다.
   
   COI는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2013년 3월 21일 만장일치로 설립을 결의한 이래 1년간에 걸쳐 9개 분야를 조사했다. 유엔 총회에서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는 2014년 11월 18일 COI의 보고서를 내용으로 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11표, 반대 19표, 기권 55표로 통과시켰다. 제69차 유엔 총회도 같은 해 12월 18일 제3위원회 결의안을 찬성 116표, 반대 20표, 기권 53표로 처리했다. 비록 유엔 총회의 결의안이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유린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책임자인 김정은에 대한 처벌을 강조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에 대한 처벌 강조가 부담?
   
   유엔 제3위원회는 지난 11월 14일 유엔본부 전체회의에서 올해도 예외 없이 15년 연속 북한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은 회원국 어디도 표결을 요청하지 않아 표결 없이 ‘전원 동의(컨센서스)’ 방식으로 채택됐다. 특히 이번 결의안에는 COI의 북한인권보고서 내용이 그대로 반영됐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고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권고하는 내용도 그대로 유지됐다. 유엔 총회는 12월 중 제3위원회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상정해 표결에 부칠 예정인데, 압도적 표차로 채택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 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결의안은 유럽연합(EU)이 초안을 만들고 미국·일본·영국 등 61개 회원국이 공동 제안했다. 한국은 유엔 총회와 제3위원회가 2005년부터 매년 채택해왔던 북한인권결의안에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동제안국’으로서 적극 참여해왔다.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부터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까지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고, 찬성표를 던졌었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문재인 정부는 “현재의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이번에는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국제사회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정권과 김정은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인권결의안에는 최고 존엄인 김정은을 처벌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남북대화 재개와 김정은의 방한을 추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선 김정은의 심기를 헤아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국제사회의 비판 화살을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의 ‘심기 경호’에 나선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정권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등 막말을 쓰며 문 대통령을 직접 비판해도 항의조차 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북한 정권은 올 들어 타미플루(1월), 쌀 5만t(5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공동 방역 제안(5월) 등 문재인 정부의 인도적 지원 제안을 모두 거부해왔다. 북한 정권은 지난 10월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 남북 축구를 아예 무관중·무중계 경기로 진행하는 등 남북 교류를 완전 중단시켰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지난 5월부터 무려 13차례나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 도발을 자행해왔다. 김정은은 남북 경협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지구를 싹 들어내라는 교시까지 내렸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 정권과 김정은을 향해 대화하자면서 구애의 제스처만 보이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지난 11월 7일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라며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선원 2명을 강제북송한 것도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지난 9월 28일 북한 주민들의 탈북 시도를 완전히 차단하라고 지시를 내린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강제북송은 김정은의 입맛에 맞는 반(反)인권 맞춤형 조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제사회는 문재인 정부가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다. 유엔의 인권 업무를 총괄하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북한 선원 2명이 강제송환 이후 고문과 처형을 당할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OHCHR은 유엔의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고문방지협약)을 비롯한 국제인권법은 심각한 고문 위험에 처한 개인들의 강제송환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한국도 고문방지협약 가입국이라고 지적했다. 고문방지협약 3조는 어떤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 송환 또는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이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도 비슷한 조항을 담고 있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문재인 정부의 이번 조치를 조사할 방침이다.
   
   
▲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참석해 최근 북한 선원 2명을 북송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 선원 북송에 쏟아지는 국제사회 비판들
   
   앰네스티인터내셔널(AI)과 휴먼라이츠워치(HRW), 세계기독교연대(CSW)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명백히 국제협약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HRW는 난민이든 아니든 국제인권법은 그 누구도 실질적인 고문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송환하는 것을 금지한다면서 한국의 난민법 3조도 이런 국제협약에 근거해 대상자에게 인도적 보호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도 강제송환 금지 원칙은 절대적 금지에 기초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범죄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적용된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법 절차를 통해 유죄 판결이 날 때까지 피고인을 무죄로 추정하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어겼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커비 전 COI 위원장도 “한국에 도착한 북한 주민은 한국 국민이 될 수 있는 헌법적 권리가 있다”며 “한국 국민을 북한에 인도하는 것에는 헌법적, 법률적, 행정적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앨튼 영국 상원의원은 “북한 선원 2명의 강제북송은 베를린장벽을 통해 명백한 죽음으로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국내의 인권단체 및 탈북자단체들과 대한변협 등도 문재인 정부의 조치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특히 북한인권단체총연합회가 이번 조치와 관련해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 안보 라인 핵심 4인을 기소·처벌해달라는 청원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했다. ICC 창설에 관한 로마협약 제7조에 따르면 근거 없이 주민을 추방한 것은 인도에 반하는 죄에 해당한다. 이 단체는 한국 주민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들을 강제북송한 것이 인도에 반하는 죄라면서 ICC에 처벌을 요구한 것이다. 한국은 ICC 가입국이다. ICC 회부는 가입 당사국이나 유엔 안보리만 할 수 있지만, ICC 검찰이 인권단체의 정보를 검토해 수사가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재판부의 허가를 얻어 독립적으로 수사·기소할 수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도 국가인권위원회에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총리,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 등을 조사해 고발 조치해줄 것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30개 북한인권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이번 조치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강제송환된 두 사람의 생명과 인도적인 처우가 보장되도록 북한 정권에 압력을 가해줄 것을 촉구하는 공동서한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인권담당관, 유엔 주재 각국 대표부 등에 발송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북한 인권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야 했었지만, 이사진을 구성하지 않음으로써 재단 사무실을 폐쇄하고 직원을 해산시켰다. 또 북한인권법에 담긴 외교부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도 2년 가까이 공석 상태다. 통일부는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2019 북한자유주간’에 참가했던 인권활동가들의 항공료 지원을 예년과 달리 거부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꺼려왔다. 김 장관은 2017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통일부의 북한인권증진자문위 위원으로 활동했지만 실제 회의에는 단 한 차례만 참석했다.
   
   김 장관은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 시절인 2006년 작성한 ‘인권결의안 찬성 이후 남북 관계는 어디로’라는 보고서에서 당시 노무현 정부가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처음 찬성한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김 장관은 북한 선원들의 강제송환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던 것처럼 거짓말까지 했다. 김 장관은 11월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들은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반된 진술이 있었지만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을 분명히 했다”며 “이들의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귀순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합동 신문조사에서 자필 진술서에 ‘귀순하겠다’는 명백한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체포될까봐 두려워 죽음을 무릅쓰고 남쪽으로 도주한 이들이 ‘죽더라도 돌아가겠다’고 진술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북한인권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US MISSION GENEVA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북 인권 외면
   
   김 장관을 임명한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였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북한 인권을 아예 무시해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탈북자나 납북자 가족 면담을 한 적이 없다. 문 대통령은 최근 2017년 북한에 억류됐다 송환된 직후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부모의 면담 요청도 거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세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식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평화를 통해 인권이 보장되고, 인권을 통해 평화가 확보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가 오기 전에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신년사를 비롯해 각종 기념식 연설 등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적이 없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래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진정한 평화의 궁극적 지표는 인권이어야 한다”면서 “인권 문제는 핵 문제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잔 숄티 미국 북한자유연합(NKFC)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평화라는 미명하에 북한 인권은 외면하고 김정은과의 대화에만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알렉스 글래드스타인 미국 인권재단(HRF) 전략기획실장은 “문 대통령은 부모는 북한 태생이고 정치 입문 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는데, 북한 인권 문제에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한국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정치적 상황은 정말 이상하다”며 “국제사회에서는 진보 진영이 인권 문제를 다루는데, 한국에선 진보정권이 집권할 때 북한 인권 문제를 지지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북한 주민 2400만명의 인권 문제를 외면하면서 김정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것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못 본 체하는 것과 같다. 숄티 대표가 “문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에게 등을 돌린다면 역사가 문 대통령을 심판할 것”이라고 지적했듯이 문 대통령은 ‘인권 없이 진정한 평화는 없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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