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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5호]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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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갈라파고스 증후군’에 직면한 文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지난 11월 4일 오전(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이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제22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사전환담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갈라파고스제도(Galapagos Islands)는 남미 대륙에서 서쪽으로 926㎞ 떨어져 있는 19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에콰도르의 영토를 말한다. 총 면적이 7880㎢인 이곳에는 2만50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코끼리거북 등 고유종(固有種)인 동·식물이 많다. 이곳은 1835년 9월 15일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방문해 진화론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윈이 발견했던 고유종들은 독자적으로 진화를 거듭하다가 결국 먹이사슬의 축소, 해수면의 상승, 외래종의 침범 등 외부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만다. 이런 현상을 ‘갈라파고스 증후군(Galapagos syndrome)’이라고 부른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생물 생태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국제 표준이나 세계시장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술만 고수하다가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이 종종 나타난다.
   
   
   대한제국의 전철 되풀이하나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한·일 강제병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일 강제병합은 1905년 7월 27일 윌리엄 태프트 미국 육군 장관과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의 밀약에 따른 것이다. 가쓰라-태프트밀약은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이 한반도를 각각 지배하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비밀 협정서를 말한다. 그런데 미·일의 가쓰라-태프트밀약은 조선의 친러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조선은 을미사변(1895)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제정러시아의 힘을 빌리려고 했다. 고종황제는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신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감행했고, 이후 친러 인사들을 내각에 기용하는 등 친러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1904~1905년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일본을 적극 지원한 국가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영국과 미국은 부동항을 차지하려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을 내세워 대리전쟁을 벌이도록 했다. 당시 세계 최강이던 영국은 동북아로 지배권을 넓히고 있었고 미국도 태평양을 건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고종을 비롯해 조선의 집권세력이 국제 정세에 올바른 시각을 갖고 있었다면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강 세력인 영국과 미국 편에 서서 개혁개방을 통한 부국강병을 꾀했어야 했다.
   
   반면 영국과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은 조선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일본은 1905년 8월 12일 제2차 동맹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고,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밀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1905년 9월 20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제26대)의 딸 앨리스와 태프트 장관 등 미국 대표단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국제 정세를 전혀 알지 못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외교권을 빼앗은 데 이어 조선을 집어삼켰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 외교를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함으로써 한·미·일 3각 협력 체제는 물론 한·미동맹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등 엄청난 외교적 실수를 자행했다. 이후 한·일 관계와 한·미동맹이 ‘바람 앞에 등불 신세’로 전락하는 등 문재인 정부는 외교 정책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자해행위를 벌여왔다.
   
   다행히도 문재인 정부가 지난 11월 23일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연기’하기로 결정했지만 앞으로 훼손된 한·일 협력 관계와 한·미동맹을 복원하려면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진 것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 원인이었다.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에 대한 피해보상이 종결됐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보복조치로 한국 반도체와 스마트폰 제조에 필수적인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또 8월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결정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에 느닷없이 지소미아 파기라는 안보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소미아는 2016년 11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중재에 따라 한·일이 체결한 일종의 안보 협력 체제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을 자국이 주도하는 안보의 틀에 묶어 놓은 상징적 수단일 뿐만 아니라 북·중·러 3각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발판이다. 이 때문에 미국 조야는 문재인 정부의 의도가 한·미·일 3각 체제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8월 12일 “(국제 협상에서) 무언가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면서 “미국에 한·일 갈등을 조정·중재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차장은 “1882년 조·미(朝美) 수호통상조약을 근거로 고종이 한·일 관계 조정을 미국에 요청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조선은 약해서 조정을 안 해도 된다고 거절했고, 이것이 가쓰라-태프트밀약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1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문 대통령 왼쪽) 일행을 접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역사라는 제단 위에 한국의 안전 희생
   
   김 차장은 또 “미국 의회에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再)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하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는 종속변수로 해서 아시아에 대한 외교 정책을 운용하려는 것인지 물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차장의 이런 발언은 애초에 역사·경제 갈등에 안보 문제를 끌어들인 것 자체가 위험한 카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과거 잘못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는 비판까지 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통해 역사라는 제단 위에 한국의 안전과 미국의 방어 공약을 쓸데없이 희생시키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서구 열강이 아시아 각국을 식민 지배하던 시절은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국력이 약한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당시 아시아에서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고 식민 종주국이 된 국가는 국력이 강했던 일본이 유일했다. 조선은 일본과는 달리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국력을 축적할 기회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외면한 채 문재인 정부가 오로지 반일 정책만 고수하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스스로 발로 차버린다면 조선처럼 한국을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최근 미·일동맹 및 중·러협력의 강화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이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제재,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인공섬 군사기지화와 이에 대응한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 등을 볼 때 과거 러·일전쟁 때처럼 강대국들의 힘겨루기가 전개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위해 무역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일본·호주·인도 등을 묶어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
   
   
▲ 지소미아 파기 결정의 주역인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오른쪽)과 김현종 제2차장. photo 뉴시스

   중국에 대한 ‘재앙적인 오판’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군사동맹을 한·미동맹으로 국한시키면서 한·일 군사동맹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한·미·일 3각 협력체제 구축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과거사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철저하게 반일(反日)노선을 추진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반일을 위해 세계 최강 동맹국인 미국과의 갈등까지도 서슴지 않는 입장까지 보여왔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사령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릴 당시 “지소미아와 한·미 동맹은 전혀 별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엄청난 착각에 빠진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지소미아는 워싱턴에서 핵심적인 미·한 안보 문제로 간주된다”면서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를 미국에서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생각하는 인사는 사실상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도 “지소미아는 미·한 동맹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고,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지소미아가 한·일 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다”고 비난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조선이 반일을 위해 러시아와 밀착했듯이 그동안 친중 노선을 적극 추진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해 경제보복을 가하자 이에 항의조차 못 했다. 오히려 한국에 추가 사드 배치를 하지 않고,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을 약속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을 뿐만 아니라 양국 국방장관의 상호 방문과 양국 해·공군 직통전화 설치에 합의하는 등 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 정부가 요청하고 있는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사용 금지도 거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의도는 미·중의 패권 다툼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정책은 고종이 러·일전쟁 당시에 조선을 영세중립국이라고 선언한 것과 유사하다. 고종의 중립노선이 당시 강대국들에 무시됐듯이 문재인 정부도 자칫하면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홍콩 시위사태에서 보듯이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을 외면해온 독재국가이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려는 지렛대로 간주하고 있을 뿐 동맹이나 협력국가로 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지난 8월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주권국가가 할 수 있는 자주적 권리라고 평가한 것도 지소미아가 자국 견제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그동안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해온 북한을 미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해 지원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할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고 있다면 ‘재앙적인 오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갈라파고스 증후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 유보를 계기로 손상된 한·미동맹을 보다 강력하게 복원해야 한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보좌관은 지난 11월 23일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66년간 이어진 한·미동맹이 깊은 곤경에 빠졌다’는 제목의 글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연기 결정은 현명했지만 한·미 관계의 신뢰에 대한 손상은 이미 이뤄졌다”며 “한국은 소중한 합의를 지렛대로 사용해 미국을 한·일 간 경제적·역사적 분쟁에 개입하도록 강제한 것이고 이는 동맹 남용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지소미아를 파기하겠다는 위협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하는 한·미·일의 능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이익이 미·일의 안보이익과 잠재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손상된 한ㆍ미동맹 복원이 시급
   
   특히 이들은 “한국은 중국의 ‘사드보복’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제안한 다자무역협정에 동참하고 싶어 하며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에는 머뭇거리고 있다”면서 “한·중 국방장관이 군사 핫라인 설치 등에 합의한 것은 한·미동맹 약화의 또 다른 불길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유예 결정을 두고 “지소미아를 갱신한다(renew)는 한국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논평한 것도 이 같은 논란이 재연돼선 안 된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조건부 연기를 갱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느 정도 미국 정부의 희망적 사고가 깔려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시간을 벌기 위한 의도로 조건부 연기 결정을 내렸지만 한·미 간 시각차가 완전히 좁혀진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운명에 여러 차례 개입했다. 일본의 한반도 침탈을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옛 소련과는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는 데 합의했다. 반면 미국은 자국 병사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한국의 공산화를 막았고, 한국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소미아 문제를 놓고 한국 외교·안보의 가장 중요한 축인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면 한국은 ‘아무나 흔드는 나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각종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일본도 무역규제를 풀지 않으면서 한국의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수시로 영공을 침범하는 등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튼튼하지 않다면 한국은 자칫하면 갈라파고스 신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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