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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86호] 2019.12.09

황교안 10개월 ‘그렇게 정치인이 된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월 처음 정치권에 들어왔을 때 가장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당직자들이었다. 겉으로 불만을 표출하진 못했지만 황 대표가 원하는 보고 방식이나 일정 잡기가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이전의 당 대표들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당 대표가 참석하는 행사 등에 대해 보고할 때 이 행사에 참석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등을 함께 적을 것.’ 기존 정치적 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당직자들도 힘들어했고, 당 대표가 가야 하는 행사 자체를 축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 소속 의원들도 황 대표의 이런 방식에 혀를 내두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30년 넘게 공직에만 있었던 공무원 황교안의 정치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지금 황교안 대표에게는 어느덧 정치인의 냄새가 난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삭발이나 단식 등은 대중의 뇌리 속에 ‘정치인 황교안’을 각인시키는 수단이 됐다. 황 대표는 얼마 전 8일간의 단식을 끝낸 뒤 청와대 사랑채 앞에 꾸린 현장 집무실을 중심으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투쟁 천막’이라 이름 붙인 이 장소에서 황 대표는 이전과 달리 빠르고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당 내부에서는 “독단적인 황제 결정”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대파의 비판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지만 당 주요 보직 인사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는 등 정치의 기본인 세 싸움에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월 27일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황 대표를 초기부터 봐온 이들이 ‘공무원·총리 황교안’과 ‘정치인 황교안’의 차이점으로 첫손가락에 꼽는 것은 결정이 빨라졌다는 점이다. 황 대표는 정치입문 초기만 해도 우유부단한 결정력과 애매모호한 자세로 ‘황세모’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황 대표와 같은 검찰 출신이면서, 사실상 황 대표의 공천으로 국회에 들어온 정점식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단식을 통해 총선에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당직자 일괄 사표를 받고 4~5시간 만에 바로 결단을 내린 것을 보면 결정하고 실행하는 시간이 빨라졌다.”
   
   
   빨라진 결정
   
   황 대표를 근처에서 수행하는 한 당직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원래 대표가 정치 분야에서는 초년생이었고 모르는 게 많다 보니 이 얘기도 듣고 저 얘기도 들으면서 고려하는 게 많았는데 그게 다른 의원들 보기엔 실행이 느린 걸로 보였던 것 같다. 이제는 축적된 경험이 빠른 실행과 결단력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문서 대신 전화로 의사소통이 많아진 것도 그런 변화 중 하나라고 한다. 당 대표실의 한 당직자는 “예전에는 예측·경과·사후검토 식으로 세분화한 보고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서류 결재가 줄어든 대신 황 대표가 요즘 선호하는 것은 주요 인사들과 수시로 하는 전화통화나 면담과 의견 청취 등이다. 요즘에도 투쟁 천막 너머로 황 대표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상황에 자신을 맞추는 순발력이 좋아진 것도 변화라고 한다. 황 대표를 주위에서 보는 측근들이 그동안 황 대표를 소위 ‘정치인답지 않다’고 여겨온 이유는 일과가 매우 규칙적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당직자들에 따르면 황 대표의 기상 시간은 매일 새벽 4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한다. 이후 국회는 8시, 투쟁 천막에는 9시쯤 나온다고 한다. 황 대표는 당 대표가 된 뒤 매일 아침 ‘일일현안점검회의’도 열어왔다. 김명연 당 대표 비서실장은 전화통화에서 “공직 생활을 오래하셔서 그런지 일정 관리를 상당히 타이트하게 한다”며 “당무를 보면서 의원들을 규합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걸 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쟁 천막’으로 집무 장소를 옮긴 최근에는 일과가 달라졌다고 한다. 청와대 사랑채 앞 현장에서 대표 일정을 수행하는 한 당직자는 “단식 후부터는 여건도 안 되고 해서 일일현안점검회의는 하지 않고 있다”며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지도 않는다. 최고위원회 등을 제외하면 주로 면담하고 보고받는 일정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최근 당직자 일괄 사퇴 후 4~5시간 만에 초·재선 의원들로 당직자 진용을 새로 꾸린 것이나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묻겠다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의견을 묵살하고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임기 연장을 불허한 것은 예전과는 다른 단호한 모습이다.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최고위원들이 의총 전에 원내대표의 재신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나왔지만, 황 대표는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공무원식 라이프스타일을 버렸다
   
   황교안 대표가 보수층에 다소 친근한 이미지가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삭발을 하면서부터다. 젊은 보수층에서 삭발한 사진을 영화 포스터 등과 합성시켜 이른바 ‘짤’을 만든 것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수정당 대표가 그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야당 대표가 단식을 하는 것도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 한 번의 퍼포먼스로 황 대표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리더십은 지난 10월 ‘공관병 갑질 논란’을 겪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을 인재영입 1호로 발표하면서 큰 위기에 몰렸었다. 여기에 비박계 3선의 중진인 김세연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을 해체하라”는 주문을 하면서 더욱 코너에 몰렸다. 하지만 황 대표는 또 다른 퍼포먼스인 단식이라는 방법으로 리더십 논란을 잠재웠다. 황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단식은 순전히 황 대표 본인의 결정이었고 비서실장이나 당직자들도 당일 아침까지 단식할지 몰랐다”며 “단식 역시 공무원 출신들이 흔히 택할 만한 의사표현 방식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황 대표는 현재 청와대 사랑채 앞을 작은 정치의 중심으로 만든 모양새다. ‘투쟁 천막’ 앞은 24시간 경찰이 둘러싸고 있고 펜스를 거쳐서만 들어갈 수 있다. 천막에는 당 대표와 면담을 하거나 결재를 받으려는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수시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주위에서는 “공수처 반대” “연동형 반대” 등을 외치는 지지자들의 구호 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지지 인파도 집회를 열고 있다. 주위를 오가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세를 과시하는 자리가 됐다.
   
   사실 황 대표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원외 인사 출신의 야당 대표라는 태생적 불리함을 안고 정치를 시작했다. 특별한 이벤트를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황 대표는 전국을 도는 ‘문재인 정부 규탄 대회’ 등 장외 투쟁, ‘상경 집회’ 등을 통해 존재감을 알려왔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온 나경원 원내대표와의 갈등설에도 시달려왔다.
   
   하지만 황 대표는 취임 1년을 앞두고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면서 ‘정치인 황교안’의 색깔을 점차 뚜렷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황 대표가 최근 임명한 박완수 당 사무총장, 김명연 당 대표 비서실장 등 핵심 당직자들은 대부분 ‘친황’계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기존의 핵심 측근들로 분류되던 추경호·박맹우 의원 등도 한국당 총선기획단에서 활동하면서 ‘투쟁 천막’을 여전히 활발히 오가고 있다. 이런 당직 개편과 원내대표 불신임 등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지만, ‘정치는 결국 세(勢)’라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점식 의원은 “초선을 사무총장에 임명한 선례가 거의 없지 않나. 결국은 일반 국민만을 보면서 공천 혁신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의지 표명이 아닌가 싶다”며 “특히 3선 이상 중진들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나가겠다는 의지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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