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구와 중구를 연결하는 영도대교가 상판을 들고 있다. 사진 왼쪽은 부산대교. ⓒphoto 이동훈
부산 영도구와 중구를 연결하는 영도대교가 상판을 들고 있다. 사진 왼쪽은 부산대교. ⓒphoto 이동훈

내년 4월 21대 총선 때 부산 출마를 검토 중인 이언주 의원(재선·경기 광명을)이 출마 지역구를 놓고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을 거듭 탈당한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실정을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보수의 여전사’란 평을 받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여성 현역 의원으로 삭발식까지 감행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부산 서면 영광도서에서 자신의 책 ‘나는 왜 싸우는가’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내년 총선 출마 지역구를 고향인 부산 영도로 옮기는 것을 시사해왔는데, 최종 결정은 주저하고 있다. 지난 12월 1일 보수신당인 ‘미래를 향한 전진 4.0(가칭)’을 출범시키며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이언주 의원은 지난 12월 11일 기자와 만나 “부산은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출마한다면 부산 영도구·중구 아니면 해운대구갑”이라고 특정했다.

이언주 “영도구·중구 아니면 해운대갑”

이 중 이언주 의원의 출마가 거론되는 부산 영도구·중구는 ‘부산 정치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형오(영도구), 정의화(중구·동구) 등 두 명의 국회의장을 배출했고, 현 부산 지역 최다선 의원인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6선) 역시 영도구·중구가 지역구다. 하지만 김무성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현재 무주공산으로 비어 있는 상태다.

이언주 의원은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평초·남도여중·영도여고)를 모두 영도에서 나왔다. 이후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사법고시를 통과했고, 부산 최대 기업인 르노삼성차 법무팀장을 지냈다. 재선을 한 현 지역구인 경기 광명을에서 떠나 부산 영도로 옮긴다고 해도 크게 손색이 없는 스펙이다.

최대 걸림돌은 지역기반을 다져오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의 반발이다. 현재 자유한국당 부산 영도구·중구 당협위원장은 법무법인 ‘친구’의 곽규택 변호사가 맡고 있는데, 이언주 의원의 영도 출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곽규택 위원장은 “신당 창당을 한다고 한 이후 지역의 자유한국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부정적 견해도 좀 있다”며 “어느 지역에 출마하는 것은 정치인의 자유지만 당도 옮기고 지역구도 옮기고, 신당 창당하는 것이 선거구민들에게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곽규택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으로 부산을 떠들썩하게 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해운대 임모 여인의 혼외자녀 사건 담당검사였다. 영화 ‘친구’ 곽경택 감독의 동생으로, 자신도 영화에 몇 차례 출연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또 누나는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자형은 영화 ‘은교’의 정지우 감독 등 나름 ‘상품성’을 갖춘 스펙을 갖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 때 부산 서구·동구 공천을 신청했다가 유기준 의원(4선·부산 서구·동구)에 밀린 뒤, 영도구·중구로 지역구를 옮겼다.

곽규택 위원장은 지난 12월 7일 부산 중구 영화체험박물관에서 저서 ‘부산의 락(樂)’ 북콘서트를 가졌는데,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한국당 소속 부산 현역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이른바 ‘김심(金心)’의 향배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곽 위원장은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유재중(3선·수영구), 장제원(재선·사상구), 이헌승(재선·부산진구을) 의원 등 현역 의원만 4명이 와주셨다”고 했다.

반면 이언주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 차로 영도구·중구 현역 의원인 김무성 의원과 약간 껄끄러운 사이로 알려졌다. 보수 대표 후보로 사실상 추대를 원하는 이언주 의원으로서는 넘어야 할 첫 산부터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이언주 의원의 한 측근 인사는 “김무성 의원이 부산에서 가진 현실적인 힘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언주 의원이 김무성 의원과 손을 잡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0대 총선부터 중구가 영도구와 같은 국회의원 선거구에 묶이면서 고려할 대상도 늘었다. 중구는 인구 4만1000여명으로 부산을 포함해 전국의 특별시, 광역시 가운데 가장 작은 자치구다. 하지만 과거 부산광역시청을 비롯해 각급 기관들이 모여 있던 관계로, ‘부산의 중심’이란 상징성을 갖고 있어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원래 중구는 동구와 같은 선거구였다. 하지만 지난 20대 총선 때 부산 원도심 4구라고 할 수 있는 서구와 동구가 같은 선거구로 묶이고, 중구와 영도구가 합쳐졌다. 이 중 영도구는 인구만 11만7000여명으로 중구(4만1000여명)의 3배에 가까워 결국 총선에서 승부는 누가 영도의 표심을 잡느냐에 따라 결론나게 돼 있다. 부산 영도구·중구 출마를 준비 중인 각 당 당협위원장이 모두 중구가 아닌 영도에 기반을 두고 캠프를 운영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영도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호남세가 만만치 않아, 자유한국당 등 보수우파 정당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다. 비록 14대부터 18대까지 자유한국당 고문으로 있는 김형오 전 의원이 내리 5선을 지냈고, 2013년 4·24 재보궐선거와 2016년 20대 총선 때 김무성 의원이 지역구를 지켜냈다고 하지만, 부산 다른 지역과 달리 선거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 ⓒphoto 뉴시스
무소속 이언주 의원 ⓒphoto 뉴시스

영도 11만 중 3만이 호남 출신

2017년 대선 때부터는 기류도 확연히 바뀌었다. 부산 영도 출신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표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보다 많이 나온 것이 단적인 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도 민주당 오거돈 시장의 표가 경쟁자였던 자유한국당 서병수 전 부산시장보다 많이 나왔고, 영도구청장도 민주당 김철훈후보가 당선되는 등 만만치 않은 민주당세를 과시했다.

실제 부산 영도는 6·25전쟁 와중에 부산으로 피란 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흥국해운’이란 해운업체를 운영한 곳으로, 이희호 여사와 처음 만난 곳도 영도라고 전한다. 재부산 호남향우회 영도구지회 관계자에 따르면, 11만7000명에 달하는 영도구 인구 가운데 약 3만5000명 정도는 호남 출신으로 추정된다. 부산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나 영도에 살며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김모씨는 “부산 전체 인구 30% 정도는 호남 사람”이라며 “드러내놓지는 않아도 선거 때만 되면 호남 사람들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역 김무성 의원 역시 2013년 재보궐선거 때 옛 지역구였던 부산 남구을에서 부산항대교 건너편 영도구로 지역구를 옮긴 직후 치른 지난 두 차례 선거에서 재부산 호남향우회 등을 찾아다니며 ‘광주 전남방직(전방)’ 출신임을 적극 어필했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은 김용주 전 전방 회장의 차남이다.

영도에 거주하는 재부산 호남향우회 인사들은 돌연 ‘보수의 여전사’로 변신한 이언주 의원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정식 전 재부산 호남향우회 영도구지회장은 “호남 출신은 모두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요즘은 뭉쳐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딱히 없다”며 “이언주 의원은 영도여고 출신으로 똑똑하다는 평이 있어서 분위기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부산 호남향우회 영도구지회의 다른 관계자는 “지역 국회의원들이나 알까, 이언주 의원의 인지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영도의 또 다른 축, 제주 표심

영도 표심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제주 출신 인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과제다. 영도에서 제주 출신 인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부산 제주특별자치도민회관이 영도대교 건너편 영도구 대교사거리에 있고 제주은행도 부산지점을 영도에 두고 있다. 재부산 제주도민회의 한 관계자는 “영도구 인구 가운데 제주 출신은 2만5000여명 정도로 추정한다”며 “부산 전체 제주 출신 인구 22만여명 가운데 10%가 영도에 모여 있다”고 했다.

영도에 제주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착한 것은 물질을 생업으로 하던 제주 해녀들이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제주와 환경이 비슷한 영도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으면서다. 영도대교 건너편 자갈치시장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 제주 출신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제주 출신 인사들은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입김을 자랑한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영도구청장에 도전한 인사들은 현 김철훈 영도구청장(민주당)을 비롯해 모두가 제주에서 학교를 졸업하는 등 제주와 연고를 가진 인사들이었다.

보수야당이 후보 단일화를 해내더라도, 지역에서 오랜 기반을 다져온 여권 후보를 넘어서는 것도 큰 과제다. 현재 영도구·중구 출마가 유력한 민주당 후보는 김비오 당협위원장이다.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나 중구에서 초·중·고(동광초·덕원중·혜광고)를 나와 부산 경성대를 졸업한 김 위원장은 고 김근태 의원 정무특보 출신이다. 김근태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재선·서울 도봉갑)이 후원회장을 맡았었다.

김 위원장의 경우 재보궐선거를 포함해 세 차례 영도에 출마한 뒤 낙선했고, 네 번째 출마를 목표로 12월 21일 영도에서 출마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출판기념회는 ‘나는꼼수다(나꼼수)’의 김용민씨가 사회를 보고, 정봉주·정청래 전 의원이 특별출연하는 등 이른바 ‘진성 친노(親盧) 진영’의 적잖은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비오 위원장의 한 측근은 “2012년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통진당) 민병렬 야권 단일후보에게 양보한 것까지 포함하면 다섯 번째 도전”이라고 했다. 김비오 위원장은 “이언주 의원이 초기에는 영도 출마를 검토했다가 지역 반응이 좋지 않자 기류가 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최종 걸림돌 영도 출신 文 대통령

최종적으로 부산 영도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벽을 넘어서는 것도 큰 과제다. 영도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라난 곳으로, 문 대통령은 영도대교 건너편 영도구 영선동에 있는 남항초등학교를 나왔다. 바로 옆 천주교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이곳에서 김정숙 여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최악의 경기악화로 지역 민심이 좋지는 않지만, ‘의리’를 중시하는 지역민들이 투표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영도구는 2017년 대선 때 부산 원도심 4구(중구·동구·서구·영도구) 가운데 유일하게 영도 출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또 영도에는 한진중공업 등 문재인 정부 최대 우군인 민주노총 사업장도 포진해 있고, 해양수산계의 대부로 불리는 오거돈 부산시장이 총장을 지낸 한국해양대를 비롯해 영도구 동삼혁신도시 주위로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등 해양수산 공공기관도 대거 포진해 있다. 동삼동은 영도구 최대 인구밀집지역인데, 이른바 ‘공무원 표심’이 상당하다.

만약 모든 변수를 고려해 이언주 의원이 영도가 아닌 해운대로 발길을 돌릴 경우, 영도구·중구 지역구에는 이언주 의원의 ‘전진 4.0’ 창당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김원성 청년혁신모임 대표가 출마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영도에서 초·중·고를 나온 김원성 대표는 경찰대 출신으로 육경과 해경 간부를 거쳐 CJ그룹 CJ ENM에서 전략지원팀장(국장)을 지냈다.

이언주 의원은 “오는 12월 말~1월쯤 최종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며 “지난 총선 때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영입한 민주당이 단 2달 만에 판세를 바꾸었듯이 내년 총선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했다. ‘보수의 여전사’ 이언주 의원은 과연 영도다리를 건너갈 수 있을까?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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