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7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숭문당’의 모습. 문석균 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월 17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숭문당’의 모습. 문석균 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월 16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의 ‘숭문당’ 서점. 문희상 국회의장이 창업주인 이 서점은 이날 오전부터 황토색 종이봉투를 겨드랑이에 낀 중·장년층 남성들로 북적거렸다. 의정부중앙역 근처 구도심 중심의 한 건물 1층 전체를 쓰고 있는 이 서점은 위치가 좋아서인지 책 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서점 현 대표는 문석균 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이다. 올해 만 48세로 민주당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을 맡은 그는 1남2녀를 둔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이다. 2018년 말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이 된 그는 오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의정부갑 지역구 공천을 받을 것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의정부에서만 6선을 한 현 국회의원이자 국회의장이라는 점이 조명받으면서 부자 간 의원직 세습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을 지낸 지역구에서 아들이 다시 선거에 나선 사례는 문 의장 부자(父子) 외에도 여럿이 있었지만, 국회의원이 현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바로 총선에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문 부위원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로키(low-key)로 대응하고 있다. ‘일단 소나기는 피해 가자’는 모양새다. 문 부위원장은 지난 12월 16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제가 출마한다는 게 너무 이슈가 됐는데 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논란이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총선 예비후보도 예비후보자 등록기간이 시작되는 내일(17일) 바로 등록하려 했지만 이슈가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려 한다”고도 했다. 당초 2020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기간 첫날인 12월 17일 21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려 했지만, 논란이 확산되자 일정을 보류했다는 설명이다. 문 위원장은 “제가 (출마) 취지를 잘 설명하려고 해도 이런 경우에는 말 한마디가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 기다리려 한다”면서도 “총선 출마하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2월 1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원직 세습 논란에 대해 이렇게 변명했다. “실력이 없으면 경선에서 떨어질 것이 아닌가. 내가 실력도 없는 아들을 (국회의원) 시키려고 이렇게 하겠나. 나도 출마에 반대하고 있다. 그도(아들) 벌써 나이 쉰 살이다. 한국청년회의소중앙회장을 하는 등 커리어를 갖췄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 부위원장을 하는 등 정치수업도 받았다.”

문석균 “총선 출마 결심 변함없다”

문 의장 부자를 바라보는 지역구민들의 목소리는 어떨까. 문석균 부위원장은 2010년 한국청년회의소(JC) 회장을 맡은 것 이외에 지금까지 이렇다 할 정치 관련 이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부중앙역 근처에 있는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경기도의정부지회 태종광 회장은 기자와 만나 “이전부터 안병용 시장이 (문석균 부위원장) 인사시키고 할 때 알아봤다. 민주당에서도 기존에 열심히 하고 정치해온 똑똑한 애들이 많은데 의장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아들 내리꽂고 햇병아리 같은 게 뭐가 있다고 공천을 주냐”며 문 의장과 여권을 성토했다.

하지만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라 해도 경쟁할 기회는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숭문당 근처에서 주차 관리 업무를 하는 60대 직원 양모씨는 “민주당 공천 경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경선 기회를 아예 주지 않는 것도 아닌 것 같다”며 “아들이라고 무조건 못 나오게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 개인에 대한 지역구민들의 호감은 여전히 두터운 분위기였다. 자신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라고 밝힌 의정부 구도심의 과일 판매상 차영옥씨는 “정치는 싫지만 문희상 의장님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어른 같다고 느낀다. 따로 뵌 적은 없어도 호감이 간다”고 했다. 그는 “문 의장 아들이 총선에 출마한다면 어떻겠냐”고 묻자 “아들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다. 문 의장 개인에 대한 호감일 뿐”이라고 했다.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의 한 부대찌개집에서 주차 안내를 하는 문형석씨는 “젊은 30대, 40대보다 연세 있으신 분들이 ‘세습’이라며 문 의장을 비판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위원장은 2002년 민주당 의정부시장 후보로 나선 적이 있는 박창규 위원장이 맡고 있다. 박 위원장은 현재 70세가 넘은 고령이다. 2002년 선거에서 의정부시장으로는, 현재 신한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김문원 시장이 당선됐었다. 민주당 의정부지역위원회에서는 문 의장을 제외하면 의정부을 지역구의 김민철 지역위원장이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다.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도 의정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지역에 출마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왔었지만 지금은 지역에서 자주 나오는 관측은 아니라고 한다.

문 의장이 더 이상 출마하지 않는다면 의정부는 수도권이라는 점에서 인물보다 선거 당시의 ‘바람’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수도권은 영호남에 비해 지역구 행사에 자주 참석한 유력 개인보다 선거 당시의 이슈에 따라 선거 결과가 영향을 받는 경향이 강하다. 의정부경전철 노선 의정부중앙역 근처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50대 조대진씨는 “요즘 문희상 의장이 아들 공천한다고 욕하는 사람은 원래도 의장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은 구도심이라 우리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며 “최근 상황을 보면 민주당이 싫어도 한국당은 못 찍겠다. 태극기부대가 국회 난입해서 깽판 치는 것 보면 한국당과 민주당은 차원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의정부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백중세를 이루는 지역구다. 6·25전쟁 이후부터 장기간 대규모의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던 지역이라 기본적으로 보수세가 강하다. 하지만 문희상 국회의장도 의정부(16대 총선까지)와 의정부갑에서만 6선을 했을 만큼 민주당 지지세도 만만치 않다. 문 의장은 6선을 했지만 18·19대 총선에서는 2위 후보와 약 1%포인트 차로 이겼을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지역구이기도 하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당시 72세의 고령이라는 점, 5선의 중진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의 ‘공천 칼바람’ 희생자로 지목돼 공천 탈락했지만, 이후 다시 전략공천돼 강세창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당시 의정부을 지역구에서는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가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한나라당·신한국당 소속 후보로 내리 4선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왼쪽) 문석균 민주당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 ⓒphoto 조선일보
문희상 국회의장(왼쪽) 문석균 민주당 의정부갑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 ⓒphoto 조선일보

“자기 마음대로 아들 내리꽂고…”

문 의장 부자의 사례가 논란이 되는 것은 부자가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례는 종종 있어왔지만 현역 아버지의 지역구를 곧바로 물려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세연 한국당 의원은 부친 김진재 전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금정구에서 당선됐지만 김진재 전 의원은 16대 국회 이후 국회를 떠났고, 김세연 의원은 18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정당도 부친이 소속됐던 한나라당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인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17대 총선 이후 치러진 2005년 재·보선을 통해 대구 동구을에서 당선됐지만 아버지(대구 중구)와는 지역구가 달랐다. 유 전 의원은 14대 국회까지 대구 중구에서 현역 의원으로 활동했었다.

현재 문 의장 부자와 가장 비슷한 사례는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의 경우다. 충북 보은·옥천·영동 지역구에서 5선을 한 그는 이 지역에서 ‘맹주’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공천에 탈락하자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2012년 통합민주당 후신인 민주통합당에 복당해 지역구를 아들 재한씨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아들 재한씨는 19대와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박덕흠 후보에게 연패하면서 원내에 입성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세습 정치’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는 대표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경우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일본의 제56·57대 총리를 역임했다. 할아버지 아베 간은 중의원 의원을 2번 지냈고,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상을 지냈다. 정권 2인자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역시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외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와 장인 스즈키 젠코가 모두 총리를 지냈고, 부친은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아베 총리의 오른팔로 불리는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 역시 큰아버지인 세코 마사타카 참의원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할아버지 세코 고이치는 기시 노부스케 2차 내각에서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의정부의 금수저 2세 출신들

역사적으로 의정부는 ‘금수저’인 2세 출신들이 선출직에 여러 번 당선된 전적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의정부을 지역구 현역 의원인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다. 홍 의원은 경민학원 설립자로 의정부에서 11·12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우준 전 민주정의당 의원의 아들이다. 홍문종 의원은 16대 국회까지 문희상 의장과 3차례 맞붙어 2번 패했지만 17대 국회 때부터 지역구가 갑과 을로 갈라지면서 맞대결을 피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 출범 뒤 현역 국회의원이던 문희상 의장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차출되면서 새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받고 출마한 인물은 강성종 신흥학원 이사장이다. 강성종 이사장은 17·18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하지만 임기 만료 직전인 2012년 5월 학교 자금 횡령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2010년 치러진 의정부시장 선거는 경민대학 교수인 김남성 후보와 신흥대학 교수인 안병용 후보가 맞붙으면서 ‘홍문종 대 강성종 대리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다.

의정부갑 지역구 현장을 취재하면서 실감한 것은 사실 세습 논란보다는 정치 혐오증이었다. 유권자들은 “정치 세습이든 뭐든 아예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의정부갑의 총선 투표율은 17대 57.65%, 18대 43.31%, 19대 50.1%, 20대 53.3%로 전국 투표율(17대 60.6%, 18대 46.1%, 19대 54.2%, 20대 58%)에 비해 매번 3~5%포인트 낮았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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