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의원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세균 의원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세균 의원은 여야 지지자 모두에게 평이 좋았다. 정 의원이 종로에서 2선을 할 수 있었던 건 진보 성향 정당 소속이었음에도 보수색이 강한 지역 유권자들을 잘 흡수했기 때문이다. 양쪽 정치색을 모두 띠는 종로 지역 유권자를 잘 포섭하는 이가 정 의원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나.” 지난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금자탑빌딩에 있는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의원실에서 만난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 사무실에서는 종로구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 사무도 함께 도맡고 있다.

종로구의 투표 성향은 크게 둘로 대비된다. 제1선거구이자 부촌이 몰린 서부지역(평창·무악·삼청·부암동 등)은 보수 성향을, 제2선거구로 분류되는 동부지역(창신·숭인·이화·혜화동 등)은 진보 성향을 보인다. 15대 국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보궐선거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뒤이어 당선됐고, 16·17·18대 때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이 지역을 석권했지만 19·20대에서 민주당 정세균 의원이 지역구를 꿰찰 수 있었던 건 이런 지역 특성 때문이다. 이 관계자의 말은 이런 종로 특유의 표심을 잘 이해한 인물이 차기 종로구 지역구 의원이 될 거란 의미다.

종로구의회 의원들 말에 따르면 그간 정세균 의원은 종로구 표심을 비교적 잘 관리해왔다고 한다. 한 종로구의회 의원은 “생활정치인인 우리가 봤을 때 정 의원은 지역에서 정말 잘했다”며 “그러니 여야를 불문하고 주민 모두가 좋아한 것”이라고 평했다. 2선 의원직을 역임하는 동안 교통체계 개편, 각종 공공시설 건립 등 피부에 와 닿는 주민 복지향상에 노력했다는 말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 12월 17일 청와대가 정세균 의원을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선 적지 않은 아쉬움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앞서의 지역구 사무실 관계자는 “정 의원도 그렇고 주민들도 그렇고 ‘신분당선 추진’ 등 아직 완수하지 못한 공약 등에 대한 아쉬움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종로는 ‘정치 1번지’로 불리며 대통령을 배출했던 지역구다. 이곳에서의 국회의원직 역임은 지역구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 차기 대권주자라는 타이틀까지 부여한다. 그러다보니 정 의원이 8년간 다져놓은 종로구 표심이 내년 총선에선 누구에게 향할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이미지는 이낙연” “경제난으로 황교안 지지”

정 의원에 대한 국무총리 지명 이후 주민들은 이미 이낙연 국무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을 자연스레 입에 올리고 있었다. 지난 10월 주간조선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메트릭스코퍼레이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권주자를 꼽는 질문에 수도권 거주민 1000명 중 23.1%가 이낙연 총리를 꼽은 바 있다. 황교안 대표는 15.2%의 지지를 받아 2위에 올랐다.

서울 종로 창신동에서 40년간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손모씨는 “정세균 의원은 성품이 인자하고 말도 잘한다. 그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는 인물이 이낙연 총리다. 이 총리도 사람이 점잖지 않나”라고 말했다. 인근 조명업체 가게 사장은 “이낙연 총리가 무던한 것 같다. 국회의원 5선 이상 한 것도 그렇고 정 의원과 정치 경력도 비슷하다. 서로 배턴터치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이낙연 총리는 당으로 복귀해 정세균 의원의 지역구 조직을 물려받아 당내 입지를 다질 거란 관측이 나오는데, 주민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호감형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총리를 지지하는 주민들 중 일부는 종로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황교안 대표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최근 창신동 거리에 다수 입점한 젊은 옷가게 사장 중 한 명인 김모씨는 “황 대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 같지 않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이어간다. 너무 강성적인 이미지다. 국무총리 때부터 보여온 그의 모습은 종로구 주민, 더 나아가 온 국민을 위해 성실히 일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당내 쇄신, 정치적 도약 등을 위해 황 대표가 출마할 거란 이야기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현 집권당에 대한 불만과 경제난 등으로 황교안 대표를 지지하는 주민들도 꽤 있다. 창신동 거리에서 유일하게 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사람 됨됨이는 이낙연 총리가 더 낫다고 본다. 근데 요즘 정부가 펼치는 경제 정책은 한마디로 국민 목줄 죄기다. 대북 정책도 하나 개선된 것이 없다.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 황교안 대표가 나오면 찍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반 가게로부터 10여분 떨어진 곳에 과일 가게를 연 이모씨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10여년간 ‘울며 겨자 먹기’로 편의점을 운영하다 최근 업종을 바꾼 그는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자영업 하기가 어려워졌다. 알바생에게 줄 돈이 없어 일주일간 밤을 꼬박 새우며 편의점 영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론 안 된다. 한국당에 표를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로 서부라고 무조건 보수당 안 찍어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서부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무조건 자한당” “철두철미한 황교안 대표 민다” “배포 없는 이낙연은 안 돼”라는 의견들이 나왔지만, 맹목적인 지지는 아니었다. 정부와 집권당의 개별 정책에 대한 평가와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에 따라 표심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었다. 통인시장 뒤편에 있는 마을 정자에서 만난 김모씨는 “한나라당 때부터 보수당만을 지지해왔다.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더라. 배신감과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민주당을 찍었다. 하지만 그 당이 그 당이더라. 다시 한국당을 찍으려 하는데 인물이 변변치 못하다. 황교안 대표는 이제 막 정치에 뛰어든 거 아닌가.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통인시장에서 50여년간 정육점을 운영해온 김모씨의 경우 정치적 조직 기반을 주안점으로 삼기도 했다. 그는 “지역을 제대로 일구려면 당내 기반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 총리의 경우 당내 지지기반이 약하다고 들었다. 제대로 힘을 쓸 수 있겠나. 차기 대권주자로 나서는 데에도 조직이 필요할 것인데 말이다. 지금으로선 당 대표를 맡고 있는 황교안에게 표를 던지려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12월 19일 세종시 총리 공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이와 비슷한 지적을 받자 “조직 기반도 필요하지만, 국민에 대한 호소력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중진 의원들에 대한 피로감으로 아예 새로운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통인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이제는 좀 참신한 인물이 지역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의원들이 여기 종로구를 대선 발판 등으로만 삼고 떠나는 느낌이다. 이래선 지역 발전이 제대로 될 수 없다. 만약 정세균 의원이 국무총리에서 떨어진다 해도 종로구엔 다시 출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7대에 이어 8대 종로구의회 의원을 역임 중인 윤종복 의원은 최근 주민들 의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서부 쪽을 포함한 종로는 이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마냥 보수색을 띠지는 않는다. 차후 누가 출마할 것이며, 그 인물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보수당 쪽에서 얼른 후보를 내놓고 워밍업을 해달라는 주민 건의도 들어온다.”

정치권에선 현재까지 이낙연 총리, 황교안 대표 외에도 종로구에 거주하는 김병준 전 한국당 비대위원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임 전 비서실장의 경우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당의 요청이 있을 시 다시 나올 수 있을 거란 관측이다. 정세균 의원을 향했던 종로구 표심은 당분간 부유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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